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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흐렐리틀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다나가 만들어준 임시 무대에 올라온 나는 그걸 눈치채고 빙긋 웃었다.
이 대륙에서는 창세의 권능이 쉽게 발동한다.
상륙 때부터 느꼈던 위화감은 우신들의 전투를 봤을 때 확신으로 바뀌었다.
오르틀라위퍼가 바다를 휘저어댔을 때, 그놈이 뿜어내던 마나는 너무 적었다. 그에 맞서는 무슈흐렐리틀도 소모량만 보면 도토리 키재기였고.
무적이 되는 권능은 문제가 아니었다.
남들은 1쿠퍼로 빵 한 덩이를 살 때, 자기들만 빵집을 통째로 사버리는 수준의 교환비.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무적을 풀어도 못 이겨.’
저 폭리에는 반드시 비밀과 내정(內情)이 있다.
하다 못해 가장 많은 마나량이 관측됐던 순간이 다른 것도 아니고 충왕대군의 정수로 날개를 만들 때 아니었나. 내가 ‘막대하다’고 느낀 마나의 움직임은 그때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눈치챘다.
에퀴녹스가 권능 하나로 피라미드를 날려버리고 공간을 일그러트렸을 때처럼, 혼자만 다른 세상의 것으로 느껴지는 우주적인 차원의 힘.
마치 저들만 다른 세상의 존재인 양 휘둘러대는 강대한 권능.
“창세의 권능.”
우신들은 이세계와 지구를 만든 창조신의 힘을 전투에 쓰고 있다는 걸.
“크헤헤! 여기까지 알아낸 건 좋았는데 말이지!”
─콰아아앙!!! 땅을 두들기는 주먹을 피해내면서 나는 마구 웃었다. 참호에 포탄이 떨어지자 실성해갖고 미친 듯 웃는 병사가 된 심정이었다.
─Houooooooooooo!!!
투쾅, 투쾅, 투콰과광─!!!
꼬리와 손톱이 성의 평원을 마구 휘저었다.
이 성은 엄연히 프레이야와 그 신좌의 대리인인 다나의 영역. 무슈흐렐리틀이 자기 권능을 주장할 수 있는 나와바리가 아닐 텐데도 저 꼬라지다.
나랑 하늘성에 내던져진 무슈흐렐리틀은 땅에서 힘을 얻는 권능을 잃고도 여전히 존나게 강했다. 무적은 유지 중이겠지만, 힘만 봐도 그랬다.
“끼에에에에에엑!! 브류나크야, 니 애비 뒤진다!!”
“삐에에에에─!!”
다나의 권능, 그녀의 영역이라는 특수성을 빌려 불러낸 브류나크의 본체가 바람 마법으로 내 등을 떠밀어줬다. 이게 아니었으면 보폭 차이로 진작에 밟혀 뒤졌다.
【ᚱ(Raidō)!】
구신의 마나를 상징하는 하얀 까마귀도 룬으로 회피를 보조했다. 뇌 용량이 딸려서 같이 써먹지 못했던 물리/마법 스킬의 총출동이다.
진짜 끔찍한 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직 힘이 후달린다는 것!
펑펑 터져가는 땅을 죽어라 달리며 피하며 나는 등골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창세의 권능을 자기네 적성에 맞춰서 자신만의 권능으로 만든 게 이세계 신들 각자의 권능이야! 당연히 무슈흐렐리틀의 권능도 그 연장선이겠지!’
저 권능은 창조에 가장 특화된 힘.
적성은 필요하지만 그 창조는 물질만이 아니라 개념도 포함한다.
오딘은 창세의 권능으로 룬 문자를 정립했다.
발퀴리에를 만들고, 로키와 헤니르에게 도움을 받아서 인류도 만들었댔지.
그리고 라그나로크가 찾아오기 전, 다음 세대의 신세계인 지구를 창조했다.
