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40화 (739/1,009)

***

【폐하. 북방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아즈테카의 수도.

그 웅대한 도시의 중심. 왕성보다 갑절은 높은 제단에 황제에게 보고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노예를 시켜 제단으로 황좌를 옮긴 여황제는 손을 저었다.

【들었다. 그 기동요새라는 놈이 제국의 강역을 침범했다지.】

【예. 이미 수도에서도 보이는 거리에 진을 친 저 반군도 그들의 사주일 것입니다.】

무슈흐렐리틀이 오르틀라위퍼를 잡아먹는 일이 발생한 후로부터, 아즈테카는 도시국가의 사방에 흩어져 있던 신민들을 수도로 끌어모았다.

원래부터 공포로 노예─가축─들을 통치해왔던 아즈테카다.

억압하던 이들이 없어지자 당연히 도시국가에선 봉기가 일어났다.

【그 봉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온 전사들의 영혼이 말한 침략자들도 남하해오고 있다. 당연히 스콜라키체나 폭도 놈들과도 손을 잡았겠지.】

당연하지만 아즈테카의 수뇌부도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일을 벌인 건 아니다.

국가의 존속이 어려워질 정도의 결단. 그렇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어머니 토나슈일루카틀과 악신의 결전이 코앞에 다가왔다.

아즈테카의 국운 정도만이 아니라, 인간의 시대 자체를 좌우할 성전이 아닌가.

그 신화의 싸움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속세의 흥망성쇠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사실대로라면 이때다 하고 모여든 어리석은 반란군의 소식을 황제인 그녀, 나우알리(Naualli)가 보고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운 나쁘게 결전 직전에 나타난 외지인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움직이는 요새라는 놈은 북쪽 바다를 통해서 쳐들어왔다지.】

【보고가 미흡하여 죄송합니다.】

【됐다. 어떠한 물건인지 상상이 안 가는 것도 아니야. 믿기 힘든 기물이지만 신과 가장 가까운 우리가 그 정도도 못 믿어서야 되겠느냐.】

나우알리는 며칠 사이 보고된 사건을 반추했다.

【우리는 저 개지 않는 새벽 때문에라도 북쪽의 국방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걸 알고 북해를 통해서 남하하고 있다고 보이는구나.】

아즈테카에게 북쪽 지방은 관심 밖의 땅이었다.

도시국가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외세의 침략자 같은 걸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북해는 어머니와 동급의 신, 개지 않는 새벽의 터전이 아니던가.

신의 권역을 뛰어넘어서 수도를 노리는 침략자? 있을 리가 없다.

그 자연지물과 다름없던 개지 않는 새벽이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개지 않는 새벽의 죽음을 알고, 과감하게 저 북해를 뛰어넘었군. 해양의 마수들은 우리 동포인 스콜라키체를 두려워할 터이니.】

【예. 폐하의 선지(先知)가 옳은 줄로 압니다.】

어머니의 피가 흐르는 스콜라키체의 냄새는 이 대륙의 해양 몬스터들을 도망치게 만들었다. 과거 그들의 어머니와 개지 않는 새벽이 싸웠던 이후론 줄곧 그랬다.

이를 노린 침략자들은 원래부터 경계가 얕았던 북방에 상륙한 것이었다.

【수도 바깥에서 기다리는 수천 명의 폭도들은 양동일 것이옵니다.】

제단에 오르는 걸 허락받은 군단장들은 준비해 왔던 생각을 읊었다.

【면밀하게 조사했사오나 저 무도한 반란세력 중 이렇다 할 강자는 없었사옵니다. 뿐만이 아니라, 누더기로 몸을 감싼 병사의 절반은 ‘같은 냄새’가 나더라는 보고입니다.】

【사술(邪術)로 불러낸 무언가겠군.】

나우알리는 즉시 답을 알아차렸다.

마나를 맡을 수 있는 전사들의 보고다. 쌍둥이 형제자매도 마나의 냄새는 다르건만, 완전히 같은 냄새를 풍기는 존재가 수천 명이 넘는다?

