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데구르르르─.
잘려나간 모가지는 생전의 힘이 거짓말처럼 초라하게 굴렀다.
킬각을 잡자마자 모든 힘을 다해서 공격한 나는 얼른 몸을 빼냈다. 모가지가 날아간 몸이 변형을 통제하지 못하고 부풀었기 때문이다.
쾅쾅쾅쾅!! 쿵쾅쾅쾅─!!!
머리를 잃은 충왕대군의 몸은 몬스터의 육체로 변질하며 날뛰었다. 비명을 지를 입도 없었고, 또 그 몸에서 자라나는 머리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육체에 흡수해서 개조한 파츠 중에 머리가 있다면 몸 하나에 머리가 2개가 생기는 것 아닌가. 당연히 붙여두지 않겠지.
─쾅!! 우지끈!!!
감각기관도 없이 날뛰던 흉물은 자기 발에 걸려서는 갑판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프랑이 반사적인 동작으로 나이프를 투척했다.
─퍽!
흉물은 나이프가 몸에 박혀도 깨닫지도 못한 듯,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나는 냉정침착하게 그 움직임을 살폈다.
‘문제없다. 육체를 구성하는 밸런스가 어긋났어.’
충왕대군이 컨트롤 타워를 맡았을 때는 몬스터 부위의 장점만을 취합한 육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거의 누더기 골렘이나 다름없는 육체다.
저대로 냅둬도 뭔가 해내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
일어서려고 하면 어깨에 난 곤충 다리가 꿈틀거리고 손을 흔들면 쥬지가 발딱 서는 상태다. 베베 꼬인 신경계의 살덩어리는 아무 위협도 안 된다.
일이 전부 끝나고 나서, 근처 출입을 통제하고 족쳐버리면 땡인 얘기였다.
‘오히려 중요한 건 이쪽이지.’
나는 모가지만 덜렁 남은 충왕대군을 보았다.
【혹시라도 시체인 척 연기할 생각은 마라. 네 목만 잘라서 몸뚱이를 지방자치근에게 던져준 건 너를 심문하기 위해서니까.】
【……………….】
…희번뜩! 모가지만 남은 눈이 나를 노려봤다.
【흐으으으음……. 꼬우신가요? 근데 제 잘못은 아닌 듯.】
나는 코웃음을 치고 룬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충왕대군의 영혼과 의식은 머리통에 남아 있다.
자살도 못하는 상태로 개조한 육체의 생명력에 의해서 산채로 박제된 몰골이라니. 생명공학에서 오만과 무지는 이런 끔찍한 산물을 낳는 것일까.
‘오히려 좋아.’
이 새끼의 영혼에서 기억을 추출한다.
아무런 정보조차 얻어내지 못했던 지난 날과는 다르다. 심장 빨갱이 사상충을 다루는 이 새끼는 굴라나뢰크의 핵심을 도맡은 책임자!
‘당연히 알고 있는 것도 많겠지.’
나는 석판에서 룬 스톤을 꺼냈다가 멈칫했다.
‘아, 이게 아니었지.’
이건 아틀란티스의 촉수 괴인의 기억을 담아둔 룬 스톤이다. 레이드가 끝나고 상황을 정리하면서 추출해놓은 뒤, 그대로 챙겨뒀던 녀석이다.
아무튼 용량을 생각하면 이걸론 부족하다. 나는 다른 룬 스톤을 챙겨들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는다.’
죽어라 노려보는 충왕대군을 무시하며, 전집중 라마즈의 호흡.
중요한 건 섬세하면서도 거침없는 추출이다.
‘예르나 때와 에퀴녹스 때의 기억 추출은 크게 달랐어.’
예르나 때는 그 년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이자,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만을 추출했다. 그저 헤니르와의 첫 만남 뿐이었던 건 그게 이유였다.
그에 비하면 에퀴녹스는 거의 인생 전체를 획득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기억을 추출했을 당시의 내 능력 차이겠지.’
예르나 때는 피폐하고 지금보다 약했다. 실제로 남의 영혼에서 정보를 뽑아내는 건 그때가 처음이기까지 했으니, 핵심을 찾아냈던 게 기적일 정도.
그리고 에퀴녹스의 기억을 추출한 건, 그 당시 치트 모드 상태였던 나다.
마법 관련 능력이 전부 맥스치를 찍은 상태에서 쓴 마법이었기에, 1천 년에 가까운 정보를 깔끔한 형태로 추출할 수 있었다.
거의 1년차 수련의랑 업계 최고 외과의 정도의 능력 차이가 났다는 얘기다.
‘적출 수술하고 같다. 속도와 요령이 중요해.’
배를 갈라놓고 환부가 어디인지 찾는 건 논외다.
