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32화 (731/1,009)

문득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또다시 내가 어릴 적 얘기다. 아직 내가 초딩의 호기심과 순진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무렵, 문방구에서는 어항에 든 금붕어를 싼 값에 팔곤 했다.

다른 문방구는 병아리가 메이저한 리빙 다마고치 후보였지만, 내가 애용하던 곳은 조류가 아닌 어패류로 차별화를 뒀었다.

내가 홀랑 넘어가서 사버렸던 걸 생각하면 효과적인 마케팅이긴 했다.

그래서 나는 애지중지하며 구분도 못 하는 다섯 마리의 금붕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떡밥을 배 터지다 못해 어항의 물이 더러워질 때까지 부어주고는 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그 연놈들이 미취학 아동이 보는 앞에서 붙어먹으며 자식을 까는 꼴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던 나는, 생명의 신비의 감탄하다가 그 직후에 벌어진 일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어미 금붕어는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쫓아가서 잡아먹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어항이 작았고, 새끼 금붕어들이 몸을 숨길 공간이 부족했던 게 원인이란 걸 안다.

잘못이 있다면 무지했던 잼민이 강북호와, 금붕어의 육아법을 가르치지 않았던 문방구 아줌마의 책임이 클 것이었다.

그렇다지만 당시의 내게 그 동족상잔은 너무도 끔찍하고 비인륜적인 트라우마를 선사했고, 어린 날의 강북호는 더는 그 눈알이 툭 튀어나온 괴생물들을 예전과 같은 눈으로 보지 못했다.

공포에 시달린 내가 먹이를 주길 기피하고, 폐사한 금붕어들이 아버지의 손에 변기물에 흘러가게 된 그날까지도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내 정신머리는 현실의 컴컴한 피난소로 돌아왔다.

【……그 토나 뭐시기의 뱃속에 돌아간 뒤에는 어떻게 됩니까?】

【죽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오.】

내가 질문하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닌 모양.

【다시 무구한 아이로 태어나는 것도, 제물처럼 소화되서 소멸하는 것도 아니오. 어미의 품에서 영원히 살아가겠지. 의식은 없을 테니 그게 그나마 위안이지.】

【지독하게 일방적인 모성도 다 있군요.】

【자식을 잃고 싶지 않은 거겠죠.】

번역하다가 말고 뇌까리는 키아라였다. 노인은 긍정했다.

【멀고 먼 옛날, ‘으뜸의 아들’을 잃은 토나슈일루카틀은 자신의 피를 이은 모든 아이들에게 가호를 내렸소. 죽은 아이들이 어디서든지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반사적으로 또 오딘의 눈을 켰다. 저들의 몸에 마법적인 처리는 없었다.

있다고 쳐도 룬 마법 체계가 아닌 거겠지. 최근 영 쓸모가 없네, 이 눈깔.

【신룡의 보옥은 그 망할 치맛바람을 막아주는 겁니까?】

【끌려가지 않게 해 주는 자석 역할이오. 그게 아니면 요람이라고 해도 되겠소. 보옥에 깃들어서 잠들듯 소멸할 수 있지. 그렇기에 되찾아야 했고.】

설명하던 노인은 갑자기 얼굴색이 안 좋아진 두 사람─네페르티티랑 셰드멘호테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픽 웃었다.

【거기 두 분의 출신지도 대충 알겠구려. 별로 신경쓰지 마시오. 도난당한 것은 맞지만 우리들의 조상도 일부러 그걸 막지 않은 것이니.】

【……아즈테카에게 들킬 뻔 했는가 보군요?】

【……이거 놀랍군. 어찌 아셨소?】

무심코 질문했던 나는 뺨을 긁었다.

아즈테카에게 보옥을 들키면 부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 번 다시 비슷한 신물을 만들지도 못할 것이었다. 그럴 바엔 훔쳐가게 두는 게 낫다.

