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94화 (693/1,009)

“더 안쪽이야.”

선박에 올라타자 망치를 꺼낸 프랑이 말했다.

나는 충왕대군과 이어지는 심념의 끈을 바라보았다. 갑판을 투과하고 더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밑에 숨어있는 걸까.

─파직!!

서방국가의 배와 형태가 달라서 잠깐 헤매이던 때였다. 심념의 끈이 마치 심박수 그래프처럼 큰 파장을 보이며 날뛰었다.

나를 뒤돌아본 프랑이 눈이 커졌다. 전선을 잘라낸 것처럼 전기가 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노르! 손이!”

“괜찮아. 끊을게.”

빠져나갈 생각인가. 막아보려고 했는데 저항이 생각보다 거셌다.

물리적으로 파란 스파크가 튀면서 내 손목까지 태우려고 든다.

저 음습한 놈이 뿌리칠 수 있다고 확실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쓴 마법이다.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오만일지도 모른다.

─오싹.

심념의 끈은 그대로 내 정신에까지 파고들려고 들었다.

저항만이 아니라 반격도 할 생각인가.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위험하다. 블루투스를 연결했는데 나만 해킹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팟! 파아앙!!

심념의 끈을 끊자 갑판에 드리프트의 자국처럼 탄 자국이 남았다.

나는 매캐한 냄새가 풍기는 손을 털었다.

“서두르자. 저 새끼, 도망칠 방법이 있을 거야.”

그게 아니면 굳이 심념의 끈을 끊으려고 했을까.

‘날 죽일 함정보다 추적과 재밍을 막는 걸 우선했다. 〈공간이동〉이든 뭐든 제 몸 하나 건사할 자신은 있는 거야. 시간을 줘선 안 돼.’

베로니카도 5분이면 〈공간이동〉을 쓸 수 있다.

마법진을 그려두었으면 더 짧다. 시간의 유예는 없을 것이다. 장즈췬 쪽의 제압이 끝난 뒤에 오길 바라는 것도 희망적인 관측일까.

아틀란티스의 전황이 일단락된 것 같아서 여길 지키면서 다른 전력의 합류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이래서는 우리끼리 해낼 수밖에 없다.

나랑 프랑은 눈을 마주치고 무기를 들었다.

“존나쎄게내려찍기!!”

─우지끈!! 콰앙!!

브류나크가 갑판을 때려부수고 방추형의 금속을 감은 프랑의 망치도 합세했다.

통로에 함정이 깔려있을 게 뻔했다. 마나를 좀 써서라도 이렇게 내려가는 게 더 안전하겠지. 우린 적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곳까지 이름도 모르는 황제의 배를 씹창냈다.

콰앙─!!

규칙적으로. 느리지 않게.

언제 기습해 와도 괜찮도록 경계한 보람이 있게, 프랑은 3번째 갑판 바닥을 부수기 직전에 심념의 텔레파시로 날카롭게 경고했다.

─노르! 오른쪽에 벌!

벌? 나는 오른쪽의 벽을 경계했다.

벽을 부수고 커다란 벌 같은 게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은 멀쩡했고, 그 대신 갑자기 열린 문에서 벌떼가 쏟아졌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왜애애앵─!!! 왜애애앵─!!! 왜애애앵─!!!

씨발, 그건 존나 말 그대로 벌‘떼’였다.

떼거지로 몰려오는 벌들! 하지만 크기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닌데? 0.1초 정도 의구심을 품은 나는 절대 그런 얕은 수가 아닐 거라고 생각을 바꿨다.

“말벌신고는 119!!”

혈수마공(血手魔功)

파이어 토네이도(Fire Tornado)

화르르르륵─!!

아르마알스 가문에서 깨우친 바람의 마나에다가 불을 피웠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법에 오러까지 1:3 비율로 섞었다. 거의 불꽃 믹서기다.

콰드득─! 불꽃의 폭풍은 벌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왜애애애앵─!!

단지 몇몇 놈들은 그걸 뚫고 들어왔다.

