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를 듣고 싶군요.〉
침착해지자마자 질문의 형식을 빌려서 반론하는 로마니아의 외교관.
뻔한 반박이다. 나는 자료를 흔들며 대답했다.
〈서론으로서 길디 긴 역사 교육이 필요해질 듯 한데요. 점심 시간이 좀 미뤄져도 괜찮으실지요?〉
〈울프헤딘 백작은 마저 말씀해주시길 바라오.〉
중재를 맡은 외무대신이 끼어들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여기서부터가 내 이세계 생존기의 집대성이다.’
싸움과 유적 탐사, 만남과 질의로 알게 되었던 역사의 진실.
잊혀져버린 이세계 인류의 비밀 중 하나 말이다.
물컵을 내려놓은 나는 목에 힘을 주었다.
〈3대 야만족, 이라는 표현을 알고 계십니까?〉
〈회담의 품격에 맞지 않는 표현인 듯 하오만.〉
〈그거야 물론이죠. 저만 해도 얼스터의 방계인 아내를 두고 있어서 부아가 치미는 표현입니다만, 이 3대 야만족이란 역사적으로도 아주 유서 깊은 인종차별인 게 사실입니다.〉
3대 야만족.
바이킹, 얼스터, 베르세르크를 일컫는 멸칭이다.
〈그런데 몇 달 전, 제 아내 다나 베르베이아의 고향을 찾았다가 어느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저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문이라고 하셨소?〉
〈맞습니다. 의문.〉
꼬맹이 할멈 리루아를 비롯한 베르세르크 인과 만나고, 트롤 킹 호르샤로부터 훌드폴크의 진실을 들었던 그날.
나와 다나는 문득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의 서순이 모순되지 않나? 하고.
〈3대 야만족이라는 단어는 고대문명 황금시대 이전에도 발견되는 글귀입니다. 그런데 그 3번째 후보인 베르세르크 인은, 사실 고대문명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게 무슨 뜻이오?〉
〈동물의 특징을 가진 수인, 베르세르크 인들은 얼스터의 방계라는 뜻입니다.〉
나는 유무를 묻지 못할 만큼 단호하게 말했다.
〈과거, 고대문명 시절에 얼스터의 선조 에린의 전사들은 어느 특수하고 강력무비한 주술을 애용했습니다. 그들은 부르길, ‘야수회귀’의 주술을요.〉
손을 들어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슈와아아악─!! 마나 코팅이 팔을 덮었다.
이제 숨 쉬는 것만큼 쉬운 내 기본 버프 마법.
천공신 오딘을 흉내내는 야수회귀의 주술이었다.
〈백작도 그 주술을 쓰실 줄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어쩌면 저에게는 이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를 정도죠.〉
나는 마나 코팅을 유지한 상태로 말했다.
〈이 야수회귀는 사용자에게 짐승과 같은 힘과 강철보다 질긴 방어력을 부여합니다. 그 유용함을 알아본 에린의 부족들은 대부분 이 주술을 사용하기를 꺼리지 않았죠.〉
딸랑─. 그렇게 말하면서 벨을 울리는 나.
벨 소리가 청명하게 울리자 회담장소의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왔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여교수. 에린 연구의 대가(大家), 하이로메인이었다.
〈얼스터 역사연구가이신 세르잔느 하이로메인 교수님입니다. 부디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짝짝짝! 내가 솔선수범해서 박수를 치자 외교관들도 어설프게 따라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아셰라드에게 눈짓 한 번.
이익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 전문가로서 이 자리에 초빙된 그녀는 묵묵하게 자기 일을 했다.
〈틀림없습니다. 얼스터 역사연구에서 그녀에게 버금가는 전문가는 없죠.〉
OK. 신뢰성 확보.
똑같은 말을 해도 나무위키 유저랑 학계 넘버 원 교수가 하는 말은 느낌이 다르잖아? 거 쓰벌 나도 전문가 좀 초청할 수 있는 거 아니갔어?
〈다소 에둘러 들어가는 설명이 됩니다만, 아틀란티스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얼스터의 역사 역시 설명해야 합니다. 혹시 얼스터 인 지인이 있으신 분은 계십니까?〉
이해가 빨라질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그 물음에 카에디가 손을 들었다.
〈저어…… 제 조부께서 그쪽이시긴 한데요.〉
〈아, 그러십니까?〉
어쩐지 다나처럼 피부가 유독 하얗더라니.
처음에는 쭈뼛대던 그녀는 머지않아 외교관답게 당당한 자세를 갖췄다.
