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31화 (730/1,009)

용의 아이.

듣고 보면 확실히 놀랄 정도의 일도 아니었다. 몸에 자란 비늘만 봐도 그럴 법 하잖은가. 단지 저 얘기가 이 참상의 관계가 신경쓰일 뿐.

하지만 별로 놀라지 않은 건 나 뿐이었던 걸까. 다나는 눈을 크게 떴다.

“몬스터가 인간이랑 자식을 봤단 거야?”

그렇군. 분명 그것도 놀랄 일이긴 했다.

신과 인간의 아이라고 하면 이세계에서도 흔한 얘기지만 몬스터와 인간 사이의 자식은 그렇지도 않았다.

오크와 인간 사이에선 아이가 태어나지 못한다.

【자식이란 건 비유일 뿐이다. 아즈테카 인들이 어머니로서 섬기는 토나슈일루카틀은 과거에 왕의 아이를 품었고, 우리에게 그 혈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 뿐.】

이스테틸은 감정 없이 사실만을 말하는 것처럼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늘을 덮는 태양에게 현재의 아즈테카 인들은 자신의 자식이지. 그리고 아즈테카 제국의 만행에 반대하고 나라를 빠져나온 자들도.】

【그게 스콜라키체 여러분의 역사입니까?】

【나도 노인들에게 들었을 뿐인 얘기야. 선조의 유산이라도 받았다면 모를까, 물려받은 것도 없이 책임만 씌워졌지. 불쾌한 일이야.】

대충 알겠군. 장물인 도마뱀 조각상을 훔쳐갔던 책임을 후손인 그녀에게 묻지 않겠다고 했던 것도 저들의 동병상련이 이유였던 모양이다.

나는 시체나 피냄새보다 탄내로 자욱한 도시에 눈을 향했다.

─키잉. 오딘의 눈을 켰다.

그렇지만 도시 어디에도 영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좆 같게도 방금 뒤진 놈들의 영혼조차 없다. 하여튼 쉽게 풀리는 일이 없어요.

【하지만 혈연인 것 치고는 굉장히 징글징글한 놈들이군요.】

【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학살입니다.】

추적을 끝낸 키아라가 돌아오면서 말했다. 그 옷 곳곳에 피가 튀어 있었다.

〈콜리도 연합총장. 도주자는 나왔습니까?〉

〈침략자도 피해자도 도망친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제 귀에 들리지 않는 곳에서 제 눈에 띄기 전에 도망친 사람들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죠.〉

〈수고하셨어요. 이렇게 됐으니 유적 탐사를 더 빨리 끝마쳐야겠지만……〉

문제점을 고려하다가 말을 줄이는 아셰라드.

여기서 며칠을 북상해야 나오는 유적지다. 잠을 줄여가며 강행군을 벌여도 돌아오는 길목에서 아즈테카의 군대와 마주칠 확률은 무척 높았다.

스콜라키체들도 국방력을 죄다 해외에 꼴아박진 않았을 거 아닌가.

이 도시에도 이스테틸 팀만큼의 전력은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와 마주치게 될 확률이 큰 아즈테카 군대는 그런 스콜라코를 완전히 전소시킬 정도의 전사들이다. 선발대 멤버만으론 불안하다.

〈그렇죠. 바로 그 점이 이상합니다.〉

키아라는 아셰라드의 우려를 긍정했다.

〈이런 말은 어떨까 싶습니다만, 이만한 학살은 국력의 차이는 물론하고 그럴 만한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원한이나 우월주의로는 보이지 않고요.〉

〈스콜라코의 시민들을 ‘식사거리’로 봤다면, 왜 이제 와서 일을 벌였냐는 거군요. 이 도시가 세워진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닐 테니.〉

팔은 안으로 굽고, 가재는 게 편이다.

동질감을 느끼는 친밀한 상대를 잡아먹는다니? 저 식인종 새끼들이 인간형 몬스터에 불과하다고 가정해도 너무 앞뒤가 안 맞는 결론이었다.

‘아즈테카가 스콜라코를 식량으로 보는 건 피해자들만 봐도 확실하다.’

