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16화 (715/1,009)

상호 간의 협의가 진행되길 잠시.

나는 다나가 지금껏 노력했던 보상을 원한다는 말에 초딩 강북호로 변신했다.

10대 초반 초등학생.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귀엽기는 지랄 염병이고 한 대 콱 쥐어박아주고 싶을 수도 있는 개초딩 나이.

하지만 아내님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아아아…! 흐아아아앗!!”

다나가 찍은 쁘띠 노르드의 사진이 단톡방에 휙 던져지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추격전을 찍던 아내님들은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다나의 품에 안긴─사실 포박된 거다─ 나에게 손을 뻗는 프랑.

그녀는 마치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즐겨 입었던 자켓을 선물받은 사람처럼 손을 떨다가, 황홀함을 못 참고 감격스런 탄성을 터트렸다.

“노르가…… 노르가 나보다 작아졌어!!”

“그러게. 살다 보니 프랑 널 올려다볼 날이 다 오고,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

“목소리 귀여워♡!!!”

“……그, 그래?”

수컷 잼민이의 종특인 꽤액─! 내지르는 변성기 전의 째지는 소리. 그걸 적당히 철 든 28살이 좀 차분한 톤으로 말하니까 느낌이 색다르긴 하겠다.

PC방에서 파오캐 하면서 빼액대는 초딩이랑은 다르다. 아역 배우 톤이다.

“아들을 낳으면 이런 느낌일까?! 어떡하지, 너무 귀여워!!”

“꺄아악♡!! 손!! 손 쪼꼬만한 것 좀 보세요!!”

“선배, 선배! 한 번 웃어주실래요?! 배시시 하는 느낌으로 웃어주세요!! 그럼 저 뭐든지 할게요!!”

“인간의 뺨이 이렇게 보드라워도 되는 것이냐? 왜 그대가 가슴에 집착하는지 알겠구나. 이래서야 평생 만지고 싶어질 만도 해.”

─주물주물, 쪼물쪼물♡!!

“테에에에엥!!”

아내들은─흥분도의 차이는 있어도─ 하나같이 홍조가 가득하니 달아올라서는 다나에게 붙잡힌 날 둘러싸고 온몸을 마구 만져댔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말아요!”

“가만히 있어요, 선배! 따로 잡아먹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게 잡아먹는 게 아니라고? 도축 전에 육질을 확인하는 절차 같은데? 윗옷에다 손 놓고 배꼽을 만져대고 뺨이며 귓볼이며 손가락 틈사이까지 쪼물쪼물거리면서?

그녀들의 광란 어린 스킨십 쇼는 그렇게 한참을 이어졌다.

“으겍.”

추욱…….

여러 쌍의 손에게 유린당한 나는 명절 날 친척 눈나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게 트라우마가 돼 버린 초딩처럼 옆으로 늘어졌다.

“누나……. 나 잠깐 쉬게 좀 놔 줘…….”

“절대로 싫어.”

다나는 턱도 없는 소리 말라는 듯이 날 껴안고 뺨을 비벼댔다.

평소에나 좀 이래 봐라, 이 년아.

아니지. 평소에 이랬다간 내가 덮쳐버리겠구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옛말에 틀린 게 없다. 내가 약해진 틈을 타서 스킨십을 만끽하는 모양.

─찰칵찰칵!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네페르티티는 거기서 뭐하시는데요?”

“영구보존.”

카메라 앱을 켠 네페르티티는 1mm도 움직이지 않고 정승처럼 서서 셔텨 버튼을 연타했다. 앱의 촬영속도마저 웃도는 달인의 손가락 연타다.

근데 영구보존이고 나발이고, 그 사진들 꿈에서 깨면 없어질 걸.

네페르티티는 촬영을 끝낸 스마트폰을 브류나크에게 내밀었다.

“브류나크.”

“삐에~.”

녀석은 거기서 데이터를 뽑아내선 그걸 부리로 흡수했다. 그리곤 내 머리 위로 날아와서 앉고서 빔 프로젝트처럼 벽에다가 대고 발사했다.

지잉─. 녹초가 된 성장기 강북호가 떠오른다.

이 시발, 그런 수가 있었네.

그런데 상식도 제대로 없던 애가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브류나크. 너 혹시 내가 평소에 꿀잠 자는 동안 여기서 놀았어?”

