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로이트에 드랍당했던 대괴수.
그 정체가─억측일 뿐이지만─ 이 아즈테카에서 터줏대감으로 떵떵거리고 살던 환신야수족 몬스터 새끼라는 사실은 내 뒤통수를 거하게 두들겼다.
‘시발.’
이렇게 말해버리면 아즈테카만 좋다고 꿀 빠는 내분 논리가 되겠지만, 이 야생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대륙에 대격변이 터진 데는 내 지분도 조금 있는 것이었다.
‘얼굴에 철판 깔면 내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나도 살려고 싸웠을 뿐 아닌가.
1차적으론 아즈테카랑 토나슈일루카틀이 문제고 2차적으로는 남의 집앞에 원자폭탄급 몬스터를 반 병신으로 떨궈놓은 충왕대군이 나쁘다.
누가 이걸로 나를 규탄한다면 나도 존나 뻔뻔스럽게 ‘그럼 내가 너희 대신 뒤져야 했음?’이라면서 반론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분노나 원망을 사게 되면 그건 아마 감정적인 문제란 것이다.
감정은 이성으로 설득되지 않는 논리였다.
【……무슈흐렐리틀의 반신을 잡았다고?】
그래서 나는 눈을 꾹 감고 사실대로 불었다.
양심몰수하고 구라를 까도 좋았지만 그러려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배신당할 각이다. 차라리 여기서 이스테틸이 ‘야 이 씨발련아!’하고 날 죽이려고 드는 편이 낫다.
그러면 우리 인연은 끔찍하게 끝나게 되겠지만, 나도 이들과 갈라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테니까. 내 관점에서는 이스테틸을 향한 의리와 가족들의 안전을 저울질한 판단이었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멍청한 결론이다.
선량한 게 늘 옳지는 않은 법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양심을 저버릴 수 있을 만큼 현명했다면 나는 달인으로서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호르샤의 손에 뒤졌을 것이었다.
【……증거는 없는데, 느낌 상으로는요.】
【……………….】
용가리 새끼가 혼절하자 소음이 그쳤다. 싸움이 끝난 것일까? 불편할 정도의 침묵 때문에 숨 쉬기 힘들다. 하늘이 존나 밝은 게 괜히 빡쳤다.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스테틸이 말했다.
【……아즈테카의 개자식들이 행동에 들어간 건 우신들 간의 권력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지.】
【다른 신을 제물로 강해진다면, 한 마리가 약해진 지금은 최적의 기회겠죠.】
사무적인 결론은 좋았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도 그냥 팩트대로 읊으면 되니까.
하지만 주댕이 밖으로 발사하고 나자 세상 눈치 없는 발언이었다고 깨달았다.
우신 1마리가 뒤지게 쎄져서 다른 둘을 처먹은 결말이 내가 예지인지 뭔지 모를 풍경에서 봤었던 그 풍경이 아닐까.
이제 와서 보면 퍼즐이 맞춰지는 부분도 있다.
우신들이 왜 아즈테카에만 진을 치고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는가.
‘여기서 편하게 제물만 처먹고 살아도 되니까?’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물을 먹는 건 강해지기 위해서다.
우신들은 힘을 길러서 다른 두 신을 잡아먹고자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각축전이 종식되는 날, 살아남은 마지막 1마리는 완전한 존재가 되어서 이 대륙을 나서는 게 아닐까?
우신의 생존투쟁이 끝나는 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던 인류는 신대로부터 똬리 틀었던 대재앙의 급습을 받게 될 것이었다.
평소처럼 동물의 숲을 하고 있는데 대뜸 전설의 포켓몬(인육 매니아)가 날아든다니.
게임은 대량 리콜로 혼쭐을 내줄 수라도 있지, 냠냠쩝쩝 육해공 합체진화를 에볼루션 컴플리트한 괴물이랑은 대화가 통할지조차 의문이다.
【……밑으로 내려가자.】
팔다리를 박살낸 용가리 새끼를 짐처럼 끌면서 이스테틸이 말했다.
【잡혀간 우리 시민들의 용태가 신경 쓰인다.】
【……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불편하다.
역시 실수였을까? 자신에게 떳떳하기보단 매번 야바위를 치던 때처럼 내색하지 않았다가, 들키고 나서 ‘그게 왜 내 잘못임?’하고 말해야 했을까?
그렇지만 고고학자는 잊혀진 진실을 찾는 인종.
