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24화 (723/1,009)

네페르티티는 호출하자마자 달려와 주었다.

【……너도인가.】

딱 건네준 술만 대충 들이켰던 랩틸리언 여성이 말했다.

한 번에 알아보나. 하긴, 내 몸에서 그 보옥이란 것의 마나가 풍긴다지 않았나. 네페르티티한테서 같은 냄새를 맡은 것이겠지.

모래를 밟으면서 걸어온 네페르티티는 지체없이 도마뱀 조각상을 꺼냈다.

“찾는 게 이거?”

【……음! 틀림없다. 그게 신룡의 보옥이다!】

“그래.”

네페르티티는 그 독특한 분위기로─멍하니 힘이 빠지게 만드는 태도로─ 말했다. 랩틸리언 사촌들이 자기네 보옥의 등장에 흥분하지 않았던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조각상의 유래는 들었어.”

【출처를 들었다고? 장물이라는 것도 말이냐?】

“응. 그리고, 나는 너희들에게 사과해야 해.”

【돌려주기만 하면 보옥을 가져간 값은 따지지 않겠다.】

“이 조각상엔 지금 내 오빠의 유언이 들어있어.”

랩틸리언들은 말을 아꼈다. 어떤 뜻의 침묵인진 잘 모르겠다.

덕분에 얘기할 기회를 얻은 네페르티티는 그녀 치고는 꽤 길게 말했다.

“남의 물건을 고장낼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이 조각상을 고장내진 않았다고 생각해. 돌려줄 생각도 있어. 하지만 그 대신──”

【조건을 걸겠다는 건가? 도난품의 반환에.】

“조건이 아냐. 부탁.”

【……들어는 보지.】

단발의 랩틸리언 여성은 팔짱을 꼈다.

거부감을 느끼는 태도였지만 적의는 없다. 키아라는 아예 번역을 내게 떠맡겨버렸지만, 나는 우리 사차원 아가씨의 말을 정성 들여서 번역했다.

“너희는 아즈테카 사람?”

【사람? ……그래, 사람이다.】

왜 의문형인 것이지?

꽤 이상한 답변이었는데, 네페르티티는 쿨하게 무시하고 넘어갔다.

“그럼 부탁할게. 노르드를 도와줘.”

【노르드…… 저 남자 얘기인가.】

그녀는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날 쳐다보았다.

흐름을 보면 나밖에 없다는 건 안 모양인데, 너 왜 눈을 고따구로 뜨냐? 나랑 네페르티티가 별로 안 어울리기라도 한다는 뜻이냐? 한 판 뜨까?

【뭘 도우라는 거지? 이 땅의 분쟁에 끼어들란 얘기라면 사양하겠다.】

“우린 아즈테카로 갈 거야.”

【뭐?】

“길 안내, 부탁해도 돼?”

우리 사차원 살법의 달인께선 대화에서도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한다. 나도 몇 번인가 당해봤던 원투 펀치에 랩틸리언 여성도 당황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그 수법에 깜짝 놀랐다.

【아즈테카로 오겠다고?】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요?”

랩틸리언 대빵 씨랑 목소리가 겹쳤다. 네페르티티가 고개를 모로 꼬았다.

“안 갈 거야?”

“음……”

글쎄. 고민 중이었는데.

아니, 어쨌든 조각상의 주인인 네페르티티가 돌려줄 생각이라면 그 결론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만약 안 가게 되면 그냥 돌려주기만 하고 끝내면 땡일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 다른 쪽을 걱정했다.

“괜찮으십니까? 유언장 같은 거잖아요.”

“오빠라면 돌려줬을 거야. 여기 내 유언이 들어 있었어도.”

그러시다면야 뭐, 내가 할 말은 없지.

부부 사이여도 피붙이에 관한 왈가왈부는 괜히 다툼만 생긴다.

그래서 나는 미리 생각했던대로 말했다.

“그럼 오빠 분의 유언은 룬 스톤에 옮겨담죠.”

“……노르드 똑똑해.”

─짝짝짝. 무표정으로 박수치는 네페르티티.

그나마 남아있던 아쉬움마저 사라진 걸까. 아예 지금 당장 건네줄지 고민하는 네페르티티를 말린 나는 아셰라드한테 달려갔다.

“학회장 님. 아까 전의 얘기를 계속하죠. 되도록 빠르게, 요점만 짚어서.”

“아즈테카 탐사의 장점과, 단점을 극복할 방법 말씀이시죠?”

“예.”

아즈테카 어 스피킹이 가능한 키아라가 랩틸리언들에게 설명해주는 사이, 엘리자베트도 부른 나는 아셰라드에게 설명을 들었다.

“아즈테카는 천혜의 험지입니다. 고대문명 이후 손을 댄 국가는 거의 없었죠. 그래서 저와 콜리도 연합총장은 어느 가설을 세우고 그곳을 탐사해 왔습니다.”

실제로 간 건 키아라 뿐이었겠지만, 뭐 아무튼.