“……삐에 삐삐~?”

내 영혼의 분신은 지구 문물을 만끽했던 모양.

오늘따라 배신과 뒤통수의 연속이군.

“다나아~. 나도 노르 안아볼래. 다나아아~….”

“싫어. 제안한 것도 협상한 것도 나니까 못해도 1시간은 기다려.”

옆에 붙어서 칭얼대는 프랑과 단호하게 거절하는 다나.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의 뒤편에서 ‘다음 노르드 자유이용권’를 기다리며 내 앨범을 탐독하는 아내들.

대체 뭘까, 이 공간은.

아내님들의 판타지스러운 옷차림도 더해지니까 거의 산지옥이다.

나는 다나에게 안긴 채로 일단 의견을 물었다.

“……얘들아. 드라마라도 볼래? 이 세상의 생활양식을 볼 수 있는 매체인데.”

“그런 유익한 걸 감상할 틈 따윈 없어요.”

“누나라고 불러요, 선배.”

앨범에 눈을 고정하고 대답하는 아내들.

존나 화기애애한 가족이다, 정말.

***

앨범을 읽으면서 ‘이건 뭘 하는 그림이냐’, ‘이 사람은 누구냐’ 식으로 추억팔이(강매)를 만끽하는 아내들에게 입 아프게 대답해주다 보니 어느샌가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셰이드가 발동 중일 때에 한해서, 현실과 꿈은 시차가 없는 수준이다.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을 감안하면 이러고 있을 시간도 얼마 안 남았──

“노르. 우리 밤에두 여기 올 거지?”

“오늘 취침은 오후 7시로 결정이네요☆!”

“……그때 쯤이면 셰이드 유효시간이 끝나는데.”

“대충 아무나 적당히 골라잡고 덮쳐버리거라.”

“가능한 2분 안으로 끝내주시겠어요? 연장전은 여기서 해도 될 테니.”

내가 발정기 토끼냐고.

1시간이 지나서 자기 차례가 끝난 다나는 나를 놓아주면서 뺨을 쪼물락댔다.

“우리 노르, 딱 4시간만 더 있다가 나가자. 응?”

“누나. 나 내용물까지 어려진 거 아닌데.”

이 시발, 너 다나 아니지.

맨날 보던 다크서클 개털머리 박사님이 거의 뭐 젊은 유부녀 같은 포스를 내고 있다. 바뀐 부분도 없는 다크서클의 퇴폐미가 가련한 느낌마저 준다.

다나의 눈빛이 이렇게 다정다감한 적이 있던가.

맨날 사랑하는 티 못 내서 안달이면서 겉으로만 툴툴대던 츤데레는 어디 가고, 어느새 넘쳐흐르는 모성으로 날 바라보는 다 박사님이시다.

‘그보다 1시 쯤에 잠들었는데 여기 5시간 있다가 나가자고?’

그리고 오늘 밤에 7시에 들어오자?

그럼 현실엔 1시간도 못 있잖아. 밥 먹고 씻고 생리현상 해결하면 끝이겠네.

가상현실 중독자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계시는 아내님들이셨다. 이러다가 현실 식사는 이세계식 벽곡단 같은 걸로 땡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보다 노르드는 현실에서도 변신하실 수 있지 않아요?”

2빠따로 당첨되어 날 끌어안고 쓰담쓰담거리던 베로니카에게 티르시가 질문했다. 쓰벌, 왜 등골이 오싹오싹하지.

변신이 가능하다고 대답하면 머지 않아서 ‘누나, 나 꼬추가 이상해’ 코스 일직선일 것 같은데. 안 돼! 그런 아청법! 나는 감당할 수 없어!

내가 무심코 그렁그렁하니 눈물이 맺힌 눈으로 베로니카를 쳐다보자, 우리 여신님은 가슴이 큥♡ 하신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너무나도 아쉽지만…… 주인님의 적성과는 안 맞느니라.”

베로니카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너도 잼민이로 변신한 내가 마음에 든 거냐고?

“어째서요?”

“어째서라고 물어본들…… 변신 마법의 원리가 그러하다고밖에. 같은 종족, 같은 존재로서 어려지기만 하는 건 종족만 바꾸는 것보다 어렵다.”

