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틀래닉틱터로군. 놈들은 거기로 가고 있어.
하루 종일을 달리며 추격하던 중에 이스테틸이 말했다.
타고 다닐 말도 없고, 있어도 우리보다 빠를 순 없기에 결국 마라톤으로 국토일주를 하듯 달려야 하던 우리들.
그런 우리 중에서도 제일 약한 스콜라키체들도 약한 소리를 하지 않던 와중에 들려온 텔레파시에 앞서 달리던 나는 평원 뒤를 돌아보았다.
─틀래닉틱터? 그건 또 뭐하는 곳입니까?
─아즈테카에 복종한 도시국가다. 산 아래 마을이라는 뜻이지.
─도시국가라. 작은 마을에 들린다는 거군요.
─중간 보급.
땀을 닦으며 말하는 네페르티티. 아무리 미스릴 클래스인 그녀라도 최고 속도로 하루 종일 달리니 땀이 안 날 수는 없었다.
그건 체력 이전의 문제다.
핵융합로가 휘발유보다 더 뛰어난 원료여도 시속 300km랑 60km가 같겠나. 남들보다 100배 많은 체력도 200배 빨리 달리면 결국 바닥나고 마니까.
여기서 버티는 건 야수회귀의 부작용으로 존나 체력이 많아진 나랑 마스터 클래스인 키아라 뿐. 그 키아라는 땀 한 방울 안 흘리며 중얼거렸다.
─서두를 이유가 없죠. 스콜라코를 친 후 개선 중이니. 저희도 잠시 멈춥시다.
─우리라면 아직 달릴 수 있다.
─저 앞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이스테틸은 더는 군말 하지 않았다.
촤아악─! 정지한 우리는 키아라가 단서를 보는 사이에 목을 축였다.
【허억, 허억……】
미스릴 클래스가 아닌 스콜라키체들은 거의 다 땀범벅이 돼서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강렬하다. 네페르티티는 그런 그들을 복잡한 듯 보고 있었다. 복수에 불타오르는 감정은 그녀에게도 남일이 아니잖은가.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쫓아온 건 옳은 선택이었군요. 땅에 남은 발자국에 반나절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발 먼저 떠난 적군을 뒤늦게 쫓아간 사람이 있는 거에요.”
“저희를 보고 도망친 놈들입니까.”
존나 식겁했다. 안 쫓아왔으면 좆될 뻔 했다는 거 아냐.
“거리와 시간에서 이동속도를 계산해보면…”
흙을 만져보던 키아라는 손가락을 문질렀다.
“앞으로 1~2시간 정도면 놓쳤던 척후가 보일 듯 하군요.”
“합류하기 전에 제거?”
“그렇게 합시다.”
망설이지도 않고 네페르티티에게 동조하는 나.
“거리 순서를 정렬해 보면 적 본대 - 적 척후 - 우리들입니다. 스콜라코에서 도주한 놈들을 합류 전에 족쳐놓으면 본대 쪽에도 기습이 가능해요.”
“생포한다면 그게 제일이겠습니다.”
우리의 결론을 들려주자 이스테틸은 불쾌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나쁘지 않다. 그렇게 하지.】
【표정은 조금도 그렇게 말하지 않으시는데요? 그렇게 이를 마구 갈아대시면 늙어서 치통이 장난 아니게 옵니다?】
【기분이 더러운 건 놈들이 순순히 잡힐 바에는 자진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씹어먹어도 모자랄 원수를 눈 뜨고 놓치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올까.】
【생포를 못 하는 건 아쉽습니다만, 왜 놓치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눈을 찌푸리는 그녀. 픽 웃는 나는 그녀가 등에 맨 보따리를 가리켰다.
【놈들의 영혼도 그 보옥에 가두면 되죠.】
【……그거 좋군. 조상님들의 요람에 저 놈들을 들이는 건 불쾌하지만.】
【저라면 기쁠 걸요? 때려죽여도 되는 샌드백이 제 발로 들어온 셈이잖아요?】
【제길. 네가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데.】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으니까 존나 살벌하시네. 저어는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꿔서 PC주의자들에게 뭇매 맞고 싶지 않으니까 패스할래오.
이스테틸은 가만히 발을 구르다가 말했다.
