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복원이요?”
나는 고개를 모로 꼬며 멀뚱거렸다.
그녀의 제안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옛날 옛날 한 옛날의 추억이다. 내가 이세계 멀리 아주 멀리 사라졌다가 Z-용사가 되기 전의, 어느 유튜브 영상 말이다.
그 무렵. 스카이넷의 리전폼인 유튜브 알고리즘이 한사코 나에게 좆 같고 지옥 같은 영상을 권하며 자신이 아직 인간의 마음을 딥러닝하지 못했음을 증명하던 시절.
그들의 계략은 1080p의 광고영상과 함께 노상 내 아늑한 안방으로 찾아왔고, 나는 그만 침대 매트릭스에 인류를 감금하려는 네오의 계략에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여름철에 부랄을 긁고 꼬카인 냄새에 중독되는 아재처럼, 무심코 그 시뻘간 지옥에 이끌리는 한낱 미취학의 불나방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컸고, 나는 몹시 충격적인 영상을 보게 되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 연구는 전부 똥휴지가 됐습니다.
어느 백의를 입은 연구가가 자기 논문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영상!
그제까지의 패러다임── 대충 말해서 주류였던 이론을 뒤집어놓는 새 가설이 나왔기에, 그가 쓴 논문들이 싸그리 무의미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공포스럽게도…… 그 학자는 퍼포먼스를 하며 웃고 있었다!
당시에는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하는 마음에 ‘이 중년을 구하지 못하는 이 무력함…… 정말 속상하다!’며 탄식했던 나지만, 원치 않게 대학원의 돌을 삼킨 이브이가 돼 버린 지금은 알 수 있다.
맞다. 그는 새 논문거리가 호박 째 굴러들어온 기적에 기뻐했던 것이다.
자기 지혜 스탯이 0가 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면 기존의 연구들로 쌓은 네임 밸류를 유지한 채로 관련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미친 생각 아니냐고? 당연히 미친 거지 뭘 묻고 앉았어 시발.
대학원생의 돌은 인피니티 스톤과 같아서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떨어져나가거나, 힘을 지배하다가 미쳐버리거나, 사악한 교수로 흑화하기 마련이다.
박사과정 부스터샷을 3차까지 맞고 빌 게이츠의 독전파에 뇌를 조종당하는 미친 사이언-마조히스트들은 ‘내 연구 쓰레기 됨 < 새 연구 거리 생김’이라는 공식을 흔쾌히 받아들이곤 하는 것이었다.
다른 게 세뇌냐? 이게 최면세뇌조교물이지.
아무튼 이와 같이, 어느 한 분야의 연구는 주류 이론이 확 뒤집힐 때가 있다.
나무 수액에 박제된 모기한테서 킹룡 DNA를 채취하는 거건 책상에 앉아 수억 km 바깥의 우주를 분석하는 거건 똑같다.
그래서 우리의 킹룡 티라노 좌의 복원도는 존나짱큰 도마뱀이었다가, 마당을 나온 원시회귀 암탉 같은 모습이 되기도 했지 않은가.
‘아셰라드가 그런 맥락에서 연구를 제안한 거면 평범한 제안인데……’
그렇다기에는 서론이 쬐까 길지 않나?
이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서 긴장해갖고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그냥 편지만 한 통 붙였어도 충분하다. 성의 문제라면 아침부터 찾아오는 것도 칭찬받을 일은 아니고.
학자로서의 능력은 나보다 아셰라드가 낫다.
최강의 포켓몬 엔테이는 부스터보다 강하지만, 그렇다고 포켓몬 콘테스트에서 심사위원한테 불대문자를 갈긴다고 100점이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나보다 뛰어난 부분도 있다.
그녀가 편지를 부쳐서 학자로서 공동연구를 제안했다면 나는 삼각김밥을 손에 들고 육개장이냐 새우탕이냐 고민하는 빈곤한 대학원생처럼 심사숙고하다가 대답해주고 끝이었을 것인데.