당연히 보통 생명이 아닐 수밖에.

그들의 추측대로, 도시국가의 저항세력과 같이 움직이는 병사의 절반은 천옷으로 정체를 감춘 나르메르-나일의 골렘이었다.

【왕홀에는 전사들의 영혼이 돌아오지 않았다. 생포됐거나, 영혼이 어머니의 품에 돌아가지 못한 채 소멸한 듯 하군.】

충실한 신하들은 숨기지 못할 경멸과 동정심을 드러냈다.

막시카─아즈테카 인─ 전사들의 숭고한 죽음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구원받는다. 그 죽음을 모독하는 침략자들을 향한 증오가 그들의 가슴을 그을렸다.

【잠시, 가엾은 우리의 전사들을 기리자꾸나.】

나우알리의 교지에 따라서 기도를 올린 그들은 곧장 열변을 토했다.

【저 침략자들은 철저하게 이 성전을 더럽히려 하고 있습니다! 수도의 방벽 밖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반란군은 미끼일 것이 분명합니다!】

【예상컨대 침략자들의 본대는 남하 중인 북쪽 군세일 것입니다. 도시국가에 남은 전사들이 적었기에 보고가 지연되는 걸 노린 듯 하옵니다.】

【흠.】

나우알리는 왕홀을 쓰다듬었다.

지금 수도의 상황을 보면, 서쪽에는 지배당하던 도시국가의 반란군이 진을 쳤고 북쪽에서는 침략자들의 병대가 내려오고 있는 상태였다.

수도가 적에게 포위당했다는 초유의 사태다.

평범한 전쟁에서라면 이런 판이 깔린 것부터가 망국의 징조일 텐데, 아즈테카 제국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나라와 국방의 형태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노예를 기르는 도시들과 제국의 강역을 빼놓고 보면, 아즈테카는 사실 도시국가 연합과 비슷했다. ‘연합’하는 방식이 공포통치이긴 했지만 말이다.

【침략자는 어쨌든 민병조차 막지 못했나?】

【제국의 노예들을 관리할 일부를 뺀 시민들은 전부 수도로 이전했습니다.】

【중과부적이었겠군. 뚫릴 만 해.】

【송구하옵니다.】

【되었다. 내가 내린 지시였으니.】

계단 앞에 모인 군단장들은 더욱 몸을 숙였다.

【도시국가를 관리할 전사들이 물러났으니, 그 공백을 노리고 봉기했군.】

여황제 나우알리는 코웃음을 쳤다.

【진심으로 우리들에게 복종하는 놈들은 적지. 애초에 복종하기를 바라지도 않았으니 당연하기는 하다만, 목줄을 풀어주자마자 이 꼴인가.】

이 나라에 있어서 막시카란 어머니의 피를 잇는 반인반룡을 일컫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모두 시민이자 전사다.

아즈테카 인 중에서는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폭력과 공포로 복속시킨 도시국가의 노예들에게 국가의 노동력을 대부분 맡기고, 시민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전부 전투병력.

국가로서는 파탄난 운영체제지만 상관없었다.

이 나라는 오직 존재 가치에 충실할 뿐이니까.

【허나, 놈들의 움직임을 보거라.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민병들 따위에게 뚫릴 동포의 전사들이 아니다. 양동작전이라기엔 너무 뻔하지 않느냐?】

황좌에서 일어난 그녀는 단차를 내려왔다.

【저 모자란 반란군들도 그렇다. 머리가 모자란 놈들이긴 하나, 대놓고 미끼로 밀어넣었는데 저리 순순히 따랐을까?】

【……저 폭도 무리에 침략자들이 숨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침략자 전원은 아니겠지. 하지만 강자를 몇 명 숨겨놨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 전사들이 퇴각하지 못하게 해치우고, 민병을 이끌어서 모였겠지.】

【그러면 북쪽에 상륙한 군대가 양동이겠군요.】

나우알리는 상냥한 미소를 짓고는 그렇게 말한 신하를 타이르듯 말했다.

