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황녀를 프렌드 실드로 삼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선쿨도 후딜도 없는 필중기를 쏴대는 랩틸리언 퀸 년이라도 나한테 타격을 넣을 마법을 황녀에게 상처 없이 날리지는 못할 것이니까.
저 여황제 년도 내가 황녀를 죽이면 어쩌나 싶을 거고,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부숴버리겠어!’라며 의식의 절차를 씹고 무녀를 죽여버릴 수도 없다.
나도 저 년도 지켜야 하는 전리품 같은 포지션.
‘그러니까 일단 황녀님을 방패로 튀고 보자.’
적의 홈 그라운드에서 싸워? 병신이신가? 저런 타입은 멀리서 저격해서 죽이는 게 최선이다. 거 뭐시냐, 내가 살던 지구에선 스나이퍼도 영웅으로 불렸잖아?
『빤스런할 거니까 얌전히 따라오세요.』
황녀님의 그렇게 귀에 속삭이자마자 나는 바로 후퇴했다. 등짝을 돌리고 튀었다간 까리하게 뽑은 브류나크 슈트에 칼침이 박힐 것 같으니 자제하고.
내 블링블링한 엘리트 두뇌가 떠올린 불세출의 인질극에 식인종 새끼들이 풀발해서 쫓아오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망치지 마, 이 비겁한 놈아!! 도망치지마!!】
【너 같은 놈보다 폐하가 훨씬 더 대단하시다! 훨씬 강하시다고!】
【폐하는 지지 않았어!! 토나슈일루카틀 님께서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어!! 끝까지 지켜냈다고!! 네가 진 거다!! 폐하의 승리다!!】
응~ 니들이 이긴 거 해~.
대대손손 36계 줄행랑은 전략 중 하나다.
아니, 아니지. 이건 도망도 아니다. 따져보자면 역돌격인 것이지. 전통 깊은 동요도 언급했다시피 이세계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걸으면 세계일주 한 바퀴를 마치고 뻑치기 쌉가능이다.
‘쓰벌, 그런 것보다 슬슬 텔레포트 멤버가 와 줄 타이밍인데!’
세미누드 황녀님을 굳게 끌어안고 빌딩보다 더 높은 제단에서 뛰어내렸다.
어디지? 병신 같이 상황파악도 안 된 상태로 저 제단 안으로 다이빙할 빡대가리는 없을 것이었고─뭣보다 제단의 결계 때문에 불가능하다─, 아마 이 근처 어디에 있을 텐데?
『꺄아아아아아악?! 떨어져요!! 떨어진다고요!!』
『안 죽으니까 괜찮아요!!』
어디 높은 곳에서 추락한 게 1~2번이던가? 이 지긋지긋한 추락 경험은 이미 대비를 해 두었다. 비행 마법은 끝까지 못 배웠지만 가진 걸로 커버 가능하다.
푸화아아아악─!!!
내 발밑에서 증기가 뿜어졌다.
기동력은 이걸로 커버하고, 발판은 야수회귀의 마나로 대용했다.
ᛒ(Berkanan)의 룬을 쓰면 공중에 실드를 칠 수 있다. 적이 때려도 밀려나지 않는 방패는 발밑에 설치하면 발판으로 아주 적합했다.
오딘의 눈으로 설계해 놓고도 컨트롤이 어려운 나머지 전투 중에는 포기한 기술. 그걸 룬 스톤과 템빨로 사용한 것이었다.
“뭉게뭉게-문워크(月歩)!”
근두운이나 로켓처럼 발에서 증기를 뿜어대면서 하늘을 종횡무진하는 나.
“노르드님!! 여기입니다!!”
비명을 질러대는 황녀님을 달래며 눈을 굴리자 바이콘 마법사단의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면서 나를 불렀다. 나는 가타부타 떠들기 전에 일갈했다.
“장판 패턴!!!! 피해욧!!!!”
“예? 아!!”
신족의 파워를 되찾은 바이콘족 마법사는 그에 걸맞는 무빙을 보여주었다. 콰가가각─!! 비행하는 그녀의 밑에서 흑요석 칼날이 마구 치솟았다.
이것 봐라. 역시 인질을 잡길 잘 했다.
인질도 안 잡고 저 제단에서 계속 싸웠다면 날 구출하러 온 사람은 바로 권능&마법 콤보로 목에 칼이 치솟아서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니까!
