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48화 (747/1,009)

***

─쿠웅! 우신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해치웠어?”

“네페르티티. 다시는 그런 말 입에 담지 말아요.”

사막 나라의 신관 전사께서 부활의 주문을 외워버렸지만 죽은 자의 소생은 발동하지 않았다. 난 허겁지겁 그녀의 상처를 봐 주면서 신음했다.

“영혼은 소멸했어요. 확실히 끝장을 냈습니다.”

이걸로 안 뒤지면 곤란하지.

권능을 무효화하고 가슴을 쪼개서 심장에다 풀 출력의 뇌창을 꽂았다.

다나 여신님의 축복에 더불어서 죽어나간 식인-에인헤리들의 영혼을 부스터로서 알뜰살뜰 버프로 써먹으며 완성한 일격이다.

사실상 에인헤리의 교수님인 다나와 나의 합체 궁극기.

소모성 대학원생으로 희생된 식인종 랩틸리언이 불쌍하지 않냐고? 좆도 불쌍하지 않지. 부당한 착취에 분노할 자격은 남을 착취하지 않은 자에게만 있다.

무고하지 않은 대학원생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일 뿐.

마침 같은 파충류겠다, 대충 거기서 거기겠지.

“그보다 네페르티티. 포션부터 마셔요.”

“삐에에에……”

내가 서둘러서 마취성 포션을 마시게 하자 브류나크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네페르티티의 다리는 쇼크사를 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허겁지겁 엘릭서를 부어서 고쳐주곤 싶지만 뼈를 맞추지도 않고 마취도 없이 고쳐놓을 수는 없잖은가.

피해 보이겠다고 말했고, 그래 주리라고 믿었다.

아내들과 함께 싸우면서 그녀들을 믿는 것. 이 부분은 누차 논의해왔던 부분이지만 이렇게 다친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격하지 않고 회피에 집중했으면 이렇게 다치진 않았을 거 아녜요.”

“그랬으면 빈틈도 못 만들었어.”

반론하는 그녀를 뭐라고 탓할 수는 없었다.

네페르티티의 자존심을 존중한다는 문제도 있고, 이 공투를 받아들인 것도 나였다.

내 죄책감은 더 강한 힘을 손에 넣는 것에 해소해야지, 그녀를 책망하며 위선적인 자기위로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치만 씨발, 조금만 어긋나갖고 네페르티티가 직격을 당했으면 내가 목 메달고 따라가야 할 뻔 했잖아. 셋쇼마루도 명계 투어는 1번으로 끝냈다고.

개좆 같은 도마뱀 새끼. 저 새끼 시체는 반드시 티배깅한다.

“즉효성 마취제인데 어때요? 좀 나아요?”

“……엄청 아파. 눈물 나.”

네페르티티는 좀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런 쓰벌, 역시 미스릴 클래스라서 저항이 쎈 건가? 더 투여해야 하나?

그런데 말하는 거랑은 다르게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마취 통한 거 아냐? 그렇게 눈을 마주치자 그녀는 새초롬하게 팔을 벌렸다.

“노르드가 안아주면, 아픈 거 날아갈 거 같아.”

“……넵.”

그럴 상황이 아니다 어쩐다 하는 정론을 지껄일 자격도 없었다. 나는 네페르티티를 눕히며 뒤에서 안아주었고, 다나와 티르시가 서둘러서 쫓아왔다.

─스르륵.

발퀴리에와 에인헤리들이 사라졌다.

주저앉은 다나는 마치 밤샘으로 가불한 수마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다크써클이 한층 퀭해져서는 두 손을 떨었다. 권능을 남발한 여파일지도 몰랐다.

“……수녀 엄마, 피곤해 보여.”

“가만 있어. 돌아간 다리부터 맞추게.”

“이 정도는 엘릭서 조금 마시면……”

“아 진짜. 피곤하다고 죽지는 않으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다리가 꽈배기가 됐는데 잘도 남 걱정이 나오네! 누가 빡대가리 남편놈이랑 맨날 치고박고 훈련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

성질을 부려대도 다정함이 묻어나오지만, 역시 살벌하긴 하다.

우리 눈나의 눈이 치켜 올라가자 네페르티티도 합죽이가 되었다. 무표정하게 자기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는 게 살짝 귀엽긴 했다.

다나는 군말없이 치료에 들어갔고, 네페르티티 표 애교─안아줘요 선언─에 상황도 잊고 충격을 받은 듯 하던 티르시도 씁쓸한 한숨을 쉬었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네페르티티는 몸을 너무 막 써요.”

“전사는 승부사. 부상은 승리의 대가. 마법사는 몰라.”

“뭘 좋다고 브이를 하고 있어? 가만 안 있으면 붕대로 미이라를 만들어놓는다?”

“……미이라는 싫어.”