【단순하게 보면 그렇겠지. 양동인 척 위장하고 저 민병들 사이에서 강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 기만책으론 나쁘지 않다만, 조금 허술하구나.】

【……폐하께서 하명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저 명에 따르겠나이다.】

【적의 목적을 생각해 봐라. 놈들은 개지 않는 새벽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지 않았느냐. 스콜라키체와 폭도들에게 우리에 대해 들었겠지.】

적에게 현명한 책사가 있다고 가정하고 보면 더 알기 쉽지 않은가.

【대륙 전체를 뒤흔든 악신들의 싸움을 보고도 득달같이 이 땅으로 달려들고 있다. 도주하는 게 당연한 판단인데도. 그렇다는 건 저들도 우리들의 목적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저 싸움을 느끼고도 신들의 결전이 벌어지려는 땅에 달려든다니?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침략자들도 죽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런 미련한 짓을 벌인 것은, 그래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녀.】

─콩. 나우알리는 기다란 왕홀의 끝으로 바닥을 찧었다.

【놈들은 무녀를 빼앗거나 죽이러 올 것이다. 이 강림의식을 망치고자.】

【……어머니의 강림을 막을 생각으로?】

【바로 맞추었다. 지면에 뜨는 달이나 어머니가 완전해지지 않도록 저지하는 게 도망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깨달은 것이야.】

【즉시 제단의 경비를 강화하겠나이다!】

군단장들은 부복하며 외쳤다.

성전이 가깝다. 개지 않는 새벽을 삼킨 악신을 상대로 어머니는 불리하다.

그 불리함을 메꾸고자 신민을 수도에 집결시킨 것 아닌가.

어머니와 악신의 전쟁을 앞두고 인간들의 수준 낮은 싸움으로 성전을 망칠 수야 있겠는가.

나우알리는 자상한 얼굴로 끄덕였다.

【성벽의 방어가 약해지지 않는 선에서 하거라. 대공방어에도 신경 쓰고. 언제 수도의 하늘을 침략자들이 날아다녀도 격추할 수 있도록.】

【예!】

【어느 쪽이 양동이고, 적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고려할 점이 아니다. 저들이 성벽을 뚫고 도시의 전사들을 넘어서 이 제단까지 도달할 수는 없어.】

─펄럭. 살색의 가죽 망토를 두르며 나우알리는 황좌 뒤로 걸어갔다.

【지금 바로, 강림의식에 들어갈 터이니.】

황좌의 뒤에는 손목과 발목에서 피를 흘리면서 제단에 뉘여진 전라의 여인이 있었다.

키는 작지만 생김새는 성숙하다.

바이츠니아의 실종된 황녀. 전사들이 찾은 하프 드워프인 무녀였다. 그녀는 기절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도 나우알리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멍청한 작전회의는 끝나셨나 모르겠네요.】

【듣기 싫은 이야기기는 했지. 안 그래도 길고 복잡한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는 소식이 아니더냐. 제물인 너에게도 슬픈 이야기였겠군.】

【하, 역겨워라.】

몇 년 가깝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변함없이 표독스러운 태도였다. 하지만 나우알리는 미소지을 뿐, 그 차가운 대답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바깥 대륙의 인간은 으레 이 영광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어머니께 바쳐질 제물이 된다는 영광을 말이다.

【알고 있느냐? 토나슈일루카틀. 내가 왜 게르마니아라는 나라의 말을 쓸 줄 아는지. 그리고 왜 이 대륙의 언어가, 우리들 막시카의 말이 게르마니아 어와 닮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네요. 저처럼 어머니의 뿌리를 찾아서 공부라도 하셨나?】

황녀는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메이링이라는 멀쩡한 이름을 두고 저딴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기를 수 년이다.

극진하게 대접받는다고 해도, 사람을 잡아먹는 이들의 친절이다. 피 냄새와 저 포악한 문화성에 토를 반복하며 익숙해져도, 이들의 사고방식에는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래, 바로 맞추었다. 어머니는 【바다】 너머에서 찾아오신 존재거든.】

나우알리는 바깥 대륙의 황녀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그녀가 소름 돋아 하건 말건.

