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01화 (700/1,009)

내가 국제회담의 원탁에 앉자, 회담은 텀을 길게 두지 않고 시작됐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으나, 힘을 모아 극복하고 이렇게 건전한 논의의 자리를 가질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중계역을 맡은 고르갈리아의 외무대신이 말했다.

원래는 대국인 게르마니아 측의 대표가 맡아야 할 일이었는데, 그가 자숙의 의미로 사양하자 폭탄 돌리기 끝에 저 사람한테 책임이 튄 듯 했다.

이건 사족인데, 치료가 끝난 당일에 그는 나를 흑마법사로 오해한 걸 사과하고자 조국에서 가져왔다는 존나 귀한 포도주를 선물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물건으로, 실수를 저질렀을 때를 생각해서 갖고 다니는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가족끼리 나눠마셨는데, 술고래인 다나가 세상 행복해 하더라.

내가 개미친 외과의사 강북호로 오해받은 대가가 다나의 행복한 미소였던 셈인가.

존나 나쁘지 않은 대가였다. 대충 용서해줄 수 있을 만큼은.

〈우선은 각국 대표의 의견부터 듣고자 합니다. 의견 있으신 분께서는 거수하신 후, 허가를 받은 뒤에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논의의 근거를 제공하고 갑론을박이 길어지는 일을 막을 겸, 저희들 고고학회의 조사 결과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아셰라드였다. 그녀는 날 바라보고 나서 얘기했다.

〈아틀란티스가 오랜 기간 해저에 가라앉아 있었다는 점은 환경 상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단, 그 탓에 역사적 사료로 삼을 자료도 거의 찾지 못한 상태인 것도 사실입니다.〉

〈기존의 역사연구와 상충되는 부분은 없소?〉

〈기록 전체를 조사해야 하는 중노동이기에, 이 자리에서 대답드리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기존 기록, 연구 논문과의 대조라…….

나는 딱한 표정으로 머지 않아 갈려나갈 대학원생들의 수면과 건강을 동정했다.

불쌍하긴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해고라도 당하면 책임 못 질 게 뻔한 일.

그렇기에 나는 생살을 찢는 마음으로 팬티를 찢어발기며 울부짖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니까 너희도 얼른 노예 탈출하렴.

아셰라드는 별로 안 어울리는 안경테를 밀면서 말했다.

〈단지, 울프헤딘 백작의 허가 하에 일부 조사 과정을 걸친 상태입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 아틀란티스가 일부 고대 국가와 교류가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다.

‘아마 고대인이었을 촉수 어인이 크라운 크라운을 언급하기도 했고.’

가라앉기 전에 어인이 되서 아틀란티스에 갇힌 고대 아틀란티스 인들.

그들이 고대문명 시기의 광대의 이름을 안다니?

황금시대 로마니아-오르왈리아에서 활동했다는 전설적인 광대가 이곳 아틀란티스에도 그 명성을 떨쳤다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아닌가.

실제로 아틀란티스에서 공연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셰라드는 각국 사절단에 뿌린 자료를 가리켰다.

〈또한 대전쟁 전간기의 얼마 없는 사료를 분석해본 바, 아틀란티스는 어느 고대국가의 강역이라기보단 독립된 별개의 나라였을 공산이 큽니다.〉

〈각국의 문화양식이 일부 보였다니까 말이오.〉

침을 묻혀가며 자료를 넘긴 니다벨리르 사절단 대표이 말했다.

내가 처음 조사했을 당시에는 거주구역이라서 잘 몰랐던 부분이다.

단지, 고고학회의 사람들이 왕실기사단 및 발퀴리에의 감시 아래에서 아틀란티스의 온갖 구역을 조사하자 그런 증거물이 나왔다는 모양.

전문도구 없이 눈으로만 대강 살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사실이긴 했다.

〈바다 위를 움직일 수 있는 걸 고려하면, 아틀란티스는 각 나라를 오가며 문화 교류가 있었다는 게 짐작 가능하지. 문화의 카피캣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많이 닮았잖소?〉

〈하지만 이상하군요. 그렇다면 어째서 기록이 남지 않은 건가요?〉

나르메르-나일 사절단의 대표는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며 코를 찡그렸다.