【제물을 놓고 가라, 침략자──!!】
흑요석 칼날을 타고 날아오는 랩틸리언 퀸!
여황제가 제단도 내치고 쫓아온 것이었다. 그년 뒤로는 용가리 모드로 변한 군단장들까지 있었다. 나는 거센 추격에 혀를 찼다.
“이 사람이 제물로 뽑힌 무녀입니다. 얼른 델꼬 튀십쇼. 〈공간이동〉으로.”
“주, 주문을 외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벌어줄 테니까 떠들 시간이 있으면 얼른 외워요!!”
허겁지겁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바이콘. 나는 대굴빡을 돌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지니까 흑요석 칼날을 직접 쐈다.’
권능의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럴 수밖에. 저 년의 마스터 클래스는 단련으로 손에 넣은 기술이 아니라, 외부에 영향을 끼치고 나와바리를 규정하는 몬스터 형 권능이었다.
저 우신들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무대를 만드는 힘!
하지만 단점도 있다. 나와바리 밖으로 나가버린 뒤엔 무력해진다. 우신들의 싸움이 나와바리 밖에 던져져서 끝나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게 몬스터 형 권능의 단점이었다.
산의 터줏대감인 호랑이도 남극에서 북극곰이랑 싸우면 불리할 것 아닌가. 나와바리에서만 존나게 쎄지는, 짐승적이고 몬스터다운 권능이기에 생긴 페널티였다.
거리를 두면 이긴다.
하지만 거리를 유지하려면 황녀가 짐짝이었다.
내가 튀면 결계 안에서 의식을 계속했을 거다.
이렇게 인질을 데리고 피난해도 그랬다. 권능의 효과권에서 튀려면 바이콘&황녀를 둘 다 데리고 도망쳐야 되는데, 그게 시발 말이야 쉽지.
꼴받는 상황에 내가 건틀렛에 끼우는 룬 스톤을 바꿨을 때였다.
쩌저저정─!!!
마법이 발동하는 전조도 없이 얼음이 방벽처럼 솟으면서 적들을 쳤다.
마법에 반드시 뒤따르는 마나의 여파가 없어서 오딘의 눈을 켠 나조차 몰랐을 정도. 마나를 맡는 코가 있어도 회피하는 건 언감생심 쌉에바였다.
【캬아아아아아─!!!】
기습적인 공격. 그 단단하던 반인반룡 군단장들마저 깊은 타격을 입은 눈치다.
“다나! 맞췄어요!”
“말 안 해도 보여요!”
티르시와 다나가 각자 날아오고 있었다. 얼음의 바람을 두르고 비행하는 티르시와, 발퀴리에처럼 등에 빛의 날개를 펼친 수녀복의 다나였다.
“역시 티르시! 나이스 샷이에요!”
나는 얼굴을 밝히며 외쳤다. 주문을 완성한 뒤 〈공간이동〉으로 날아와서 선딜을 생략하고 발사한 것이었다. 아마 베로니카가 날려보내준 걸까.
“우리 누나, 겉으로 보기엔 완전 대천사 같네!! 얼스터 사이비면서!!”
“시끄러워! 그 이상하게 생긴 갑옷은 또 뭔데! 순간 누군가 했잖아!”
맞다, 지금 투구까지 썼었지. 못 알아볼 만 하네.
【방해꾼들이 떼를 지어서 몰려오는구나!!】
쨍그랑─! 여황제가 얼음을 때려부수며 마법을 발사했다. 쏜살같은 흑요석 송곳들이다. 다나는 그 마법을 깨닫자마자 대동한 발퀴리에들을 내세웠다.
까가가강─!! 4마리의 발퀴리에들이 방패와 룬 마법을 전개해서 가드. 다나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느껴지는 파괴력에 기겁하며 외쳤다.
“야, 잠깐만?! 이 년 존나 쎄잖아!!”
“발퀴리에 남은 거 없어?!”
“남은 애들은 거의 민병대 쪽에 배치했어!!”
시발, 그랬지. 생판 남남이라지만 적군의 병력을 분산시켜줘야 하니까 뒤지게 둘 수도 없었다. 내 작전 상 필요한 계책이기도 했고.
즈웅─!
그때였다. 요상한 소리를 내면서 수도를 뒤덮은 결계가 내려갔다. 힘으로 부숴져서 나오는 반응은 아닐 것 같았다. 전원이 내려간 랜턴 같은 느낌.