〈분명 고르갈리아 얼스터 군락의 전사들도 그 야수회귀라는 주술과 비슷한 마법을 사용합니다. 손발에 동물의 형상이 떠오르는 마법이었죠.〉
〈동물의 형상이라. 이렇게 말입니까?〉
투확─! 야수회귀의 마나를 변형시켰다.
하이로메인과 만나고 누켈라비와 싸웠을 때였다. 여행길 도중에 만났던 얼스터의 전사들에게 배운 마법이었다. 동물 심장을 씹어먹으면서 습득하는 주술이랬던가.
카에디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맞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어? 하지만 울프헤딘 백작께서 어떻게?〉
〈그 마법의 원조가 야수회귀이기 때문이겠죠.〉
때문이겠죠~ 가 아니라, 100% 확실하게 그것 때문이다.
나는 팔을 만지면서 설명했다.
〈그러나 이 야수회귀에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신체의 일부에 짐승의 형상을 띄우는 모습만 봐도 짐작가는 바가 있지 않으십니까?〉
〈……혹시 베르세르크도?〉
─끄덕.
턱짓으로 긍정한 나는 룬을 발동했다.
〈예. 베르세르크 인들 특유의 동물을 닮은 신체부위는, 그들의 선조가 사용하던 야수회귀에 의한 변이현상 때문입니다.〉
─슈와아악!
팔을 감싼 마나 코팅이 변신의 룬에 힘 입어서 사자의 앞발로 변했다. 두툼하고 털이 복실복실한 팔이었다. 내 손이지만 육구가 말랑말랑하군.
사절들은 그 광경에 압도된 듯 말을 잃었다.
〈야수회귀는 사용자를 짐승으로 변화시킵니다. 게다가 이 변화는 변이 마법처럼 영구적이죠. 머리색, 눈색, 피부색처럼 유전적으로 계승되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설명하면서 온몸에 야수회귀의 마나를 둘렀다.
그리고 귀에는 사자 귀를 뽈록 세우고, 꼬리도 만들어 보았다. 존나 어메이징 네코미미 노르드다. 고양이랑 대화도 할 수 있으니까 대충 마법소녀로 봐도 되겠는걸?
〈베르세르크 인처럼 야수회귀의 원본을 사용한 이들은 육체가 변이했고, 술식을 개조해서 사용한 이들은 고르갈리아의 얼스터 인들처럼 무사했던 거죠.〉
아마 고르갈리아의 얼스터 인들은 에린이 망한 뒤에 거기로 흘러들어갔겠지.
‘픽트 인? 우리 다나의 선조님들은 야수회귀도 배척했을걸?’
모방 마법이 있으니까 굳이 배울 필요 없다고 본 거겠지.
뭐 아무튼 이게 베르세르크를 포함한 얼스터의 역사였다. 하이로메인이 말했다.
〈이 부작용은 황금시대 말기에 일어났습니다. 그 역사적 증거는 사르가디스 고고학 연구소에서도 논문으로 몇 번 제출한 전례가 있고 말입니다.〉
호르샤를 족친 훌드폴크의 유적. 거기서 찾아낸 기록들이 있지 않던가.
아예 유적지까지 있으니까 의심받을 일도 없다. 나는 검지를 세웠다.
〈그렇기에 베르세르크가 3대 야만족에 꼽힐 순 없습니다.〉
〈순서가 모순되니까요. 3대 야만족이란 표현이 정착했을 당시에 베르세르크는 수인이 아니었고, 고대인들이 굳이 얼스터와 구분했을 리도 없죠. 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키아라가 원호사격을 해 주었다. 하이로메인은 그에게 목례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2대 야만족이 아니라 3대 야만족이라는 표현이 있는 한, ‘3번째 야만족’은 분명하게 존재했습니다. 저희는 그걸 모르고 대충 베르세르크를 3번째 후보에 끼워넣었지만요.〉
〈하이로메인 교수와 저는 그 최후의 야만족을 아틀란티스 인이라고 봤습니다.〉
나는 사절단을 세뇌하는 사악한 교수처럼 검지 끝을 빙글빙글 돌렸다.
희대의 전쟁병기를 가진 침략국가.
약탈과 전쟁으로 존속하던, 바다를 떠다니는 섬.
동물이 섞인 외모를 빼면 순해빠진 베르세르크 인과 비교하면, 이쪽이 100배는 더 야만족이라고 불릴 만한 인종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바다 민족, 아니 바다 만족(蠻族 Barbarian)이라고 해야겠군요.〉
〈기, 기다리시오! 그건 너무 궤변 아니오?!〉
반발은 말이 없어진 로마니아 쪽이 아니라, 날 지지해주던 니다벨리르 쪽에서 나왔다. 이 얘기가 그만큼 비약한 논리로 들렸다는 뜻이었다.