─팔랑.

그녀가 자료를 넘겼다. 그 페이지에는 아틀란티스의 종교적 구조물이 나르메르-나일의 제단 건축법과 꽤 유사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교류는 쌍방통행의 행위에요. 아무리 대전쟁 당시 많은 자료가 소실됐어도,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이 섬의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

〈확실히 그 점도 신기하긴 하지만, 이 이상은 고고학회에서 논의할 내용 같군요.〉

그렇게 말한 것은 로마니아 사절단의 대표였다.

삼천포로 빠지는 논의를 본론으로 되돌린 그는 엘리자베트에게 말했다.

〈중요한 건, 이 땅의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는 겁니다. 아틀란티스 인의 후예라도 나오지 않는 한은요.〉

〈어머. 울프헤딘 백작은 섬을 움직일 수 있었는걸요? 혹시 백작의 선조 중에 아틀란티스 상층부의 후예가 있었을지도 모른답니다?〉

〈증거가 없는 추론은 끝이 나지 않는 말씨름이 될 뿐입니다.〉

엘리자베트는 그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이야 맞는 말이었으니까.

〈이 아틀란티스가 신대륙이거나, 하물며 유물/유적 따위의 개인 소유물로 치부 가능한 물건이었다면 저희도 간섭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노련한 외교관의 어투에는 ‘그런데 말입니다’란 은근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얘기를 듣던 키아라의 눈이 좁아졌다. 모험가의 발견에 트집 잡는 걸 막고자 찾아온 그는 당연히 저 꼬투리가 상당히 아니꼬울 것이었다.

〈여러분들도 나라의 역사를 조사해 왔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지금까지 말씀이 없으신 만큼 뭐라 언급할 만한 자료를 얻지는 못하신 듯 하군요.〉

사절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이 담긴 침묵이었다.

‘어떻게든 소유권에 트집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겠지만, 이 상황에선 어렵겠지.’

안면몰수하고 통수를 치는 게 정치판의 더러운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충왕대군 사건으로 우리에게 큰 빚을 진 데다가, 아틀란티스의 소유권에 관해서 이렇다 할 핑계거리를 찾지도 못한 게 그들의 실태!

아무리 나라를 위해서라면 가족도 팔아넘길 수 있는 게 외교관이라지만, 그러니까 더 말을 뱉을 자격이란 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도 회담에 앞서 나름 준비를 해 오긴 했을 거다.

그래도 그 원페어~투페어 정도의 카드로 나설 용기나 승부수는 없지 않을까.

‘국가 간의 역학관계를 생각하면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집단은 3곳 뿐.’

강대국인 게르마니아와 로마니아.

표면 상으로는 중립단체인 고고학계.

이렇게 셋 뿐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게르마니아 측 사절단은 거의 대역죄인 상태지.’

논의에 조금도 끼어들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감염 판데믹의 시발점이 되다 못해, 우리 중에 유일하게 사망자를 낸 게르마니아 사절단이 뭐라 입을 열 분위기는 아니잖은가.

‘뭐, 쟤들이 뭐라고 말한들 다른 사절단에서 각 잡고 다굴할 거고.’

계륵은 남에게 주면 배알이 꼴리는 아이템이다.

게르마니아가 아틀란티스에 눈독을 들이면, 그 순간 각국 사절단이 ‘응 니애미 기생충 둥지’라며 비난 비판을 쏟아부어서 아가리를 쌉치게 하겠지.

그러니까 충왕대군의 습격은 나한테 여러가지로 도움이 된 셈일지도 모른다.

‘그 벌레 새끼의 깽판이 내게 회담의 주도권을 쥐어준 셈이니까.’

진짜 인간 말종 같은 발상이라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로마니아 외교관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니, 이 자리에선 저희가 조사해 온 어느 자료를 공표할까 합니다.〉

〈그건 고고학자로서도 부디 들어보고 싶군요.〉

〈예. 지금부터 축약본을 배부하겠습니다.〉

외교관은 선량하게 미소짓고 지시를 내렸다.