‘글로는 못 전할 이유가 달리 또 있는 건가.’
그녀도 이제 막 본론을 꺼낸 참이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조금 더 설명을 들어봐도 될까요?”
“좋습니다. 백작님의 논문 얘기로 돌아가죠. 전 사르가디스 유적 논문을 받았을 때부터 그라시에 교수의 논문이 도용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공론화하진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냥 제자가 스승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또 내가 예전부터 논문을 써 온 것도 아니기에 뭐 증빙자료가 있을 수도 없다.
짬도 후달리는데 늦게 쓴 논문을 증거로? 그럼 오히려 내가 예르나의 버릇을 흉내 내서 주작하는 미투 씹게이라고 뭇매를 맞았을걸?
“그녀도 도용에 앞서서 조금 수작을 부려놓기도 했기에, 애매했던 의혹을 확신한 것은 앞서 말씀 드렸듯 회담에서 제공된 자료를 봤을 때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저도 일개 학자기에 제가 쓴 글의 가치를 알아봐주시는 선배님이 계신다는 건 언제든 기쁠 따름이죠.”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최초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도, 저는 감히 그라시에 교수에게 도용 의혹을 제시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지? 양심 선언하고 좋은 꼴 보기 힘들다는 거야 사회생활을 혀끝으로만 맛 봐도 깨닫는 일 아닌가.
뉘신지 모를 나를 돕겠다고 나서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반대로 그러지 않았다고 중죄인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 하지만 그 얘길 대놓고 내 앞에서 할 건 없지.’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 못 할 사람은 아닐 것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저는 부유하지는 않아도 귀족가문 출신이기에, 대학에 의지하지 않고도 연구가 가능했습니다. 꽤 많은 행운이 따라준 덕분에 명망도 좀 얻었죠.”
그래서 중립적인 입장을 얻을 수 있었던 건가.
후원자를 잘못 얻으면 그 사람한테 휘둘리니까.
그 뭐냐. 게임에서 컨셉을 병신 같이 잡은 캐릭터가 사실 게임에 관심 없는 윗사람의 좆기둥으로 정한 거라던가, 아니면 공산주의 맛 나는 드라마 스폰서 같은 거.
그런 게 싫다면 후원자를 두지 않는 것도 선택 중 하나였다.
아셰라드는 지난 날을 떠올린 것처럼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이해관계에 얽힌 학계에서 붕 떠 버린다는 뜻이기도 했죠.”
“학벌은 무서운 거니까요.”
촌지를 받는 교사나 회사 파벌 같은 걸 생각해 보면 존나 귀찮긴 했을 것이었다. 이세계에서 고고학자는 성공하기 쉬운 엘리트 코스니까 그런 것이 없는 게 더 이상하다.
아셰라드의 입가가 약간 움직였다. 미소였을지도 모른다.
“학파에 시달리지 않은 건 장점도 단점도 있었습니다. 장점 중 하나는…… 여러 학파에서 자문을 받고, 많은 사료를 접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죠.”
“학회장님께서 뛰어난 학자셨기에 가능했던 일 아니겠습니까.”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일찍 깨닫고 말았던 겁니다.”
깨닫고 말다니? 내가 고개를 모로 꼬자 그녀의 눈이 가라앉았다.
“고고학자들의 실종 편향에서 보이는, 어느 규칙성을요.”
“……실종이라.”
나는 말을 삼갔다. 아셰라드는 그래서 더 조용해진 자리의 침묵을 단신으로 물리치려는 것처럼 목소리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유적 탐사는 위험한 일이기에 실종 자체는 별로 드물지 않습니다. 현장직 학자에게 정기적인 논문 제출을 요구하는 건 장기간의 부재가 실종인지, 업무 태만인지 구분하기 위함도 있죠.”
“그랬군요. 이제 보면 전부 이유가 있는 규칙이었던 셈입니다.”