다만 그저 배신자나 먹잇감일 뿐이라면 옛적에 이런 일이 벌어졌어야 맞다.

이스테틸은 피 묻은 리본을 주머니에 넣었다.

【묻고 싶은 게 많겠지. 따라와라. 시회 안쪽에 숨겨둔 피난소가 가동한 흔적이 있었다. 생존자 몇 명 정도는 남았을 거야.】

〈시신들은? 장례는 치르지 않을 건가?〉

죽은 아이들의 머리를 한 데 모으던 셰드멘호테프가 질문했다. 내가 그의 말을 번역해줬지만 이스테틸은 등을 돌렸다.

【인간도 마수도 죽어버리면 단순한 거름이다. 우리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오직 영혼에만 깃든다. 손톱이나 발톱이 아니라, 그 정신에.】

〈……신앙인가. 알겠다. 존중하마.〉

피 묻은 손으로 따라붙는 셰드멘호테프였다. 저 시체들을 화장하면 적에게 봉화를 보여주는 거랑 똑같았으니까. 무정한 판단이어도 별 수 없다.

【여기다. 내려가지.】

이스테틸이 우리들을 데려간 쉘터는 대충 봐도 은신처 같은 곳이었다.

먼지가 쌓인 지하엔 죽음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먼저 내려간 그녀는 침상에 누워 있는 부상자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원로. 살아 있었나.】

【그래. 젊은 것들을 먼저 떠나보내고서 눈치도 없이 죽지 못 해서 살아남았지. 외세의 손님들을 모셔온 모양이구나.】

팔과 손가락의 일부가 없는 늙은 용인이 고개를 숙였다. 붕대에 감기지 않은 부위가 더 적다. 시시각각 줄어드는 생명력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손님 맞이가 이래서 부끄럽군. 야만인 소리가 듣기 싫으면 비장의 요리라도 내놓아야 할 진대, 가진 게 다 타버렸으니 어째야 할지 모르겠소.】

【말씀만 들어도 충분히 문명적이십니다.】

【그런가? 그렇다니 고맙소. 그보다, 이스테틸. 신룡의 보옥은 찾아냈느냐?】

【이 상황이 돼서도 그런 소리인가?】

이스테틸이 송곳니를 세웠다.

환자만 아니었어도 노호성을 내지렀을 것 같다. 아니, 저 늙은 용인 말고도 다른 환자들이 있어서 억지로 참는다는 느낌이다.

【찾으시는 물건이 이 조각상입니까?】

나는 그녀를 말릴 겸 도마뱀 조각상을 꺼냈다. 안에 들어 있던 유언은 백업 파일까지 만들고 룬 스톤에 녹음해 뒀다. 이렇게 된 마당에 아낄 것도 없고.

노인은 얼굴을 밝히며 그 조각상을 받았다.

【오오! 그렇다오, 이것이오! 신세를 졌군!】

【원로. 신물보다 설명이 먼저다. 우리 인내심도 한계에 가까워. 멱살이라도 잡아야 설명할 건가?】

【그래, 그래야겠지. 너도 너고, 손님께 대접할 것이 없으니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의 이야기 보따리라도 풀어야 쓰겠어.】

─달칵. 조각상을 놓은 노인이 말했다.

【가장 궁금하실 것부터 알려드리겠소. 우리의 나라에 아즈테카의 신병(神兵)들이 공격을 가했소. 결투 형식의 전쟁이 아닌 섬멸전이었지.】

【원래는 결투 형식으로 전쟁을 했었나요?】

【그랬소.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선 안 되거든. 저들 입장에서도 말이오.】

본보기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말인가? 합리적인 얘기인 것도 같았지만 이스테틸의 분위기를 보면 별로 공감되는 논지는 아니었나 보다.

