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93화 (692/1,009)

그렇게 바이콘들이 감염자 생포작전을 수락하려 했을 때였다.

〈아니. 좋은 안이긴 하네만 문제가 좀 있소.〉

페를로가 혀를 차고 싶어하는 얼굴로 건물 밖을 가리켰다.

〈내가 병법을 좀 아는데, 유인책을 시도하려면 현재 상황에서 2개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오. 치료할 여지가 있는 이들을 살리려면 3개로 늘겠지.〉

〈말해주시겠습니까? 페를로 씨.〉

자기 제안이 반박당한 것인데, 키아라는 기분이 상한 것 같지도 않게 재촉했다.

페를로는 그럼에도 무심코 그의 눈치를 보면서 손가락을 꼽았다.

〈첫째. 흩어진 감염자들을 모을 유인책. 둘째. 유인책을 지켜내며 감염자들을 유도할 장소. 셋째. 감염자들에게 상처 하나 입지 않을 강자(强者)요.〉

쿠우웅…!! 페를로가 말을 마치자마자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떨리는 손을 쥐락펴락했다.

〈……들었소? 저건 우리 니다벨리르의 병사가 쓰는 기폭망치요. 저 망치는 복잡한 사용법으로도 유명하지. 우리 호위들은 전부 감염됐고.〉

지혜가 낮은 것과는 별개로 몸에 습득한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감염자들이 마법을 쓰는 걸 본 키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일족의 전사들이 저지하고 있습니다. 사망자는 없으리라 믿죠.〉

〈사망자는 없겠지. 하지만 부상은?〉

레이틀린의 위로에도 위험성을 제시해가는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벅벅! 페를로는 자기도 이런 말은 하기 싫은 것처럼 수염을 긁어댔다.

〈벌레 인간에게 물리고 기생충의 침입을 눈치 못 챘다간, 우리 드워프 정예병과 맞겨룸이 가능한 강자가 그대로 감염자 측으로 넘어간단 말이오.〉

〈……그, 그건 그래.〉

〈그리고 혹시나 저 문제를 극복해도…… 이미 벌레로 변한 이들은……〉

〈다들 닥치지 못해요?〉

고고학회의 학자들이 쓸데없는 군소리를 했다가 아셰라드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학자는 생각보다 눈치가 부족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카에디는 상황도 잊고 멍하니 생각했다. 그렇게 뭐라 말하기 힘든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였다.

〈……레이틀린!〉

게르마니아 외교관을 눕혀주던 바이콘족 여인이 외쳤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쪽지를 흔드는 그녀의 안색은 상황에 맞지 않게 밝아서, 마치 이미 모든 문제가 전부 해결됐다는 듯 했다.

〈계도…… 아니, 주인님의 연통이에요!〉

〈어디 줘 봐!〉

날아들듯 달려간 그는 쪽지를 읽고 안색이 바로 밝아졌다.

쪽지를 챙긴 그는 한결 걱정을 덜었다는 것처럼 말했다.

〈사절단 여러분. 저희 주인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동료 분들의 모습을 되찾을 방법과 수괴의 위치가 대략 파악이 끝나셨다고 합니다.〉

〈그, 그게 사실이오?!〉

〈고쳐낼 방법을 찾았다고?! 어떻게 벌써!!〉

사절단 생존자들이 아우성을 피웠다.

말이 되냐느니, 증거는 있냐느니 떠드는 사람들. 숙소를 지키던 바이콘들은 그들의 의심은 귀담아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후환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콜리도 경의 제안을 실행하죠.〉

〈이보시오.〉

입을 열려는 페를로를 레이틀린이 막았다.

〈작전은 저희들끼리만 실행하겠습니다. 앞서서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손님들의 손을 빌리면 저희 주인님의 불명예가 될 것이라고.〉

〈……아뇨, 아무래도 저희와는 논점이 다르신 모양입니다.〉

그때, 직전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있던 로마니아 사절단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이 판데믹 사태에서 유일하게 탈락자가 없는 이들이었다.

외교관이라기엔 근골이 장대한 남자가 말했다.

〈집행관, 에덴 헤이빈저입니다.〉

〈……레이틀링 파델타입니다.〉

이름을 주고받은 레이틀린이 물었다.

〈논점이 다르다니 무슨 뜻이십니까?〉

〈저희가 염려하는 건 작전의 가불가(可不可)가 아닙니다.〉

〈……그러시다면?〉

〈여러분들이 놀라운 실력을 가진 건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걱정되는 겁니다. 사절단들의 호위에 이어서, 여러분까지 감염될 경우를.〉

─그렇게 플래티넘 클래스의 몬스터에게 감염된 바이콘과 사절단의 혼성 전투집단이, 이 숙소까지 몰려들 가능성을.

뒷말은 입에 담지 않아도 전해졌다. 레이틀링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경의 말씀은 이 판데믹을 좌시하라는 뜻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군요.〉

〈아닙니다. 단지 간접적으로 저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문제라면, 확실한 승산 없이 서둘러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 그럼 제가 도와드리면 되겠습니다.〉

─뚜둑. 키아라는 손목을 꺾고 기지개를 폈다.

