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아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발할라의 전사들은 그 손톱을 우신에게 세웠다.
“죽고 나서라도 죄를 사해 받을 기회다! 뒤지기 전에 한 방이라도 먹여!!”
고함을 치며 다나는 그들의 영체를 강화마법으로 채찍질했다.
다나는 지상의 전투에서 발퀴리에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영혼을 다룬다는 터부를 대놓고 쓰기 힘들다는 건 둘째 이유이고, 제일 가는 이유는 이때를 위한 전력 보충이다.
이스테틸과 다른 쪽에서 저항군의 전투를 맡던 네페르티티까지 올라왔지만, 인간들 사이의 전투는 거의 마무리된 상황. 전력의 재분배는 당연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상에서 발퀴리에들에게 소멸당하고, 지금 이 성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 영혼 병사들은 생전에 다 쓰지 못한 에너지를 터트리려는 듯 포표했다.
─Rrrrrrraaaaaaa!!!
물론 그 과감한 돌격은 무슈흐렐리틀에게 거의 타격을 주지 못했다. 개수일촉(鎧袖一觸)으로 쓸려나가는 병사들은 신의 발을 붙들기도 벅찼다.
체구 차이 때문에 팔로 공격하긴 어렵지만, 짓밟거나 꼬리를 휘젓기만 해도 충분.
─으저저적!
용의 피를 일깨우면서 날아다니는 일부를 빼면 그들은 일격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개죽음은 아니다.
【소멸한 에인헤리로부터 동력을 회수합니다.】
【마나 충전 완료.】
발퀴리에들의 손에 소멸한 영혼들의 마나가 빨려들어갔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영혼들은 생전의 마나를 거의 남긴 상태!
그리고 에인헤리들의 영적인 죽음은 그들을 수확하는 발퀴리에에게 마나를 회복시켰다. 에인헤리가 남긴 마나를 회수한 발퀴리에들은 마법을 펼쳤다.
그녀들은 전사이자 마법사.
육탄전은 불필요하다.
필요한 건 신을 죽일 대포였고, 충분한 마나가 있다면 발퀴리에들에겐 그럴 능력이 있었다. 그녀들이야말로 라그나로크를 대비한 전쟁병기이기에.
태양의 십자가 비추는 밝은 하늘을 룬 만다라가 수놓았다.
【일제포화 개시.】
─투두두두두두!!
미스릴 클래스의 마법이 꽂혔다. 무적의 권능을 잃은 무슈흐렐리틀에게 조금씩 타격이 누적된다. 달인도 꿰어죽일 투창 세례는 신도 무시하지 못할 위력이었다.
【ᛞᚨᚢᚷᚺᛏᛖᚱ: ᛟᚠ: ᚨ: ᛁᛞᛁᛟᛏ!!】
무슈흐렐리틀은 포화를 뚫고 돌진했다.
이 기회에 그녀의 후계자를 잡아먹고 힘을 불리겠다는 생각은 하늘에서 밤이 걷혀버렸을 때부터 사라진지 오래였다.
토나슈일루카틀과 싸운다는 목적도 버렸다.
아직은 희미할지언정,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이 싸움에서 챙겨야 할 것은 새로운 권능이 아니라, 본인의 목숨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프레이야의 권능은 본인을 죽이면 끝난다.
원래 주인부터가 나약한 바니르 신족의 계집이었거늘, 그 신좌를 꿰찬 인간 따위 그의 손톱을 버텨낼 수 있겠는가.
“……시끄러운 신. 품격 없어.”
“브류나크! 가서 네페르티티 좀 도와!”
당연히 그것을 두고 볼 노르드와 네페르티티가 아니었다. 어깨에 1마리씩 까마귀를 얹은 그들은 오러를 감은 무기로 우신의 오금을 후려쳤다.
─Krrraaaaaaaaaaaa!!!
쿠우웅─!
돌진하던 무슈흐렐리틀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에게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거나 막을 능력이 없었다. 원래라면 성립되지도 않을 싸움이 아닌가. 무예를 단련하지 않은, 그저 강할 뿐인 몬스터의 한계였다.
휴스로이트에서 겪은 것과 같은 추태에 우신의 이빨이 울렸다. 부웅─! 때늦은 꼬리가 휘저었을 때는 반격을 예측한 달인들이 피해낸 뒤였다.