영원한 비밀은 없다. 누구보다도 그 진실을 실감해왔던 내게 이 비밀은 너무 무거웠다. 이스테틸과 친구들이 선빵을 쳤거나 악인이었다면 모를까.
나는 잠들었던 제물 아이들을 깨워서 제단에서 내려갔다.
【이스테틸 언니!】
제단으로 가는 길목은 넓었다. 아즈테카의 전사들이 전부 몰살된 피바다에서 이스테틸과 빼닮은 소녀가 울면서 달려나왔다.
【포카소카! 무사했구나!】
【으, 응. 동생들도 무사해! 하지만……】
대답하다 말을 줄이는 반인반룡 소녀였다. 발을 멈춘 이스테틸이 구해낸 사람들을 훑었다. 그녀는 망연자실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걸로…… 전부인가?】
【……잡혀간 건 여자와 장인 남자 뿐이야.】
청년 티를 간신히 벗은 스콜라키체가 대답했다.
우리가 구해낸 스콜라키체들은 해치운 아즈테카 전사들의 반도 되지 않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노예나 제물이 되지 않고자 용맹하게 싸우다가 떠났다.】
【놈들에게 죽는 것보다 굴종하는 삶이 싫었나. 그 녀석들 답군.】
【……미안하다.】
【뭐? 아니, 틀려. 너희를 탓한 게 아니라──】
생각치도 못하게 생존자들을 탓하는 말이 된 걸 눈치채서였을까.
복잡하게 중얼거렸다가 당황한 이스테틸이 여동생인 듯한 아이를 놓으며 말하려고 했을 때, 대뜸 돌멩이가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텁! 당연히 아무렇지 않게 낚아채는 이스테틸.
【돌? 어떤 놈이……】
대놓고 적대적인 공격에 그녀는 이를 드러내며 돌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가, 사납게 세운 이를 다시 입술 밑으로 감추고 말았다.
돌멩이를 던진 이는 꼴사납게 울음을 터트리는 남자였다.
【빌어먹을 자식들! 이제 어쩔 거야! 아즈테카 놈들이 보복하러 올 텐데!】
그는 전투의 여파로 부숴진 벽돌을 주워서는 또 던져댔다. 억하심정이 담긴 적의는 같은 생각을 한 일부 시민들의 증오 어린 눈빛을 유발했다.
【왜 하필 우리 도시에서 싸움을 벌여댄 거야! 저 괴물들이랑 치고 박고 싶었으면 너희들끼리만 하라고! 평원에서 싸웠으면 됐잖아!】
【이 망할 몬스터 놈들! 저 놈들이랑 싸우다가 죽는 게 싫었으면 우리처럼 얌전히 살았으면 될 거 아냐! 너희 싸움에 말려든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관심도 없었겠지!】
【살인자 놈들! 너희들 때문에 우리는 전부 다 제물로 바쳐질 거야! 그럴 거면 너희가 직접 우릴 죽이든가! 왜 너희 때문에 우리가 괴물들한테 잡아먹혀야 하는데!】
싸움이 벌어질 때는 쥐 죽은 듯 숨어 있던 시민들이 돌을 던져댔다.
─퍽! 나는 네페르티티에게 날아든 돌을 쳐냈다. 그녀가 날아오는 돌멩이를 보고도 막으려는 몸짓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페르티티가 날 올려다보았다.
“노르드.”
“시시한 궤변입니다. 일일이 맞아줄 것 없어요.”
“……평범한 돌. 맞아도 다치지 않아.”
그게 문제가 아니잖냐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스테틸의 용태를 살폈다.
네페르티티처럼 묵묵히 서 있는 그녀에게 튀는 돌. 당연히 육체만 놓고 보면 완전히 인간인 네페르티티보다 방어력이 높은 그녀에게 돌멩이 쯤은 데미지가 안 된다.
저 돌을 맞음으로써 생기는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겠지.
【그, 그만! 그만해 주세요!】
그래서였을까. 비늘에 덮인 몸으로도 막지 못할 언니의 아픔을 나누고자 이스테틸의 동생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돌멩이가 단련하지 못한 소녀의 이마를 찧었다.
【아윽…!】
용의 비늘 사이로 빨간 피가 흘렀다.
생김새는 평범한 인간과 다른 그들도 피는 빨간색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돌을 던지고 만 청년이 놀라고, 이스테틸이 눈을 부릅뜨면서 앞에 나서려는 찰나. 소녀는 빠르게 말했다.
【어째서 언니가 돌을 맞아야 하는데요?! 저희 언니는 오늘 제물이 될 뻔한 애들을 구해줬는데!】
“원망할 상대를 착각하면 안 돼.”
