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근처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내가 오딘의 눈을 껐을 때, 원정대의 회의는 꽤 가열돼 있었다.
〈정확히는 중부보다 살짝 위입니다. 황야를 꽤 이동해야 한다십니다.〉
〈그럴 바엔 그냥 북쪽에 상륙하면 되지 않나. 이 몸이 보기에 밀림의 접경지대 정도라면 암초를 피하면서 상륙할 수 있다.〉
파라오 셰드멘호테프는 지도를 가리켰다.
〈밀림의 독충도 우리 조국의 기록과 키아라의 경험이 있다면 문제가 안 되지. 고고학자들이 상륙하는 건 나중 일이잖나. 선발대 멤버라면 괜찮을 듯 보이는데.〉
〈아뇨. 북부는 관두는 게 나을 거라십니다.〉
셰드멘호테프의 제안은 키아라의, 다시 말해서 그를 통해 자기 말을 전한 이스테틸에 의해서 기각당했다. 예절을 주입당한 파라오는 시무룩해졌다.
〈북쪽 바다는 오르틀라위퍼의 영해. 그렇기에 얼씬도 해서는 안 된다시네요.〉
〈오르틀라위퍼?〉
〈‘개지 않는 새벽’이라는 뜻입니다. 저 대륙의 주민들이 별과 새벽의 신으로 여기는 몬스터죠.〉
내가 묻자 자기 지식으로 대답해주는 키아라.
신으로 여겨지는 몬스터라. 나는 눈을 반개했다.
〈초월종의 몬스터. 우신(偶神)이로군.〉
셰드멘호테프는 자기 밑종이에 낙서를 해대면서 말했다. 이 파라오 삐지셨구만.
자고로 몬스터 중에 멀쩡한 새끼 찾기 힘들고, 자칭 신 중에 제정신 박힌 새끼가 없는 법이었다. 아, 딱히 파라오들을 저격해서 한 말은 아니다.
‘쟤네는 일단 진짜 반신 맞잖아.’
파라오는 죽어서 명계에 갔을 때 진정한 신으로 각성하는 존재 아닌가. 셰헤테피브라가 명계에서 창세의 권능을 휘둘렀던 것만 봐도 그랬다.
살아있는 반인반신.
〈편찬대대〉랑 무관한 나르메르-나일의 토종 〈인신〉이다.
‘오딘이 자기 후계자로서 설정한 울프헤딘처럼, 나르메르-나일의 신들이 남긴 안배일지도 모르지.’
반면 아즈테카의 우신은 신을 자칭하는 몬스터.
그리고 아즈테카는 그 몬스터를 섬기는 사이비 종교였다. 빼박 이교도네, 시발.
〈오스틀라위퍼는 늘 바다에 잠겨 있는 뱀으로, 북해로 나온 배를 모조리 파괴하고 잡아먹는 거대한 몬스터라고 하시네요.〉
키아라가 입 바쁘게 번역과 설명을 중계해주자 이스테틸의 말도 많아졌다.
【‘개지 않는 새벽’은 잠을 자지 않아. 너희들이 암초라고 착각한 건 그의 지느러미 뼈다. 떨어진 해역에서 관찰한다면 모를까, 해역을 찾아가는 건 자살행위다.】
니미 씨1발. 등뼈가 암초만 하다고?
대체 얼마나 큰 거지. 레비아탄이라도 되나.
〈……따로 우신들과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죠.〉
〈음. 골렘을 내세우면 아즈테카 군과 부딪혀도 후퇴 정도는 문제 없겠지. 이 몸도 전조의 실수를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현지민의 얘기에 어수선해질 뻔 했던 회의장은 금방 침착해졌다.
전통시장 육개장집 주인 아줌마도 기겁할 만한 푸짐함에 놀라긴 했지만, 그 이교도의 우신들이랑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어스틀란 대륙은 뒤지게 넓고, 3체의 우신들은 수천 년 간 자기 서식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무슨 제국주의나 민주주의를 배달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영토만 침범하지 않으면 마주칠 일도 없을 거다.
〈그건 그렇고, 학회장님. 선발대 멤버는 정해졌습니까?〉
〈미스릴 클래스 이상의 멤버 분들, 저, 그리고 스콜라키체 님들입니다.〉
〈즉, 이 몸과 키아라, 그리고 노르드와 녀석의 아내들이로군!〉
그런 셈이다.
파라오는 자택경비에 힘 써 주길 바라지만, 말 한다고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와 주면 은근 도움이 되긴 하겠다는 계산도 있고.