사람들 앞에 자료가 하나씩 놓였다.

〈……음!〉

〈이 내용은……〉

그렇게 자료를 읽어 내려갈수록 각국 사절단의 표정은 딱딱해졌다.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맹의 증거?’

로마니아에서 배부한 자료는, 고대 오르왈리아-로마니아의 중계지역이 아틀란티스로 추정되는 모 집단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었다는 사료였다.

오르왈리아.

라리루라의 아이돌인 크라운 크라운의 고향.

그곳과 로마니아가 연관된 지방에 아틀란티스 쪽 기록이 남아 있다니?

우리는 저도 모르게 아셰라드를 쳐다보았다. 이 회담에서 가장 박학다식할 여성에게 자료의 진위 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관련 사료는…… 분명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예. 실물이 맞군요.〉

상당히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그녀. 그래도 일단 어느 나라의 외교관이 아니어서일까. 상대적으로 충격은 덜해 보이는 아셰라드였다.

오히려 침착한 척 가장하면서도 패닉에 빠진 건 각국 사절단 쪽이었다.

〈동맹 관계라. 입증할 수 있습니까?〉

〈애초에 아틀란티스와의 동맹이 뭐 어쨌다는 말이오? 혈연이라도 맺은 게 아니라면 토지의 소유권을 가질 자격은 어디에도 없잖소?〉

〈증명할 도리가 없는 가설보다는 신빙성 있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또 자세한 설명은 이쪽의 학자님께서 해 주실 겁니다.〉

사절단에서 맹렬한 질문이 쏟아지자 로마니아 사절단은 학자를 호출했다.

허리와 등이 굽은 게 심약해 보이는 남성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고고학 박사이자 오르왈리아 연구가인 롤랑시스입니다. 오, 오늘은 이런 중대차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격을 금할 수──〉

〈소개는 되었소. 설명부터 부탁드리오.〉

〈예, 옙.〉

롤랑시스는 화이트 보드를 넘겨서 글을 써댔다.

〈이야기에 앞서, 아, 알아두셔야 할 점은 고대 국가 오르왈리아라는 나라의 역사입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던 이 나라는 로마니아와 기, 긴밀하게 엮인 나라였지요.〉

〈크흠!〉

외무대신이 불편한 듯 기침했다.

현대 이세계의 국가 고르갈리아는 오르왈리아의 정신적 후예였다.

고대 로마니아와, 이미 멸망한 나라 오르왈리아.

비유하자면 중국과 조선 같은 관계였다.

대놓고 복종하고 종속된 사이는 아닌데…… 뭐, 대충 감 잡히지 않은가? 자랑스럽진 못한 역사다. 언럭키 조선 정도라고 하 수 있겠다.

중국과 조선은 유교 문화로 주고 받기라도 했지, 오르왈리아는 문화 테크를 탔다가 로마니아한테 개 털리고 간접적으로 지배당한…… 까놓고 말하자면 유사 식민지였거든.

〈죄, 죄송합니다. 어, 어쨌든 그러한 과정에서 양국의 개두교가 된 지방이 몇 개 있는데…… 그, 저는 이를 통한 문화 연구를 생업으로 삼는 학자입니다.〉

〈사실이에요. 저도 비슷한 경우고, 진급 심사 때 롤랑시스 박사가 보낸 논문도 그랬고요. 거진 20년 넘도록 이 방면에 매진한 학자 분입니다.〉

아셰라드의 증언이었다.

근데 시발, 설마 이 아줌마 진급심사 중에 읽은 논문을 전부 기억하는 건가? 아니면 롤랑시스라는 저 박사가 그만큼 괜찮은 논문을 냈던 걸 수도 있겠다.

〈마, 맞습니다! 그리고 연구 과정에서 제가 낸 논문이 몇 개 있습니다.〉

아무튼 그 롤랑시스는 업계 유명인사의 지원을 받고 조금 긴장감을 던 듯 했다.