【척후를 죽여놓고 틀래닉틱터에 잠입해서, 적 본대를 시내에서 처리하지.】
【그래도 됩니까? 걱정거리가 여만이 아닌데.】
적을 늘리기 싫어서 쫓아가고 있는데 적 식민지 한복판에서 싸우자고?
얼굴을 숨기는 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괜히 적만 늘어나면 어쩌려고?
【복종한 도시국가에 전사는 없다. 시민도 얼마 없으니까 넓은 공간도 많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놈들이라면 개선하는 길에 인신공양 의식을 하지 않을 리가 없어.】
【음. 하긴 이런 평원에서는 기습을 할 방법이 없죠. 어설프게 공격했다가 잔병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쫓아가는 것도 일이고.】
어디 낡은 시골이나 군대 훈련소 측간 같은 데 가 본 사람은 모여 있던 벌레들이 일가실각하는 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벌레 새끼들을 전부 족치는 건 사이즈 차이가 한참 나는 인간도 어렵다. 근데 중구난방으로 빤스런하는 식인종들을 전부 잡는다?
그건 실패할 확률이 존나 크다. 떡 먹은 용만이 방장 사기맵도 아니고.
촤악─!
이스테틸은 장거리 달리기로 열이 오른 머리에 물을 끼얹고서 말했다.
【방금 막 떠올린 작전이 있다. 들어보겠나?】
***
【순결한 계집들을 데려오라는 게 그렇게 힘든 요구더냐!】
─퍽! 마른 중년이 부복해 있던 사람을 걷어찼다.
배를 맞은 청년은 쓰러져서 꺽꺽 거리다가 침을 닦으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 그러나 즈즈테쿠 어르신. 전사들이나 어르신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여인은 정말로 한 줌에 불과합니다. 나이가 10살이 채 안 된 아이들 뿐이에요!】
【그걸 해결하라고 제왕께서 네놈들에게 자비를 베푼 게 아니냐! 어린 계집애라도 모아! 양이 부족하다면 평소의 2배로 메꿔!】
【어르신!! 제발!!】
【아이는 또 낳으면 돼! 전사도 없는데 순결한 처녀마저 못 바쳤다가는 나라가 어찌 될 줄 알고! 못해도 오늘 중으로 애들을 데려와!】
씩씩대며 고함을 친 중년은 다시 청년을 때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집 안이 어두운 걸 보고서 오만상을 쓰며 뒤뚱거렸다.
【빌어먹을. 콜리아니! 이 망할 년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때려죽일 계집이 침대에서 허리를 제대로 못 놀리는 걸로 모자라서 집안일마저──】
빼액거리던 중년의 입이 싸물어졌다.
어두컴컴한 집 안을 당당하게 활보하며 문을 연 순간, 눈을 감고 떨고 있는 소녀와 그 옆에 묶여 있는 남자, 그리고 침입자인 우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침대에 앉아서 과일을 씹던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즈테카의 앞잡이에 제물 보급, 미성년자를 향한 성폭행과 감금. 세상 알기 쉬운 시발놈이네.】
【뭐! 뭐하는 놈들이ㄴ, 꽤애액…!】
소리를 지르려던 앞잡이가 목을 붙잡았다. 문짝 위쪽에 서 있던 네페르티티가 채찍으로 목을 감고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앞잡이의 몸이 들썩였다.
“네페르티티. 죽이면 안 돼요.”
“……힘 조절은 노력 중.”
“화나셨어요?”
내가 고개를 모로 꼬자 네페르티티는 살벌하게 눈을 반개했다.
“……저 여자애, 브류나크랑 비슷한 나이.”
“뭐…… 겉모습으로는요.”
저 앞잡이 새끼가 소아성애자인 게 안 좋았나.
20대인 네페르티티가 10살 외모의 브류나크를 상대로 모성을 느끼다니. 게다가 금속의 정령이니 브류나크는 아마 나보다 연상이 아닐까 싶은데.
자아를 각성한 뒤로 따지면 아직 1살도 안 됐을 거고.
【아무튼 우리 아즈테카 앞잽이 친구. 우리랑은 초면이어도 이 사람은 알지?】
나는 하던 생각을 관두고 이스테틸을 가리켰다. 앞잡이의 눈이 부릅뜨였다.