“예. 하지만 저는 안전에 예민하거나, 혹은 따로 유적 탐사에 나가지 않은 이들마저 수상한 실종과 죽음에 휘말리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고고학계의 학파가 나뉘어져 있었기에 공유하지 않던 정보들. 그걸 한 데 모아보자 어떤 큰 그림의 일부처럼 보였다는 것일까.
예르나 년의 논문 도용을 눈치챈 것도 그렇고, 아셰라드는 꽤 감이 날카롭다.
나는 눈을 반개했다.
“……저도 어느 정도 짚이는 게 있군요.”
말해도 될까 하는 고민은 짧았다.
어디까지 말할 건지에 대한 고민도 말이다.
“제가 그라시에 교수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는 전근을 간 대학에서 실종 상태였죠. 그녀를 찾는 과정에서 저는 어느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 미지의 실종사건에 휘말리는 것도 알았습니다.”
게르마니아 명문대의 도서관에서 찾아본 논문들.
그중에서도 룬 스톤을 연구하던 논문들은 전부 연구 도중에 끊어져 있었다.
나랑 다나는 그게 ‘연구를 마치기 전에 실종되었거나, 다른 학자들의 실종 사실을 깨닫고 서둘러 그만둔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종의 원인은 〈편찬대대〉라고 가정했고.
“……운이 좋은, 아니 운이 나쁜 학자가 깨닫게 되는 불문율이라더군요.”
롤뭐시기─아마 롤랑시스였을 것이다─는 입을 여는 것조차 무서워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그 수법이 굉장히 교묘하기에, 저는 몇 번인가 짐작가는 일을 겪고도 어젯밤 아셰라드 박사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릅니다. 전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일의 전말을 알아보려는 움직임 자체가 실종을 ‘당할’ 이유로써 충분하다고 직감했었으니까요.”
글쿠만. 이제 이야기의 맥락이 보인다.
나는 그들의 망설임을 대신 잘라냈다.
“그라시에 교수의, 아니. 제 논문이 그 ‘실종’의 타겟이 되리라고 보셨군요.”
중년의 학자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깔았다.
그런 학자들을 대신해서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키아라였다.
“학회장님이 울프헤딘 경께서 도난맞았다는 학위논문을 공론화하지 않은 건.”
“그 일을 지적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 되니까군요.”
굳이 설명을 다 들을 것까지도 없었다.
“……네, 맞습니다.”
아셰라드는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끄덕거렸다.
안 그래도 학계에서 확실한 파이프가 없는 몸.
깐깐하고 철칙을 지키는 사람은 정작 인간관계에서는 좀 고독해지는 법이다.
막말로 어디 술집에서 나오다가 고꾸라져서 죽었습니다~ 하고 알려져도 ‘아셰라드 박사가 그렇게 절제없이 마셨을 리 없다!’하고 의문을 제시해줄 사람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 앞뒤가 꽉 막힌 어둠 속에서 얼굴도 모를 누군가를 돕는다?
‘깡다구 이전에 죽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못 할 만 하지.’
아니, 사실 따지보면 그건 돕는 것도 아니다.
예르나 년이 내 논문을 훔쳐가지 않았다면?
혹은 아셰라드의 탄원으로 개좆밥이었던 나한테 논문의 저작권이 돌아왔다면?
‘……좆될 뻔 했던레후.’
아셰라드 앞에는 레티티아가 까꿍했을 것이고, 나는 프랑이랑 여관에서 뒹굴고 일어났는데 침대 맡에 묠니르를 든 엔리르가 서 있었겠지.
“그래서 그라시에 교수가 실종되었을 때, 저는 한심하게도 ‘역시 얌전히 있길 잘 했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셰라드는 무릎에 팔을 괘고 깍지를 꼈다. 그 자세 허리에 안 좋은데.
“그녀는 역사를 말소하고 싶어하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텐데도 불구하고요.”
“실종되고 몇 달씩이나 행적이 없으니…… 자업자득이긴 합니다만.”
“……음.”