노인은 자유로운 손으로 조각상을 쓰다듬었다.

【누가 알겠소? 말로는 장물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냥 그 방문자들을 믿고 맡긴 것일지도. 이렇게 긴 시간 끝에 돌아오긴 했으니 그걸로 됐소.】

【됐다고? 뭐가 됐다는 말이냐!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이 전부 그 용의 뱃속에 있다면서!】

【그러니까 네게 되찾아 오라고 한 것이다.】

피를 토하듯 외치는 이스테틸이었는데, 노인은 자기라고 그 생각을 못했겠냐는 듯 대답했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참 불편해지는 가시방석이다.

【자석이라고 했잖느냐. 가까이 다가간다면 저 우신의 뱃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꺼내줄 수 있다. 물론 죽으러 가는 길이나 다름이 없겠다만.】

【……빌어먹을 노친네. 이리 내놔. 내가 간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애송아. 다리는 멀쩡하다. 젊은 놈은 살아야지.】

【멀쩡해? 어디가?】

─펑!

이스테틸의 팔이 공기의 벽을 후려쳤다. 팔에서 자라난 피막의 날개 때문이었는데, 그 소리가 가라앉자 그녀의 손에는 조각상이 들려 있었다.

시위하는 것처럼 노인한테서 신룡의 보옥을 뺏은 것이다.

【나이랑 부상을 생각해라. 거북이도 당신보단 빠르게 달리겠다.】

【하아……. 이 못난 년 같으니라고.】

통증이 전해지는 장탄식을 뱉는 노인. 그는 침침해지는 눈을 주물렀다.

【……요즘 들어서 낮이 길다. 하늘은 우신들의 영역이지. 토나슈일루카틀의 힘이 강성해진 게야. 아즈테카의 멍청이들은 이 기회를 살려서 우신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더군.】

【알 게 뭐야. 나는 동생들을 찾으러 가는 거다. 아직 어린 여자애들이야. 모태로서 끌려간 시민들 중엔 분명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

도마뱀 조각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이스테틸.

그녀의 눈동자가 우리 쪽으로 굴렀다.

【미안하다만, 그렇게 됐다. 유적인지 뭔지는 딴 녀석한테 부탁해라. 피난소를 찾아보면 걸어다닐 수 있는 녀석도 있겠지.】

【아뇨. 그래서야 저희가 곤란합니다.】

할 말만 하고 가 버리려는 그녀를 대뜸 내뱉은 키아라의 말이 멈췄다. 물리적인 손에 붙잡힌 듯 멈춘 이스테틸은 갈색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당연히 키아라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존엄과 명예. 자존심과 가족애. 무척 낭만적이군요. 저 역시 그런 선택을 좋아합니다만, 숭고한 자기희생 정신도 오늘만큼은 곤란합니다.】

【……곤란하다? 뭐가 말이지?】

【성공하건 실패하건, 이스테틸 씨가 죽지 못한다면 저희들의 존재가 아즈테카에 알려집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던 위협이 추격자와 적군이라는 형태로 확정되죠.】

맞는 말이었다. 이스테틸이 산 채로 제압되거나, 증거 같은 걸 남기면 말이다.

‘아즈테카가 우리를 눈치채면 반드시 덤벼든다.’

얘기를 들어보면 강한 자일 수록 제물로 바치길 선호하는 놈들이다.

선발대 멤버만 봐도 존나 개존맛 해외 식재료라면서 덤벼들겠지.

‘피하는 건 어렵고.’

서둘러도 시간 상 맞추기 힘들 것이다. 유적지 조사가 어디 2~3일만에 끝나는 것 봤는가? 아틀란티스에서 재정비를 하고 오는 것도 무의미하겠지. 그럼 그냥 전쟁이 될 뿐이다.