씨부랄, 마법의 흡입력이 부족했었나. 그렇다고 해도 살벌한 생명력이었다.

“내가 막을게!”

프랑이 부지불식간에 던진 나이프가 금속 벽을 세웠다. 프랑의 〈백토인형〉은 자유롭게 형태와 성질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니까.

푹푹푹푹─!! 벌들은 벽에 달라붙어서 침을 꽂아댔다.

불투명한 금속 벽인데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고 물으면, 그 금속 벽이 벌침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벌한 위력! 보통 벌이 아니다!

“좆망!!”

“……위험해!”

벽을 세웠던 프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프랑의 골렘과 그 변주(變奏)인 금속창조 마법은 마나를 품은 희귀금속이다. 그걸 힘겹게나마 뚫는다면 벌침의 위력은 내 창술 초식의 10% 정도는 될 거다.

그게 수백 마리나 몰려온다?

작다고 깔볼 벌이 아니었다. 오히려 큰 것보다 더 위험하다. 작은 표적은 무기로 맞추기 어렵다. 프랑이랑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소환된 몬스터인가?’

내버려두면 사방으로 흩어질지 몰랐다! 게다가 침 한 방에 사람의 생살을 파고 들어가는 몬스터 수백 마리가 민간에 풀리게 놔둘 수는 없는 법!

그럼 내가 대처할 수밖에. 나는 마나를 더욱이 끓어올렸다.

‘한 겹 더!’

혈수마공(血手魔功)

캘러미티 월(Calamity Wall)

기름을 먹이고 불을 붙인 모기장처럼 화염의 장막이 펼쳐졌다. 나는 그걸 오밀조밀하게 전개하며 퍼지려는 벌들을 막으며 방 안으로 몰아넣었다.

화재현장의 주의사항 중에 그런 게 있던가.

백 드래프트 현상. 산소 부족으로 발화 직전에서 연소하지 못했던 고열의 발화제나 연소물이 갑자기 공급된 산소에 의해 순식간에 타오르는 현상이다.

그것의 응용이다. 바람의 마나를 만드는 것쯤은 술식이 없어도 무예로 할 수 있다. 부족한 땔감은 벌들을 태우면 된다.

“프랑! 뒤로 물러나!”

실체를 가진 야수회귀의 마나로 공간을 장악.

그리고 나서 불꽃/바람의 마나로 싸그리 연소시키는 폭죽놀이 삼중주였다. 복도를 메울 기세였던 벌과 불꽃이 역재생 영상처럼 방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오물은 소독이다! 햣하-!”

─후루룩! 훅!

바람이 빠지는 소리처럼 모든 불꽃이 사라졌다.

그렇게 1초 정도의 침묵 후.

─퍼어어어어어어어엉!!!!!

쨍그랑─!!!!!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선실의 창문이 폭발했다.

콰창창창─!!!

폭발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선실 안은 내부로부터의 폭발에 초토화됐다. 난 밀려오는 불을 손짓으로 걷어냈다. 내 마나인데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불을 연소하고, 매연을 바람으로 대충 걷어냈다.

그러다가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은 나는 곧바로 몸을 덮은 야수회귀의 마나를 더 질기게 바꾸고, 프랑의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연기 마시지 마.”

매연에 독극물이 섞였다.

저 방 안에 뭐가 들어있었을지 상상이 가는군.

“콜록, 콜록! 으, 응.”

프랑은 기침하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슈와아아악─!

그녀의 호흡기로 들어가는 연기를 막고자 머리 주변에 야수회귀의 마나로 헬멧을 만들어줬다. 내 몫의 미스릴 〈아공간〉 메달도 꺼냈다. 가족끼리 공유하는 인벤토리다.

예비로 집에 냅둔 메달이랑 배기구─깔대기─를 연결하면 임시 산소 마스크가 된다. 안전한 저택 창고의 공기와 연결해주는 거거든.

“마나 코팅 안에다 넣어둬. 머리 주변은 기체가 통하지 않도록 막았으니까.”

“아, 응.”

“해독 포션도 손 닿는 곳에 챙겨두고.”