【스, 스콜라코의……!】
【너, 아즈테카의 병신들이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 즉, 놈들이 우리 도시로 진군하는 것도 다 알면서 뻔뻔하게 협조하고 보내줬다는 뜻이군.】
차갑게 뇌까리는 이스테틸의 목소리는 냉기마저 느껴졌다. 채찍에 감겨서 발끝만 간당간당하게 선 앞잡이 중년의 눈에 동공지진이 일어날 정도였다.
【아즈테카에 복종한 도시국가도 생존하는 법은 각기 다르다.】
─텁! 이스테틸이 그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나는 너처럼 놈들에게 부역하면서 고향 땅을 ‘제물 창고’로서 써먹는 놈들이 가장 역겹다.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호가호위하는 놈은 더.】
몇 시간 전.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척후로서 흩어진 놈들을 몇 명인가 해치웠다.
‘해치웠다기보단 따라잡기가 무섭게 자살해버린 거지만.’
죽으면 토나슈일루카틀의 품에 돌아간다는 저들 아즈테카의 신앙은 자결을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 결국 내가 영혼을 심문할 시간도 없이 전부 보옥 속에 가둬야만 했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딱히 얻은 정보도 없이 여기까지 와야 했다.
나쁜 일은 아니다. 모든 척후를 전부 잡았는지 알지 못하니, 어쨌건 간에 적 본대는 해치워둬야 했다. 이건 그 밑준비고 말이다.
‘어르신’.
이 마른 중년은 도시국가의 용이한 통치를 위해 아즈테카의 지배계급이 앉힌 그들의 앞잡이랜다. 식민지배 방법이 다 고만고만하긴 한가 보다.
【흐. 흐흐흐.】
평범한 인간인 앞잡이는 목이 매달린 채로 쪼개대기 사작했다.
【역시 가까이서 보니까 미인이구나, 이스테틸. 어떠냐? 네가 내 여자가 되겠다면 제국 분들에게 잘 말해주지 못할 것도──】
─콰직!!
도발의 대가는 컸다. 앞잡이의 허벅지는 이스티텔의 주먹 모양대로 움푹 파였다.
뼈를 부수고 근육을 뭉개는 원인치 펀치.
미스릴 클래스의 주먹이 별 볼 일 없는 중년의 다리를 썩은 고기처럼 으깨버린 것이었다.
【흐끅……!!】
놀랍게도 앞잡이는 비명을 참아냈다. 턱을 붙든 이스테틸이 손톱이 그의 뺨에 박혔다.
용의 피를 받은 세로 동공이 희번뜩 뜨였다.
【나는 지금 이성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저 녀석들이 보고 있지 않으면 앞뒤 재지 않고 네 심장을 찢어발겨놓고 말 거야. 내 말 알아듣나?】
【흐, 흐흐…… 왜 병사님들의 손에 죽지 않고 살아 있나 했더니만, 바깥 세상에 나갔었나 보군? 외부자를 들이다니. 배알도 없는 것.】
마른 중년은 왼쪽 다리보다 1뼘 길어져서 대롱거리는 다리도 잊고 비아냥댔다.
그런 말이 있다. 앞잡이라는 것도 능력 없이는 못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통증을 참는 정신력은 둘째쳐도 세포와 근육의 괴사는 치명적이다.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저것만 갖고도 합병증으로 뒈질 것이었다.
─똑, 똑. 이스테틸의 손톱을 타고 더러운 피가 흘렀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나? 신앙마저 그놈들에게 복종한 거냐?】
【너희는 모른다. 하늘을 덮는 태양께 따르는 게 어떤 안식이 되는지.】
다리의 아픔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앞잡이는 숨 가쁘게 웃어댔다.
【저, 저승은 더는 안식의 땅이 아니다. 대륙의 신들이 끝장나버린 뒤부터 저세상은 죽음 이후의 죽음을 위한 도축장일 뿐이야.】
【변명이 궁해지니 헛소리를 하는군.】
【믿건 말건 마음대로 해라. 너도 나도 죽으면 차가운 저승으로 떨어질 테니.】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입을 다무는 앞잡이.
나랑 네페르티티는 무심코 눈을 마주쳤다.