【게르마니아가 섬기는 신들과 우리의 어머니, 그리고 다른 악신들은 출신이 가깝다. 너희 드워프들도 그러하지. 그래서 드워프는 우리의 피와 잘 맞는다.】

【손 치워요. 그리고 니다벨리르 드워프의 후손으로서 듣기 싫은 말이군요. 저 역겨운 뱀 놈들이 아스가르드에서 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정확히는 바니르 신족의 땅, 바나헤임이다.】

웃기지도 않는다. 황녀가 오만상을 쓰자 나우알리는 흑요석 단검을 흔들었다.

【신좌라는 개념이 있다. 신의 힘이 이 세상에 개입하기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어느 【권한】을 말하지.】

단락적으로 표현하면 신이란 의인화된 자연현상, 개념에 준하는 존재다.

사람이 숨을 쉬고 심장이 뛰어야 살 수 있듯이, 신에게도 ‘이름’이 필요했다.

【신좌가 없는 신이 세상에 개입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어떠한 ‘자리’가 필요하다. 꿈에서 타인의 모습으로 나오거나, 전사가 죽음을 앞두고서 보는 환각처럼.】

만약 노르드가 들었더라면 떠올리는 점이 있을 말이었다.

꿈속에서 가족의 모습과 입을 빌리거나, 숲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소녀의 모습으로 말을 걸거나, 다 죽어가는 전사의 앞에 그가 상상하던 존재로 등장하거나.

신좌를 잃었거나, 신좌가 부숴진 신은 존재하는 것에조차 남의 이름을 빌려야 하는 것이었다.

【연극의 역할과 같다. 배역을 할당받지 못하는 자가 등장인물로 등장하고자 한다면, 기존에 있던 등장인물의 ‘자리’를 빼앗아야만 하지.】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멀리에서부터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막시카의 전사들과 민병들의 포효. 전투가 시작되기라도 한 것일까.

이 나라의 식인종들이 죽건 말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황녀조차 그 함성에 의식이 쏠렸는데도, 여황제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그녀의 배를 눌렀다.

사아악….

나우알리의 흑요석 단검이 황녀의 갈비뼈 밑을 얇게 갈랐다.

통증이 없다는 것에 오한이 느껴졌지만, 황녀는 끝까지 자존심을 세웠다.

【그래서, 저더러 몇 년 넘도록 어머니 어머니 거리던 게 다 그 배역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거 참 웃기지도 않는 신앙이네요.】

【비웃는 건 네 자유지만,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한낱 인간이 신의 그릇이 될 수 있을 쏘냐. 너는 그저 통로일 뿐이다. 의식은 그 일환이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어머니에게 자유와 힘을 주고자, 어머니의 화신으로 지정한 무녀를 수 년 동안을 섬기고 또 섬긴다.

그렇게 해서 토나슈일루카틀을 【중간 가지】의 존재로서 확고하게 만든다.

【끝으로 그 화신체이 너를 제물로 바치면…… ‘연기를 토하는 거울’의 신좌를 빼앗지 못하고 몬스터로 존재하셔야만 했던 어머니께, 조금 더 자유를 되찾아드릴 수 있겠지.】

【……연기를 토하는 거울(Tezcatlipoca)?】

【낡은 막시카의 신이니라. 라그나로크로 죽은 신. 그 자가 자신의 신좌를 스스로 부숴버렸기에, 어머니와 남은 두 악신은 이 세계에 남을 자격을 얻지 못하셨다더구나.】

하지만 그것도 지면에 뜨는 달을 흡수하면 아무 문제 없다.

신좌가 빌 때를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신좌를 만들어내는 것도 결과는 동일하지 않겠는가. 이번 강림의식은 그 마무리를 시작하는 첫 단추였다.

【■■■ ■■■■■■, ■■■-■■■■■■■!!】

단검을 든 나우알리는 주문을 외웠다. 황녀의 귀로는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언어였지만, 손발에서 피보다 더 중요한 게 빠져나가는 것만은 확실했다.

우드드득…!!

황녀의 손과 발에 비늘이 솟았다.