빙하기를 맞이한 공룡 같던 군단장들은 파충류 대가리로도 안색이 바뀌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도의 결계가 내려갔소!】
【불가능해! 결계의 조작법을 모르면 부순다고 해서 내려가는 게 아닌데!】
나는 그 외침을 듣고 눈치깠다. 키아라일 거다.
이제 민병대가 발퀴리에의 힘으로 성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겠지. 그리고 발퀴리에의 힘이 발휘되면 전쟁의 판도는 우리들한테로 넘어온다.
에퀴녹스도 창세의 권능을 얻기 전까지는 발퀴리에들과 정면 전투를 꺼려했다.
어인 레이드 때 보여주었듯, 군단전에서 발퀴리에들의 에인헤리 소환권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S'da- hA!!!】
이상한 언어를 읊은 여황제가 거의 접근해왔기 때문이었다. 처맞으면서 감 잡은 효과권까지 꼴랑 몇 미터! 나는 시간을 벌고자 달려들었다.
─탈칵! 건틀릿에 룬 스톤을 세팅.
【ᚱ(Raidō)! ᚨ(Ansuz)! ᛒ(Berkanan)!】
가속, 마법 강화, 마나 변화.
거의 하나씩만 쓰던 룬을 연발하면서 강화한다. 뭉게뭉게-문워크의 스피드를 2배까지 뽑아내면서 룬으로 마나의 창을 뽑았다.
까아아앙─!!!
공중에서 여황제와 격돌했다.
왕홀 같은 것으로 막으면서 권능의 마법을 쏘아대는 랩틸리언 퀸. 나도 움직일 때마다 몸이 갈렸지만 우주방어태세에 들어간 뒤부터는 버텨졌다.
【폐하의 싸움을 방해해선 아니 될 일!】
【저 계집들부터 처리한다!】
티르시의 화끈한 아이스바 어택에 매콤한 맛을 본 군단장들은 불을 뿜으면서 그녀들을 노려댔다. 아르마슈나스 모드가 아닌 티르시한텐 버거운 적.
하지만 마스터 클래스, 혹은 신좌의 힘은 그녀 외에도 있었다.
“후우…!”
티르시가 요격하는 사이에 숨을 들이킨 다나가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빛이 응축하면서 자그만 반딧불처럼 퍼져나가고, 제 모습을 갖추었다.
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날개의 여기사들!
일전에 싸웠던 토르의 〈인신〉도 보여줬었던, 신좌의 능력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펼치는 권능이다. 나와 함께 한 특훈의 성과였다.
“가라!! 땜빵 발퀴리에 부대!!”
창조주에게 너무한 호칭으로 불린 미완성 발퀴리에들이 날아갔다. 〈발퀴리에의 평원〉에서 만든 게 아니기에 불완전하긴 했지만 파워는 충분했다.
문제는 원료가 되어줄 마나인데, 다행히 그쪽은 민병들한테서 억지로 쥐어짠 마나를 옥새에 잔뜩 충전해뒀다. 괜히 저 무모한 바보들을 받아준 게 아니란 말씀.
【괘씸한 놈!! 한눈을 팔 여유가 있느냐!!】
【아 씨바 진정헤 미친년아!】
귀신같이 영창 중인 바이콘에게 마법을 날리는 여황제를 튕겨내고 〈번개의 화살〉로 흑요석들을 격추시켰다. 그리고 바로 백스핀 블로를 날렸다.
─쩌엉!!!
〈얼어붙는 손길〉에서 뽑아낸 빙결의 술식을 ᚨ(Ansuz)로 강화한 펀치! 여황제는 얼굴이 굳어선 마법을 쏘았지만, 나는 더욱 피해냈다.
【아까랑은 상황이 반대구만! 랩틸리언 퀸!】
여황제의 솜씨가 살짝 굼띠다. 티르시의 마법에 맞은 타격이 적지 않았나.
파충류답게 추위에 약한 것일까. 얼음의 마나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모습.
예전에도 한 말이지만 마법은 마나를 넣을수록 위력이 늘어나는 구조라서, 마법사의 끕이 낮아도 강자에게 딜이 박히기 쉬웠다.
‘저 년한테는 마스터 클래스의 안목이 없어. 그 대가로 마나량은 많지만, 행동을 읽히지 않는다면 아무리 머리가 굴러가도 좀 쎈 몬스터에 불과해.’
