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날.
선발대의 멤버는 암무나 호를 타고서 어스틀란 대륙으로 뱃편을 몰았다.
【다들 잠수 준비는 되었나.】
【옙! 이스테틸 님!】
【저들의 배를 지켜내는 것도 약속의 일환이다. 명심하고 임해라.】
【예!】
이스테틸은 랩틸리언 친구들을 모아서 선언하고 암무나 호의 갑판에서 뛰어내렸다. 풍덩─! 수면 밑으로 잠수한 그들이 용골 근처를 헤엄쳤다.
스스스스─!!!
그러자 어스틀란 대륙 남부 해안을 오가던 해양 몬스터들은 혼비백산해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나는 신기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도망치는 폼이 아주 몸에 뱄는데?”
“포식자에 대한 뼛 속 깊은 공포.”
네페르티티도 한 술 거들었다. 나도 그 얘기에 동감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몬스터들이 생각보다 강해.’
특히 품위를 지키고 우아하게 물러나는 놈들은 ─내 감각에 잡히기론─ 나나 이스테틸과 비슷한 수준이다. 바다에서 싸우면 좆빡셀 것 같다.
하지만 더 신기한 점은 바로 그 몬스터들까지도 랩틸리언들을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부상을 피한다기엔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일단은 우리한테 나쁜 일은 아니니까 기억만 해 두고 넘어갈까.
“여러분─!! 곧 도착합니다─!!”
돛대 위에서 관찰하던 키아라가 외쳤다.
암무나 호의 자동항해 기능에 맡겨서 정박했다. 배가 부숴지지 않도록 해안가의 동굴에 세웠지만 문제없이 아즈테카의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박.
“……음?”
모래사장에 서자마자 또 위화감이 들었다.
나는 모래사장의 모래를 쥐어서 만지작거리다가 후─ 하고 불었다.
고운 모래는 바닷바람에 밀려 날아갔다.
“흐음…?”
별로 불길한 느낌은 아니다. 어젯밤의 꾼 꿈이 아직 생생하긴 하지만, 현세의 지옥이라고 불리는 야만의 땅이라기엔 꽤 온화한 해변이었다.
“남편놈, 뭐해? 다들 출발한다.”
“어, 갈게.”
다나가 부르길래 생각을 관두고 쫓아갔다. 제일 앞에서 눈을 부라리던 이스테틸은 어딘지 초조한 것처럼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상하다. 날이 너무 밝아.】
밝은 게 뭐가 문제가 되는 건가?
나는 시계를 힐끔거렸다. 어제 천리안으로 봤을 때부터 그랬는데, 이 백야 현상은 어스틀란에서도 보통 일이 아니었단 말인가?
【……콜리도! 아셰라드! 이동하겠다!】
내가 그 질문을 하려고 하려는 차에 이스테틸이 외쳤다.
【상담했던 대로 너희가 가고 싶다는 유적지에 앞서 우리들의 도시, 스콜라코에 먼저 들리겠다! 이 해변 앞에 몬스터는 적다! 어서 움직여!】
선발대의 멤버들은 눈을 마주치곤 그녀가 시키는대로 따랐다.
굳이 반발할 필요가 없는 지시였을 뿐더러, 이 땅을 누구보다 잘 알 터인 저들이 저렇게 초조해 하는 판국이 아닌가.
서둘러 문제 파악에 나서야 한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나, 업혀.”
“하아. 오자마자 이 난리네. 예상하긴 했지만.”
나는 발이 느린 다나를 등에 업고 앞서 달리는 이들을 쫓았다.
파사사삭─!
낮게 자란 풀들은 바람보다 빠르게 달리는 발에 치여서 뽑혀나갔다.
남부 해안가에서 조금 뻗은 곳. 어스틀란 대륙 서부의 밀림과는 살짝 떨어진 평야의 도시국가가 이스테틸의 고향인 스콜라코다.
하지만 그 활기찬 석조문명은 듣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양새로 우리를 맞이했다.
암회색으로 물든 집들과, 유적지로밖엔 보이지 않는 황폐한 풍경.
우리가 처음으로 목격한 이 대륙의 도시는 화마(火魔)에 전소해버린 폐허였다.
【……무슨 일이냐.】
산 사람의 기척을 찾아보기 힘든 폐허가 자신들의 고향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까. 이스테틸과 스콜라키체들은 목울대를 잘게 떨었다.
【우리들이 떠난 사이에,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어!! 원로, 전사단!!】
도시가 떠나갈 성량을 내지른 이스테틸은 거의 녹아내린 성벽을 뛰어넘어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셰드멘호테프가 눈을 크게 떴다.