【여러분들이 울프헤딘 경과 약속하셨던 보옥의 대가는 탐사의 협력이었습니다. 따라와 주시지는 않더라도 며칠 정도는 기다려 주셔야겠습니다.】

【며칠 정도가 있으면 너희는 안전하게 물러날 수 있으니까?】

【예.】

그 대답을 듣고도 이스테틸은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도 그렇다. 싸우려고 할 때는 위협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짐승이 아니니까.

─슥.

피난소에 누워 있던 스콜라키체들이 일어났다.

몇 명 없는 생존자였지만 우리들과 함께 복귀한 사람들도 있다.

인원은 저들이 더 많다.

【이스테틸!】

【원로를 재워라. 그는 은퇴하긴 아직 일러.】

스콜라키체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노인을 기절시켰다.

─퍽! 부상 때문에 언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노인은 속절없이 침대에 쓰러졌다. 부하들의 앞에 팔을 뻗어 선공을 제지한 이스테틸이 감정 없이 질문했다.

【그 며칠 사이에, 구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몇 명 죽어야 하지?】

【그 몇 명을 구하기 위해서, 저희는 몇 명이나 죽어드리면 되겠습니까?】

이 순간만큼은 키아라도 늘상 헤실거리던 하프 드워프가 아닌 원숙한 모험가였다. 원정의 성공과 팀의 안전을 저울에 올리면 냉혹해지는, 모험가의 판단기준이다.

〈전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건만.〉

상황이 돌아가는 분위기를 느낀 셰드멘호테프는 손가락에 힘을 쥐었다.

“……시발, 갑자기 이러기야?”

“다나. 노르드 뒤로 가.”

내 옷을 당기는 다나를 네페르티티가 만류했다. 아셰라드가 피난소 뒤로 따라들어온 스콜라키체를 흘겼다. 앞은 이스테틸이고 뒤는 그 부하들. 포위망이라면 포위망이다.

【……키아라 콜리도. 너는 선량한 인간이야.】

이스테틸은 손톱을 세우며 말했다.

【신조를 지키면서 선함을 존중하지. 짧은 인연이지만 어째선지 알겠다.】

목소리는 이제까지 중에 가장 부드러웠다. 연기 따위가 아닌, 그녀의 진심이었다.

【아즈테카에 가면 나는 죽을 게 확실하다. 가족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목숨을 버릴 만한 이유가 못 되는 것도 맞고.】

【그렇게 잘 아시면서, 왜?】

【너, 가족은 있나?】

키아라는 조용했고, 이스테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설명해도 소용 없겠는걸. 가족은 이유가 필요한 관계가 아냐.】

그녀는 키아라에게 대답하고 나에게 말했다.

【보내다오. 너희 얘기는 절대 하지 않겠다. 이 보옥을 망할 우신의 배때기에 처박아주지 못하면 잡혀간 사람들만이라도 구해내고 바로 자결한다고 약속하지.】

【……목숨을 버리러 가실 생각입니까?】

【다행히 버려도 되는 물건인 듯 싶더라고. 내 영혼은 내 게 아닌가 보더군.】

【흐음. 그러시군요.】

일촉즉발의 논쟁을 지켜보던 나는 말을 던졌다.

【그러면 그 목숨, 제게 주시겠습니까?】

【……남자한텐 관심 없다고 말했을 텐데?】

【당대 아즈테카의 황제도 남자입니까?】

【……아니, 여자라고 들었다만.】

【그럼 됐네요 뭐.】

나는 친절한 웃음을 띄웠다. 그럭저럭 신뢰도도 쌓았겠다, 처음 만났던 날보단 믿고 싶어질 얼굴로 보이지 않을까?

【저희랑 같이 가시죠. 유적지도, 아즈테카도.】

잡혀간 사람들도 구하고, 겸사겸사 우리 가정방문이 들켰는지 살짝 엿보고 오면 되겠네 뭐. 우리 정체만 안 들키면 누가 시민들을 탈환했는지 알 게 뭐람?

이 쉬운 문제를 왜 그렇게 날 세우며 싸워대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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