이 놈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어낼 것인가.
그걸 확실하게 정하고 룬을 발동해서, 영혼에서 열화가 발생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기억만을 적출해야 하는 것이었다. 개구리를 해부하는 것처럼.
【소용없는 짓이다.】
룬 마법을 발동하기에 앞서 이 새끼의 대갈통을 깨부수려고 할 때였다. 충왕대군이 낮게 웃으면서 뇌까리는 소리에 나는 혀를 찼다.
【뭐. 슬슬 뒤질 각이 보이니까 쫄리냐? 충하다, 추왕대군아.】
【그 룬 스톤. ᛈ(Perth)의 룬을 쓸 생각이겠지.】
바이콘 출신이라서 그런 걸까. 충왕대군은 내가 하려는 짓을 알아본 듯 말했다.
【영혼의 정화와 성불…… 숭고한 일이다. 천공신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그 룬을 영혼들의 넋을 달래주는 데 사용한 자들이 얼마나 되던가…….】
까마득하다는 듯 중얼거린 대갈통이 다시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유익한 재능을 썩히고 있구나. 아니, 유익하기 때문에 썩혀진 것인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여따가 담아, 새꺄. 이게 뭔지 알면 편하겠네.】
룬 스톤을 흔들며 말하자 놈은 혀를 찼다.
【나로부터 총혜신군── 헤니르 님의 이야기를 알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뭐 임마?】
【내가 이런 사태를 염두하지 않았으리라 보나? 뇌에 작용하는 약물을 몇 가지만 알면 기억을 파손시키는 건 쉬운 일이야. 나는 그 분께서 계신 곳 따위 잊은지 오래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충분히 현실성과 의의가 있다는 걸 눈치챘기에 나는 입을 벌렸다. 스스로 부분적 기억상실에 빠졌다는 의미잖은가?
놀라움의 감정은 몇 초만에 경멸로 바뀌었다.
【미친 새끼. 심문이 무서워서 기억을 지워?】
【순교란 그런 것이다. 아슈카트가 내 고독을 몸 속에 심은 것도 같은 이유지……. 예외는 한때 네 스승이었던 알프헤임의 왕녀 뿐이다.】
【예르나가 왜 내 스승이야, 씹련아.】
이를 박박 갈면서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저게 순 거짓말이어도 곤란하긴 마찬가진데.’
막말로 뻥카라고 믿고 기억을 추출했다가 진짜 기억을 지운 뒤라면?
1번 뿐인 기억 추출이 대실패로 끝나버린다.
‘……이건 얼마 없는 기회다.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선뜻 도박하기 힘들어.’
충왕대군은 고작 말 몇 마디로 내 선택지를 좁혀버린 것이었다.
혀를 찬 나는 프랑이 내려오는 걸 보며 말했다.
【됐어, 새꺄. 그럼 네가 아는 거라도 알아내면 그만이지. 나는 손해볼 것 없어.】
【우리의 교리를 전도(傳道)받고 싶은 거라면 그것도 좋겠지.】
【지랄 마, 병신아.】
교리 같은 게 아니어도 행동원리나 그밖의 다른 간부들─아직도 남아 있다면─ 얘기만 알아내도, 뭐 본전 정도는 치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좆 같은 건 사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불쾌하게 중얼거렸다.
【애미 뒤진 새끼들. 예르나 년 때문에 별 미친 놈들이 다 앵겨붙고 지랄이네.】
【……뭐야?】
기분이 더러운 걸 떨쳐내고자 담배 한 대 빠는 느낌으로 뱉은 투덜거림.
그런데 충왕대군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관점의 폭론을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알프헤임의 왕녀 때문이라고?】
【그럼 그년 때문이지 뭐야, 시발아. 좆 빠지게 쓴 논문을 도둑맞은 것도 빡치는데, 그 썅년이나 너 같은 미친 사이비들이 왜 이 개지랄을 떠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크흐흐.】
모가지만 옆으로 눕혀진 충왕대군이 큭큭댔다.
나는 마법을 발동하려던 걸 멈췄다. 저 새끼가 꼴받을만한 관점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어쩐지 리액션이 묘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크흐흐흐! 크흐흐하하하! 크하하하하하……!!!
【……이 미친 씹좆이 왜 이래?】
나는 죽기 전에 토해내는 것 치고는 섬칫한 웃음소리에 오만상을 썼다.
허무함과 얼탱이 없음이 섞인 웃음……!
그건 그야말로 자기 배에 총알을 박아넣은 암살자가 자신을 유대인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치 고관처럼 광기에 젖은 것이었다.
…부릅!! 충왕대군이 악귀처럼 얼굴을 구겼다.
