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38화 (737/1,009)

***

우리는 소식을 듣자마자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 대륙은 서쪽의 밀림을 빼면 주로 평원지대였기에, 고지대에서라면 그 대괴수결전 고지라 VS 콩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일행을 설득할 문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쿠우웅…!!!

대륙 자체가 떨리는 듯한 지진이 내 얘기에 현실미를 덧입혔으니까.

휘오오오오─!!

그리고 막 내려왔던 제단으로 달려올라가자, 그 변화는 뜬금없이 일어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적란운이라도 일어났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쳐들었다가 기겁했다.

“이 씨발! 저게 뭐야!!”

“하늘이……!”

따라오던 네페르티티마저 말을 잃었다.

대낮이었던 하늘이 밤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냥 바뀌기만 한 게 아니다. 마치 영역싸움을 하는 것처럼, 서부의 하늘은 어두컴컴한 밤과 어슴프레한 새벽으로 나뉘어져 있던 것이다.

환상적인 경관으로 이름 높은 극지의 오로라도 저 비현실적인 이적(異蹟)과 비교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일 것이었다.

이스테틸은 나한테서 받은 망원경을 챙겼다.

【우신들의 권능이다. 이 대륙은 시간도 공간도 저들의 영토야.】

【……니미 시발. 독재에도 정도가 있어야죠.】

혀를 내두르면서 제단의 계단을 다 오르는 우리.

높이가 부족하다. 마법까지 동원해서 제단에다 받침대를 쌓아가며 우리는 망원경 너머의 풍경에 이목을 쏟아부었다. 현실 몬스터버스는 못 참지.

콰과과과아아아앙─!!

그리고 내가 망원경에 눈을 갖다대려 했을 때, 전투의 여파가 우리 근처까지 날아왔다. 물줄기로 보이는 폭격이 땅에 국토지경선처럼 금을 그었다.

또다시 익숙한 위화감을 느끼며, 나는 그 미친 파괴의 현장에 혀를 내둘렀다.

“……와, 미친 놈들. 지들끼리 세계멸망의 날을 찍고 자빠졌네.”

“별로 안 웃긴 농담입니다. 울프헤딘 경.”

쪼개라고 한 소리 아냐, 새꺄.

밀림의 해안에서, 거리 차이가 무색하게도 눈에 띄는 몬스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산인 줄 알았던 무언가가 발을 내디뎠다.

은색 비늘의 도마뱀과 해수면에서 고개를 내민 바다뱀이다.

미치고 팔짝 뛸 크기다. 내가 싸워본 적 중에서 가장 컸던 유니콘 흑마법사의 골렘도 저 새끼들의 무릎까지나 올까?

하지만 제일 미쳐도는 건 체급이 아니었다.

바다뱀, 오르틀라위퍼가 물줄기를 뿜었다. 사람 손으로는 몇 달 내내 그어야 하는 국토지경선을 원큐에 그어버리는 포격이었다.

밀림의 나무들이 축구공에 먼지처럼 튀고, 우리로부터 수 km 떨어진 곳에서 흙먼지가 폭격맞은 운동장처럼 우수수 솟았다.

─Huuuuoooooo……!

그렇지만 그 물줄기에 직격타를 맞은 도마뱀은 주춤하지도 않았다.

저게 말이나 되나? 양심없는 새끼들. 고지라도 좆간 파일럿들이 열심히 미사일을 쏴대면 예의 상 아파하는 시늉이라도 내줬는데.

【약해졌다곤 하지만 권능은 잃지 않았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이스테틸의 말이었다.

【권능? 쓰벌, 무슨 권능이요?】

【왕은 자기 영지에서 굴종하지 않지. 우신들은 각자 어느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영토로 삼고서, 그 영역에서는 무적의 존재로 군림한다.】

무적.

유치하게 들릴 정도였지만 이렇게 보고 있자니 전혀 웃기지 않았다. 존나 시간을 멈추는 흡혈귀 같은 게 그나마 더 잡을 가망이 있어 보이는데?

【솔직히 일부러 안 물어보고 있었는데. 대체 그 권능이란 게 뭡니까?】

【……토나슈일루카틀은 낮에, 무슈흐렐리틀은 밤에, 오르틀라위퍼는 새벽에. 저들은 자신이 군림하는 시간대 동안에는 어떤 상처도 입지 않는다.】

【……뭐요?】

어떤 상처도 입지 않는다고?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묻는 나.  마인크래프트 치트 모드도 아니고, 아예 데미지 자체가 안 들어간다는 말인가?