〈3대 야만족에서 베르세르크를 제외하고 거기에 아틀란티스 인을 넣는 건 그렇다 치겠소! 하지만 그게 왜 아틀란티스가 대전쟁의 주역이라는 결론이 되는 거요?〉
〈그들에겐 그만한 전쟁을 벌일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이로메인은 깡다구 있게도 0.1초만에 대답을 내놓았다.
똑같이 쫄보 기질이 있어도, 롤랑시스랑 다르게 자기 가설을 설명할 때는 당당한 사람인 것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힌 외교관들을 달래듯 손짓했다.
〈베르세르크 인은 동물이 되는 걸로 그쳤지만, 야수회귀의 주술의 부작용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처참하고 무자비했죠.〉
사절들은 ‘그럼 너는 왜 멀쩡한데요’라는 눈깔로 날 꼬라보았다.
내가 지금까지도 멀쩡한 이유야 뻔하다.
나, 강북호는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어드밴스드 Z-용사니까. 사실상 사이어인 하위호환으로 봐도 문제 없을 것이었다.
지구의 인류는 짐승에서 진화해서 이성을 손에 넣은 신인류.
그러니까 야수회귀의 부작용으로 ‘짐승’이 되도 해 봤자 쥬지 좀 커지고 정력이 개쩔어지는 것 말고는 바뀌는 것 없다. 거의 매지컬 비아그라다.
실제로도 원숭이와 인간의 차이점으로는 성기의 길이랑 정력이 꼽히다고들 하는데…… 뭐, 그게 관계 있는지는 저도 잘 몰루겟네오.
암튼 니들은 흉내 내도 소용없으니 포기하라고. 끽 하면 몬스터 되니까.
─툭. 나는 종이 자료를 묶은 마나로 잘랐다.
〈과거, 에린의 땅에는 훌드폴크라는 얼스터 인 문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절제없이 야수회귀를 사용했고, 애용했으며, 남용하였습니다. 고칠 방법이 없는 변화가 그들에게 찾아온 건 눈 깜짝할 사이였다고 합니다.〉
나랑 하이로메인은 돌림노래처럼 말했다.
〈전사들은 체격이 몹시 커지고, 상처가 저절로 낫는 재생력을 얻었습니다. 사제들은 전사들 못지 않은 힘을 얻고 점차 인육을 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손을 볼 때마다 현격하게 낮아지는 지혜를 눈치채고, 멸망을 직감했습니다. 그렇기에 빛을 피해서 땅 밑에 문명을 세우고 후손에게 그 자랑스럽던 기록과 유산을 남겼습니다.〉
〈잠깐만요. 그건……〉
혹시 다나가 써 붙인 논문도 읽었던 걸까. 아셰라드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고 빠르게도 결론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고대문명이 멸망하고──〉
─톡.
나는 화이트보드에 훌드폴크 유적에서 본 비석 글귀의 복사본을 붙였다.
〈지혜를 잃은 훌드폴크의 후예는 지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서 살아남은 인간들을 잡아먹은 끝에, 몬스터의 일종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죠.〉
〈전쟁으로 역사를 잊은 인류는 과거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고대인들에게 새 이름을 붙이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나한테 이 얘기를 듣고 며칠 앓아누웠던 하이로메인은 착잡하게 화이트 보드를 가리켰다.
〈오우거와, 트롤이라고요.〉
그렇게 설명을 끝낸 하이로메인이 입을 닫았다.
누군가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오우거의 선조가 인간이었다고요?〉
사람들 사이에 퍼진 혼란과 경악은 소가 여물을 저작하듯 천천히 퍼져나갔다.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오우거와 트롤이 얼스터 인과 접점이 없는 나라에서까지 서식한다는 말입니까!!〉
〈……흩어진 뒤에 괴물로 변했거나, 밀수입한 뒤에 탈출해서 새끼를 쳤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도저히…〉
〈닥치세요! 저, 저는 믿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몬스터로 변했다뇨!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목소리를 높이던 나르메르-나일의 외교관이 몇 마디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애석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시는 분께서는, 제게 치료를 받고 벌레 몬스터에서 인간으로 돌아오신 분 같군요.〉
〈……………….〉
내가 원한 건 아니지만, 설득력을 더할 증거는 바로 며칠 전에도 발생했었다.