해독제는 많다. 마비, 신경독 같은 것만 피하면 어떻게든 된다.

프랑은 내가 준 메달을 우주복 마스크의 산소통처럼 쑤셔넣었다.

─빠직. 짓밟은 벌 시체에서 말라붙다가 만 독극물이 흘러나왔다.

제노사이드 벌떼는 독샘도 가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설마 용광로 수준의 고열로 지졌는데도 연소되지 않다니? 특수한 중금속 계열의 독극물일까.

‘급히 불러낸 소환수 치고는 너무 강하다.’

밀폐공간이 아니고 정글 같은 곳에서 시간차를 두며 덤볐다면 나라도 못 버티지 않았을까. 이건 충왕대군이 반격할 준비를 갖췄다는 암시였다.

【심히 불쾌하군.】

아니나가 다를까. 새까맣게 변한 방에는 금줄로 둘러싸인 말벌집이 있었다.

새끼줄을 꼬아 만들고 부적을 묶은 법진!

내 불꽃에 타오르고는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 불길 속에서도 버텼다는 얘기 아닌가. 상당한 주술이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성인 남성이 통째로 들어갈 벌집. 목소리는 거기서부터 흘러나왔다.

【네가 불태운 단말들을 기르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생각하지?】

타닥, 타닥….

충왕대군이 숨어 있던 방에는 곤충형 몬스터의 시체로 득시글했다.

플라스크, 유리관 등에 실험체를 넣은 미친 곤충학자의 실험실이 이러할까? 하지만 방금 전의 벌떼와 비슷한 몬스터들은 내 불꽃을 못 버티고 뒤져나간 뒤였다.

‘배에 차려둔 임시 공방에 불과할 텐데 이 정도인가. 사절단 전체에 벌레를 심어둔 건 이 공방을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첫 수부터 미스릴 클래스의 오러-파이어 토네이도를 쳐맞은 것이다.

게다가 벌레 타입 포켓몬은 불 타입 스킬에 2배 데미지를 받는 법.

벌레들로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쪼잔한 새끼. 손해배상이라도 해 달라고?】

─콰직. 나는 벌레를 짓밟으며 말했다.

기습당할 우려는 없다. 살아 있는 놈이 있다면 프랑이 말을 해줬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작은 벌레들이야.’

불탄 기자재를 체크하면서 눈을 반개했다.

벌레 몬스터라고 하면 크고 흉악하다는 인상이 큰데 비해서, 충왕대군이 선호하는 벌레는 전부 다 작으면서도 생물에게 치명적인 종류 뿐이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바세계의 천박한 황금 따윈 문제가 아니다. 이 녀석들에게 들인 시간은 내가 신인류의 계몽에 사용할 시간을 대용(貸用)한 것……】

투둑…. 무너진 말벌집 안에서 바이콘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시간을 총혜신군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 썼다면, 대체 몇이나 되는 구인류가 우리들 굴라나뢰크와 말머리를 같이 했겠나?】

【이렇게 불타버릴 줄 알았으면 연구할 시간에 포교활동이나 할 걸 그랬다? 별 웃기는 씹새끼도 다 있네, 이거.】

나는 이죽거리며 충왕대군이라는 새끼의 성격을 거의 파악했다.

기생. 인체개조. 맹독. 제각각 강력하고 살벌한 능력을 갖춘 벌레들이다.

컴팩트하면서 고성능.

선호하는 단말의 취향에서도 전해진다. 최신식 포터블 기기를 사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개조하기까지 하는 집착이라니?

그리고 저 선민사상까지.

답은 나와 있었다.

【비뚫어진 엘리트라. 싫어하는 타입이군.】

【다시 한 번 불쾌하게도, 나 또한 동감이다.】

펑─! 말벌집은 풍선처럼 터졌다.

뿔 2개가 비틀리며 자라난 남자가 걸어나왔다. 그 몸에는 바이츠니아의 무복과 두루마리 같은 걸 입었다. 그야말로 마교의 사술사였다.

【──역시 네놈은 구세계의 해악이다.】

충왕대군의 안면이 비틀리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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