그는 자료를 찢어서 보드에 붙이고서 열변했다.

〈이르길, ‘바다 건너 수만 명의 병사가 오르왈리아를 횡단하여 이 땅에 도달했다. 우리는 그들이 머물 곳을 내주고 혈맹을 맺었다’는 기록입니다!〉

〈그 ‘혈명을 맺은 수만 명의 병사’가 아틀란티스 인이라고요?〉

〈예! 생활양식, 어조 등에서 유사점이 몇 가지인가 발견됩, 발견됩니다! 특히 어, 언어의 유사점과 영향은 빼도박도 못하는 부분이죠!〉

자료를 몇 장 넘기며 설명하는 롤랑시스.

TMI 수준의 깨알 정보였지만 끼워 맞추기 수준으로 막 우겨대는 논지는 아니었다. 박사 학위를 노름으로 딴 건 아닌지 기반이 탄탄한 가설이다.

아무도 그의 가설을 부정하지 못한 채, 등 굽은 학자의 열변이 계속되었다.

〈다, 당시 제가 논문을 냈을 때 학회에서는 이 가설을 신빙성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만하거나 당당하다기보단, 긴 시간 불신받은 서러움이 복 받친 말투였다.

〈아무리 고대문명이라지만, 수만 명의 인원을 배 한 척에 태우고 건너거나 고작 며칠만에 대륙 해안을 빙 돌아올 항속(航速)은 얻지 못하리라는 논지였죠.〉

〈……하지만 아틀란티스라면 가능하겠죠.〉

〈바로 그렇습니다!〉

내키지 않게 대답하는 엘리자베트.

롤랑시스는 상대가 공주인 것도 잊고 환희했다.

〈교차검증은 불가하지만 현지에서 같은 기록은 여럿 발견할 수 있죠! 학계에서는 허구의 신화다, 전설이다 하고 일축했지만! 아틀란티스 인이 움직이는 섬으로 바다를 건너 로마니아로 왔다면!〉

〈……증거는 많았지만 신빙성은 없었던 당신의 가설이 강고해지겠소.〉

〈바로 그렇습니다!!〉

─끄덕끄덕!

이 자리의 역학관계 따위는 전혀 모르고, 그저 학자로서 자기가 구상한 가설이 성립한 사실을 기뻐하는 롤랑시스였다.

아마 고고학계에 악감정이 없잖아 있는 걸까.

기분은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충왕대군 사건 탓에 짜져 있지만, 고고학계의 일부는 내 진급심사에 훼방을 놓은 씹새들이 아닌가? 롤랑시스도 시달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로마니아 권의 역사 연구라면 이세계에서는 꽤 엘리트 출세 코스다.

일확천금으로 이어지기도 편한 학문이니 숟가락 얹다가 수틀리면 밥상을 뒤집는 개새끼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만 상황의 심각성도 잊고 끄덕거리고 마는 나였다.

〈설명 감사합니다. 그럼 마저 이야기하죠.〉

하지만 내가 학자의 인간승리에 감격할 시간도 없이, 로마니아 사절단의 주장이 이어졌다.

〈오르왈리아와 로마니아가 아틀란티스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 섬의 소유권과 지분은 저희 삼국이 나눠 가져야 합니다.〉

〈뭐, 뭐라고요?〉

고르갈리아 사절단 측의 카에디가 입을 벌렸다. 나도 눈을 반개했다.

‘뻔한 함정이군.’

땅도 아니고 섬.

그것도 움직이는 섬이다. 그걸 나눠먹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도 이 섬에 숟가락만 꽂아두면 차차 우리를 배제하고 섬 전체를 로마니아의 소유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럿이서 나눠먹었던 땅을 강대국에게 홀라당 빼앗기는 결말!

영토 분쟁에선 생일날 처먹는 미역국처럼 존나 평범한 좆망 테크였다.

〈……무척, 색다른, 의견이네요.〉

엘리자베트는 뚝뚝 끊어가며 이빨을 드러냈다. 미소라기엔 꽤 사나워 보인다.