파라오는 현세에 태어난 반인반신.
현세에서는 육신의 굴레에 묶여서 권능을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나량만 놓고 봐도 보통 인간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최소한 선발대에서 발을 잡진 않겠지.
‘우리 가족에서는 나랑 다나랑 네페르티티인가.’
네페르티티는 미스릴 클래스의 달인에, 다나는 발퀴리에들과 프레이야의 신좌가 있다. 티르시도 미스릴 클래스 바로 아랫 등급 정도는 되겠지만, 이번엔 대기조다.
〈그럼 작전 계획을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셰라드의 주도로 우리는 작전을 한 번 더 브리핑을 받고 흩어졌다.
회의는 끝났다. 내일 도착할 무렵에 모여서 이 암무나 호를 타고 어스틀란 대륙으로 건너가면 될 것이었다. 네페르티티랑 간단한 훈련이나 하자.
“식사는 안 하십니까?”
그런데 이 하프 드워프는 왜 쫓아오는 것이지.
한가한 듯한 키아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페르티티랑 훈련을 한 뒤에 먹으려고요. 아, 혹시 한 수 가르쳐 주시렵니까?”
마스터 클래스를 상대로 뒤질 걱정 없이 개겨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저런 버프나 기적적인 요행을 빼고, 순전히 나 자신의 힘만으로 마스터 클래스에게 어느정도 비벼볼 수 있을까. 나로서도 궁금한 부분이다.
“저한테 배우셔도 별 쓸모는 없을 텐데요……”
별로 후학 육성에 자신이 없는 듯한 키아라였다.
칼질할 때가 아니면 구라를 까지 않는 게 그의 신조랬던가.
나는 기대를 반쯤 접고 한 번 더 제안했다.
“그냥 이것저것 질문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마스터 클래스의 적과 만난 적은 있는데, 솔직히 가늠이 제대로 안 되서요.”
많은 싸움을 거쳐왔지만 아직도 나에게 마스터 클래스란 존나 이해하기 힘든 경지였다. 미스릴은 오러 사용자, 같이 알기 쉬운 분류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반반 뼈많이 리치킨 에퀴녹스는 마스터 클래스의 흑마법사였다.
‘그리고 레티티아는 그 에퀴녹스과 동급이었지.’
상성 빨로 레티티아가 유리했지만, 에퀴녹스가 창세의 권능으로 발퀴리에들의 영혼 사냥을 막고 언데드를 회복시키자 그년들의 승부는 길항했었다.
‘아르마슈나스 모드 티르시랑, 폭주를 컨트롤한 나도 그년들이랑 동급.’
하지만 난 그때의 기적적인 버프를 다시 한 번 재현 못 하는 처지였다.
웅웅─. 팔찌로 변한 브류나크가 떨렸다.
─막대한 어둠과 음의 마나를 흡수한다면 몰라,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
내 분신으로서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티르시도 그랬다. 명계에 있는 아르마슈나스의 신좌와 연결될 방법이 없으니까 여신 모드를 다시 쓰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 연결만 성공하면 실컷 신좌의 힘을 끌어다 쓰고, 싸움이 끝난 뒤에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힘과 돈은 24시간 365일 다다익선이다.
당장 인조인간 17~18호랑 셀이 적으로 등장한 판국에 나는 아직도 초 지구인 1 같은 상태. 어서 Z-용사로서 각성해서 황금 거대 원숭이가 되던가 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내 뜻을 알아준 걸까? 키아라는 우리의 훈련에 동참해줬다.
동참해주긴 했는데.
“이게 뭡니까?”
“카드 게임이요.”
그니까 시발, 왜 훈련하자니까 돗자리에 카드를 돌리고 있냐고.
네페르티티 너는 또 왜 그걸 낼름 받고 있고.
출신이 출신이라서 그런가? 혹시 고대 나르메르-나일 사람들은 몬스터를 봉인한 석판으로 듀얼 같은 걸 하고 그랬니?
─찹찹. 카드를 섞으며 키아라가 말했다.
“이것도 전부 훈련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네페르티티 씨. 그 빵은 뭐죠?”
“슈크림. 노르드의 고향 음식.”
아니, 슈크림은 코리안 트랜디셔널 푸드라기엔 좀 이국적인데.
내 꿈 속 세상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몇 가지는 프랑의 손으로 재현됐고, 슈크림은 그중 하나였다. 포슬포슬한 빵을 굽는 게 어렵지만 그것 말곤 걍 생크림만 채우면 되니까.