〈제가 가진 유물로 유인한 감염자들을 한 곳에 가두겠습니다. 저 자신이 결계 안에 들어가야 하기는 하지만, 그 점은 문제없습니다.〉

〈아공간〉 두루마리에서 미스릴제 대검을 꺼낸 키아라는 그걸 자기 목에 그었다.

까가가악─!! 쇳소리가 섬뜩하게 울렸지만 그의 목에는 찰과상도 없었다. 드워프 전사들이 선호하는 육체강화형 무술이었다.

〈감염자들 중에 울프헤딘 경 정도의 실력자가 계신 게 아니라면 벌레가 들어갈 걱정은 없어요. 양은 적지만 치료제도 있고. 그럼 다음은──〉

〈……유인책이죠. 그거라면 제가 준비할게요.〉

카에디가 품에서 나무통을 꺼내며 말했다.

〈마침 제가 후각에 민감한 몬스터를 유인하는 매직 아이템이 있거든요.〉

〈……왜 그런 물건이?〉

〈고향의 물건이에요. 몬스터에게서 도망칠 때 마차에서 대충 던져놓고 튀면 된답니다. 몬스터가 이 통에 꼬여 있는 사이에 도망치는 거죠.〉

뭐더라. 누켈 뭐시기인가 하는 전설 속의 괴물 같은 것에서 도망치려고 만들어진 전통적인 아이템이었다. 멍청해진 감염자들을 유인하긴 쉽겠지.

카에디는 연인의 것까지 2통을 챙겼다. 그리고 나서 건물 안으로 대피한 생존자들을 살펴보고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저랑 제 남친 월급 챙겨주는 사람도 구해줘야 하고요.〉

생존자 중에 그녀의 상사인 외무대신은 없었다. 다른 동료들도 말이다.

〈좋군요. 다른 불만사항 있으신 분?〉

사람 좋게 웃은 키아라가 묻자 로마니아의 집행관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참견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카에디는 혀를 내밀었다.

장비를 챙긴 작전부대는 두 팀으로 갈라졌다.

키아라는 옥상의 난간에 쪼그려 앉으며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마법으로 고속이동하는 바이콘들의 옆에서 카에디가 연기 나는 통을 흔들고 있었다.

〈제에에엔장!! 빨리도 모이네, 진짜아아──!!〉

“Kuaaaaaa──!!”

〈어, 외무대신?! 당신 이거 보너스랑 포상휴가 3년 분은 내놔야 한다──?!〉

투두두두두…!!!

바이콘들의 마법이 연기를 퍼트리자 냄새─혹은 페로몬─의 향기를 맡은 벌레 인간들은 광분하며 쫓았다. 키아라는 결계 유물의 상태를 재점검하다 웃었다.

고대문명의 가라앉은 섬에서 감염자를 모아서, 해변가로 이끈다. 100명 가량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 위대한 선행의 중심이 된 이가 딱히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대단한 걸물도 아닌,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몰래 연애하던 평범한 여인이라니.

〈어흠.〉

그 사실을 눈부신 광경처럼 바라보던 키아라는 헛기침을 듣고 눈을 돌렸다.

긴장한 듯 지상을 바라보던 레이틀링이 말했다.

〈……흠. 콜리도 경.〉

〈네. 콜리도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혹시나 이번 작전의 의뢰비는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네?〉

1초 정도 머리가 멍해졌던 키아라가 되물었다. 마스터 클래스에 도달한 이후, 이만큼 머리가 멍해진 건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레이틀링은 지팡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그, 모험가는 고용할 때 의뢰비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사실 돈이 없지는 않은데, 이게 대충 어느 정도 금액인지는 잘 몰라서……〉

빵 좀 사겠다고 보석을 내밀던 게 1~2주 전의 일 아닌가.

흑역사를 떠올린 레이틀링이 주저하며 묻자 키아라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진심으로 빵 터져서 목청껏 웃었다. 레이틀링은 엄청난 성량에 당황했다.

〈푸흐흐흐흐…… 아뇨, 돈은 됐습니다. 지금 그 말씀이면 충분하겠어요.〉

〈예? 제, 제가 뭔가 이상한 소릴 했습니까?〉

〈아뇨, 그냥 이 영지가 꽤 마음에 들어서요.〉

난간에서 일어선 키아라가 고개를 숙였다. 카에디가 유도하는 감염자들이 곧 약속장소에 도착할 것이다. 결계를 치려면 슬슬 달려야 했다.

─통!

나무 난간에서 몸을 던진 키아라는 해안가까지 달려갔다. 유인되지 않은 감염자가 거의 없는 건 위에서 확인했다. 이제는 가둬두면 작전 완료다.

〈슬슬 교대하죠~!〉

공중을 밟고 달리던 키아라가 카에디와 바이콘 마법사에게 소리쳤다. 마법사는 부유하던 석판의 방향을 비틀며 하늘 높은 곳으로 치솟았다.

그들의 도주를 확인한 키아라가 유물을 꺼냈다.

〈암막결계, 발동.〉

─철컹! 키아라가 건드린 쇠사슬 조각상 유물이 마나를 뿜었다.