“쪽팔리냐, 새꺄! 의외로 인간미가 있는걸! 괴수로서는 0점이야!”
“높은 지능도 때로는 단점.”
여러 발퀴리에의 마법이 융합한 창이 무슈흐렐리틀에게 꽂혔다. 한손으로 붙잡고 막은 그는 창을 던져버리고 발치의 에인헤리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돌격과 포화는 계속되었다. 갑옷과 같던 비늘도 쏟아지는 공격에 조금씩 흠집이 나며──
─쩌적.
끝끝내 실금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나를 호위하던 티르시는 얼굴이 밝아졌다. 저 발퀴리에들의 공격력을 다나가 강화하고, 마나를 차곡차곡 회수해서 단발의 위력을 높인 덕이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추가 강화 없이는 발퀴리에의 마법으로도 상처를 입히는 건 요원하다는 뜻!
그 잠깐의 기쁨이 거짓말처럼 티르시의 머리는 시리게 차가워졌다.
‘추락시키지 않고 이대로 잡을 수 있을까?’
아무리 계산해 봐도 어려워 보였다. 지혜와 책략으로 궁지에 밀어넣었지만 여전히 힘이 부족하다. 원래 생각했던대로 떨어트릴 수밖에 없을까?
티르시는 베로니카에게 상황을 묻고자 메달을 꺼내면서 말했다.
“다나 씨, 작전이 통하고 있어요. 강화마법을 풀지 말고…… 다나 씨?”
말을 걸어도 다나의 대꾸가 얕다. 혹시 마나가 고갈됐거나 체력이 소진된 것일까? 놀란 티르시는 옥새나 포션으로 회복시키는 걸 염두하면서 다나의 표정을 살폈다.
“권능으로 마나를 갈음한다…… 창세의 권능은 생명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하지만 그녀는 지쳐 할 여유도 없었다.
일사분란하게 전황을 살피면서 내면의 권능에, 자신에 얻은 신좌와 손끝에 아른거리는 깨달음을 되새기고 있었다.
“창세의 권능은 마나보다 상위의 힘…… 아니, ‘똑같은’ 힘.”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다나의 정신은 또렷했다. 아니. 지금만큼 머리가 선명해졌던 순간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다나는 눈을 반개했다.
“농부가 중력을 몰라도 사과는 땅에 떨어지지.”
그녀가 지금 발퀴리에들을 강화시켜 주고 있는 마법도 따지고 보면 권능이다.
인간이 다른 존재의 힘을 강화시킨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인간의 장기나 내부구조, 영혼에 그런 능력은 붙어 있지 않잖은가.
그 부자연스러운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마법인 것이다.
‘신들의 힘이라는 프레임에 휘둘릴 것 없다. 난 예전부터 권능을 쓰고 있었어.’
어려울 게 무언가. 인간에게 가장 친절했던 천공신은 이미 신들만의 전유물이었던 권능을 룬 어의 형태로 인간들에게 전파하지 않았는가.
창세의 권능에서 파생된 오딘의 권능, ‘룬’.
룬에서 파생된 인간의 마법체계와, 그 변화형인 픽트의 모사 마법.
프레이야의 권능을 쓰는 감촉과 마법을 다루는 감촉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창세의 권능이라고 못 다룰 이유가 없지!!”
3번에 1번 꼴로 실패하던 그 감각이 손가락에 탁 걸리는 것을 느끼며 다나는 영혼에서부터 힘을 짜내며 권능을 펼쳤다.
─반짝! 픽트의 신이 준 선물의 다나의 영혼이 가진 재능을 개화시켰다.
챠르르르르르르르──!!
프레이야의 신좌가 자아내는 창세의 권능이 한 토막의 빛처럼 전장을 휘감고, 우신과 싸우던 모든 이들에게 자기 능력 이상의 마나를 충전시켰다.
다나 본인의 마나가 약해도 상관없다. 이 권능은 마나보다도 상위의 힘이니까.
적과 싸우는 전사들을 복돋는 권능.
같은 신좌를 가진 레티티아는 쓰지 못했던 힘. 그녀처럼 자신을 강화하지 않고, 싸워주는 이들의 한계를 높여주는── 축복의 권능이었다.
“……마나 빵빵레후!”