〈분할통치라도 하자는 뜻인가요? 고작 동맹을 맺었다는, 확고하지도 않은 가설 하나만 가지고?〉

〈저희도 그렇게 오만하진 않습니다. 다만, 섬을 움직이는 기능은 아틀란티스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지닌 자에게만 주어진 자격 아니겠습니까?〉

슥─. 정중하게 나를 가리키는 로마니아 외교관.

〈그렇기에 제안 드립니다. 아틀란티스의 통제 권한── 그걸 조종 가능한 인물이 아틀란티스와 혈맹을 맺은 역사를 가진 지방에 존재하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군요.〉

〈……고르갈리아와 로마니아의 국민들 중에서 후보를 찾자?〉

〈예. 말씀드렸듯 아틀란티스의 항해권은 왕홀, 왕관 이상 가는 증명일 것입니다. 국방의 전부를 서민이나 귀족들 전원이 그 자격을 가졌을 가망은 전혀 없지요.〉

어느새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원탁.

외교관은 혼자서 악보를 지휘하는 사람처럼 선언했다.

〈그렇기에 혹시나 오르왈리아-로마니아의 교류 지점인 ‘아트윅’ 지방에서 아틀란티스를 조종하는 귀족이나 영지민이 나온다면.〉

〈──그 땅의 유력자가 아틀란티스의 왕가나, 그에 준하는 자들과 혈연관계를 맺고 후손을 보았다는 증거가 되겠네요.〉

엘리자베트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던 가식적인 미소가 싹 사라졌다.

공주 특) 타국과의 동맹을 위해 정략결혼 당함.

그 만고불변의 룰이 아틀란티스에도 해당됐다면?

아틀란티스의 지배자가 그 아트윅이라는 지방의 누군가와 ‘너 내 딸이랑 결혼하싈?’하고 제안해서, 로마니아-오르왈리아-아틀란티스의 인종이 섞인 혼종 베이비가 태어났었다면?

그 베이비가 또 자식을 낳고,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면?

〈부모의 유산은 아이가 상속받아야 하죠.〉

그러면 그 베이비의 혈토만큼큼 정당한 아틀란티스의 후계자는 없다.

소유권이 불분명한 땅에서는 족보를 들고 있는 놈이 가장 으스대는 법이니까.

‘예전에 알윈에서도 겪었던 짓거리군.’

나는 트롤 킹 습격에도 이권분쟁으로 정신없던 꼴사나운 언쟁을 떠올렸다.

장모님을 통수친 병신이 무슨 호구를 데려와선 지가 오그레스의 후손이라고 깝치다가, 다나한테 ‘그 단어는 오우거란 뜻인데요 병신아’하고 팩트로 얻어맞고 짜져버리지 않았던가.

설마 로마니아에서도 비슷한 논지로 나올 줄은 몰랐지만, 이건 그만큼 ‘상속권’이란 부분에서 혈연만큼 굵직한 무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다는 건, 아틀란티스의 항해권한을 조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 뜻이지.’

농부로 태어난 내가 사실 멸망한 왕가의 후손?!

존나 라노벨 제목 같은 얘기인데, 그게 가능한 수단이 로마니아에는 있다고 봐도 될 것이었다.

장황한 이야기는 그 결말을 위한 빌드업이다.

‘당장 나부터가 아틀란티스 후손이라서 이 섬을 움직일 수 있던 건 아니잖아.’

내가 아틀란티스의 항해권을 얻은 이유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왕의 열쇠를 가졌다고 그 놈이 왕자라는 증거는 아니다.

그냥 선조 중에 도둑놈이 있어서, 후손은 훔친 물건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럴 때는 명분이 많은 쪽이 장땡이지.’

아틀란티스와 동맹을 맺었다는 가설.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기록과, 합리적인 논지.

로마니아는 처음부터 이걸 방패로 아틀란티스에 들어설 생각이었던 것이다.

들어간 다음에는 방금 말한 방법으로 ‘이제 내 땅인 거 봤지? 꺼져 씹새들아’하고 아틀란티스를 건져올린 나한테 개평을 던져주고 쫓아내면 게임 셋이었다.

