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95화 (694/1,009)

【──역시 네놈은 구세계의 해악이다.】

충왕대군의 안면이 비틀리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음습한 수작을 몇 번씩 봐 와서였을까? 나이프를 빼든 프랑은 방심하지 않고 탐지마법에 걸린 결과를 조언했다.

【……노르. 저 사람, 바이콘이 아냐.】

【그런 모양이네. 하지만 문제없어.】

저 놈이 우리의 목표인 건 틀림없었으니까.

‘장즈췬 때처럼 대타출동을 썼을 가능성은 없다.’

그도 그럴 게, 내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충왕대군의 육체에 씌워진 변신 마법을 넘어서, 그 새끼의 진체(眞體)가.

【……후.】

그렇게 졸렬하게 숨어 있던 씹새의 진짜 육체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신체가 지닌 포텐션을 이해하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띄우지 않을 수 없었다.

…꿈틀.

내 비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눈을 찌푸리던 충왕대군은 자기 얼굴에도 섬뜩할 만큼 차가운 웃음을 만들어냈다.

【또 그 전사의 안목이라는 놈인가?】

【비슷하지. 생각보다 쉽게 풀리겠는걸.】

【알량한 기술을 익힌 자일수록 진실된 지혜를 깔보기 마련이지……. 한낱 육감만 가지고 진리를 재단하려 하다니. 이러니 우민들은 계도할 가치도 없는 거야.】

빠득! 빠드득…!

갈고리 모양으로 움켜쥔 바이콘의 손아귀에서 뼈 일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지 보겠다.】

─펑!! 충왕대군이 팔을 휘둘렀다. 그것은 마치 비닐로 된 장막을 두들기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공기의 벽은 소닉붐을 일으키는 것처럼 폭발했다.

콰과광─!!!

신기루처럼 일그러진 공기가 실내를 유린했다.

음속을 넘겼다? 아니다. 마나로 강화된 완력이 공기를 찢어발긴 것이었다.

【쯧!】

파츠츠츠츠즛─!!!!!

오러권을 전개하고 프랑의 앞을 지켰다.

공기는 아무리 압력이 높아져도 오러권의 벽을 못 뚫는다. 그래도 막대한 완력에 휘둘린 폭발은 선박을 나무젓가락 공예처럼 터트렸다.

퍼엉─!!!!

황족을 태울 만큼 튼튼한 범선이 가루가 된다.

레고로 만든 장난감에 망치로 풀스윙을 갈기면 이렇게 될까. 충격파에 휘말린 사람 만한 나무토막들이 비현실적인 모양으로 하늘로 발사됐다.

【구세주를 참칭하는 자여! 충왕대군이 네놈의 혼에 물으마!】

허공에 휘두른 주먹질로 배를 반파시킨 충왕대군이 돌진했다. 땅을 디디자 갑판이 터져나갔다. 보법도 뭣도 아니다. 각력 뿐인 가속이었다.

─슈욱!!!

하지만── 뒤지게 빠르다!

거의 내 최대 가속력 이상! 돌진한 충왕대군이 내 몸통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팔로 가드하자 내 몸을 덮은 오러가 그 새끼의 주먹을 갈아댔다.

까가가가각……!!!

충왕대군의 주먹은 오러에도 부숴지지 않았다. 미스릴조차 갈아버리는 오러를 뚫고, 야수회귀의 마나마저 관통해서 내 팔에 둔탁한 통증을 줬다.

콰아아앙─!!! 마나와 공기가 폭발하며 벌레들의 탄화한 시체와 갑판의 파편을 구형으로 밀쳐냈다.

【네 안목이 이 결과를 고했나!! 구인류의 좁은 식견으로 이 힘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나!!】

투과과과과과─!!!

무질서한 타격의 폭풍! 충왕대군은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묶는 것처럼 본능적인 주먹질로 최단거리의 살상력을 추구했다.