보스 패턴도 그 지랄을 냈다간 운영자가 컨텐츠 소모 막는다고 욕 먹는데. 나는 어이가 가출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따졌다.

【아니 뭔, 그게 말이 됩니까? 저 미친 새끼들 시간도 막 조종하잖아요!】

밤에 무적이라고? 방금 전까지 낮이었잖아? 저 해변만 존나 밤이 됐는데?

【시간을 조종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군림하는 시간대를 불러오는 거지.】

【와, 그럭군요. 그게 그거지 시발.】

밤에는 무적이 되는 몬스터.

그런데 그런 보스 몹이 지가 꼴릴 때마다 밤을 불러낸다고?

지랄났다, 이세계 온라인! 나는 망원경을 눈에다 쑤셔박을 듯 굴었다. 우신들이 각자 자기 덩치를 편안하게 덮고도 남을 영역에서 싸우고 있더라.

‘존나 소름 돋네. 저런 걸 무슨 수로 잡아?’

영역 밖으로 끌어내려?

지랄. 침대 밖으로 잡아당겨도 이불을 몸에다가 둘둘 말고 끌려올 거 같은데?

【느낌 상 그것만 갖고는 모자란데, 또 있죠?】

제대로 개좆된 기분으로 묻는 나.

집에서는 무시를 당하는 꼰대 가장들도 회사에 출근하면 근무시간에만 무적이 된다. 같은 원리로 치자면 납득이야 된다. 내 느낌 상으로는 한 발 더 남았다.

【우신은 시간을 지배하고, 공간을 지배하죠.】

의외로 대답해준 건 키아라였다. 그는 망원경도 없이 눈을 반개했다.

【지면에 뜨는 달은 땅에 서 있는 동안 우신들 중에서도 으뜸 가는 힘을 얻고, 하늘을 덮는 태양은 하늘에 있는 동안 무한하게 거대해진다더군요.】

【염병의 연속이지만 무적 패턴보다는 낫네요.】

【어떨까요.】

몬스터 사냥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내 낙관적 발상에 말을 아꼈다.

【그저 죽지 않을 뿐인 괴물보다 죽이기 힘든 괴물이 더 무섭죠. 필멸자의 몸으로 살아남은 괴물은, 자연스레 투쟁할 줄도 안다는 거니까요.】

내가 그 말의 진의와 바다뱀 새끼의 권능을 물어보려고 했을 때였다. 망원경에 보이던 오르틀라위퍼는 한 줌의 마나로 기현상을 일으켰다.

해일이었다. 그것도 작은 도시 하나는 삼키고도 남을 높이의.

─툭. 네페르티티가 무심코 망원경을 떨어트렸다.

나도 자칫하면 그럴 뻔 했다.

“……애미.”

공룡을 멸망시켰던 소행성 충돌은 1km 안팎의 해일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당연히 그 중생대 백악기에 배드엔딩을 내려준 자연재해 급은 아니었다. 해일의 위력은 높이만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수량이 어느 정도의 스피드로 움직이느냐니까.

운동에너지는 속도 X 무게.

10kg 정수물통에 발을 찧는 것보다 10g 정도 하는 총알에 맞는 게 더 아프다.

그래도 정수기의 물통을 갈아봤거나, 세일하는 음료수를 몇 L씩 옮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실생활에 밀접해서 무기로 여기기는 힘들지만, 물은 동일 부피 대비, 흙이나 바위에도 버금가는 질량의 액체라는 걸 말이다.

비교군으로 삼을 지형의 실제 높이를 모르기에 막연한 상상이긴 했다.

단지 내 예상이 맞다면, 저 해일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핵 쉘터라도 지면까지 뽑혀나올 것 같았다. 아틀란티스가 맞으면 섬이 반쪽나지 않을까.

그리고 오르틀라위퍼는 그 해일을 내려쳤다.

오리털 이불을 대충 던지는 것만 같은 가벼움!

대륙의 일부를 뜯어내버릴 듯한 해일이 지척에 다가오고, 밤과 새벽이 땅따먹기를 하듯 꿈틀대는 그 찰나. 무슈흐렐리틀의 손톱이 해일을 찢었다.

꽈르르르르르르르르릉──!!!

내 머리카락이 전투의 여파로 뒤집혔다. 시내의 시민들이 오줌을 지리며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슈흐렐리틀의 손톱은 해일을 싸그리 튕겨내고 해안선을 뒤로 밀어버렸다.