마음 여린 아내의 성격이 그대로 담긴 듯한 다정한 권능이다. 노르드는 설명을 받지 않아도 전부 이해하고 우렁차게 고함쳤다.
“다나 교수님이 에너지 드링크를 내려주셨다!! 네놈들 낙원은 망했어!! 이제부터 이 평원은 야근이 지배한다!! 뒤질 때까지 일해라아아아앗─!!”
“야, 시발!! 남이 깨우친 권능을 노예 봉급으로 치부하는 게 어딨냐?!”
해석은 어쨌든 전황을 밀어붙이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힘이었다. 네페르티티는 오러의 빛이 진해진 걸 눈치채고 무슈흐렐리틀의 무릎을 노렸다.
─까아앙!!
여신의 축복과 달인의 무예가 합쳐지자, 신들의 가호를 받는 영웅담처럼 비늘이 뜯어졌다. 네페르티티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납득했다.
“……위력만 잔뜩 늘어났어. 수녀 엄마, 의외로 단순무식.”
이 축복의 권능이 발동 중인 동안에는 권능을 잃은 무슈흐렐리틀을 상처입힐 수 있다. 육체의 방어력만 보면 그는 신이 아니다. 강한 몬스터일 뿐.
─Nuaooooooooooo!!!!
방금 전보다 위협적으로 변한 적들.
무슈흐렐리틀은 또다시 생각을 바꿔야 했다.
토나슈일루카틀의 후예들은 문제가 아니다. 발퀴리에들의 공격은 타격이 심하지만 먼저 죽여야 할 대상은 그들이 아니었다. 무슈흐렐리틀은 권능을 발동했다.
─푸확!
공간이 찢어지며 우주 같은 어둠을 담은 액체가 쏟아졌다. 무슈흐렐리틀은 얼마 전에 얻은 권능을 사용해서 그 밤의 해일을 쏘아냈다.
투카아아악─!! 천공성의 구름 바닥을 관통하는 물대포. 네페르티티는 공격을 피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제동에 멈칫했다.
빗나갔던 물 웅덩이가 슬라임처럼 네페르티티의 발목을 붙들었다.
“소환수?”
중얼거리며 채찍으로 웅덩이를 박살냈지만, 그 순간에는 공격을 뚫고 맹진한 무슈흐렐리틀이 네페르티티에게 손을 내려치고 있었다.
“삐에에엑─!!”
마나로 실드를 발동하는 브류나크. 효과는 미비했다. 저지하지 못한 방어막이 박살나면서 사방에 튀었을 때, 네페르티티는 브류나크를 끌어안았다.
피하기를 체념해서? 설마.
그녀는 축복을 받은 후에도 맞으면 즉사할 게 뻔한 공격을 침착하게 관찰하고 점프했다. 체조선수처럼 몸을 비틀며 채찍에 회전을 넣었다.
─휘릭!! 촤아아아악!!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크게 튀었다. 어딜 스친 건지는 순간적으로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양팔과 브류나크는 무사했기에 그녀는 상처를 받아들였다.
두껍고 거대한 손가락의 틈새로 빠져나온 네페르티티는 팔을 당겼다.
─파츠츠츠츠!! 채찍은 점프력과 원심력을 그녀만의 무술에 빚어넣고서 위력을 높였다. 오러를 감은 채찍이 스쳐지나가는 우신의 얼굴로 날았다.
그녀보다 커다란 눈과 눈이 마주치자, 네페르티티는 난생 처음으로 싸우면서 조금 웃었다.
“……노르드가 날 지켜주러 올 줄 알았어?”
안 그래도 그러려는 걸 눈짓으로 말렸어.
무슈흐렐리틀에겐 들리지 않을 뒷말을 삼켰다.
휘리릭─ 퍼엉!! 네페르티티트의 채찍은 우신이 유일하게 신중하게 지던 눈알을 두들기고, 각막과 안구를 부수며 터트렸다.
─Kaaaaaaaaaaaaaaaaaaaaa!!!
네페르티티를 지키러 달려올 노르드를 노리고자 했던 수류(水流)는 조준되지 못한 상태로 뿜어져 천공성을 두쪽냈다.
─덥썩!
날개를 편 브류나크가 자력으로 착지하지 못할 그녀를 낚아챘다.
“삐에, 삐에에에!!”
“……응. 엄청 아파. 다리 부러졌어.”