당연히 혼자 하지는 않았겠지만,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진짜 신이 전투용으로 발전시켰으면 이 정도는 되겠지, 시발!!’
순수한 창세의 권능은 전투용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발전형인 토르의 번개는 미스릴 클래스의 깡패에게 쥐어줘도 신의 위용을 보여주었다. 〈발퀴리에의 평원〉도 그렇고 말이다.
전말은 몰라도 우신들은 창세의 권능을 사용해 특정 시간대에는 무적, 특정 공간대에는 무한하게 강해진다는 권능을 만들었을 것이었다.
특정한 시공, 영토 안에서의 힘을 부풀리고자.
‘권능으로 필요한 마나 소모를 감소시켰다!’
저만한 힘을 한낱 몬스터의 육신으로도 휘두를 수 있도록!
그게 우신들이 자기 한계치보다 높은 힘을 쓸 수 있는 비결이었다.
마나 한 줌을 수십 배로 부풀려서 마나 소모를 갈음하는데 어떻게 당해낼까.
인플레이션 당시의 잠바브웨 달러냐고. 그것도 아니면 치트오매틱 쓰는 동물농장인가? 성실하게 파밍해서 키우는 일반 유저는 서러워서 살겠나.
“씨발럼의 궁둥이맨 새끼!! 이세계 온라인 운영자는 반성하라!!”
─Rrrrrrroooooo!!!!
“테에에에에에엥!!!”
어찌저찌 권능의 절반을 쳐냈는데 이 개염병을 떨어야 했다.
이게 신과 인간의 체급 차이였다.
물론, 하루 종일 술래잡기만 할 거라면 이렇게 불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Rrrrrrrrr…!!
그 증거로, 보라.
거칠게 공격하던 무슈흐렐리틀도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있지 않은가. 땀을 한 바가지 흘려댄 나는 비교적 올려다보기 편해진 도마뱀에게 뻐큐를 슥 날려줬다.
“허억, 허억…… 그 덩치로 날뛰려니까 소모가 크지? 응?”
이 성은 다나의 영토다. 대지로부터 힘을 받고, 마나를 삥땅칠 수 없다.
본신의 힘만으로 저 덩치를 유지하고 싸워야만 한다, 이거다. 휴스로이트에서 한 판 붙었을 때랑 마찬가지로 말이다.
‘밑에서 날뛰는 토나슈일루카틀을 생각해라.’
나랑은 싸우기 싫지? 나 하나 잡아먹어도 얻는 것도 없을 것이니까.
‘당연히 성에서 뛰어내리고 싶겠지.’
어차피 저 새끼는 밤에는 무적이다.
추락사? 권능이 유지되는 동안은 두렵지도 않을 것이다. 떨어질 때 토나슈일루카틀이 낚아챘다간 좆 되겠지만 여기 계속 있어봤자 마찬가지.
‘……자,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 그치?’
사실 지상이 정리될 때까지 내가 저 뱀 새끼랑 놀아주면서 시간을 끌 생각이었는데,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뒤질 것 같다.
‘내가 저 놈한테 밟혀 뒤졌다간 작전이고 뭐고 파탄난다.’
정 아니면 다나에게 권능을 해제시키고 셰드멘호테프에게 직접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는데……
‘혹시 내려가면 된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나?’
어떻게든 나는 잡고 가겠다는 킬딸충 마인드는 곤란한데.
─Rrrrrr…….
내가 저 도마뱀 새끼의 지능에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꾸드득! 꾸득! 살이 뒤틀리는 음색! 육체가 변형하는 징조에 나는 흠칫했다.
‘변신 마법?’
저 뱀대갈통의 질량이 작아지면 진짜 좆 된다.
그 가능성을 방지하려고 직접 여기까지 올라온 건 맞는데, 싸우는 꼴을 보니까 저 괴물딱지한테 달라붙어서 울프헤딘의 권능으로 변신을 해제시킬 수 있을랑가 모르겠다.