아셰라드는 누가 들을라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가설을 증명했죠. 그곳에는 히타이트의 단서가 있었습니다. 황금시대 즈음, 그 땅에 향한 히타이트 원정대의 기록과 유물의 흔적을 찾아낸 겁니다.”

“이해했습니다. 얼마 없는 단서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명백한 단서죠.”

항해기록이란 육상의 지도보다 명백하다.

유물 등을 찾아내면 그것을 토대로 문화권 환경 역산도 가능하다. 그림, 글, 말투에 버릇이 있듯이 각 문명마다 공통점이 있으니까.

엘리자베트는 햇볕을 막는 긴 챙의 모자를 눌러썼다.

“장점은 이해했어요. 단점은?”

“원정대를 꾸리면 됩니다. 국제 차원의 원정이 되면 브리타니아가 독주…… 폭주해서 조약을 무시하고 아틀란티스를 운행했다는 비난은 못 나오죠.”

아셰라드의 품에서 둘둘 말린 양피지가 나왔다.

“나르메르-나일의 원정대 참가 의사입니다.”

“……놀랍네요. 실패해서 이전 파라오의 혈통이 끊겼을 텐데.”

“하지만 최근 들어서 흑마법사라는 국내문제가 타파됐죠. 아즈테카는 현 파라오 혈통에게는 굴욕이자 오점입니다. 해소할 가치가 있는 오점이죠.”

그런가? 나는 대굴빡을 굴려봤다.

비유하자면 쿠데타로 탈취한 왕조 같은 것.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지만 너희가 파라오가 되면 뭔 가치가 있냐~ 하는 의문은 꼬리표로 붙어 왔겠지.

‘우리는 예전 왕실과는 다르다’는 어필을 했어야 하는데, 정작 흑마법사로 골치를 앓았으니 대외적 평가가 깎였을 만은 하다.

아셰라드의 눈빛이 나를 향했다.

“백작님께서 승낙하시면 원정에 참여할 의사가 있으시다더군요. 이쪽이 파라오의 서한입니다.”

“……좋습니다. 이점과 단점을 감안해도 수락할 가치가 있는 제안이에요.”

엘리자베트는 서한을 받았다. 결론이 빠르시군.

“단지, 어떤 대답을 돌려줄지는 울프헤딘 백작의 몫입니다. 아틀란티스는 그의 것이고, 또 그 없인 움직이지조차 못하잖아요?”

여기서 나한테 결론을 패스. 그럴 수밖에 없는 얘기긴 했다.

‘쓰읍.’

나는 고민했다.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따져가며 히타이트의 단서를 얻는 게 저 위험한 땅에 가는 것보다 나은지 저울에 올려본 것이었다.

‘보통은 최대한 준비해놓고 움직이는 편이지만, 이런 경우는 좀 다르지.’

아틀란티스 때도 그랬지만, 탐험에 완벽한 준비 같은 건 없다.

지구의 남극 탐험대처럼 죽음과 밀접한 게 우리 고고학자의 종특이다.

대비를 안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좋게좋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나마 아틀란티스에 비하면 사전답사 정보가 꽤 남아있는 게 위안인데’

그렇게 내 고민이 길어져서였을까.

준비한 설득 재료를 전부 쓴 아셰라드는 초조한 듯 본심을 토로했다.

“그러고 보면, 제가 히타이트 연구에 열을 올린 이유는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학계의 어두운 부분을 파헤치시려는 이유 아니었습니까?”

저번에 들어본 얘기로는 그랬는데.

“그 어두운 부분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어야죠. 이유나 계기도 없이 연구를 시작하는 학자가 세상 천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셰라드는 웃었다. 그다지 즐거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저는 중립적인 신분을 이용해 히타이트에 관한 정보를 찾아다녔습니다. 이유는 연합총장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그의 경우는 자손을 얻는 거고, 저는 되찾는 거죠.”

“되찾는다뇨?”

“전 보이는대로 적당히 나이가 있는 편입니다. 백작님이나 연합총장처럼 세월과 맞서싸워서 이길 실력은 없어서요. 이혼했지만 아들은 있었죠.”

문득 회담 첫째 날의 아셰라드가 떠올랐다.

그저 학자로서 숭고한 신념으로 학계의 어둠을 파헤치려는 것 뿐이면 내가 회담에서 히타이트의 존재를 설파해갈 때 그녀가 보여준 흥분한 모습이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고조되는 건 사적인 감정이 엮일 때 뿐이다.

“20살에 석사가 된 아들은 탐사사고에 휘말려 실종됐습니다.”

사람들한테 여러 번 했던 얘기였을까. 설명하는 아셰라드는 덤덤했다.

“얼마 없는 단서를 모아서 알아낸 사실은 단 2개. 그 아이는 유물의 폭주로 차원의 틈새에 떨어졌을 거라는 점과, 원인이 된 유물이 아마 히타이트의 물건일 거라는 점입니다.”

“차원의 틈새 말씀이십니까?”

“죄송합니다. 틈새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군요.”

아셰라드는 머릿속의 브리타니아 어 사전을 뒤져보는 듯 굴다가 말했다.

“──다른 차원. 그렇게 부르는 게 맞겠습니다.”

다른 차원이라.