도시국가 2~3개를 갈아버릴 해일을 받아치고도 모자라서, 남은 힘으로 해수면을 뒤집어 엎다니? 저기에 맞으면 완전체 오딘도 뒤지는 거 아냐?

땅에 서 있는 동안에는 저 놈이 우신들 중에서 가장 힘이 강하댔던가.

진짜 신이 아니라고 해서 얕봤던 걸지도 모른다.

신화에서 신이 아닌 몸으로 신을 죽인 존재는 99%가 괴물인데 말이다.

“……………….”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또다시 위화감이 등골을 후볐다.

“……이스테틸. 저런 거랑 싸우러 가?”

내가 전황을 고찰하는 동안, 네페르티티는 속이 갑갑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콜리도. 그녀가 뭐라지?】

【저것들과 동급인 토나슈일루카틀에게 싸우러 갈 생각이냐시는군요.】

할 말이 궁해지는 질문에 그녀는 신룡의 보옥을 움켜쥐며 항변했다.

【……제길, 우리도 직접 본 건 처음이라고! 우신들은 저렇게 힘을 휘두르지 않아! 자기 힘을 소진하면 마지막 1마리만 마지막 승자가 될 테니까!】

그렇기야 했겠지. 지금까지는.

어부지리는 어부가 서로 싸우던 조개와 황새를 취할 수 있어야 성립한다. 그런데 저 지랄을 보면 저들의 자이언트 월광 도마뱀은 오늘이 제삿날이 되게 생겼다.

바다뱀은 사냥한 도마뱀을 먹고 다리를 기르며 뭍에 올라올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뱀까지 완식하지 않을까.

쿠르르르르르─!

오르틀라위퍼는 그 몸의 3분의 1 정도가 노출된 채로 다시 해일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마나는 거의 쓰지 않았다. 느껴지는 힘은 그저 한 줌 뿐이었다.

무언의 질문을 눈치챈 이스테틸이 대답했다.

【저 바다뱀의 권능은 바다에 잠겨 있는 동안, 바닥없이 힘을 회복한다는 거다.】

【마나를 말입니까?】

【맞아. 그래서 오르틀라위퍼는 우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다른 우신을 경계하지 않고 잠을 잔다. 개지 않는 새벽이란 건 그런 뜻의 호칭이지.】

그렇겠지. 다른 우신한테 선빵을 맞아도 권능이 발휘되는 새벽을 불러내고 바다 밑에 숨어서 힘을 회복할 자신이 있을 것이었다.

새벽은 생물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잠자는 북해의 신은 ‘개지 않는 새벽’인 것이었다.

언제고 새벽을 불러오는, 늘 잠을 자는 유일한 우신이기에.

【권능으로 시간을 바꾸고 영지에서 힘을 얻는 저들은, 현실의 시간대와 지형에서 승패가 갈린다. 그러니 바다에 잠겨 있는 오르틀라위퍼는──】

【자기 힘을 가장 쉽게 최대치까지 발휘 가능한 우신이라는 거군요.】

그래서 대낮에 죽어가는 호적수에게 덤벼들었다.

자기가 가장 강한 시간대─새벽─에는 호적수도 자신을 경계하며 피해다녔을 테니까. 약해진 도마뱀은 대낮이니만큼 아즈테카 쪽을 경계하다가 저 기습에 당한 거겠지.

토나슈일루카틀이 강림하건 말건, 그러기 전에 저 이족보행 도마뱀을 잡아먹을 자신이 있는 거다.

이스테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좋지 않아. 2마리의 권능이 하나로 합쳐지면, 힘의 최대치는 물론이고 권능 면에서도 토나슈일루카틀에겐 승기가 없다.】

【쯧……. 고민이고 뭐고 할 틈이 없군요.】

느그 용가리 마망이 뒤지거나 말거나 우리 알 바 아니긴 하다.

근데 레벨이 2배로 는 바다뱀이 아즈테카로 달려들어서 식인 마망을 잡아먹으면 존나 대재앙이다. 내가 본 멸망은 브리타니아 뿐이었지만 다른 나라라고 이겨낼까?

【콜리도 경. 저 셋이 합체진화 삼위일체에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요?】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전혀 공격이 통하지 않고,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신으로서 권능을 휘두르는 재앙의 탄생입니다.】

담담하게 말하지 마, 시발.

‘저 새끼들이 합체하면 못 잡는다는 얘기잖아.’