【그년이 시작이라고? 우리가 널 죽이려는 것이 이유라고?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한심하구나! 아무 것도 모르는 너도, 그런 네 손에 죽임당하는 나도!!】
【그니까 뭐라는 거냐고, 씹탱아! 욕을 할 거면 알아처먹게라도 하던가!!】
【그 리오스엘프 왕녀가 가져온 추론!!】
화르르륵…!! 충왕대군의 핏발 선 눈이 불통을 토해내는 듯 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손으로 쓰여진 게 아니더냐! 이 가라앉은 죄악의 도시를 건진 것도! 신군께 실망을 끼친 죄악의 상징을 전부 그 손에 쥐고도!! 정녕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단 말이냐!!】
쿠구구구구…!!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는 것처럼 놈의 대가리가 마나에 휘감겼다!
위험한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위험할 만큼 저 새끼에게 마나가 남아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얘기 따윌 하고 있었겠는가?
쩍! 쩌저적…!!
하지만 이 술식의 파동은 어떤가?
충왕대군의 모가지에 남은 마나에 비하면, 여기 넘어오려고 하는 무언가는 훨씬 강대했다! 최후의 발악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만큼이나!
‘이 앰뒤 씹새가?!’
공간 마법의 일종── 소환 마법!
바이콘 신족의 적성과 저 놈의 특기인 이세계-바이오 공학! 나는 충왕대군이 그 위험한 학문을 조합하려고 든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육신이 될 존재가 뭐인지도!
【추악한 쓰레기 자식!! 가짜 신들의 척후 놈!! 너의 손에 이 역겨운 섬이 부상했다는 게!! 너란 존재가 세계수의 터전에서 사멸해야만 하는 이유다──!!】
【……이런 씨발!】
나는 더 이상 개소리를 듣지 않았다.
─파각!!! 오러를 감은 주먹으로 놈의 대갈통을 쪼개버리고 황급하게 영혼을 추출했다. 조금 전의 결의가 무색하게도 거의 찜통에서 순대 건지는 듯 난잡한 추출이었다.
그래도 씨발 어쩔 수 없다!! 냅둘 수만도 없고,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는 건 더 안 되니까!!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멸하는 주제에, 충왕대군의 영혼은 광소를 터트렸다.
【거짓된 신에게 멸망 있으라!! 초라한 왕관에 파멸 있으라!! 신이 되지 못한 이들이여!! 그릇된 신앙을 품은 인간이여!! 머지 않은 미래에 망각한 죄악의 대가를──】
─콰직!! 떠드는 혼백을 짓밟아서 박살냈다.
장광설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저 개소리에서 건진 단어들의 의미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디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던가?
“프랑!! 위험하니까 배에서 내려가!!”
프랑에게 소리친 나는 그녀를 챙길 여유도 없이 뛰었다.
갑판 아래로, 단독으로는 무해하다고 여겼던 저 씨발새끼의 몸통을 향해서!
‘술식의 기점은 충왕대군의 몸통!’
저 밑으로 추락해버린,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 없던 살덩이.
하지만 저건 가히 수십~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압축한 끔찍한 혐오체였다. 통제를 벗어났다고 픽 뒤져버릴 정도로 나약한 생명은 아닐 것이었다!
바퀴벌레는 모가지가 달아나도 살아남고, 저축한 영양이 바닥날 때까지는 활동한다던가.
곤충에는 지식이 얄팍한 나였지만, 충왕대군의 몸통이 바퀴벌레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두운 공간에 마법의 빛을 켜며 중력에 몸을 맡겼을 때.
…두근!
심음(心音)이 내 피부를 찌릿하도록 울렸다.
마치 공간 전체가 어떠한 심장이 되어서 맥박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통! 바닥에 착지한 나는 얼굴을 구겼다.
“……니미 진짜, 2페이즈는 에반데.”
텁. 텁…. 충왕대군의 몸이 자기 목에서 자라난 파츠를 만지작댔다.
그건 마치 빙의 호러물의 주인공이 몬스터에게 빙의한 직후, 자기 몸의 이상을 깨닫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단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빙의와는 좀 다를까.
충왕대군이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삼아 부르고, 강제로 육체와 융합시킨 존재.
【Naaaaaaaaaaaasss──!!】
그 존재는 원래부터 범상한 괴물은 아닌 듯 했으니까.
시발, 웬일로 쉽게 끝나나 했다.
한숨을 쉰 나는 내려온 의미도 없이 다시 위로 점프했다.
──투과과과과곽!!!!
거품처럼 확장한 살점이 바이츠니아 황실의 배를 박살내며 부풀어올랐다.
뭐, 괴인은 뒤지고 나서 거대화하는 게 국룰이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