“맛있어 보이는군요. 판돈으로 걸어주세요.”
이 새끼 사리사욕 채우러 왔나.
네페르티티는 표정변화 없이 말했다.
“슈크림은 레어해. 대가는 비싸.”
“강의에 열심히 임할 테니 봐 주세요.”
“그럼 좋아.”
쓰벌, 모르겠다. 그냥 하라는대로 하자.
나는 포기하고 얌전히 앉아서 패를 받았다.
“마스터 클래스가 되는 법이 궁금하신 거죠?”
“역시 뻔했습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실현하기도 어렵고요.”
─톡. 슈크림을 바구니에서 그릇으로 옮겨담는 네페르티티.
이걸 판돈으로 걸 테니 말해보라는 무언의 요청이었다.
키아라도 눈치껏 알아들은 모양이었고.
“사실 제 관점에서 보면 간단합니다. 울프헤딘 경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지금보다 마나가 2배 정도로 늘리십시오. 그러면 마스터 클래스를 자칭하셔도 될 듯 하군요.”
“네? 제가요?”
열심히 짱구를 굴리던 나는 멍해졌다. 이 하프 드워프 지금 뭐라는겨?
“무슨 깨달음 같은 것도 없이 말입니까?”
“그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죠. 마나량의 자연적인 상승은 영혼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보통 마나량은 강해질 수록 늘어나니까요.”
“……말장난?”
아주 살짝 인상을 쓰는 네페르티티였다.
그럴 수밖에. 부자가 되는 법을 물었더니 돈이 많으면 된다는 대답을 들은 것이다. 키아라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패를 교환했다.
“뭐를 전제로 강함을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죠.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은 천상의 신들께서 싸우실 때마다 무기에 오러를 두르고 투닥거리셨을 거라고 보십니까?”
나랑 네페르티티는 합죽이가 되었다.
‘아마 아니겠지.’
오러는 인간의 육체가 빚어낸 파괴의 마나다.
거꾸로 보면, 인간보다 강대한 존재는 굳이 오러 같은 걸 배울 필요가 없다.
게르마니아에서 만난 토르의 〈인신〉은 오러를 썼지만, 그건 그 새끼가 인간 전사였기 때문이다. 묠니르는 절반만 소환된 상태에서도 오러를 훨씬 웃돌았었다.
마나량 = 출력이라는 걸 생각하자.
똑같은 사람, 똑같은 마나량인데 출력은 존나게 올라갔다. 묠니르는 오러랑은 비교도 안 되게 가성비가 좋은 공격 수단이란 것이다.
신좌의 힘을 쓰면, 더는 인간의 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마스터 클래스는 격하의 상대에겐 절대 지지 않는다던데요?”
“사람의 경지를 비유하는 건 개념적인 예시라서 설명이 모호해지기 마련입니다만, 까놓고 말하면 그것도 반쯤 거짓말입니다.”
“예?”
구라였다고?
이런 쓰버랄. 정신이 나가버릴 듯한 스릴 쇼크 서스펜스의 연속이네.
“조잡하게 비유하면 마스터 클래스는 인간들이 추구하는 강함, 그 험준한 산을 곳곳이 주파하며 정상에 선 사람입니다.”
“저도 그 얘긴 들었습니다.”
“그럼 이해하시기 편하겠죠. 후발주자의 행동이 불 보듯 뻔히 보이는 건 그래서입니다. 하는 짓이 똑같으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생각도 훤히 보일 수밖에요.”
과연. 그럴 만도 했다.
부사관은 병사들이 뺑끼를 칠 때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다 눈치채니까.
─톡. 얼른 슈크림 하나를 더 얹는 네페르티티.
더 말해보라는 뜻이다. 예전에 에퀴녹스와 싸우면서 손도 발도 못 썼던 경험이 있는 그녀다. 키아라는 만삭 송아지처럼 빵빵한 슈크림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산의 정상에 올라가는 법은 등산 말고도 많지 않습니까?”
“어떤 방법?”
“신들 기준으로는 인신공양을 받는다거나 하는 거죠. 인간이면 좋은 무기로 무장하거나 마나량을 늘릴 매직 아이템을 챙기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우리 가족 중에선 라리루라가 마지막 경우다.
내가 오러를 채워준 꼭두각시가 있는 동안에는 그 녀석도 미스릴 클래스에게 비벼볼 만 하니까.
“단지 그 방법들은 임시방편이거나 인류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라, ‘마스터 클래스는 무적’이란 말은 어느 정도만 사실인 겁니다.”
“……어려워.”