그녀 왈, 내가 뱀으로 변하면 뱀 기준으로 나이 28살의 수컷 뱀으로 변할 뿐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같은 인간이라는 분류에서 생김새만 젊어지는 건 어렵다던가.

전기로 불을 지피는 거랑, 얼음을 얼리는 것의 차이다. 불은 그냥 전기로 땔감을 태우면 되지만 얼음은 냉장고라는 정밀한 중계기가 필수니까.

“그런가요…….”

그러자 티르시는 어깨를 떨구며 낙담했다.

“어려진 노르드랑 손 잡고 장을 보러 가거나 해 보고 싶었는데……”

“저기, 티르시 씨? 저 슬슬 어디까지 장난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하는데요. 이러다가 저희 마나님들이 범죄에 손 댈까 무섭거든요?”

“어린애가 좋은 게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진 게 좋은 거라구요!”

존나 페도필리아의 상투적인 변명이잖아.

아니, 그래도 딱히 그 뭐냐…… 소아성애? 끼를 보이지 않았던 그녀까지 저럴 정도다. 진짜 어린 남자애를 좋아한다기보단 미니멈 강북호가 귀여운 게 맞겠지.

기분이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안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 내가 11살 티르시를 물고 빨고 해댔으면 철창 직행이겠지만 말이다.

“처음엔 귀여웠는데 말투가 선배 그대로라서 좀 적응된 거 같긴 해요.”

“어쩔티비~. 저쩔냉장고~.”

“선배가 왜 맨날 절 쥐어박았는지 알겠네요☆!”

수컷 메스카기 맛 좀 쬐끔만 보거라. 나는 까불다가 라리루라에게 뺨을 붙잡히거나 하는 곤욕을 치루며 간단한 배달음식을 주문시켰다.

“그보다 잼민이 손가락으로 주문하기 개빡세.”

힘든 건 둘째치고 수백 만원 어치 게임 아이템을 현질했다가 엄마한테 등짝 처맞고 뉴스에 나오는 개초딩이 된 느낌이야.

─콩콩콩! 어플로 주문하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

익스프레스 수준이 아닌데. 공간이동 배달부냐고.

…흠칫!

네페르티티는 어깨를 크게 떨었다. 자기 감각에 아무도 잡히지 않았는데 노크를 당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겠지. 쓰벌, 이런 소소한 부분이 존나 귀엽다니까.

“……누구?”

“아, 제가 먹을 걸 좀 시켰어요.”

내가 문앞에 덩그러니 놓인 음식들을 날라오자 다나가 입을 헤 벌렸다.

“……남이 음식을 해서 집 앞까지 갖다준다고? 이 남편 새끼 역시 귀족 출신이었죠? 그 입대라는 것도 귀족 장남의 의무였죠? 존나 금수저죠?”

“우리 한민족은 배달의 민족이란다. 배달음식을 주문할 줄 모르는 인종은 사회로부터 백안시되지. 어느 직업이든 신입사원은 우선 카페인 포션이랑 야식 주문부터 할 수 있어야 하지.”

“연구물자 발주는 대학원생도 하는 건데 뭘.”

“그치만…… 대학원생은 직업이 아닌걸?”

“너 그거 사실적시 폭행치사야.”

그래도 맞말인데. 직업의 3가지 속성은 경제성, 윤리성, 계속성이라고.

돈이 안 되니까 경제성 없지, 현대판 노예라서 윤리에도 저촉되지, 석사건 박사건 학위 따면 끝이니까 계속성도 없지…… 거기다가 경제적/사회적 성장이나 자아실현에도 악영향만 남잖아?

역시 이건 직업이 아니다. 그냥 버터플이 되지 못한 단데기지.

“와아~! 누나 대학원에 갔어요? 저희 학원쌤이 대학원은 바보 아니면 천재들만 가는 거랬는데!”

“세상 시발 뼈가 되고 뼈가 되는 교육이다. 대학원생 혐오를 멈춰주세요.”

“나도 내가 말하고 반동 데미지 개씨게 받음.”

“고통이 랩실 노예를 키우는 것이다.”

“저는 그런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아무튼 다른 아내들은 물론이고 다나도 한국의 주요 국뽕 딜링기 중 하나인 배달음식 문화가 놀라웠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엔 가게에 가서 먹었었지?’