─명계 얘기?
─그런가 보네요.
그런데 이 씹새끼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저승의 신들이 사라지고 서리거인들이 발족하는 니플헤임.
한때는 너 나 할 것 없이 저승 곳곳을 나와바리 삼던 신들이 영혼들을 데려가서 지상에서 범한 죄악이나 선행을 심판하던, 죽음 이후의 세상이다.
하지만 라그나로크 이후에는 관리인을 잃고, 운 좋게 영혼이 멀쩡하게 저승까지 흘러들어간 사람들조차 그 혹한의 추위에서 거인들에게 잡아먹혀야 되는 처지였다.
지상에서 완전히 소멸하거나, 죽지 못하고 혹한지옥에서 소멸하거나.
그야말로 구원이 없는 아귀도(餓鬼道).
이세계의 사후세계에 숨겨진 진실이다.
‘하지만 알아봤자 좋을 것 없는 일데다가, 이걸 알 만한 놈도 별로 없는데?’
그야말로 라그나로크의 진실을 알거나, 나처럼 저세상에 갔다가 돌아오거나, 그에 준하는 세월을 살아온 고대의 존재들만이 아는 진실.
10살 배기 애나 덮치는 쓰레기가 자력으로 알아냈다? 개소리지.
그럼 뻔하다. 누군가가 알려준 것이다.
‘……토나슈일루카틀.’
그 용들의 어머니를 자칭하는 우신이 말이다.
【크흐, 크으흐흐흐. 죽일 테면 죽여봐라. 나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서, 그 분의 품에 안긴 채 영원한 영혼의 안식을 맞이할 것이야.】
계기가 뭐였건 천국과 지옥 같은 사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현세에서 이딴 폭위를 마구 저질러댔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눈빛을 차갑게 한 이스테틸이 손을 당겼다.
【좋다. 더 이상의 설득은 시간 낭비겠군. 과연 그 신앙이 네놈들이 고안해낸 고문보다 존엄할지, 어디 네 몸에다 대고 직접 물어봐 주마.】
【이스테틸 씨. 시간 낭비입니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가 참고 말하는 나.
─뒤룩. 이스테틸의 눈이 굴렀다. 워후. 누구 한 명 씹어 잡수시겠어.
【너도 여기서 날 말릴 인간은 아니지. 더 좋은 고문법이 있나?】
【있고 말공. 고문이 아니라, 심판이 말이죠.】
앞잡이 새끼가 듣지 못하게 텔레파시 발사.
─움찔. 살짝 놀란 이스테틸은 고민하지 않고 내 손에 보옥을 올려줬다.
【좋다. 널 믿어보지. 같은 과일을 먹었으니.】
【그건 또 무슨 비유입니까?】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거창하시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앞잡이 앞에 생포한 남자를 끌고 왔다.
이 새끼도 도시의 ‘어르신’이었다.
“네페르티티. 애를 데리고 나가 계세요.”
“아, 그거라면 제가 하죠.”
내 부탁을 인터셉트한 키아라는 가정부 겸 노예였던 소녀를 데리고 나갔다.
앞잡이는 비쭉 웃으며 이스테틸에게 눈짓했다.
【계집년의 호감을 사느라 노력하는군. 여자는 주먹과 양물로 다스리는 거다.】
【나랑은 의견 차이가 많네. 뭣보다 난 저 아가씨한테 관심 없어.】
끌고 온 앞잡이를 놈의 앞에 내밀고 술식 발동. 얼음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기화냉동법.】
─쩌적! 젊은 앞잡이의 몸이 모가지부터 얼었다. 내가 힘을 주자 빨간 살점은 냉동육처럼 바닥으로 쏟아졌다. 앞잡이는 시큰둥한 방법이었다.
【고문해도 모자랄 판국에 깔끔한 죽음이군?】
【그렇고 말고. 이 고문은 죽은 뒤가 진짜거든.】
【……죽은 뒤?】
앞잡이가 흠칫했다. 내 말 때문인지, 아니면 그 얼음 파편 사이에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시뻘건 도깨비불 때문인지는 나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죽은 후의 안식을 바란다고 했지. 역시 너희 영혼에도 우신의 곁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깃들어 있었군. 너는 말이 너무 많았어.】
슈우우우우욱….