창백한 낯빛의 아셰라드는 입을 가리고 신음을 흘렸다.
〈오우거와 트롤이 한때는 인간이었다……. 솔직히 믿기 힘든 일입니다만, 그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건 저희도 직접 보고 겪은 바 있죠.〉
충왕대군의 손에 벌레 몬스터로 변했던 게 고작 며칠 전의 일이다.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훌드폴크라는 얼스터 민족의 방계가 식인 몬스터의 선조라는 가설을 폭론으로 여기진 못하겠지.
괴물로 치부하고 죽여왔던 상대가 사실 인류의 친인척이었다니?
당연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 흔들리는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저도 제 아내의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 덕분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이로메인 교수님? 사절단 여러분께 자료를 돌려주시겠습니까?〉
〈네.〉
내가 손짓하자 하이로메인은 새 자료를 뿌리며 설명했다.
〈울프헤딘 백작님께서 귀족으로 취임하게 되신 계기, 알윈의 트롤 군단 습격 사건의 전말입니다. 말을 하는 트롤과 오우거의 목격정보도 있죠.〉
〈아니,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음.〉
─팔랑. 종이를 넘기던 드워프 외교관의 얼굴이 굳었다.
〈……얼스터의 방계, 훌드폴크의 유적이라. 이 유적도 백작이 발견한 것이오?〉
〈예. 말하는 트롤과 오우거가 서식하던 동굴의 지하에, 땅 밑에서 연명하던 끝에 멸망했던 어느 부족의 역사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지구와 이세계의 연관관계를 깨달은 그곳.
훌드폴크의 왕 호르샤를 족치고 오러를 깨우친 그 장소다. 다나가 관련해서 쓴 논문도 있고, 하이로메인이 쌓은 실적과 조합해서 설득력을 채웠다.
‘사실 이 얘기는 되도록 감춰두려 했지만.’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식인 몬스터들의 선조가 하필 얼스터 인이라니. 이 사실은 일부 미개한 씹새들의 인종차별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컸다.
당장 내가 예~ 전에 쥬지가 커다래진 문제를 상담하러 찾아갔다가 만난 티르시의 담당교수도 얼스터 인들에 대한 차별 발언을 지껄이지 않았던가.
다나의 출신인 픽트 인도 얼스터의 방계다.
장차 이 진실이 어떤 모멸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
그래서 솔직히 이 사실은 밝히고 싶지 않았다는 게 내 본심이었다.
‘하지만 평생 가는 비밀은 어디에도 없지.’
타락한 대학원생 호르샤가 가는 길을 지켜보며 내가 내뱉은 말 아닌가.
결국 역사 연구가 진행되다 보면 언젠가 누군지 모를 고고학자가 깨닫고 밝히게 될 사실. 그렇게 될 거라면 내가 진실을 밝힐 타이밍을 정하는 게 더 낫다고 본 것이었다.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든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본 직후니까.’
아틀란티스의 어인들에 대한 설명도 추가하면, 얼스터 인은 몬스터로 변했으니 인종적으로도 저열하다는 식의 개쌉소리가 퍼지는 일은 줄어들겠지.
내 목적은 그거였다.
충격적인 사실을 연속해서 들이부어서 경악스런 기분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
쉽게 말해서, 쇼크 요법이다 이 말이다.
─크흠흠. 나는 헛기침을 했다.
〈무척 놀라운 사실이긴 하나, 아마 이게 아틀란티스와는 무슨 관계냐는 생각도 드실 겁니다.〉
외교관들의 얼굴에 ‘아차’라는 글자가 떠오른 것 같았다.
아니 시발, 까먹고 있었냐고. 쇼크 요법 효과가 너무 크잖아.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전날 판데믹 도중에 여러분께서 느낀 두려움과 당황스러움. 그게 국가 곳곳에서 일어났다면 어땠겠습니까?〉
거의 뇌수 표백 상태에 빠진 외교관들은 시키는대로 내가 내뱉은 가정을 자기 나라에 대입해보는 듯 했다. 다들 별로 좋은 안색은 아니었다.
─짝! 손뼉을 쳐서 그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나.
〈얼스터의 선조, 에린의 민족은 분노했습니다. 사람이라면 자신들에게 야수회귀라는 저주를 건네준 이들에게 증오를 불태울 수밖에 없었죠.〉
〈……저주를 건네준 이들이라니요?〉
아셰라드가 즉각 반응했다.
