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유를 둬야 하는 일이 있고, 한 번에 몰아쳐야 하는 일이 있다.
나는 연인과의 첫날밤─그것도 상대가 처음일 때의 첫날밤─은 전자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덮치는 넘기는 건 못할 짓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애초에 그냥 연애로만 끝나는 사이면 몰라, 난 하렘남의 숙명으로서 몸을 섞은 여인을 평생토록 사랑하며 다른 아내들과 동등하게 대하려는 남자.
누구는 다정하게 아끼고 보듬어주며 시작한 걸, 다른 누구는 기회가 되자마자 덮쳐서 좆기둥부터 들이민다? 그게 무슨 차별대우 짓인가.
장차 결혼생활에서 다른 아내들과 비교해 보며 진한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게 될 게 자명한 이치! 나는 하렘을 꾸리려면 그 정도는 신경을 써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도 꼴마초의 수치.
게다가 아내들과의 깊은 교감을 반복한 것으로 나 역시 과거로부터 진일보하여 깨달은 바가 있다. 뇌피셜 여심을 벗어나서 실제로 여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언제 몸을 섞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내게 마음을 주는 여성.
그런 상대를 배려하기만 하는 것도 몹쓸 짓이다.
─제가 매력적이지 않아 보이나 걱정했었어요~.
내가 하도 손을 대주지 않았을 당시의 초조함을 토로한 라리루라의 말이었다.
정말로 백치거나 남녀상열지사에 무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여자들도 ‘여긴가? 지금 오나? 드디어 졸업하는 날인가?’ 하는 생각은 할 수 있기 마련.
그러니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드를 조성하겠다고 깝치다가 기껏 조성된 분위기를 조져놓는 아다 같은 짓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암묵적인 상호동의다.
나는 브류나크를 벗어서 〈아공간〉에 넣었다.
“………………!”
네페르티티의 허리와 귀가 쫑긋 섰다. 눈치는 참 빨라요.
그녀는 성탄절 날 선물 보따리를 든 산타를 본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괜히 몸을 매만졌다. 곧 벗겨질 텐데 옷을 추스르고, 곧 흐트러질 텐데 앞머리도 건드려본다.
“……콜록, 콜록.”
그러고는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쪽을 힐끔거리면서 어색하게 기침.
스륵─. 권유하듯 깊이 파인 허벅지가 은근슬쩍 뻗었다.
수십 명의 기사들을 단 한 걸음으로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들 수 있을 무예의 진수를 담은 다리. 그게 지금은 꼭 어설프게 복싱 자세를 흉내내려고 애쓰는 여자애 같다.
나는 네페르티티의 허리춤에 감은 손을 밑으로 내렸다. 단순한 포옹이라기엔 깊고, 그래도 육욕에 이성을 상실했다기엔 다정한 보디 터치였다.
“……흐읏.”
허리를 타고 옆구리보다 깊숙이로.
손가락에 희미하게 향유의 촉감이 묻는다. 달짝찌근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등이 파인 그녀의 옷은 깊숙이까지 내 손가락을 허용했다.
검지가 엉덩이 골과 골반 뼈를 톡 쳤다. 나는 품 속에 가두듯 끌어안은 네페르티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경험이 없는 것 치고는 긴장하지 않았다.
…끄덕.
단지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수긍할 뿐.
나를 따라오기로 했을 때부터 쭉 이렇게 될 걸 기다렸던 것일까.
그리고 이걸 기다렸다는 말은─그 기다림이 불쾌함을 동반하지 않은 한─, 이런 날이 오기를 내심 기대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면 또,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게 내가 해줄 일 아니겠는가.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네페르티티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입술만 포개면서 첫 키스를 빼앗고, 여유를 없애듯이 틈이 날 때마다 몸의 곳곳을 매만졌다. 집요하게 성감대만 피해가자 네페르티티의 혀는 안타까움과 간지러움에 탄식했다.
쮸웁…!
“햑…♡”
그렇게 내밀어진 혀를 내밀며 벌어진 입에 혀를 집어넣었다.
남의 침입을 허락할 일이 없다는 점에선 구강도 음부나 다를 바가 없다. 혀를 섞는 키스는 지식의 범주 밖이었던 모양으로, 그녀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가 풀어졌다.
“후으, 흐, 흐으, 흐…♡”
키스를 반복해서 호흡을 흐트러트렸다. 달인의 체력 분배능력도 빈틈을 쳐서 무너트리자 과호흡 상태에 빠진 것처럼 달아올랐다.
혓바닥을 괴롭히듯 가지고 놀다가 입을 뗐다.
베…♡ 네페르티티는 내 혀를 따라가려는 듯이 몽롱하게 혀를 쭉 내밀었다.
남자 밑에 깔려서 혀를 빼문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내 목을 매만지던 네페르티티는 내 타액에 취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옷, 벗어야……”
“더러워지면 안 되나요?”
그럴 시간도 아쉽다. 딱히 벗기지 않는다고 못 넣는 것도 아니고.
“……상관은, 없는데….”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네페르티티의 표정변화로는 거의 대격변 수준으로 큰 변화였다. 나는 그녀의 뒷목을 쓰다듬었다.