개미가 마취된 살을 뚫고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남들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무언가가 안쪽에서부터 변해가는 듯한 감각에 그녀는 소리도 없이 아우성을 질렀다.

【■■■─ ■■■■ ■■■ ■■■■■■■■ ■■■■■!!!】

피를 빨아들인 단검이 역수로 돌았다.

저 동작은 본 적이 있었다. 저대로 칼을 꼽고서 몸을 가르고, 제물의 몸에 손을 집어넣고 산 채로 심장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황녀를 난생 처음으로 토하게 만들었던 의식이, 기어이 그녀의 몸에 벌어지려던 찰나. 제단에 누운 채로 죽을 때를 기다리던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떨고만 있던 제물의 색다른 반응에 나우알리도 순간 주문을 멈추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어머니의 피를 짙게 이어받은 황제의 제 6감이었을까.

카아아앙─!!!

그녀가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태양이 보이도록 뻥 뚫린 대낮의 제단 위로 누군가가 낙하했다. 그 인물은 제단의 결계에 부딪히며 그 반발력에 혀를 찼다.

“칫, 결계인가.”

【……침략자!】

의식도 멈추고 경악하는 나우알리. 어떻게 여길 찾아왔지? 군단장들더러 하늘을 경계하라고 명령한지 얼마나 됐다고?

나우알리는 몰랐다. 〈공간이동〉이라는 마법을. 천리안으로 보고 계산한 좌표대로라면 몇 명인가 더 제단에 직통으로 날아왔어야 했다는 것을.

그 〈공간이동〉의 술식이 수도에 깔린 결계에 튕겨나가서, 순간적으로 신의 눈을 뜬 노르드만이 좌표를 수정하고 원하던 곳에 도착했을 수 있었단 것을.

노르드는 닿자마자 살을 불태우는 결계를 야수회귀의 마나로 막으며 탄식했다.

“와 시발, 이 미친 놈들. 도시 전체로 모자라서 제단에도 결계를 깔아놨네.”

경악을 추스른 나우알리는 모르는 언어를 알려 들지 않았다. 이유는 나중에 알아도 좋다. 아무튼 저 침략자가 의식을 망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런데 백날 결계 깔아둬봤자 좆도 의미없쥬? 【ᚱ(Raidō)】.”

하지만 그녀가 황녀의 심장을 꺼내려고 들었을 때, 노르드는 공간의 틈새를 젖히고 결계를 뛰어넘었다. 차원마저 빠져나가는 참된 룬의 힘이 결계 따위에 막힐 리가 없었다.

“뒤져라, 퀸 랩틸리언─!!”

【크윽…?!】

까아앙─!!!

결계를 넘어선 그는 나우알리를 【게르튀르】의 초식으로 날려버리고, 연이은 초식으로 황녀의 몸을 속박하던 마나를 브류나크의 항마력으로 날려버렸다.

휘릭휘릭─! 공중에서 2바퀴 제비를 돌던 그는 부숴진 제단에 착지했다.

『네, 안녕하세요. 괜찮으신가 몰라. 혹시 이거 손가락이 몇 개로 보여요?』

그러고서 돌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서 아파하던 황녀의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었다. 황녀는 눈을 껌뻑거리며 오랜만에 고향의 말을 더듬거렸다.

『두, 두 개?』

『휴, 멀쩡하시네. 유이링 황녀님 언니 분 맞죠? 대충 훑어봐도 생긴 게 빼다 박으셨으니 대충 맞는 줄 알게요. 아, 몸은 안 봤으니까 걱정 마시고.』

『어? 에?』

『저가 사실 동생 분 친구인데, 잠깐 임의동행 좀 해 주시져. 절대 납치는 아님.』

그는 입을 벌리고 ‘이 새끼는 뭘까’하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황녀를 안아들었다. 더럽게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천리안 덕분에 어떻게 구해낼 수 있었으니 됐지 뭐.

“나, 강림.”

발가벗은 황녀에게 코트를 걸쳐주고서 노르드는 말했다.

“멋있음,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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