부러졌다고 해야 할지, 허벅지 밑으로 두 바퀴 정도 돌아간 모양이었다. 뜯어내고 의수를 다는 게 더 빠르겠지만 노르드라면 아마 고쳐주지 않을까.
그래도 신을 쓰러트릴 순간을 마련한 대가로는 값싼 편일 것이었다.
쿠오오오오오─!!!
무슈흐렐리틀이 순식간에 닿지 못할 원거리에서 발퀴리에들은 마법을 완성시켰다.
설계 상의 성능보다 강해진 발퀴리에 30마리가 마나를 응축한 빛의 검! 무슈흐렐리틀은 지체없이 발사된 검을 막았으나, 검은 신축하며 그의 가슴에 꽂혔다.
─꽈릉!!!
비늘이 불꽃에 데인 옥수수 알처럼 튀기며 신의 흉곽이 갈라졌다.
터져나오는 비명으로 사방을 흔들면서 무슈흐렐리틀은 등으로 파고드는 빛의 검을 붙잡았다. 가슴이 갈라졌지면서 심장이 드러났다.
해신의 후계자는 그의 육체를 본뜬 가짜 육신을 해체하고 사용했다.
무슈흐렐리틀이 강림한 육체의 구조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빛의 창은 막아냈지만 심장을 맞았다간 죽는다. 이 육신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
화르르르륵!! 쩌저저저적─!!
그렇기에 에인헤리들이 쓰러진 자리에서 솟아난 마나의 용오름을 봤을 때, 무슈흐렐리틀에게 그게 함정이 아닐지 따져볼 시간은 없었다.
불과 얼음의 마나가 휘돌았다.
전사들의 영혼에서 마나를 빨아들여가며, 자연 상태의 마나마저 통제하는 그 모습은 마법의 신과 다름 없는 위용. 마법의 창조자이자 하늘의 여신 오딘의 후계자다운 대마법.
“씹련이. 감히 우리 사차원 아가씨의 매력 포인트를 분질러 놔?”
노르드는 차가운 분노로 뇌까렸다. 검은 홍채에 마나의 빛이 어렸다.
무슈흐렐리틀은 척추에 소금물을 부어넣어진 듯 소름이 돋았다.
저 눈. 그래, 저 눈이다. 그녀의 친족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눈.
─Kuuaaaaaaaaaaaaaaaaaaaaaa!!!
두려움은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방해되는 것을 처날려버리며 무슈흐렐리틀은 가진 권능과 육신의 힘을 전부 사용하며 달렸다.
폭풍을 집속시킨 황금색 창을 든, 인간의 거죽을 쓴 신을 죽이고자.
─파직. 노르드가 창을 던졌다.
그가 심장을 팔로 지키면서 어떤 수작을 부려도 막을 의도로 눈을 찢어져라 떴을 때, 지척에까지 다가왔던 번개의 창이 사라졌다.
【ᚱ(Raidō). ᚱ(Raidō). ᚱ(Raidō).】
도약과 도약과 도약.
마법의 여신의 창은 공간을 초월하기에 비로소 필중(必中).
“내가 은혜 갚은 까치다, 좆구렁이 새끼야.”
──콰르르르르르르릉!!!!!
뇌격의 창은 무슈흐렐리틀에게 틈을 주지 않고 심장을 관통했다.
외피에 비해서 취약한 몬스터의 심장이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살라지는 찰나, 무슈흐렐리틀은 눈치챘다. 이 최후가 육신만의 죽음이 아닌, 진정한 소멸이리라고.
이래놓고도 그녀의 후계자가 아니라고?
저 눈, 저 권능을 가지고 한낱 인간이라고?
웃기지도 않았다. 무슈흐렐리틀의 친족과 같은 눈을 한 존재가 달리 누가 있는가? 이토록 쉽사리 신을 소멸시킬 권능은 그가 알기로 하나 뿐이었다.
가장 지혜로운, 광기를 관장하는 신.
그를, 토나슈일루카틀을, 오르틀라위퍼를 이끌고 아버지의 시체로 만든 나무에 찾아온 그녀밖에는 없다. 이 힘은 필시 오딘과 맞찔러 죽었던 그녀의 권능이었다.
【───】
콰르르르르릉─!!!!
무슈흐렐리틀은 동포만이 알아듣을 언어를 입에 담으며,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완전하게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