몸을 쓰자 올라오는 아드레날린을 참아낼 만큼 전사로서의 소양을 갖추지도 못한 것일까. 충왕대군은 광소를 터트리며 외쳤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내 겉가죽 하나 꿰뚫지 못하면서 어찌 이 세계의 진리와 역사의 진실을 볼 수 있겠나!!】

나는 대답할 시간도 아끼며 마나를 몸에 돌렸다.

이대로 얌전히 쳐맞다가는 10분도 못 버티겠다. 통증을 버티면서 마나를 끌어모은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쥐고 적의 가슴팍을 찔렀다.

─캉! 철판을 찌르는 듯 하다.

니미. 지건을 흉내내다 다치는 중학생이 된 기분이군.

【그게 최선이냐!!!!! 전혀 모자라다──!!!!】

─우직!!! 콰아아앙!!!!

갑판을 때려부수며 진각을 밟은 충왕대군이 내 옆구리에다 쇼트 어퍼컷을 작렬시켰다. 발차기에 까인 깡통처럼 몸이 공중에 떴다.

오딘의 눈으로 동작 예측?

절대 불가능하다. 저 주먹엔 무학(武學)이 없다. 그저 순수한 폭력 뿐.

대충 이 정도겠거니~ 하고 견적은 냈었는데, 그 이상이었다.

‘……대략 마스터 클래스 턱걸이 쯤 되려나.’

얻어맞은 몸이 부유하는 찰나, 감각적으로 그리 결론짓는 나.

딱히 충왕대군이 마스터 클래스라는 건 아니다.

힘의 논리와 깨달음의 값어치는 다른 것. 그런 식이면 아틀란티스의 동력부도 마스터 클래스라고 해야 한다. 마스터의 칭호는 그리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저 능력치만 따지면, 충왕대군은 분명 미스릴 클래스는 까마득하게 넘었다. 내가 싸워본 마스터 클래스들조차도 초월한 것 같다.

‘이대로는 불리하겠군.’

내가 방어에 특출나게 뛰어나지 않았으면 진작 내장파열로 뒤졌을 것이다.

명계 때처럼 신좌의 힘을 끌어올 수 없고, 폭주 모드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정도의 힘을 가졌으면서 왜 잔꾀나 부리고 있었는지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그게 목적이었을까?

나도 충왕대군의 행적이나 성격을 보고, 저만한 힘을 갖췄을 확률은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꽤 합리적인 예상이었는데 설마 빗나갈 줄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추락 전에 낙법을 취했다.

─쿵, 쿵쾅!

박살난 선체의 바닥을 구르면서 일어섰다.

팔이 아프다. 뼈는 나가지 않았지만 멍 정도는 들 것 같네. 투덜대면서 먼지를 털고 있자 충왕대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생각보다 여유로운가 보군.】

【어. 멍만 든 정도면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한 걸 어기지 않은 셈 아닌가~ 하고 변명거리를 생각하던 참이었어.】

【약속? 저 여자와 말인가?】

충왕대군이 바짝 굳은 프랑을 바라보았다.

겁이 많은 편인 프랑은 의지력을 쥐어짜내면서 무기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분명 네가 보는 앞에서 이 하프 드워프를 죽이겠다고 했었지.】

충왕대군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아직 승산이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가는 듯 하니, 내가 도와주지. 상당히 정을 준 모양이니 이 여자의 손발을 던져주면 조금은……】

─울컥!

충왕대군이 말을 멈췄다.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충왕대군의 피였다. 입가에서 피를 뿜어내던 충왕대군은 자신의 턱을 붙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이, 뭐, 무슨……?】

【재밌는 발상을 했더군.】

마침 어깨의 먼지를 다 턴 나는 맞다가 놓쳤던 브류나크를 불러들였다.

【설마 네 몸을 개조하고, 지나친 몬스터 화의 부작용을 바이콘으로 변신하는 걸로 제어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실제로 결과도 상상 이성이었고.】

충왕대군은 찢어질 정도로 커졌던 눈을 더 크게 만들었다.

비유가 아니다. 인간형의 신족 바이콘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 새끼의 눈이 기괴하게 커지면서 벌레처럼 일그러진 것이다.

충왕대군은 초조하게 눈가를 가렸다. 징그럽게 변했던 눈이 도로 돌아왔다.