그렇게 소녀의 외침이 멀리 퍼졌을 때, 네페르티티의 말이 분노에 이성을 잃은 시민들을 한꺼번에 닥치게 만들었다.
“……너희들이 두려워하는 건 아즈테카. 너희의 가족이나 친구를 죽이고, 괴롭히던 상대도 똑같이 아즈테카.”
평소처럼 중얼거리는 말로도 시민들을 멈추게 한 그녀는 눈을 반개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텐데도, 그녀의 뜻은 시민들에게 닿는 것처럼 말이다.
“……원망에 몸을 맡겨서 편해지는 건, 잠깐의 기분 뿐이야.”
【원망할 상대를 착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린 키아라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께서 ‘어르신’이라며 두려워하던 작자의 입을 통해 들은 바로는, 여러분들도 스콜라키체 분들이 습격받으리란 걸 알고도 모른 척 하셨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뭐! 우리더러 너희를 위해서 죽어달란 말이야?! 이 도시엔 싸울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아즈테카 놈들의 기분을 거스르면 몇 명이나 죽을 줄 알고!】
【그 입 안 닥쳐?!】
끝까지 감정에 떠밀린 청년이 성을 내자, 눈을 치켜뜬 다른 시민이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뻐억! 묵직한 펀치가 청년을 자빠트렸다.
그는 빨개진 주먹을 떨면서 으르렁댔다.
【그렇게나 화를 낼 용기가 있으면, 저 분들이 아니라 아즈테카 놈들한테 덤벼들었어야지! 우리 딸이 제물로 잡혀갈 때는 얌전히 있던 새끼가 뭘 이제 와서 무고한 척이야!】
【맞아! 우리 중에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개소리하지 마! 너도, 나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어! 죽기 싫어서 포기한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제물로 제단에 올려졌던 아이들을 안으며 울고 있던 시민들의 말이었다. 얻어맞은 뺨을 붙잡으며 청년은 눈물을 쏟아냈다.
【시발…! 시바알!! 그러면 우리 형은 왜 죽어야 했는데!! 너희들이랑 나랑 뭐가 다르냐고! 오늘이 아니었으면, 입장이 반대였으면 니들이라고 그딴 말이 나왔을 거 같아?!】
【이 개자식이 끝까지!】
【그만!!!!】
격해지는 감정 다툼을 어떤 여인이 만류했다.
큰 목소리를 내지른 경험이 적었던 걸까. 기침을 하며 다급히 달려온 여인이 외쳤다.
【무슨 말을 하든 늦었어요. 은인이든, 원수든, 방문객들의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시장님! 하지만 저 놈들이!】
【다들 제발 좀 닥쳐요! 우리끼리 싸워서 뭐가 바뀝니까!】
크게 일갈한 그녀는 사람들을 시켜서 원망하던 시민들을 억류시켰다.
전사는 없어도 나름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있었나. 노끈에 묶인 시민들은 끝에 끝까지 악을 쓰면서 끌려갔다.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분쟁을 정리한 여인이 말했다.
꽤 아름답지만, 저 아름다움이 장점이 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고생이 심했으리란 건 딱 봐도 알겠다.
존나 이 미친 나라에 대한 좆 같음이 무럭무럭 자라나는군 그래.
【……됐다. 신경쓰지 마라.】
시장이라던 여인을 보지도 않고서, 이스테틸은 다친 여동생의 이마를 살폈다.
【쓰세요. 치료약입니다.】
잠깐 눈치를 보고 포션을 내밀었다. 이스테틸도 나처럼 눈치를 보다가 받았다.
【……고맙다.】
동생에게 포션을 마시게 하는 이스테틸. 시장은 시민들을 물리고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스콜라키체 여러분. 일행 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의 누구도 여러분을 비난할 자격은 없습니다. 저희는──】
【됐다고 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거듭 무례를 저지른 뒤에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이후 잠시나마 말씀을 나눌 수 있을까요?】
【기다려라. 우리끼리도 상의가 필요하니.】
【예.】
알겠다며 물러나는 시장.
그렇게 저쪽은 얘기가 일단락 된 듯 했다. 이스테틸은 동생의 등을 떠밀고, 상처를 치료하는 스콜라키체의 전사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들어라! 죽은 놈은 없는 모양이지?】
【암! 죽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어!】
【진짜라니까. 여기서 죽었으면 신한테 개기는 미친 짓은 안 해도 됐잖아?】
전사들은 이스테틸과 함께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눈에 불을 켜고 이를 드러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키아라가 질문했다.