어쩐지 의기양양하게 V자를 내걸었던 네페르티티는 바로 쭈그러들었다. 저 상큼발랄한 제스처는 라리루라의 영향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바로 천리안을 켰다.

‘다른 애들은?’

토나슈일루카틀은 제압됐나?

암막결계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 불안했지만, 다행히 천리안은 결계에 구애받지 않았다. 결계의 안에서 엿보인 지옥도는 상상 이상이긴 했지만.

쿠와아아앙─!!!

토나슈일루카틀은 무슨 일인지 시뻘갱이 모드가 된 거신 골렘에게 러쉬를 당하고 있었다. 저항하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건 키아라 트루 폼인가.

“……베로니카의 마법인가?”

타타르니아에서 받아온 불꽃의 내단을 사용해서 만든 반지.

그 능력과 자신의 마법으로 광선에 타올라버린 강철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토나슈일루카틀로서는 거신 골렘을 해치우려고 갈긴 자기 화력이 화로 돌아온 셈이다.

빛이 통하지 않는 암막결계는 그 거신 골렘에서 뿜어지는 불꽃으로만 비춰지며, 장렬한 투쟁으로 말미암아 초원지대를 불살라버리는 중이었다.

나는 다시 뒤진 도마뱀 시체를 체크하고 메달에 속삭였다.

“이쪽은 처리 완료. 드랍하지 않고 대기할 테니 뒷일 걱정 말고 끝내버려.”

【──베로니카 님의 답신입니다. ‘그리 말하길 기다렸다’.】

프로젝트 네임 ‘거대 재배맨’의 코드를 승인받은 프랑은 결계 건너편에 있을 나를 힐끔 쳐다보고서 행동을 개시했다.

─물커덩! 점토처럼 녹아내린 거신 골렘이 키아라와 교대했다.

트루 폼으로 자기가 마망인 줄 아는 정신병 드래곤을 구속하던 키아라가 물러나고, 거신 골렘에게 쑤셔박아두었던 우신의 심장이 맥동을 쳤다.

반항하는 토나슈일루카틀이었지만, 선수가 교대되었다 함은 이번에는 키아라의 불꽃 효도 러쉬가 시작될 타임이라는 것.

─Llllllllllaaaaaaaaaaaaaaaaaaa!!!

투구구구구구구구구…!!!

하프 드워프래곤의 권타가 끝없이 작렬했다.

그리고 맥동이 정점에 달했을 때, 아군은 멀리 물러섰다.

내가 돈과 인력을 처발라서 만든 희대의 병기는 그 끝을 자폭으로 마무리했다.

─꽈아앙!!!!

원자폭탄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상용 미사일은 쨉도 안 될 폭발음.

단지 폭발 자체는 광범위하지 않았다.

결계를 부쉈다간 본말전도니까. 하지만 범위가 압축된 폭발은 그 덕분에 화약을 망치로 내려찍은 것처럼 파괴적이었다.

역시 폐차는 할리우드식이 최고지. 영화 국룰에 충실한 자폭 어택의 위력은 개세적이었다. 타격이 누적됐다고는 해도 토나슈일루카틀의 날개가 뜯겨나갔으니까.

저 우신과 동급이던 존재의 반신을 일회용으로 터트린 것이다. 존나 아프겠지.

─Ruuuuuuuuu…….

그러니 저 폭발로도 죽지 않은 우신의 생명력은 경악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슈흐렐리틀도 토나슈일루카틀도, 내가 설계한 작전대로였다면 잡지 못했다. 다나의 권능이 각성하고, 키아라가 협력해주었기에 간신히 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도 물론 그 협력은 아직 계속되는 중이었다.

─Huuuuuuurrrrr…….

쿠웅…. 키아라는 빈사 상태의 토나슈일루카틀 앞에 섰다. 어딘지 구슬프게도 들리는 그의 울음소리에 토나슈일루카틀도 울음소리로 응했다.

하지만 삶의 방식이 달랐기에 그들은 같은 곳을 향해서 울고, 서로를 보듬어줄 수 없는 관계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키아라 자신에게 들은 얘기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저 장면만 잘라놓고 보자면, 토나슈일루카틀에게도 제대로 된 모성은 있었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자신에게 반목한 끝에 죽음에 몰아넣고자 하는 아들을 보고서도, 그 뱀 같은 눈동자에 적의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슬퍼하는 세로 동공이 맞부딪힌 찰나, 용들은 그 이빨로 서로의 목을 물었다.

─콰드득.

싸움의 끝은 수천 년을 군림한 우신의 최후라기에는 소탈하고, 세대를 건너뛴 부모 자식의 골육상쟁이라기에는 장엄하게 끝났다.

땅에 떨어져 작아진 용의 몸이 축 늘어지고, 그 목을 물어뜯은 키아라는 가만히 우신의 시체를 발 밑에 뉘였다. 그의 몸이 작아지고, 결계가 풀리며 태양 빛이 쏟아졌다.