〈기다려! 경거망동하지 마라!〉
【누군가, 누군가 생존자는 없나! 나와라, 원로! 포카소카─!!】
【티아칸!! 아버지!! 무사하다면 대답해!!】
【어떤 개자식들이야!! 찾아내서 죽여버리겠어!!】
냉정을 잃은 그들은 우리가 말려볼 시간도 없이 이스테틸을 쫓았다.
기절시키지 않으면 제압하지도 못하겠다. 나는 혀를 찼다.
“……콜리도 경. 인기척은 느껴지십니까?”
“성벽 안쪽에 몇 명인가 있습니다.”
그리 말하는 키아라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저 분들이 찾는 사람이긴 하겠군요. 살아있길 바라던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쫓아갑시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건 여기서 기다리기만 할 순 없었다.
우리는 성벽 안으로 쫓아들어갔고, 생각보다 더 넓은 시내에서 사지에 비늘과 피막의 날개를 기른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뭐야. 생존자가 있었나?】
단지, 키아라의 말마따나 우리가 찾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모습은 스콜라키체들과 비슷하지만 우리가 며칠 사이 얼굴을 기억한 이들과는 전혀 다른 남자들이었다. 5인 1개조로 돌아다니던 그들은 우리와 마주치자 진한 흥미를 드러냈다.
【……아니군. 바깥 인간이야. 여길 어떻게 왔지? 바다나 밀림을 뚫었나?】
꼭 해외의 야생동물이라도 본 듯한 리액션이군.
한숨을 쉰 나는 팔찌에 손가락을 걸었다.
“콜리도 경. 도망치는 놈을 맡기겠습니다.”
“이스테틸을 놓친 시점에서 글렀다고 봅니다만, 그렇게 하죠.”
제길. 그것도 그런가.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지만 별 수 없었다. 저 랩틸리언들이 자기 가족과 이웃들을 몰살당하고도 냉정하게 구는 사이코패스이길 바랄 수는 없으니.
시작부터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염병 시발. 차라리 처음부터 떼거지로 올 걸.”
【어느 나라의 말이지? 알아들을 수 있게──】
─지이이잉!!!!
떠들던 남자의 미간에 레이저가 꽂혔다.
펑─!! 태양광을 집속한 듯한 빛은 전자렌지와 비슷한 원리의 마법이었다. 달걀이 증발하며 터져나가는 것처럼 남자의 머리통이 폭발했다.
남자가 들고 있던 소년의 머리가 굴러떨어졌다.
살점 폭죽을 일별한 파라오는 손가락을 내렸다.
〈짐의 판단이 틀렸나?〉
〈전혀요.〉
나는 머리만 남은 소년의 표정을 살폈다.
할리우드였다면 절대 죽지 않았을 나이의 꼬마 원주민이었다.
〈인륜과 실리. 어느 쪽으로 보건 죽여버려야 할 씹새들입니다.〉
웅웅웅…!!
브류나크의 창날이 이상하게 밝은 태양 아래서 날카롭게 번쩍거렸다.
【──퇴피! 필피틴에게 보고한다!】
혹시나 하면 역시나다. 친구인가 선임인가 모를 새끼가 폭발사산하자 식인종 새끼들은 지 허리에 끼고 있던 ‘밥’을 던져버리고 튀었다.
텅─!
발퀴리에들이 쓰는 빛의 방패를 만든 다나는 그 방패에 부딪힌 사람 머리를 보고 입을 꾹 닫았다.
“……죽은 사람한텐 미안하지만, 아침을 거르길 잘 했네.”
“익숙해지실 겁니다. 좋은 일은 아닙니다만.”
혼잣말에 대답한 키아라는 번갯불처럼 달려가서 도망치던 개자식의 목을 360도 회전시켰다. ─뽁! 식인종은 변신 로봇을 처음 사 본 젊은 애엄마의 손에 잘못 걸린 또봇처럼 모가지가 뽑혀나갔다.
키아라는 확인사살할 것도 없이 뒤져버린 적을 내버려두고 사라졌다.
저대로 이 도시에서 도망치려는 놈들을 가능한 잡아죽여줄 것이다. 나는 다나에게도 손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의 메달에서 발퀴리에들이 솟아나며 산개했다.
‘……전부 잡을 수 있을까?’
순간적인 고민.
내 대갈통은 부정적인 결론을 내놓았다.
만약 밖을 어슬렁거리던 놈이 소란을 듣고 한 발 먼저 튄다면?
‘생각해 봤자다.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나는 대처하길 포기했다. 변수는 통제하지 못하니까 변수인 것이다.
이스테틀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냉정하게 있었어도 선발대의 숫자로는 산개해 있는 놈들을 포위할 수 없었을 것 아닌가.