남일로 안 들리는 문제인데 그래.

너무나 예상 밖의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관심이 동하는 얘기다.

전혀 말이 안 되는 확률은 아니다. 이 넓은 듯 하면서도 좁은 이세계다. 동기를 제쳐두면 한 명 쯤은 있을 법 하지 않은가.

나 이외에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법을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말이다.

“……이거 입장이 정반대로군요.”

“그래도 큰 접점이었죠. 연합총장과 친밀해질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입니다.”

나는 헛방을 치는 대답에 픽 웃었다.

‘키아라랑 댁 얘기가 아니라, 나랑 댁 얘기인데.’

부모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자식.

다른 세상으로 떠난 자식을 찾으려는 부모.

정반대의 입장이지만, 목적은 같을 것이었다.

‘……아셰라드의 아들이 떨어진 곳은 지구인가?’

뭐, 그건 내가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밖에 다른 차원이 또 있을 수도 있다. 그 왜, 지저의 탑에서 갔던 벌레 천국 같은 곳도 일단은 이계로 취급된다.

그쪽은 다른 차원이라기엔 상당히 저렴하지만.

‘명계만 해도 실질적으론 다른 차원이었고.’

경쟁자들보다 먼저 히타이트의 흔적을 찾아내야 할 동기가 추가된 셈이다.

안전의 마지노선을 넣으려고 경쟁을 열었는데, 내가 가장 서둘러야 되게 생겼다. 레이스를 열건 열지 않건 방해는 들어왔을 테니 후회는 없지만.

주최자가 가장 안달이 난 레이스라. 이쯤 되면 유머나 다름없다.

“학회장님은 히타이트에 차원이동 기술이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후후. 잔혹한 질문이시네요.”

“……실례했습니다. 저도 흥분한 모양입니다.”

나는 실언을 사과했다.

히타이트의 기술이나 유물을 뒤진들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을 방법이 나올까~ 라는 뜻으로도 들릴 법한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아셰라드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그게 가능하겠냐’는 물음은 그만큼 잔혹하다.

피붙이에 대한 감정을 주판을 들고 합리성으로 때려부수는 짓거리니까.

─당신 아들은 죽었고, 나도 원래 세상으로는 못 돌아갈 확률이 크지.

그렇게 말하면 참 합리적인 판단이긴 할 것이다.

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갈 만큼 말이다.

‘이제 와서 입안단계에서 가불가(可不可)를 따져볼 처지냐?’

그따구로 굴어서 언제 어머니랑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것인가?

편지 한 통, 문자 한 줄 못 전한지도 4년이다.

셰이드의 꿈에서 봤던 텅 빈 집.

그곳에 아직 부모님이 남아 계실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잖은가.

‘자기 마음에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똑똑하게 굴 거면, 애초에 〈편찬대대〉니 굴라나뢰크니 하는 것들이랑 싸울 필요도 없었지.’

저 랩틸리언 사촌들을 믿고 아즈테카에 가는 건 어불성설일까?

아니다. 그 반대다. 오히려 더 믿고 가야만 한다.

‘현지민만큼 뛰어나고 얻기 힘든 조력자는 없다.’

키아라와 아셰라드도 같은 생각인지 내 안색을 살피고 있다.

저들과 함께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는 큰 차이가 있겠지. 우연이든 운명이든 놓치기엔 무척 아까운, 얻기 힘든 인연이다.

‘아즈테카 행 자체도 내 목적과 합치해.’

기약도 없던 차원이동 기술의 단서에, 내 삶에 초를 쳐대는 적대세력들보다 한 발 앞서서 움직일 절호의 찬스 아닌가.

어르신 쪽의 조사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지금은 위험성을 감수하고 가야만 했다. 손해를 무서워하면서 얻은 것들로는 앞뒤 안 재고 덤비는 인간말종 씹새들을 앞지를 수 없을 것이니까.

‘동기와 손득 면에서는 기준치를 넘었다.’

남은 건 결심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 그건 새삼스럽게 다짐할 필요가 없는 요소였다.

“다들, 진짜로 가 보고 싶다고 말했어.”

며칠 새 내 사정을 들은 네페르티티가 말했다.

“꿈속 세상이 아닌, 진짜 노르드네 고향에.”

“……고향 집에 데려간 보람이 있는 얘기네요.”

아내님들도 만장일치일 듯한 예감.

나는 픽 웃고 랩틸리언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스콜라키체의 대표 분.】

【……이스테틸. 우리 말로 발톱을 의미한다.】

【노르드 울프헤딘입니다. 이스테틸 씨.】

아, 이젠 영지가 있으니까 중간에 ‘폰’이란 미들 네임도 들어가야 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제안했다.

【협력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후우.】

우리 면면을 점검하듯 둘러본 이스테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이래봬도 야만을 혐오한다. 인간성을 잃으면 몬스터나 진배없지.】

【비늘이 아름다우시기만 한걸요, 뭘.】

【집어치우고, 계획이나 말해 봐라. 남자한테는 관심 없으니.】

존나 신기하다. 나도 그런데.

우리 의외로 마음이 맞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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