역시 집에 데려온 건 신의 한수였다. 한국에서 배달음식을 안 먹는 건 말이 안 되지. 이 나라의 음식 배달은 김치 다음으로 당연한 거라고.

배달료가 5000원이어서 섬칫하긴 했다만.

여기가 지구-4인 프리 서버라서 다행이군.

“무슨 요리를 시킨 거야? 칠면조? 오리?”

“아니, 닭 같구나. 겉은…… 튀김옷이로군.”

“아아. 그건 치킨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에 귀화한 블랙-소울 푸드지.”

개인적으로는 짜장면이 땡겼지만 아내들의 문화권을 고려하면 띵호와 K-중화요리는 난이도가 좀 높다. 피자나 치킨 같은 게 무난할 것이었다.

예전에 다나한테 먹였을 때 반응도 좋았고.

“……꿀꺽.”

거 봐. 벌써 군침이 흐르잖아.

“다나 언니가 저럴 정도의 요리에요? 아핫♡! 저 약간 기대되기 시작했어요!”

별로 식사에 고집이 없는─프랑 마망이 억지로 데려가지 않으면 거를 때도 많다─ 다나가 반응을 보이자 라리루라도 기대감이 오른 모양.

“……남편. 그때 그 맥주는?”

“냉장고에서 꺼내먹어. 영화도 틀어놓을게.”

치맥은 진리지. 하는 김에 쏘맥도 타 볼까.

내가 술자리를 세팅하고 있는데 아내들은 캔을 집어들고는 쑥덕거렸다.

“……다나, 이 물건은 뭐더냐? 철괴?”

“그, 글쎄? 저번에 마신 맥주는 안 이랬는데.”

“아니, 안에 액체가 들었어요. 포션 연금술사의 이름을 걸고 단언하죠.”

“맥주를 보관하는 오크 통을 철로 만들었나? 왜 이렇게 작게?”

“얇게 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쳐도 이상하게 가볍다. 잠깐 열어볼까?”

우리 아내님들은 그렇게 쑥덕거렸더니, 프랑이 대표로 나서서 맥주를 깠다.

─우직!

“엣.”

정확하게는 까 보려다가 손가락을 거는 부분을 뽑아버렸다. 프랑은 잠깐 어쩔 줄 몰라 하다가도 어차피 꿈속 공짜 맥주라는 걸 떠올린 듯 말했다.

“하, 한 번만 더. 다음엔 성공할게!”

“모양을 보면 떨어지는 구조 같은데. 위로 잡아뽑는 요령이 필요한가?”

“뽑는 게 아니라 누르는 거야.”

나는 맥주캔 하나를 집어서 시범을 보여주었다.

─슥뽕! 캔을 따는 경쾌한 음색.

아내들은 어설프게 따라했고, 프랑은 조심조심 입에 가져갔다가 파르르 떨었다. 얼굴이 밝아진 걸 보면 맘에 들었나 보다.

“으…… 맛있어! 엄청 진하고 시원해!”

“톡 쏘는 맛이랑 차가움을 동시에 잡았네? 이게 어떻게 되지? 보통은 얼음을 넣거나 해도 기포가 빠져버리는데……”

“금속 병에 들어 있어서 아니겠느냐?”

내가 두 손으로 캔을 잡고 꿀꺽거리는 그녀들을 실실대며 소주를 까서 잔에 담았다. 티르시는 날 어설프게 도우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노르드? 어린애 모습으로 그러고 계시면 제가 살짝 불편한데요.”

“동안인 드워프라고 생각하세요.”

익숙하게 술판을 까고 식사 개시. 치킨 피자를 여러 종류 시켰더니 취향은 제각각 꽤 갈렸지만, 예상대로 대부분 호평이었다.

“튀김옷이 굉장히 얇아서 바삭바삭하네요?”

“빨간색 양념… 매워…. 그래도 맛있어….”

“아핫♡ 하얀 게 뭔가 했는데 치즈가루에요~? 저는 이게 제일 좋아요!”

“그, 그대여. 레시피는? 레시피는 알지? 안다고 말해다오. 나는 이 고구마 피자라는 음식을 현실 세상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게 맞겠지?”

“그런 거 모르는데스.”