맞서싸우기보단 살아서 도망치는 걸, 도망쳐서 보고하는 걸 중시한다면 저 씹새들을 전부 족쳐버리는 건 쉽지 않다.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옳다.
아즈테카에 우리들의 방문이 전해진다.
그렇게 될 거라고 염두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네놈들, 침략자냐!!】
─콰르륵!! 자갈밭을 헤집으며 멈춰선 아즈테카 인이 손톱을 세웠다. 죽을 각오로 시간을 끌어볼 생각인 것이었다.
【방문객이지. 너희가 아닌 사람들한테는.】
나는 대답하면서 즉시 공격했다. 대화의 여지가 없는 상대다. ─번쩍! 오러를 뿜으며 브류나크가 남자의 팔뚝을 후려갈겼다.
저항감은 있었지만 찰나일 뿐이다. 비늘이 덮인 팔이 잘려나갔다.
【크아──】
【시끄러, 개불알 새꺄.】
창을 휘둘러서 개자식의 목을 베어냈다. 비명을 지르려던 목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자기가 생전에 잡아먹은 사람 옆을 굴러갔다.
나는 그 머리통을 오러로 날려버렸다.
〈애미도 튀겨먹을 식인 하후돈 새끼들. 얼마나 맛알못이면 사람을 처먹어?〉
〈종교적인 것 외에도 이유가 있는가 보군.〉
─딱!
손가락을 튕기는 셰드멘호테프. 그러자 하늘에 뜬 태양이 갑자기 수천 km는 가까워진 것처럼 먼 곳에서 도망치던 아즈테카 인이 자연발화했다.
〈육체능력이 제법이다. 말단병사로 보이는데도 이 정도라면, 고급 인력은 미스릴 클래스가 여럿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어.〉
〈위험을 감수하고 흩어지시렵니까?〉
〈효율적이겠지만 관두지. 어차피 바깥에 숨어 있을 공산이 크다. 사상자가 나올 선택은 줄이는 편이 나아. 정찰이라면 내가 하마.〉
소매에 손을 넣는 셰드멘호테프. 보석이 알알이 박힌 부엉이 조각 같은 게 하늘로 날아갔다. 어느 쪽도 귀중한 매직 아이템. 파라오의 재력쇼였다.
마법을 쏴대던 그는 내 시선을 눈치채고 말했다.
〈본국의 궁전 보물창고와 이어진 유물이다. 나 외에는 못 꺼내지만, 반대로 말하면 뭐든지 있는 아공간이지. 속이 불편하면 약초라도 씹겠나?〉
〈쓴 것보단 단 게 끌리는군요. 입맛이 써서.〉
〈동감.〉
발도하듯 채찍을 연달아서 휘두른 네페르티티의 말이었다. 골목에서 숨 죽이고 있던 식인종 랩틸리언들은 여름철 모기처럼 벽의 얼룩이 되었다.
─철퍽!
내가 얼음 창을 던져서 죽여버린 녀석을 마지막으로, 황폐화된 도시는 싸늘한 침묵에 빠졌다. 흘러내리는 피가 품은 열기와 아열대의 기후가 거짓말처럼 공기가 차갑다.
〈……여러분, 저희도 움직입시다.〉
전투능력이 적은 아셰라드는 토악질을 참는 표정으로 말했다.
〈황폐화된 도시인데 병사가 남아 있었습니다. 저들을 피해 숨어 있거나, 도망친 시민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찾아내서 아군이면 치료하고 적이면 멸구하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에 몸을 맡겨서 다 죽여버렸지만, 적이든 아군이든 생존자를 찾아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영혼에게 심문하는 건 거기서 얻어낸 이야기가 없을 때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과 적 병사를 어떻게 구분하실 겁니까?〉
〈……제길. 우선 스콜라키체 분들부터 진정시켜야─〉
병사들이라고 다 저렇게 사람을 처먹는 새끼라는 티를 내고 다니겠는가. 이를 갈던 아셰라드가 등 뒤를 돌아보았다.
무심코 겨눈 단검 끝에 이스테틸이 서 있었다.
【……가족들이 잡아먹힌 정도로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다. 그렇게 말해야 할까?】
무표정해진 그녀의 입가가 자조적으로 굽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은 저들의 말을 아는 나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구태여 번역할 필요는 없는 말이었다. 내 입은 저들의 언어만을 뱉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내셨습니까?】
【혈연 문제다. 일종의 동족상잔이지.】
【동족상잔?】
【‘하늘을 덮는 태양’, 토나슈일루카틀.】
이스테틸은 피 묻은 리본을 쓰다듬었다.
【우리들 스콜라키체는 그 신룡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