그래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렇게 내가 언제든지 저 뱀 새끼한테 달려들 수 있도록 마나를 끌어올렸을 때.
【ᚹᚺᛃ: ᛁᛋ: ᚾᛃᛟᚱᛞ: ᛋ: ᛋᚢᚲᚲᛖᛋᛋᛟᚱ: ᛒᛚᛟᚲᚲᛁᛝ: ᛗᛖ?】
무슈흐렐리틀이 말했다.
자신의 성대를 인간의 언어에 맞게 개조해서.
─왜 뇨르드의 후계자가 나를 막지? 라고.
“……뭐, 이 시발아?”
나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해신의 후계자? 내가?
해신(海神) 뇨르드. 프레이야의 애비.
게르마니아 구신(九神) 중 하나.
기열 공군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 해군 대장의 장손? 그건 또 무슨 혼종 라노벨이지?
‘……아틀란티스 때문이군.’
대충 엘리트 대갈통에 쪼인트를 까 보니까 그런 결론이 나왔다.
바다의 패자인 아틀란티스가 해신과 관련된 게 아닐까. 어인 새끼들도 그렇고 이름도 비슷하자너. 뇨르드나 노르드가 그게 그거지.
솔직히 아틀란티스가 동력이 어디서 나서 저리 쑥쑥 움직이는지도 의문이긴 했다.
저기에도 만능 무안단물 창세의 권능이 발라져 있다면 퍼즐이 딱 들어맞는걸?
‘됐어 시발. 착각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지.’
거기까지 생각한 내가 저 병신의 착각을 정정해주지 않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이족보행 도마뱀 새끼가 혀를 쉬익거렸다.
【ᛁᛏ: ᛋ: ᚠᚨᛁᚾᛏ: ᛒᚢᛏ: ᚺᛖᚱ: ᛋᛏᚱᛖᛝᚦ: ᚱᛖᛗᚨᛁᚾᛋ.】
─희미하지만 그녀의 힘이 남아있군.
【ᚦᚨᛏ: ᛋ: ᚷᚱᛖᚨᛏ: ᛁ: ᚹᚨᛋ: ᚾᛖᚱᚹᛟᚢᛋ: ᛏᛟ: ᚲᚱᛟᛋᛋ: ᚦᛖ: ᛋᛖᚨ: ᚹᛁᚦ: ᛟᚾᛚᛃ: ᚦᛖ: ᛈᛟᚹᛖᚱ: ᛟᚠ: ᚦᛖ: ᚠᚱᛟᚷ.】
─잘 됐어. 개구리 놈의 힘만 가지고선 바다를 건너기가 불안하던 차였지.
좆도 못 알아먹을 소리를 중얼거리다 송곳니를 드러내는 무슈흐렐리틀.
무슨 착각과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뚝, 뚝… 치이이익…!!
침이 뚝뚝 떨어지는 꼴이 딱 굶주린 개 같네.
에비, 지지야. 땅 녹아내리는 거 봐. 뼈 삭겠다.
“……어, 혹시 나랑 야근하려는 건 아니지?”
─Rruuuoooooooooooooo──!!!!!
맞는가 보다.
유산소 운동 세레나데가 조금 더 길어질 느낌.
와! 너무 즐겁다! 나는 결국 못 참고 크레이지 파라오께서 친히 선물해주신 신호탄을 하늘에다가 냅다 던져버리고 말았다.
퍼엉─! 불꽃놀이 폭죽 같은 게 공중에서 크게 터졌다.
“씨팔, 번지점프 작전은 취소다! 기상나팔 작전 시작해애애앳──!!!”
─Nuoooooooooo!!!!
덩치를 생각해, 좆부랄 놈아! 니 크기를 따지면 나는 쿠쿠다스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데, 뭐 먹을 게 있다고 나를 처먹으러 들어!
인생 씨발 개 같은 거.
나는 아가리를 벌려가며 덤벼오는 도마뱀에게서 또다시 장대한 빤스런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