빛 한 점 통하지 않는 어둠이 감염자들과 그를 감쌌다. 발동자가 함께 갇히는 걸 조건으로 강도를 올린 결계였다. 키아라를 죽이지 않는 한 탈출은 불가능했다.

─따닥, 따닥!

감염자들은 빛이 사라진 것에 당황하다가, 금방 키아라의 냄새를 맡고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암막결계에서 들려오는 사나운 위협 소리!

키아라는 그게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전신이 벌레가 돼 버린 일부 감염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단 말이죠……?〉

진심을 말하자면, 별로 믿겨지지는 않는다.

마스터 클래스의 모험가로서 수백 개의 유적을 돌아다닌 키아라 콜리도가 ‘가능성은 얇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저들을 고쳐줄 수 있다면 이 사건도 적당한 미담으로 완결되겠지.

대충 살펴보면 동족끼리 잡아먹지 않는다는 습성 때문에 감염자끼리 죽고 죽이진 않은 것 같았고, 부상자와 후유증도 어떻게 수습 가능한 범위다.

사람의 선의가, 악의에 고통받는 사람을 구하는 결말.

〈……무척 낭만적이군요.〉

낭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그보다, 정말로 이들의 치료가 가능하다면 노르드랑은 조금 더 친해져야 하지 않을까? 키아라는 자기 방에 누워서 고민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모로 꼬았다.

“Kuaaaaaaaaaaaaa!!!!!!”

“Kuaaaaaaaaaaaaa!!!!!!”

〈……음, 모르겠네요.〉

집중을 해치는 소리에 키아라는 머리를 털었다.

그보다, 깜빡하고 저 감염자들을 제압할 방법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취를 거는 매직 아이템은 있다. 하지만 너무 강한 나머지 일반인인 감염자들은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생포하는 몬스터는 보통 플래티넘부터 시작하니까.

“Kuaaaa!!! Kuaaaaaa!!”

〈……별 수 없죠. 저도 위협 좀 해 볼까요.〉

혹시 모르니까 감염자들이 다치지 않게 마법을 걸어주는 유물까지 사용한 키아라는 생각하기 귀찮아진 것처럼 손목발목을 풀었다.

그렇게 키아라가 다 몸을 풀었을 때.

“Kuaaaa!!! Kuaaaaaa!! Ku── a, a…… A?”

─뚝!

미친듯이 반복되던 위협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그쳤다.

…사삭.

가장 몬스터화가 진행된 감염자가 발을 물렸다.

해변의 모래가 벌레의 발톱에 엉켜붙었다.

…사삭.

…사삭, 사삭!

그리고 뒤를 이어서 1명, 또 1명.

조금씩 감염자들이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목이 찢어져라 내지르던 함성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들은 발소리마저 최대한 죽이고 결계의 끝까지 물러났다.

키아라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Kaaaaaaaaaaaaaaaaaaaaaaaac?!!!!!!”

그 한숨이 소리없이 끊던 기름에 물을 부어버린 것일까.

감염자들은 파리채에서 도망치려고 애쓰는 바퀴벌레들를 방불케 하며 앞다퉈서 도주했다. 앞조차 보이지 않는 암막결계 탓에 절반이 넘어져서 같은 감염자에게 밟혔을 정도였다.

「어, 그러다 다치시겠습니다. 제가 방어 마법을 걸어드리긴 했는데──」

“Kaaaaaaaaaaac?! Kaaaaaaaaaaaac──?!!!!”

박박박박!!! 박박박박박─!!! 감염자들은 결계에 달라붙어서 꺼내달라는 것처럼 벽을 긁어댔다. 그 아비규환이 곤란한 듯 키아라는 머리를 긁었다.

「울프헤딘 경. 되도록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아즈테카의 말로 중얼거린 하프 드워프는 목을 문지르다가 후회했다.

결계, 조금만 더 넓게 칠 걸 그랬다.

***

“……데뎃?”

프랑을 안고 달리던 나는 아틀란티스 해변에서 낯선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존나게 큰 블랙-다라이 같은 게 모래사장에 덮혀 있었다.

‘아, 혹시 바이콘들이 감염자들을 생포한 건가?’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장즈췬을 보러 가기 전에 소식을 전해놓고 따로 연락을 받지 못했으니까. 처음 연락을 넣고 10분 쯤 지났으니까 뭔가 수를 써놨겠지.

이제 보면 아틀란티스의 화재도 거의 꺼졌다.

‘충왕대군만 잡으면 된다 이거지.’

〈공간이동〉 같은 게 있어도 도망은 못 친다.

내 손에 심념을 잡혔으니까 마법을 쓰기는 곤란할 것이다. 텔레포트는 실패하면 파리랑 융합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존나 유서 깊은 부작용이니까 그 새끼도 알지 않을까?

“노르, 저기!”

그때 프랑이 바이츠니아의 선박을 가리켰다.

나는 미끌미끌한 아틀란티스의 건물을 달리면서 눈을 반개했다.

랩실 노예 계약만큼 끔찍한 주술, 심장 빨갱이 사상충을 사용하는 굴라나뢰크의 언럭키 파브르.

충왕대군의 본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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