─피잉!!
도깨비불은 무언가에 당겨지지다가 걸린 것처럼 공중에 멈췄다. 버둥거리던 빛은 내가 든 신룡의 보옥으로 끌려들어갔다. 보옥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아사수마의 영혼이 빨려들어갔다?】
죽은 뒤의 안식만 믿고 고문도 두려워하지 않던 앞잡이는 공포에 질렸다.
【뭘 한 거냐? 이 망할 자식아!! 무슨 짓을 한 거냐고!!】
【화내긴. 우정 때문에 분노했을 린 없고, 너도 이런 꼴이 되는 게 무섭나?】
【흐아아아악!! 저, 저리 치워!!】
씹새끼에게 보옥을 내밀었다. 병신은 화롯불을 들이민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이 보옥은 영혼을 가둬놓는 감옥이다. 굉장히 낡은 시대의 유물이고. 한 번 들어가면 풀어주고 싶어도 풀어줄 방법을 몰라. 그리고 안에 가둬진 영혼은, 보다시피 이렇게 되지.】
일렁…. 보옥 안에 요사스러운 빛이 어른거렸다.
─고오오오…. 으오오오….
보옥에서 해골 바가지 모양을 한 가스 같은 게 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마치 붙잡힌 영혼이 고통받으며 신음하는 듯이 말이다.
앞잡이의 눈은 드디어 온전히 공포에 질렸다.
【가, 감옥?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보고도 못 믿나? 그럼 신앙은 어떻게 가졌나 모르겠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뭐, 뭘 원하지? 돈? 여자?】
【우리를 좀 도와줬으면 해서 말이야. 여기 올 정예병신들을 몰살할 거거든.】
눈알이 튀어나오려 하는 앞잡이. 나는 손가락을 세워서 마나 실드를 펼쳤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 침을 마구 튀겨대며 발광하는 병신.
【집어치워! 그, 그딴 짓을 했다간 나는 절대로 어머니의 품에 돌아가지 못해!】
【하지만 소멸할 수는 있겠지. 이 감옥에 갇힐 수도 있고.】
앞잡이의 심장에 룬을 새겼다. 뭔지는 몰라도 그 안에 마나가 깃드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채찍에 매달린 병신의 움직임이 더 얌전해졌다.
【골라 봐라. 영원한 지옥에 갇힐 건지, 우리를 돕고 평범하게 소멸할지.】
설득과 협박에 공통되는 대명제가 있다.
무슨 명제냐고? 상대에게 선택의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는 거다.
동네 마트에서도 라면 1개 800원 5개 3000원 하는 식으로 선택지를 주는 척 5개입 구매를 강제하는데, 대학원까지 나와서 이 정도 응용도 하지 못하면 쪽팔려서 어디 살겠나.
앞잡이는 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약속하는 거겠지?】
【애미 뒤진 새끼가 자꾸 혀가 길어지네. 니가 조건을 걸 처지냐?】
내 언성이 험악해지자 그는 아가리를 싸물고서 얼른 외쳤다.
【히이이익!! 도, 돕겠소! 뭐든 돕겠으니 제발!!】
【좋아. 준비해라. 제물 의식부터 시작해서 들을 얘기가 많다.】
─쿠당탕! 네페르티티가 채찍을 풀어주자 그는 엉덩방아를 찍고 자기 가슴을 쓰다듬었다. 새겨둔 룬을 만져보려는 것이었는데, 감히 반항할 생각은 못하겠지.
어설프게 머리가 굴러가는 놈들일수록 상상력도 뛰어난 법이잖은가?
“노르드. 뭘 한 거야?”
채찍을 짧게 줄이며 묻는 네페르티티.
나는 냉큼 웃었다.
“공갈빵이요.”
당연히 보옥에 가둔다고 고통 같은 건 없지. 저 스콜라키체들이 안식을 얻으려고 제작한 물건인데 고통을 준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방금 전에 흡수한 영혼? 그거 〈수사의 랜턴(Friar's Lantern)〉으로다가 만든 가짜임. 라리루라도 공연하면서 자주 하는 매지컬 폭죽이지.
하지만 신앙이란 게 원래 진실보다는 믿음이 더 중요한 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