워그레이몬과 메탈 가루루몬도 합체진화로 오메가몬이 되자 그 전까진 상대도 안 되던 디아볼로몬 떼거지를 다 쓸어버렸지 않았나.

그런데 3단 합체진화라고?

‘이건 거의 드래곤볼 수준의 파워 밸런스인데.’

아, 미안. 말이 심했다. 드래곤볼도 피콜로 바로 다음 프리저가 나오진 않았다고.

지구 용사 크리링은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난 이제 막 에네르기파를 습득한 지구인인데. 구미호 포타라 합체는 나루토 세계관으로 꺼져주세요.

‘이 대륙에서 제일 가까운 게 바이츠니아랬지.’

내가 예지에서 본 건 브리타니아의 멸망이다.

미쳤다고 궁극완전체 우신몬이 더 가까운 데를 두고 먼 곳부터 때렸을까.

내가 예지에서 본 건 이세계를 한 바퀴 돌아서, 바이츠니아부터 브리타니아까지 모든 국가를 전부 멸망시킨 후의 광경이었을 수도 있다.

‘시발…… 어떻게 하지?’

저기 꼽사리를 껴서 잡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저만한 전투에 끼려면─가능한가는 둘째치고─ 우리도 그만큼 빡세게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 가진 걸로 비벼볼 수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 2번째 해일이 무슈흐렐리틀을 갈겼다.

당연히 반격하는 무슈흐렐리틀. 나는 침음했다.

【왜 막지? 밤일 때는 무적이라면서?】

이유는 바로 알아냈다. 상처없이 공격을 막기는 했는데, 하늘의 시간대가 달라졌다.

5:5. 반반씩 나뉘어져 있던 밤과 새벽의 영역.

그 영역권이 조금씩 새벽 쪽에 기울고 있었다. 서쪽 밀림의 해안을 뒤덮은 시간대의 변화는 70% 정도가 새벽에 치우쳐버렸다.

“지금은 낮. 시간의 변화는 우신들의 권능.”

생각을 정리하며 중얼거리는 네페르티티.

“그래도 무슈흐렐리틀은 지금, 상처가 깊어.”

“소모전으로 가는 거군요.”

돌아버리겠네. 그래서 계속 공격하는 거였나.

저 새벽과 밤의 경계선은 인위적인 것이다.

저게 사라지면 무적이 풀리는데, 저걸 유지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우신들 자신. 자연스러운 밤이면 몰라도 대낮에 밤을 불러내려면 많건 적건 소모가 있을 것이었다.

다친 몸으로는 무적 상태를 유지해주는 권능을 계속 펼치지 못한다.

불러낸 밤이 새벽에 밀려서 사라졌을 때가 무슈흐렐리틀의 최후였다.

쏴아아아아아아아─!!!

그래서였을까. 해일을 일으키는 오르틀라위퍼는 느긋했다. 판을 장악한 바다뱀은 적의 부상이 심각해질 때까지 공격해대면 된다.

이 대륙은 밤이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왜 도망치지 않지? 무슈흐렐리틀.】

계속되는 4번째 해일. 안색이 나빠진 키아라가 공중을 밟고 더 올라갔다.

【내륙으로 피하면 돼. 오르틀라위퍼가 해일을 이끌고 쫓아오더라도 해안선에서 맞서는 것보다는 유리할 텐데, 왜?】

고향의 말로 중얼거리는 혼잣말이었지만, 우리 모두가 그의 말에 공감했다.

도망치면 될 텐데? 오르틀라위퍼가 다른 놈보다 유리하게 잠까지 퍼질러 잤던 건 바다가 내륙이나 하늘보다 더 유리한 공간이기 때문 아닌가?

저 해일을 보라. 오르틀라위퍼는 바다를 통째로 뭍까지 끌고 오고도 남을 테지만, 그래도 적에게 무한한 힘을 주는 바다에서 떨어트리는 건 전략적으로 당연한 판단이다.

그런데 무슈흐렐리틀은 적진에서 맞서고 있다.

“……하늘인가.”

그게 이성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눈치챈 덕분이었다.

왜 무슈흐렐리틀이, 나랑 싸울 때도 악착 같던 몬스터의 신이 적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워주는가. 나는 그 이유를 눈치챘다.

그리고── 5번째 해일은 기어이 힘이 빠진 무슈흐렐리틀의 몸을 맞췄다.

새벽은 기세를 타고서 의기양양 밤을 밀어냈다. 반으로 나뉜 듯 하던 서부 해안의 하늘은 완전히 동틀 녘이 되었다. 밤이 끝나는 하루의 시작처럼.