머리가 아프다는 듯 중얼거리는 네페르티티였다. 나도 슬슬 이해가 벅차다.
킥킥거린 키아라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신들은 오러가 없어도 인간보다 강하죠? 오러, 무술, 마법사 길드의 마법체계. 이런 건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벗어나기 위해 만든 기술이고요.”
“그러니까 그 기술의 정점에 선 마스터 클래스는 인간을 상대할 때 강하다?”
손에 들어온 카드를 신경 쓰지도 못하고 묻는 나.
“결국 어떤 기술을 단련하건, 마법사건 전사건 인간의 기술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네. 정답입니다.”
키아라가 웃었다. 어쩐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좆밥 시절부터 듣던 얘기의 연장선인가.’
전사도 마법사도 달인이 되면 대충 비슷하다.
그건 인간이 인간인 채로 강해지는 수단이 거의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드 게임에 아무리 많은 카드가 있어도, 같은 게임에서 이겨려면 하는 짓은 다 똑같아지잖은가.
목표나 플레이가 다 고만고만하다 보니 고인물 입장에선 뉴비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뻔히 보인다는 뜻이었다.
“저희 모험가 길드는 이 거시적 관점을 보유한 사람을 마스터 클래스라 부릅니다. 주인이자 어느 영역에서 군림하는, 달인 그 이상의 절대자로서.”
“절대자요? 거창한 칭호지만 납득이 좀 가네요.”
마스터 클래스.
새삼스럽게 그 뜻이 이해가 된다.
미스릴 클래스까지는 강함을 금속으로 표기한다. 그 강함도 영혼도 어디까지나 속세의 기준이니까.
하지만 마스터 클래스는 거기서 더 나아간 경지.
마스터(Master). 주인(主人).
이 단어가 무언가에 통달한 전문가라는 뜻으로 쓰이는 건, ‘검의 주인’처럼 어떤 개념을 완벽하게 꿰고 있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키아라는 계속 쌓이는 슈크림을 즐겁게 보면서 말했다.
“개념적인 세계에 자신만의 영토를 가지고, 또 그곳에 군림한다는 뜻에서 ‘마스터’인 겁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세상을 상대로 자기주장도 가능해지죠.”
“……자기주장?”
“영지의 주인답게, 이 세계의 상식에 대고 자기 ‘권한’을 주장하는 겁니다.”
우리가 고개를 모로 꼬자 키아라는 말을 풀어서 설명했다.
“울프헤딘 경께서 영지에선 왕 못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시잖습니까? 마스터 클래스들도 전문분야에서는 상식이나 한계를 벗어나곤 하죠.”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거나?”
“마스터 클래스의 흑마법사라면, 뭐 그런 일도 있겠죠.”
그랬구만.
영혼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명계에서 되살려내던 에퀴녹스.
그 반반 리치의 흑마법이 좋은 예시였다.
‘에퀴녹스는 죽은 자를 되살리고 창세의 권능을 써서 새로운 명계를 만드는 게 목표였지. 적성과 능력, 목적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런 결과가 될 법 해.’
자기 힘으로 마스터 클래스가 된 녀석들은 그런 모양이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래서는 거의 신의 권능 같군요.”
“권능 그 자체죠. 영지와 권력의 ‘주인’이 되야 비로소 마스터 클래스인 겁니다. 자기만의 영지도 있겠다, 입맛과 능력에 맞는 법률 1개나 2개쯤은 세울 수 있고말고요.”
권능.
익숙한 단어다. 나는 가만히 눈쌀을 찌푸렸다.
‘권능 얘기를 하자면 나도 무관하지는 않지.’
──울프헤딘의 힘과 오딘의 눈.
영혼을 구제하는 힘. 모든 마법을 이해하는 눈.
남들은 마스터 클래스가 되고 나서야 획득할 법한 권능을, 나는 아예 미스릴 클래스가 되기도 전부터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 보면 오딘의 눈은 마법에 특화한 마스터 클래스의 관점 같기도 해.’
이제 이야기의 맥락이 이해가 가는 기분이다.
키아라는 내 권능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마나만 늘리면 된다’고 말한 걸까.
슈크림 몇 개에 이런 정보를 풀어버리는 모험가 길드의 대빵도 그만한 안목은 가지고 있는 모양.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분위기 팍 식긴 하네.
시선을 눈치챈 키아라는 슈크림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아, 그리고 이런 맥락은 몬스터나 신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신들도 제각각 관장하는 권능이 따로 있었죠.”