【뭔가 알아낸 게 있습니까?】
【그래. 내가 설명하지.】
용가리의 얘기를 빠르게 전한 그녀는 팔짱을 낀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무슈흐렐리틀은 원인불명의 이유로 인해 반병신이 됐다는 모양이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 그녀는 나한테서 눈을 돌리고 말했다.
【자기가 우리 엄마인 줄 아는 정신 나간 용은 그 병신 도마뱀 새끼를 잡아먹고, 바다에서 자는 뱀장어 새끼까지 먹으려 하고 있다.】
【농담이지? 그렇게 덩치를 불린 뒤에는 복수하기도 힘들겠는데.】
【다행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토나슈일루카틀을 불러낼 무녀는 아직 살아있다더군.】
【숨을 돌릴 틈 정도는 있는 셈인가.】
【……그러면 저 친구들도 협력하신대냐?】
우리들의 안색을 살피는 스콜라키체들. 미소를 짓는 이스테틸.
【왜? 너희들이 해치울 몫이 줄어들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나?】
【……으하하하! 그래, 그렇고 말고!】
【집에 가실 거라면 우리 가족들도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 보면 어때!】
용기와 광기는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치솟는 광기를 용기로 삼던 광전사들 같은 게 극단적인 예시다. 총과 전차로 싸우는 현대 군인들에게서도 느껴지던 면모가 저들에게서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잘 말해줬다, 멋진 머저리들! 돌아간다! 우리 가족들부터 안전한 곳에 보내놓고, 그 뒤에 차차 할 일을 고민해 보지!】
─빙글! 다부지게 외친 이스테틸은 나를 지나치면서 어깨를 툭 쳤다.
시민들의 분노가 이스테틸의 감정을 정리시켜준 계기가 됐던 걸까. 저들의 모습을 보고 복잡하던 기분을 컨트롤한 듯한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이스테틸 씨.】
【……너는 진짜로 나쁜 자식이야. 여기서는 뭘 골라도 개자식이잖나.】
【제 고향에서는 착한 일을 하면 행운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길 바라죠.】
【빌어먹을 격언이군. 그래도 착각하지는 마라. 너흴 원망해도 네게 이를 세우진 않았을 거니까. 우리도 그 정도의 분별은 한다.】
【당연히 그러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단지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협력하기 께름칙해지긴 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스테틸도 내 양심고백을 부하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꽤 피곤해 보이는 그녀에게 미안한 기분으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알려주지 않으셔도.】
【긁어부스럼밖에 더 되나. 나중에 내가 알아서 밝히고 얻어맞던가 하마. 네 여자한테 전해줘. 원망할 상대를 착각할 뻔 했다, 말려줘서 고맙다고.】
눈길을 받은 네페르티티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이스테틸은 픽 웃었다.
【돌아가자. 너희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물론입니다. 남은 선발대랑 합류해서 아틀란티스로 돌아가죠. 여러분들도 같이요.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상의를 해 봐야죠】
나는 그리 말하면서 스스로 되뇌였다.
‘상의? 아니지.’
내가 할 일은 설득이다. 그 예지몽이 사실이건 아니건 현실성은 충분했다.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리들이 고를 문제는 어떻게 싸울지, 그 방법 뿐이었다.
─톡톡.
그렇게 눈을 반개하는 내 가슴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내 앞에는 아무도 없다. 이 사인은 미스릴 메달에서 전령 역할을 해 주는 발퀴리에였다.
나는 주변을 살피고 마나로 노트에 편지를 썼다.
─다나야? 대화히기 힘든데, 편지로 줄래?
아마 스콜라코에 남아 있던 다나로부터 왔겠지.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편지를 받았고, 그 내용을 읽은 순간 얼마나 낙관적이었는지 눈치챘다.
─노르. 나야, 프랑.
프랑의 필적으로 적힌 쪽지.
─아틀란티스에서 보일 정도로 커다란 몬스터가 서쪽 해안에서 싸우고 있어.
하프 드워프인 그녀의 손이 글자를 적는 중에도 떨리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반듯하지 못한 필적이었다. 나는 쪽지를 읽어내리며 인상을 썼다.
─아마 노르가 말해줬었던, ‘지면에 뜨는 달’과 ‘개지 않는 새벽’ 같아.
듣고 있냐? 아즈테카 용대가리 씹년아.
느그 특식 새치기 당했댄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