하지만 밤의 영토가 10% 미만으로 깎여나간 그 찰나.

오르틀라위퍼가 승리를 확신한 그때, 상처 입은 도마뱀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유도 뭣도 아니다. 비늘 뿐이던 등에서 은색 날개를 펼쳐졌으니까.

펄럭─!! 능수능란하게 날개짓하며 비상하는 용.

【무슈흐렐리틀이 하늘을…!!】

키아라가 경악했다. 나는 저 도마뱀 새끼가 한 짓을 깨닫고 소리쳤다.

“변신의 마나입니다!! 저 자식, 마법으로 날개를 길렀어요!!”

충왕대군의 몸에 소환당했을 때 습득한 것일까.

아마 저 새끼한테는 처음으로 영역 밖에서 싸워본 체험이었을 것이었다.

나와 싸우며 자존심을 접고 충왕대군의 육체에 남은 마나로 날개를 펼쳐봤던 무슈흐렐리틀. 그는 자기 반신을 잃은 대가로 소환술사의 육체에서 그 정수를 뽑아왔던 것이다.

대지와 밤의 신이 하늘을 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적을 압도하면서 승기를 잡으러 뭍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던 오르틀라위퍼. 그 멍청이의 모가지를 가장 강한 우신의 손톱이 붙잡았다.

지축을 흔드는 경악의 비명. 포효하는 우신.

물줄기가 무모하게 적진에 돌격한 무슈흐렐리틀의 몸통을 두들겼지만, 그는 노호성을 내지르며 호적수를 들고 날아올랐다.

촤아아아아아악──!

새벽과 바다의 신이 해안으로부터 끌려나온다.

이 공격으로 상처입지 않아도 상관없다.

철 덩어리를 못 부수는 생물도 그걸 옮길 수는 있으니까.

휘이이익── 쿠우우우우우웅!!!!

이 괴수결전에서 처음으로 살이 떨리는 마나의 용오름을 일으키던 용이 건져올린 오르틀라위퍼를 바닥에 메쳤다.

지진이 일어나고, 산이 무너졌다.

천체의 움직임도 부정하고 불러낸 새벽과 밤. 그 신의 권능은 해안에 펼쳐진 채다.

단지, 내륙 안쪽에 추락한 우신들은 그 영향권 밖에 있었다.

밤과 새벽의 우신들은 왕좌에서 내려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방심하다가 바다에서 끌려나온 오르틀라위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절체절명에 몰렸다. 바다뱀은 몸부림을 치면서 모습을 바꿨다.

없었던 다리가 자라나고 몸이 줄어들며 머리가 두꺼비처럼 넙데데해졌다.

하지만 무슈흐렐리틀과는 느낌이 다르다. 상황에 맞춰서 변신한 게 아니라, 변신이 풀려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콰득!

잠 많은 두꺼비로 돌아온 신이 무슈흐렐리틀의 목을 물었다. 무슈흐렐리틀은 그 두꺼비의 턱에다 손톱을 끼워넣었다. 두꺼비는 놀라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서 있는 무대는 대지(大地).

지면에 뜨는 달, 무슈흐렐리틀의 영역.

날개를 접은 팔의 근육이 융기하면서 거기 담긴 힘을 쥐어짜냈다.

─Nuuuuuoooooooooooooo!!!!!

우지지지직…!!

푸화아아아아악──!!!

개지 않는 새벽이라고 불리던 두꺼비의 머리가 뜯겨나가며 피의 비를 내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바다의 가호를 잃은 오르틀라위퍼는 머리를 뜯기고도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는 신조차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기에.

새벽은 끝났다.

한순간의 방심을 탓하기엔, 그 순간을 기다리던 사냥꾼의 지혜가 너무 치밀했다.

승리한 사냥꾼은 여운을 만끽하지도 않았다.

까드드득, 우드드드득…!!!

무슈흐렐리틀은 사냥감을 집어삼켰다.

야생 그 자체가 육체를 얻은 듯한 위압감.

만신창이로 승리를 거둔 신이 두꺼비의 머리를 털도 뽑지 않고 집어삼키는 모습을,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은빛 비늘의 도마뱀에게 긴 꼬리가 자라났다.

내가 예지에서 보았던 모습에서, 황금색 날개만 사라진 자태였다.

슥…. 나는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애미 뒤진 디지털 월드 같으니라고.”

양심없는 도마뱀 새끼. 진화 한 번 뒤지게 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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