학자들의 독백에 살짝 어색해진 나.
전체적으로 뛰어난 추리력이고, 정답에도 가깝다.
그래도 하나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그년을 죽인 건 전데용.’
아니지. 애초에 예르나가 망령도시에 진을 치고 있던 이유가 무엇인가.
‘〈편찬대대〉의 〈인신〉과 싸우기 위해서겠지.’
즉, 내가 죽이지 않았어도 어차피 뒤졌을 년이다.
사실 상 내 킬 카운트에 안 세도 될 듯.
어쨌든 예르나 년이 내 논문을 훔친 건─충왕대군이 한 말대로라면─ 그 논문을 공표하는 것으로 굴라나뢰크에게 어떤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까발려버린 이상 〈편찬대대〉에게 노려질 건 자명하다.
그래서 망령도시의 마나 발전기를 손에 쥐고, 그 마나를 마나 중독 현상 없이 조종하려고 분신까지 만들어서 대기했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다는 건, 〈편찬대대〉로부터 듣고 싶은 게 있었나?’
그게 아니면, 해치워서 수를 줄이고 싶었든가다.
다시 되짚어 보면, 굴라나뢰크의 멤버는 다 그런 식이었다.
방대한 마나와 그걸 견딜 수 있는 재생형 분신.
적의 마나를 고갈시키는 무술.
육체라는 틀에 괴물의 힘을 가둔 바이콘.
‘전부 〈인신〉을 죽일 수단을 강구한 결과야.’
그러면서도 단호한 사견을 입에 담자면…… 그 임팩트나 강함은 〈편찬대대〉에 크게 뒤떨어졌다. 그나마 충격적이었던 건 〈인신〉 1~2명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 자부했던 예르나 정도일까.
이 결과들은 어느 부정 못할 사실을 가리켰다.
필멸자의 몸으로 신의 힘에 맞서는 게, 그만큼 지난하다는 진리를 말이다.
“제가 모험가가 된 건 꼭 찾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키아라가 말했다. 눈앞에 드래곤이 튀어나와서 브레스를 뿜어도 눈 하나 꿈쩍 않을 것 같은 마이 페이스시군.
“저번에도 말씀드렸죠? 이 나이 먹고도 홀몸인 게 서럽다, 자식이 보고 싶다고.”
“예, 뭐. 워낙 충격적이어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유적을 찾는 게 생업 중 하나고, 또 그러다가 학회장과 알게 됐습니다. 경력은 제가 더 길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내심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꽉! 키아라는 자기 검지를 손으로 감쌌다.
“인류의 기술이 가장 번창했다는 황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제가 원하는 걸 이뤄줄 기술을 찾기는 힘들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히타이트의 문명을 찾고 싶으시군요. 그 미지의 기술력에 믿음을 걸고.”
아셰라드에게 협력하는 건 그래서일까. 정답이었는지 키아라는 음침한 얼굴로 웃어댔다. 생긴 거에 안 맞게 순박한 웃음이었다.
“저와 학회장은 각자 그 말소된 문명을 찾아내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유까지는 몰라도 울프헤딘 경도 비슷하리라고 생각했죠.”
“제가 말입니까?”
“히타이트의 역사를 복원해내고 싶으시거나, 그 복원을 원치 않는 누군가와 싸우시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제 있던 회담에서요.”
아셰라드는 내가 배부했던 자료를 흔들었다.
“아틀란티스의 소유권을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도 많았습니다. 애초에 조약을 맺는 것으로 양보하고 우위를 잡으시려는 거면 그 흥미로운 역사 교육은 필요가 없었죠.”
“제가 로마니아 사절단과 협력해서 아틀란티스 동맹의 존재를 밝히리란 걸 아셨을 리도 없는데, 백작은 그 전부터 준비를 해 두셨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히타이트에 대한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는 걸 알았군.
내가 말없이 웃자 아셰라드는 눈을 빛냈다.