“네. 위대한 천상의 존재들도 재능과 특기, 적성이라는 장단점, 한계는 있던 모양입니다. 권능으로 삼은 능력은 제각각이었으니까요.”
“예. 공통된 권능도 있긴 했겠습니다만.”
창세의 권능을 빼면 신들도 각자 자기만의 오리지널 권능을 갖고 있었다니까.
토르는 번개를 다루는 권능.
사티스는 사냥감을 추적, 말살하는 권능.
오딘은 마법과 영혼을 다루는 권능.
‘그 권능이 형태로 구현화된 게 바로 신좌겠지.’
레티티아처럼 〈인신〉으로서 마스터 클래스에 오른 사람은 독자적인 권능이 아니라, 전임 신의 권능을 이어받는 형태가 되는 건가.
‘그래서 신좌의 계승에 적성이 필요하다고 하면 앞뒤는 맞네.’
신좌의 적성이란 ‘권능을 얻을 수 있는 자질’을 뜻하는 모양.
몸에 맞지 않는 옷이니까 입지도 못하는 것이다.
“산처럼 쌓아올린 힘을 영토로 삼고 권능을 쥔 존재. 그게 마스터 클래스입니다.
패를 교환할 기회가 한 바퀴 돌았을 무렵, 키아라는 그렇게 강좌를 끝냈다.
존나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교육이었다. 도움이 안 될 거라더니 쌩구라였잖아? 나는 호기심을 못 참고 질문했다.
“그러면 콜리도 경께서도 권능이 있으시겠군요?”
“글쎄요. 저는 오러도 제대로 못 써서.”
“그건 자랑거리가 아닌 것 같애요.”
“띠용입니다.”
슬슬 이 인간 성격을 알 것 같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신조라더니, 대답하기가 싫거나 귀찮으면 몰라레후로 일관한단 뜻이었군. 존나 편리한 신조도 다 있네.
“뭐, 이런 추상적인 얘기는 성장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긴 해요.”
그렇게 우리의 패가 정해지자 키아라는 자신의 카드를 깠다.
─차르륵. 키아라의 카드가 돗자리에 깔렸다.
“자기 전문분야에서 하수에게 뒤쳐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타짜만 해도 갬블을 할 때가 가장 강하잖습니까? 이렇게 몰래 수를 쓸 수도 있고요.”
“……뎃?”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키아라의 카드는 게임에서 가장 강한 패였다.
모르긴 몰라도 이 이세계 포커에서 저런 조합이 나올 가능성은 하늘의 별 따기였을 것이었다. 네페르티티는 부루퉁한 얼굴로 자기 카드를 내려놨다.
“……총장, 밑장빼기 했어.”
“하하. 당연하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도 싸울 때는 거짓말을 한다고요.”
“그게 그런 뜻이었습니까?”
당신의 뇌는 카드 게임을 싸움으로 판정하시나 보군요. 듀얼리스트 새끼.
최강 모험가의 손장난은 모든 것이 필연.
뽑은 카드조차 손목에서 창조하는 것이다.
“싸울 때는 누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죠. 훈련이라고 했는데 방심하셨군요. 그러면 이 빵들은 수업료 대신으로 받아가겠습니다.”
와르르─.
귀신같이 손장난을 친 키아라는 바구니 째 우리 슈크림을 쓸어가버렸다.
존나 맞말이라 뭐라고 따지지도 못한 우리였다.
“저로부터는 이상입니다. 도움이 됐을까요?”
“예. 무척이나.”
사실 슈크림 몇 개를 뺏긴 정도는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뭐라도 더 얹어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만, 만약 원정의 도중에 우신과 마주친다면 부디 주의하시길.”
슈크림을 입에 던져넣은 키아라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초월종 몬스터들의 권능은 보다 서식반경── ‘영역’이란 개념에서 표출됩니다. 마스터 클래스가 가진 예측능력이나 무적성이 강화되거나 하는 식으로요.”
“……명심하죠.”
기분 더럽게 자꾸 복선 깔래? 진짜로 마주쳐서 싸워야 될 것 같잖아.
3마리나 있다는데, 그 중 1마리랑만 싸워도 또 오딘의 망령이랑 면담할 게 분명하다고. 나는 좀 쎈 트롤이랑 싸우다가도 뒤질 뻔 했단 말이지.
그렇게 키아라가 떠나가고, 나랑 네페르티티는 가볍게 대련을 했다.
키아라의 얘기로는 마나량을 늘리면 된다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건 자명했다. 게다가 난 싸우면서 성장하는 체질이 아니던가.
꽤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