“벗겨드릴게요.”
어떻게 벗기는지는 대충 알겠다.
목에 단단하게 감긴 끈을 요령 있게 풀자 네페르티티의 상의가 훅 꺼졌다. 사실 장식이나 질감을 빼면 원피스 수영복에도 가까운 옷이었다.
허리를 들고 팬티를 벗겼다. 길쭉하니 뻗은 다리를 높이 세우고 속옷을 당기자 흠뻑 젖은 투명한 실이 음부로부터 쭉 늘어났다.
“……………….”
네페르티티는 자신의 아랫도리가 이토록 준비만전이었을 줄은 몰랐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춰버렸다. 아직 애무도 안 했는데 빠른 편이긴 했다.
찰나의 고민 끝에 그녀가 말했다.
“……그거, 향유.”
“어떤 기름이 이렇게 끈덕지게 늘어지죠?”
“……………….”
“왜 또 그러세요. 귀엽기만 한데.”
나는 웃음보를 못 참고 낄낄댔다. 네페르티티의 눈이 못마땅하게 가느다래졌다.
“……불공평해.”
“응? 뭐가요?”
“나만 알몸. 너도 벗어.”
볼이라도 부풀릴 듯한 그녀는 이불을 끌어당겨 자기 몸을 가리고는 내 옷을 벗겨버렸다. 수치를 당한만큼 갚으려는 생각일까.
도롱이벌레처럼 올 누드로 이불을 감은 네페르티티가 내게 달라붙어서 꼼지락댄다.
윗도리의 단추를 어수선하게 벗긴 그녀는 잠깐 머뭇거렸다. 바지에 길쭉하게 텐트친 게 무엇인지 깨닫고 스턴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이거……”
“네.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자지?”
“……네. 자지요.”
네페르티티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하니까 파괴력이 또 남다르네.
내가 이 사차원 아가씨 입에서 자지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감회가 새로워진 나는 피식거리며 끄덕였다.
그녀의 안색이 나빠졌다.
“……싸우기도 전부터 패배의 예감.”
빨리도 피아의 전력 차이를 깨닫고 좌절해버린 그녀는 결심을 하고 내 바지춤을 붙잡았다. 허리 벨트를 끌러서 풀러버렸다.
누르는 게 없어진 자지는 우뚝 솟아서 네페르티티의 콧잔등에 닿았다.
그녀는 상상 그 이상의 사이즈에 입을 작게 벌렸다가, 홀린 것처럼 손을 어쩔 줄 몰라한 끝에 내 부랄 밑에 손을 받치고 자지에 손가락을 댔다.
“……하나, 둘….”
한 뼘, 두 뼘…… 길이를 세 보는 네페르티티.
길이를 재 본 네페르티티는 혼란스러워 하면서 자기 배에도 손가락을 댔다. 2번째로 보는 그녀의 전라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그만큼 꼴렸다.
“하나, 둘……”
그리고 길이를 대조하듯 다시 카운팅.
손가락으로 한 뼘씩 재던 그녀의 손가락은 아랫배보다 한참 위에서 멈췄다.
“……………….”
그러고는 내 눈치를 슬쩍 보고서는, 이불을 푹 덮고 안으로 숨었다.
덕분에 발바닥만 이불 밖으로 빼꼼 빠져나왔다.
“네페르티티?”
“……사이즈 감이 뭔가 이상해.”
네페르티티는 꼼지락거리다가 이불에서 얼굴만 꺼냈다.
가면 같은 얼굴에 당황과 혼란이 가득하다.
마치 산타가 하룻밤만에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돌리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만 듯, 대혼란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사실 너무나도 잘 이해해서 자지가 터질 것처럼 발기했지만, 나는 시치미를 뗐다.
그녀는 분명 자기보다 성행위에 빠삭할 내가 이 당연한 사실을 왜 모르는가 하며 더 혼란스러운 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불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한테 다가붙었다.
“이렇게 대 보면, 자지가 여기까지 들어와.”
그리고 나랑 아랫배를 맞춰보듯 일자로 예쁘게 갈라진 복부를 자지에 딱 붙였다.
피가 쏠린 자지에 반질반질한 여체의 폭신함이 폭 와닿았다. 그러고는 길이 차이를 보여주려는 듯 귀두가 닿은 부분을 손으로 꼬옥 눌렀다.
네페르티티는 그렇게 나랑 배를 맞추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나, 자지 넣어도 괜찮은 거 맞지?”
……쓰벌, 이거 다 알고 유혹하는 거 아냐?
‘어떻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꼴리게 굴 수가 있지?’
날 상대로는 경계심도 거리감도 없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내 자지에 아랫배를 대고 스스로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비교하다니?
확 덮쳐버릴까 하는 충동에 눈이 빙빙 돌 정도.
“도서관의 고서에서 본 건 이렇지 않았는데……”
네페르티티는 처음으로 캔에 들지 않은 참치를 본 아이처럼 자지를 주물거리다가, 불현듯 깨달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았다. 쌀 때마다 작아지는 거야.”
미치겠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