하늘을 가리는 태양은 자신의 영역에서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이 끝났다는 걸 모든 이들이 알았다.

나는 천리안을 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밑에도 정리됐어. 다나, 치료는 어떻게 돼 가?”

그렇게 질문했지만 다나에게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은 둘째치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은 왜인가? 놀란 내가 창을 쥐자,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게 굳어버렸다.

─핑!

풀었다고 생각한 천리안이 다시 발동하면서 내 시야에 모르는 미래를 들이민다.

쨍그랑─!

브리타니아를 불태우던 우신의 완전체의 환상이 금이 간 유리처럼 깨부숴졌다. 미래가 바뀌었다고 아무 것도 모르는 나조차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유리처럼 부숴진 것은 우신의 모습 뿐.

예지에서 뒤바뀐 것은 멸망을 이끄는 존재 뿐이었다. 불타오르고 멸망한 인류의 세계는 그대로인 채, 형언하기 힘든 존재가 육체를 꿈틀거렸다.

예지 속의 악신이 나를 보았다.

어쩐지 지독히 익숙하고,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기척에서는── 놀라울 만큼 역겹게도, 나를 향한 무조건적인 호의와 애정마저 느낄 수 있었다.

“……윽!!”

창을 쥐고, 자신의 의지로 예지를 찢어발겼다.

빨라진 체감시간이 해제되고, 예지능력으로 본 시간의 틈새 같은 것이 소멸한다. 그렇게 현실로 돌아온 내가 본 것은 무슈흐렐리틀의 시체였다.

쿠화아아아아아악─!!!!!!

정확하게는 그 시체에서 뿜어지는 막대한 마나.

아내들은 내 돌발행동에 놀랄 뿐, 저런 막대한 크기의 마나를 눈치채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덕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판단이 끝났다.

‘마나 계승 현상!’

우신의 영혼이 소멸하고, 내 권능이 혼으로부터 마나를 흡수하고자 한다.

하지만 저 마나는 아니다. 받아들여서는 안 될 힘이었다. 구신의 마나와 닮은 듯 하면서도 사뭇 다른 무언가라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검고 검은 마나. 익숙한 어둠. 손처럼 뻗어오는 그림자.

호르샤에게 죽을 뻔 했을 때와, 명계에서 내가 오딘처럼 스스로를 찔러서 다뤘던 그 힘. 그것이 종래의 수십 배의 크기로 덮쳐왔다.

“……씨발!”

도망칠 곳도 없었다. 나는 하다못해 창에 깃든 항마력으로 막아내고자 【게르튀르】의 반격기를 펼쳐냈고, 내 손에서 초식이 갖춰지려는 찰나였다.

“꾸르르!!”

어깨에서 얌전히 있던 하얀 까마귀가 막을 틈도 없이 그 어둠에 몸을 들이박았다.

촤아아아아악─!!!

용암 바다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오싹한 모습은 전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예리한 가위가 검은 비단을 가르는 것처럼 검은 마나가 토막났다.

─출렁.

해일처럼 밀려오던 마나는 그걸로 힘을 잃었던 것처럼 액상으로 무너졌다.

“꾸르르르──.”

날개를 접은 하얀 까마귀는 호버링을 하더니만 크게 돌아서 내 가슴에 꽂히고, 수면에 다이빙한 것처럼 사라졌다. 내면세계로 돌아간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가슴을 매만졌다.

‘……지켜준 건가?’

예전에, 호르샤와 싸우다가 죽을 뻔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쩌적…! 쨍그랑!

한켠에 떠오른 예지몽 같은 풍경은 또다시 부숴져내렸다.

군림하던 악신도 멸망한 세계도 사라지고, 다시 평화로운 【중간 가지】의 목가적인 풍경만이 눈앞에서 깜빡거리다가 전원이 꺼진 것처럼 사라졌다.

시간 감각이 돌아온다.

“뭐, 뭐에요?! 왜 그러세요?!”

내가 갑자기 우신의 시체를 향해 창질을 해대자 티르시는 무슈흐렐리틀이 되살아난 줄 알고 뒤에 완드를 겨눴다.

하지만 도마뱀은 시체 그대로일 뿐이다. 살아난 적도 없다.

나는 왼눈을 만지작거렸다.

“……아뇨. 예지가 바뀌었어요.”

우신들을 척결한 걸로 한 번 바뀌었지만, 미래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구신의 마나, 하얀 까마귀가 방금 전의 마나 계승 현상을 저지하자 예지도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이었다.

이런 가시적인 변화라니. 시사하는 바가 노골적이지 않은가.

대체 어떤 과정 끝에 도달하는 결론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내가 무슈흐렐리틀의 힘을 흡수했다면, 인류는 멸망했었다.

“……씁.”

분명히 이상적인 승리를 거뒀는데도, 불쾌하기 그지 없는 마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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