나는 살짝 놀랐다. 그녀가 똑똑한 건 대충 돌아가는 분위기만 봐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대답하는 속도가 꼭 잘 아는 얘기에 관한 반응 같아서였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그럴 만도 했다.
‘이 얘기’는 한 묶음의 논문으로서 고고학계에서 가장 큰 명예인 천익장 후보에까지 올랐던, 걸작 중의 걸작이니까.
나는 아득한 눈빛으로 창밖을 보면서,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쯤 전일까요. 제가…… 예. 제가 근무하던 랩실의 교수가 집필한 논문 중에서 그런 가설이 있었습니다.〉
씨발. 몇 달을 걸려서 쓴 논문을 예르나, 그 씨팔년의 것으로 말해야 한다니.
거의 뭐 자기 손으로 심장을 꺼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복잡한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지금 그 논문의 소유권까지 되찾으려고 했다가는 이야기가 너무 중구난방이 되고 말 것이었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나의 논문을 예르나 년의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내가 도둑맞고 말았던── 충왕대군도 언급했던 그 논문을 말이다.
〈고대문명의 게르마니아 서쪽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국가가 존재한다.〉
이세계에는 아틀란티스 말고도 역사에서 말소된 나라가 있다.
언젠가 아내들에게도 얘기했던 내 논문의 주요 골자를 또다시 읊으면서, 나는 야수회귀를 얻었던 비석의 글귀를 반추했다.
─우리는 오랜 벗을 의심하여 배신했으나 우리의 벗은 그리 하지 아니하였다.
─리르의 피가 흐르는 자는 이를 원죄로서 기억하라. 과오를 속죄할 의무를 황혼의 초원에 맹세하라.
─잊혀진 ■■■■의 비술을 이곳에 기록한다.
나는 손끝에 피운 야수회귀의 마나를 바라봤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배신했다가, 나중에야 그게 오해였다는 걸 깨달은 어느 얼스터 인의 참회록.
저 논문을 쓴 내가 야수회귀의 비석을 찾아낸 건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저 비석에서 지워졌던 ■■■■라는 문자는 아마 인명(人名)이 아니다.
그건 아마 어느 나라의 이름이다.
〈인류에게 잊혀진 그 나라는 과거에 에린에게 야수회귀의 주술을 선물했다가 오해를 사고, 아틀란티스의 침략을 받아서 멸망당하고 만 겁니다.〉
나는 룬 스톤을 원탁 한가운데에 던졌다.
베로니카의 저주를 풀어준 날, 오우거 주술사를 잡고 보수로 받았던 물건이다.
치직…! 룬 스톤이 저장한 영상을 재생했다.
〈……일소(一掃)하라.〉
사절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귀기 어린 눈동자의 노인이 나타났다.
〈지나간 과오를 일소하라. 네놈도 최후의 만족에게 목을 내민 자라면, 네 피와 살을 담은 저울추를 기만할 책무가 있노라.
가서 멸하라. 네놈이 저지른 과오가 시작되었던 땅으로. 신들이 가장 먼저 잠든 대륙으로──〉
음산하게 뇌까린 노인이 마지막 말을 토해냈다.
〈──바다 민족이 향한 땅, 【히타이트】로.〉
…뚝. 룬 스톤에 저장된 영상은 거기서 끊겼다.
더 이상은 기록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듯이.
후일 누군가가 이 ‘명령서’로 역사의 진실을 까발릴지도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히타이트. 그것이 역사에서 잊혀진, 대전쟁이 시작된 나라의 이름입니다.〉
내가 이세계에서 겪은 사건들의 절반 정도는 이 진실을 가리키는 단서였다.
히타이트는 동맹이었을 에린에게 손절 당하고,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자국까지 침략해온 아틀란티스와 싸우다가 멸망한 것일까.
아틀란티스를 두쪽내서 바다에 가라앉히고 공멸한 걸지도 모른다.
〈아틀란티스는 과오를 되풀이하는 병기로 사용되선 안 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현재 유일하게 이 섬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제안드립니다.〉
나는 그런 상념을 집어치우고 본론을 꺼냈다.
논지는 마련했다. 증거도 갖췄다.
사절단이 찾아온 뒤로 별의별 일들이 있었지만, 아틀란티스의 소유권 분쟁과 관련해서 나와 엘리자베트의 목표는 오직 하나 뿐이었다.
〈국제조약을 맺죠. 다시는 아틀란티스를 전쟁에 사용하지 말자는 조약을요.〉
백날 떠들어봤자 나중에 수틀리면 칼 뽑을 거, 적당히 쇼부 보고 끝내자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수용으로만 쓸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