【……내 몸에 뭘 한 거냐! 너는 마법을 쓰지도 않았을 터!!】

【마법이란 건 룬에서 시작한 능력이야. 오딘의 권능의 마이너 카피라는 거지. 내가 한 짓이랑은 맥락은 비슷해도 상당히 달라.】

나는 별로 대단한 건 하지 않았다. 얻어맞다가 저 새끼의 몸에 손을 댔을 뿐.

그 손을 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네 변신을 헤집은 건 울프헤딘의 권능이다.】

충왕대군은 자기 몸에 벌레를 심지 않았다.

단지, 마치 뷔페에서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먹는 것처럼 몬스터들의 ‘강함’만을 조합해서 육체에다 각인했다. 자기 자신을 개조한 것이었다.

보통 그런 짓을 했다간 머리가 돌아버린다.

‘지금까지 비슷한 예시는 잔뜩 봤었지.’

하프 인간 타뷸라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했을 때.

에린의 방계 훌드폴크가 오우거로 변신했을 때.

그건 인간성을 버리고 강해진 대가로, 인간성을 상실한 짐승의 말로였다.

─퉷. 나는 침을 뱉고 말했다.

【보통은 통제 못할 정도의 힘을 변신 마법으로 바이콘이라는 틀에 가뒀겠지. 좋은 아이디어야. 좀 참고할 마음마저 들 정도로.】

베로니카가 고양이로 변신해도 마법을 못 쓰는 건 아니고, 내가 뱀으로 변신해도 몸이 약해지는 건 아니잖은가? 충왕대군도 그랬다.

게임의 아바타나 스킨 같은 거다.

혐오스러워서 플레이하기 싫은 캐릭터에 바이콘 충왕대군이란 스킨을 씌운 것이지.

바이콘이라는 거죽을 쓰고, 몬스터가 된 육체의 힘만 좋을대로 써 먹으면 땡이다. 그렇게만 하면 전사로서 훈련하지 않아도 강해지니까.

오러마저 견디는 갑각. 달인을 뛰어넘은 근력.

그게 있다면 미스릴 클래스 이상의 괴물이 되는 건 누워서 떡먹기 아닌가.

먼지나게 처맞고 멍 든 내가 증인이었다. 쓰벌, 옆구리 존나 쑤시네.

【수준 높은 마법인 건 이해했다. 변신의 신인 로키의 후손다운 재주야.】

나는 통제를 벗어나서 일그러지는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씹새에게 정중하게 중지를 세워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딘의 후계자한테 마법으로 깝치면 쓰나.】

【끄아아악─!! Qgafgaak!! Fasakytaszx─?!】

까드드득!!! 우드드드드득!! 뿌지직…!!

뷔페에서 비싸고 좋은 음식만 가져와서 모아둔 듯한 육체.

대단하긴 하지만── 세상 고급진 음식도 대충 흔들고 휘저어버리면 그냥 음식물을 뒤섞은 짬통 쓰레기일 뿐이다.

초밥캐비어샥스핀 비빔곰국이라니? 상상만 해도 토 쏠리지 않는가.

하다 못해서 미스릴 클래스 정도로 안정했거나, 정말로 그냥 마스터 클래스 수준의 몬스터와 융합했다면 저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설프게 장점만 골라모아서 키메라처럼 육체를 개조하고, 그 통제를 변신 마법에만 의존한 것.

충왕대군 패착의 패착은 그 오만함에 있었다.

【자만에 취해서 욕심이 과했군.】

좋은 반면교사가 되겠는걸.

나는 오딘의 눈을 빛내며 호러 영화처럼 육체의 곳곳에서 몬스터의 팔다리를 삐쭉 길러내는 충왕대군에게 달려들었다.

육체의 방어력을 도맡던 갑각 곤충형 몬스터는 일그러져서 복부에 튀어나오고 있다. 오러마저도 막아보였던 방어력은 이미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거면 충분하다.

서걱─!!

오러를 휘감은 브류나크가 충왕대군의 모가지를 깔끔하게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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