무엇보다 큰 변화는 권능의 범위 밖으로 피하기 쉬워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효과권 밖으로 빠져나오며 개조를 통해서 출력만 존나게 높인 오리지널 마법과 【게르튀르】 식 오러 투창 기술을 쏴댔다.
“끝났습니다! 황녀님, 이리로!”
대피를 맡은 바이콘이 주문을 완성하려는 찰나.
나랑 키아라가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던 작전이 천리안이란 치트키 정찰 기술과 〈공간이동〉으로 성공하기 직전에, 여황제는 다시 마나를 터트렸다.
【O'sap! Aburaha-gus! Rrr'a Koatl!】
내 투창을 몸으로 받고, 팔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서 여황제는 제단에서도 터트렸던 오의를 다시 한 번 발동했다.
황녀를 안은 바이콘만을 교묘하게 노리는 발동.
그녀가 드라큘라 꼬챙이 전설이나 때까치의 잔혹한 살인유희에 걸린 쥐처럼 민찌까스가 되려는 차! 나는 휴머니티 건틀렛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딱!
【ᚦ(Thurisaz). ᚦ(Thurisaz). ᚦ(Thurisaz).】
동일한 룬의 3중 발동.
ᚨ(Ansuz)의 룬을 새긴 골렘 코어 나이프를 잔뜩 써서, 본인의 마법실력을 초월하는 거대한 골렘을 만들었던 프랑. 그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기술이었다.
마법사와 독자적으로 기능하며, 룬 마법을 강화시켜주는 룬 스톤.
그 특징을 최대로 써먹는 출력 증폭.
그리고 이 어스틀란 대륙에 상륙했을 때 느낀, 기이한 위화감.
티이이잉─!!!
그 모든 것을 통합한 룬 마법은 내 마나를 뭉텅이로 깎아내면서 여황제의 권능에 의한 대마법의 초고속 무영창 발동을 취소시켰다.
우리 바이콘 쿠팡걸을 꼬챙이로 만들려 들었던 마법은 아무 기적도 일으키지 못하고, 마나 구성 차원에서 완전히 분해되었다.
【이 기적, 어머니와 우신들의……!】
내가 무슨 짓을 한지 눈치챈 것일까. 현명하던 여황제의 지혜는 불운하게도 이때만큼은 약독(藥毒)으로 작용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ᚱ(Raidō). ᚱ(Raidō). ᚱ(Raidō).】
사고가 백지가 된 랩틸리언 퀸은 내 룬 마법의 발동을 놓쳤으니까.
자기 마법과 권능이 내게 철회당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년도 눈치를 깠겠지.
같은 룬을 최대 3개까지 증폭시켜서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말이다.
─즈우웅!!
건틀렛이 룬 만다라의 밴다이어그램을 펼쳤다.
ᚦ(Thurisaz)의 출력이 3배가 됐듯, ᚱ(Raidō)의 룬을 통한 단거리 워프도 마찬가지.
당연히 그 도약 거리는── 300% 증가한다.
─부웅!!
차원을 도약한 나는 여황제의 정면에 워프하며 그년의 명치에 주먹을 댔다.
계속해서 권능의 효과권 밖으로 도망치던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급속접근한 상황. 자기가 생각하던 거리보다 3배 이상 도약한 장거리 워프.
달인으로서의 안목이 없고, 의식의 헛점을 찔린 여황제는 대처하지 못했다.
【그 애한테서 떨어져. 이 썅년아.】
나는 태권도의 전통적인 품새, 발경을 펼쳤다.
랩틸리언의 비늘? 알 게 뭐냐.
나한테는 내장을 후벼내는 심폐정지술과, 적의 중요내장을 파악할 지식이 있다.
그래.
말할 것도 없이, 수의사는 파충류 환자도 환영이니까 말이다.
─으적!!!!!
오러는 몬스터의 겉가죽을 뚫고, 생각보다 인간들과 다르지 않은 여황제의 내장을 터트리며 상반신을 2배 가깝게 부풀렸다.
가슴 가죽을 물풍선처럼 확장시킨 것은 여황제 본인의 내장 쉐이크였다.
괴물의 육체건 뭐건 상관없이 명백한 치명타.
【커흑.】
칠공에서 피를 뿜은 랩틸리언 퀸은 권능을 잃고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