화기애애하게 떠들면서 거실 벽을 뒤덮는 대형 TV를 소환했다.

처음엔 드라마를 틀려고 했는데, 애매하게 끊길 바에는 영화가 나을 것 같았다.

‘혼자 보는 것도 아니고 가족끼리 모여서 정주행하긴 좀.’

예전에 교양 수업에서 친해진 유학생들이 추천해달래서, 외국인도 이해하기 쉬운 신파영화 같은 걸 몇 개 알아봤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시 사람은 뭐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니까.

그래도 아내님들은 사는 세상이 다르니까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우려나.

“아흐으으으…… 누, 눈물이 안 멈춰여어…….”

“으흑, 흑……. 그, 그래두 행복하게 끝나서 참 다행이야…….”

아, 그렇지도 않았네.

치킨, 피자, 술의 맛에 놀라며 집중이 흐려졌던 아내들은 K-신파 후반부의 최루탄 맛에 홀려서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크크크.”

나는 아내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 신파는 최강이고 갬성은 무적이다!

“……훌쩍. 씁쓸한 게 술이 땡기는 내용이네.”

“흑, 술은 몸에 나쁩니다. 제가 없애드리죠.”

티르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술병을 따다가 자기 식도에 들이부었다. ─콸콸콸.

“오, 마실 줄 아는 년인가.”

빨간 눈으로 쏘맥을 핥던 다나가 감탄했다. 거 안 취한답시고 너무 막 마시네.

프랑도 주량이 늘어난 듯한 기분에 열심히 술을 마셔댔다. 잼민이 강북호는 프랑의 빅찌찌에 묻혀 있느라 영화 화면이 절반 정도 가려졌지만,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으?”

신파에 눈물을 흘리며 고구마 피자를 학살하던 베로니카가 문득 몸을 떨었다.

“왜?”

“……몸이 깨어나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위험한 건 아니니 염려는 말거라.”

“화장실?”

“시, 시끄럽다! 이유는 뭐든 됐잖느냐! 나는 한 발 먼저 일어나마.”

세상 아쉽게 고구마 피자를 내려둔 베로니카는 그렇게 집에서 사라졌다. 현실로 먼저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이런 느낌이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저도 좀.”

티르시도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포크를 두었다. 뼈 있는 치킨보다는 순살을 좋아하던 그녀는 기세 좋게 젓가락에 도전했다가 항복한 참이었다.

“다들 천천히 있다가 오셔도 되요. 저는 이만.”

“……나도 갈게.”

졸려하던 네페르티티도 일어났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셰이드의 꿈에서는 정신적인 피로가 덜 풀린 거겠지. 첫날밤을 치룬 그녀를 붙잡아둘 명분도 없어서, 그렇게 방에는 딱 우리 4명만 남았다.

프랑은 계속 안고 있던 나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나도 조금 더 노르랑 있고 싶지만, 오늘은 해 지고 나서 황녀님한테 꽃 기르는 방법을 듣는 약속이 있어…”

“다녀와. 나중에 또 오면 되니까.”

“……응. 이따가도 이 모습 해 줄래?”

“……네가 좋다면야 뭐.”

어련히 그렇게 해야지. 프랑은 내 뺨에 키스를 하고 깨어났다.

그렇게 집에는 휴가 나온 기분을 즐기는 연구소장님과 선후배 부부만 남았다.

라리루라는 손가락의 치즈 가루를 빨다가 싱긋 웃었다.

“으음…… 저는 선배랑 또 데이트하고 싶어요!”

“나는 상관없는데, 다나는?”

“둘이서 갔다 와. 나는 아직 더 마실려니까. 딴 영화도 보고 싶고.”

─치익! 다나는 캔을 하나 더 깠다.

“삐에!”

다나의 품으로 날아간 브류나크가 갈고리로 리모콘을 만져댔다.

영화를 추천해주기라도 할 생각이일까? 하기사 쟤한테는 모유를 물려주던 엄마니까 친밀하게 느껴지기는 할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그럼 다녀올까? 어디 가고 싶은데?”

라리루라가 활짝 웃었다. 그렇게 좋을까 싶을 만큼 밝은 미소였다.

“우리 옷 사러 가요!”

아하. 데이트 코스의 정석이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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