강도도 부동산업자도, 집에 들어가는 게 어렵지 들어간 후는 쉽다.

뺏거나, 설득하거나, 쫓아내거나.

강대국 로마니아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을 것이니까.

──그렇지만.

〈………………큽.〉

내 작전을 다 아는 엘리자베트는 웃음을 참기도 벅찬 듯 고개를 돌렸다.

나도 비슷한 기분으로 팔짱을 끼며 클클거렸다.

‘솔직히 뭐, 좋은 착안점이긴 했어.’

예를 들어서 딱 분할통치를 하자는 곳까지라면.

더 억지를 쓰고 로비를 해서 다른 나라가 ‘저런 전쟁병기가 한 나라의 소유가 되는 것보단 낫겠지’하고 로마니아의 의견을 지지하게 만들었다면.

나랑 엘리자베트는 똥 씹은 기분으로 그 얘기에 반박하고자, 애지중지 아껴둔 카드를 상대의 개똥 카드에 얹고서 레이즈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겠지.

‘하지만 너무 욕심을 냈어.’

나는 조용히 준비한 자료를 넘기며 웃었다.

견제가 아니라 약탈을 선택했기에.

자신의 패와 판돈을 믿고 가진 걸 올인했기에.

로마니아에서 고심한 작전은 스스로 똥통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우리 대신 빌드업 해 주느라 고생했다.’

저들이 준비한 카드는 분명히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수준이다.

사기와 밑장 빼기로 마련한, 게임의 구조적으로 가장 쎈 조합이니까.

‘근데, 포커에서 가장 강한 건 카드가 아니거든.’

로열 스트레이트 플래시를 최강의 패로 만드는 건 포커라는 게임의 룰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룰 차원에서 탈락한 새끼는 판돈을 가져갈 자격이 없다. 손에 아무리 쎈 패를 들고 있어도 말이다.

동양인 멀리뛰기 대회에서 흑인이 최고 성적을 내 봤자 탈락밖에 더 되겠는가?

어둠의 게임에서 듀얼을 속행할 수 없는 플레이어는 패배하기 마련.

나는 엘리자베트와 교대하며 나섰다.

〈다시 말하자면, 귀국의 주장은 아틀란티스와 로마니아의 동맹이 다방면에서 확고하기에 이 섬의 소유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다. 반론 있으십니까?〉

〈아니오. 말씀하신 추론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나는 입가를 가리고 슬퍼하는 척 웃는 차기 여왕님에게 살짝 눈치를 주다가, 결국 못 참고 따라서 웃음보를 터트려 버리고 말았다.

〈이 섬, 아틀란티스는 황금시대를 끝장낸 전범국인데요.〉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전쟁에 나서면 미쳐도는 섬이라니까?

그럼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아틀란티스 인이 이 희대의 전쟁병기를 가지고 농사를 지었겠어, 아니면 다른 나라를 약탈했겠어?

〈……잠시만요. 지금 뭐라고 하셨죠?〉

로마니아의 외교관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자기 귀를 의심한 듯 되물었다.

나는 미소를 잊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아틀란티스라는 게 말이죠. 사실 대전쟁 시절 오르왈리아를 멸망시키고 인류 문명의 태반을 소각시킨 야만족 중의 야만족이거든요.〉

문화 교류? 아,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도 교류해서 얻은 거라고 볼 수 있긴 하겠지. 죽이고 쌔벼와도 아무튼 교류다 이거에요.

왜 유니콘/바이콘 족에게 걸린 저주의 근원이 이 섬에 있었겠어?

당연히 외국을 휘젓고 필요한 걸 약탈한 거지.

‘근데 니들, 그런 아틀란티스랑 동맹이었다매?’

전범 부역자로서 잃어버렸던 전쟁병기를 탐내는 나치 부랄친구가 될 거냐.

아니면 대역죄인 Mk.2가 되서 저기 게르마니아 사절단이랑 손 잡고 짜질 거냐.

어디 한 번 편하게 골라 보렴, 씨팔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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