【종래의 전쟁이 그렇게 된 이유는 많이 있소. 몇 개만 꼽자면…… 아즈테카의 진짜 적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기 때문이오.】

【다른 우신을 말씀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번역해줄 시간을 주고, 선발대 멤버들의 질문을 해석해서 들려주거나 하느라고 꽤 지진부진한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우신? 어리석은 신이라. 근사하군. 나도 그리 부르겠소.】

하지만 노인은 지친 몸으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소. 3체의 우신은 서로 견제하고 싸우면서 까마득한 시간을 대치 중이지. 그렇기에 토나슈일루카틀을 섬기는 아즈테카 인들은 병력을 소중히 여기오.】

【어머니로 섬기는 우신의 싸움을 도우려고요?】

【그것도 있지만, 좋은 식사를 공양하기 위함이 더 크다오.】

공양. 인신공양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신들은 사람을 제물로 받으면 그만큼 쎄지는 것이다.

‘오딘도 자신에게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세계의 진리를 엿보기도 했으니까.’

새삼 생각해 봐도 진짜 씽크빅한 광기였다.

그 발상을 실현할 재주가 없으면 못할 짓이기도 하고.

오딘은 마법의 신 씩이나 됐으니 저런 짓거리가 가능했지, 우신들은 그냥 벌크업하듯 주는 제물을 낼름 받아 처먹었겠지.

인육 99.9%의 몬스터 프로틴.

애미 뒤진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다. 세기말 SF 소설 작가들이 들으면 현실이 더하다며 펜을 꺾고 필명도 바꿔서 야설이나 쓰러 가겠지.

【질 낮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건강해지지는 않소.】

─쿨럭, 쿨럭. 늙은 용인은 각혈한 피를 수건에 닦았다.

【가축으로 보고 있다면 당연히 몰살하지 않을 수밖에. 살려뒀다가 더 강대한 전사가 생겼을 때 그들을 잡아가는 게 낫소.】

【그래서 다른 도시국가들은 아즈테카에게 복속했는가 봅니다?】

【복속하나 마나 거기서 거기요. 사람을 먹는 건 아즈테카 놈들도 마찬가지지. 제국의 병사들은 싸움 끝에 강해진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먼지 냄새를 맡으면서 들을 만한 얘긴 아니네.

속이 별로였다. 일부러 역겹게 만든 호러 영화 같은 걸 봤을 때의 불쾌감이었다. 가축이 성장해서 더 맛있고 양 많은 고기를 남길 때까지 방목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스테틸은 기분이 더럽다는 듯 쌍욕을 뱉고서 으르렁댔다.

【말을 삼가해라, 원로. 무력하다 해도 저항하는 이상 가축이 아니야.】

【그렇지. 우리들은 토나슈일루카틀의 자식이다. 그리고 우리의 어미는 비틀린 모성으로 자식을 품는 신이고. 그러니까 우리들에겐 이 보옥이 필요했던 것이야.】

노인은 이스테틸을 노려보았다. 화륵─! 죽음이 가까운 사람 같던 눈에 불꽃이 깃들자 그에게 분노하던 이스테틸도 흠칫했다.

【이 보옥은 영혼을 끌어당기는 신물이다. 너는 자석이라는 물건을 아느냐? 자석은 작은 철가루를 끌어당겨서 흡착하고, 보옥은 우리의 영혼을 끌어당긴다.】

보옥의 기능이란 게 그런 거였나?

영혼의 일부를 조각상에 넣어뒀다는 네페르티티의 오빠는 그 기능의 아주 일부만 활용했던 걸까. 내가 혼자 납득하는 사이 노인은 사실을 밝혔다.

【토나슈일루카틀은 그래봬도 진심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어미다. 단지, 신이나 몬스터나 인간에게 이해받는 존재가 아닐 따름이지.】

【무슨…… 무슨 얘길 하는 거냐?】

【우리들 스콜라키체는 죽어도 영혼이 성불하지 못한다. 아니, 용의 자식은 다 똑같지. 육체로부터 해방된 순간. 우리의 영혼은 어미의 품으로── 그 모태로 돌아간다.】

【……돌아간다고?】

이스테틸은 사람을 소묘한 흑백화처럼 얼굴에서 생동감이 사라졌다.

【……후. 그래. 아즈테카 놈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제물이 되는 이유가 뭐겠느냐.】

노인은 아차 싶었는지 눈동자 안에서 살벌하던 불길을 지웠다.

【우리는 낳아준 부모는 달라도, 사신께서 찾아오시면 저승이 아닌 용의 자궁으로 돌아갈 될 운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용의 자식인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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