“백작께서는 회담의 자리를 빌려, 각국의 수뇌부에게 히타이트의 존재를 알릴 생각이셨던 겁니다. 그리면 더는 지금처럼 학자 몇몇을 죽이는 걸로는 감춰놓을 수 없으니까!”
들켜버렸군 기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여튼 아줌마들이 눈치 하나는 귀신 같다니까. 중년 여성에게 남성 호르몬을 끼얹으면 제 6감이 발달하는 게 틀림없다.
‘솔직히 아틀란티스만 놓고 보면 그 장황한 역사 교육은 불필요하지.’
내가 대전쟁 이전의 역사를 밝히고 히타이트의 존재를 알린 이유는 다르다.
밝혀진 비밀을 숨기는 건, 꽁꽁 감춰둔 비밀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죽이는 것보다 수백 배는 어렵기 때문이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내 리액션에서 더욱 자신감을 얻은 아셰라드가 말을 쏟아냈다.
“역사에서 지워진 황금시대의 국가. 그것도 저 아틀란티스와 공멸이 가능할 정도로 강대하다면, 그만큼 강력한 유물로도 넘쳐나겠죠.”
그런데도 히타이트의 존재는 아무도 몰랐다.
다시 말하자면, 그 유적을 찾아내서 히타이트의 유물을 손에 넣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아틀란티스만 봐도 대체 어떤 물건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누가 아는가? 히타이트의 유적에선 라퓨타 같은 게 튀어나올지.
욕심이 나겠지. 당연히 사절단의 이야기와 내가 준 자료를 얻은 각국 수뇌부는 뒤집힐 것이었다. 뒤쳐지면 안 되는 탐사승부가 시작된 거니까.
“막대한 금광의 존재가 암시돼 있는, 사실상의 무주공산.”
키아라는 모험욕이 치민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전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 미지의 무대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비밀을 숨기고 싶었던 이들도 사방에서 들쑤시는 이들을 전부 감당하진 못 하겠죠.”
“종래의 독점체계를 박살내고, 비밀을 감추려던 자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적의 약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들켜도 상관없는 비밀을 이렇게 철저히 지키진 않았을 테니까!”
자기 목소리가 커진 걸 자각한 걸까. 아셰라드는 목을 누르며 소리를 낮췄다.
“그러니까, 이 판을 꾸린 백작님께 협력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백작님의 사정이 무엇이든, 저와 콜리도 경은 이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단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경쟁을 앞서나갈 수단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인 아셰라드는 입을 단속했다. 하긴, 그걸 말해주면 이렇게 찾아온 의미가 없지. 내가 낼름 정보만 빼먹고 독주할지도 모르니까.
고고학계에 도사린 그림자를 걷어내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며, 학자의 본분을 다한다.
아셰라드는 그럴 생각으로 날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맨입으로 부탁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이 협력체계가 도움이 되리라는 걸 증명할 겸, 백작님께서 당연히 손에 넣으셨어야 했던 것들부터 돌려드리겠습니다.”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는 아셰라드.
“백작님께서 여러 방면에서 줄충한 능력을 보여주신 것과, 제가 학회장의 자리에 올라선 것으로 몇 가지 융통이 가능합니다. 논문 도용 당시와는 피차 신분과 입장이 다르니까요.”
나는 기대 반 경계 반으로 서류를 쳐다봤다.
뭘까. 지폐가 없는 이세계에서는 저런 종이로는 뇌물일 수가 없는데.
“석사 은장 진급증입니다. 말하자면 선금이죠.”
그녀는 테이블에 얹은 서류를 슥 밀었다.
“그리고 히타이트의 역사를 복원해내는 날에는, 백작님께서 도용당하셨던 학위논문과 천익장 또한 이 테이블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이 씨발 세상에! 존나 잘 부탁드립니다!”
예전에 나 석사 동장 준 거 가지고 씨발롬이니 개새끼니 욕해서 미안해요!
오늘부터 우리는 베프인 부분인 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