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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세계에서 용의 심장은 우라늄과 같았다.
다루기 힘들다는 점에서 아주 그러한데, 무슈흐렐리틀의 반신처럼 대충 마나를 뽑아서 쑤셔박는 막가파 활용법에도 드워프 장인들의 세계관 탑급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런 심장을 인간이 처먹는다?
뇌에 블루스크린이 뜬 게 아니면 못 할 짓이다. 막 몸에 좋다면서 말벌주 담가먹고 뉴트리아 웅담 뜯어먹고 하다간 간이 한 발 먼저 천국 간다.
‘말이 드래곤 하트지, 사실 익히 알려진 용족도 아니잖아.’
드래곤 하트니까 처먹자는 발상은 ‘웅담이 몸에 좋으니 어린애 심장을 빼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 같은 개 병신 같은 민간치료법 아니겠는가.
수의대 중퇴생의 이름으로 그딴 안아키 복약은 용서치 않아요!
우리는 손가락이 4개인 심슨 일가가 될 의지가 없었으며, 특히 나는 저번의 예지 때문에라도 저 골든-아즈테카 드래곤의 심장을 취할 맘이 없었다.
“노르드. 이 심장…… 먹을 수 있겠는데요?”
이세계 의학의 전문가인 티르시가 그리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키아라의 병문안과 회의를 끝내고, 아즈테카로.
【오라이, 오라이─!】
아즈테카의 수도도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노동력으로 차출된 현지인들과 급하게 찾아와준 사람들까지 모여서 우신의 해체 작업에 열을 올리는 중.
아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나는 집채만하게 자빠져 있는 우신들의 시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2주일이 지났는데 썩지도 않지, 이것들은.
“프랑, 다녀왔어.”
“아, 응! 어서 와! 일은 끝났어?”
“방향은 잡아뒀으니 남은 건 그 사람들 일이지.”
“수고했어. 노르가 고생이 많네.”
“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편지 같은 걸 읽던 프랑이 음료수를 건네줬다. 무슨 편지인가 했는데, 유이링 황녀가 브리타니아 왕자님과 배를 타고 오면서 전서구를 날린 모양이었다.
“티르시랑 베로니카는 많이 바빠?”
“오늘도 밤샘이래요. 조금 기다리고 있었죠.”
라리루라가 괜스레 안겨붙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나로서는 싫어할 이유가 하등 없으므로 마주안고 적당히 기다릴 만한 공간으로 갔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다나한테서 온 연락을 읽는 나.
─히타이트의 흔적은 확실히 보이네. 벼락치기 지식이긴 하지만 유사성이 많이 보여. 이번 달이 끝나기 전에 단서를 찾을 페이스야.
─울 누나도 참 성실해. 그냥 기다리지 뭣하러 갔대.
─커리어에 한 줄 쓸 기회인데? 괴물만 잡으면 땡치는 게 무슨 고고학자임.
─쓰벌,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고. 우리 사차원 아가씨는 어때?
─다리가 꽈배기 됐던 게 거짓말처럼 뽈뽈거려.
유적 조사에 동행한 네페르티티도 건강한 모양.
바이츠니아-요정왕국 때 그럭저럭 친해진 그녀들이었지만, 미묘하게 남아있던 어색함이 완전하게 타파된 게 다나의 필체에서 전해졌다.
─안 그래도 지금 1차 조사를 끝내고 복귀하러 가는 중이야.
─발굴물 운반 때문에? 잘 했어. 여기는 현지에 진을 치고 조사할 풍토가 못 되지.
유적지는 서부의 맹독밀림과 가깝고, 몬스터도 발호하기에 베이스캠프를 깔기는 부적절했다. 울 아내님들이 돌아와준다고 하니 저야 좋은 거에요.
─달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우리가 노닥대고 있던 방이 열렸다.
“노르드가 왔다고 들었는… 데요…”
우리를 찾아온 티르시는 알콩달콩하게 3인 1각 합체 폼으로 앉아 있는 나-프랑-라리루라를 보고 세상 꿍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 2주일 째 잠도 줄여가면서 일하는데 그러기 있어요?”
“아니, 그니까 왜 미련하게 밤을 새세요? 누가 빨리 일 안 하냐고 독촉해요? 그런 나아쁜 인간이 있으면 말해요. 제가 혼내드릴게오.”
“토나슈일루카틀의 심장이 썩으면 어쩌려구요! 연금술의 기본은 신선한 재료에요!! 무슨 원리로 썩지 않는 건지도 모르는데 서둘러야죠!!”
“그래서 베로니카랑 바이콘들을 팬텀 스티드로 만드셨읍니까……?”
이세계의 강자들은 밤을 좀 새도 버틸 수 있다.
나만 해도 하루 이틀 밤을 새도 멀쩡하잖은가? 미친 노동량에 정신은 나가버릴지도 모르지만 몸은 쌩쌩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철야에 마나까지 싹싹 긁어 쓰면 어떨까?’
지금 우신 해체 + 연구 작업에 들어간 바이콘 친구들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으어우어…… 흐어으어……”
좀비가 아니다. 내가 왔다는 소식에 아틀란티스 특제 홍차를 가져다 준 바이콘의 인삿말이지. 내 번역 치트가 해석을 못하다니 놀랍다.
로키 파파고 이 새끼, 요즘 빠져가지고.
연금술은 마법의 한 갈래다. 당연히 연구/분석 자체에도 마나가 든다.
마나 빨로 초인적인 힘을 유지하는 강자도 마나 앵꼬 상태로 잠을 못 자면 저렇게 되는 것이었다. 작업속도는 일반인과 비교도 안 되긴 하겠지만.
“아. 홍차, 건강에 아주 좋죠. 이거 없으면 진작 잠들었을 거에요.”
─콸콸콸. 각설탕을 마구 투여한 홍차를 목에다 들이붓는 티르시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녹차랑 홍차에도 카페인은 들어간다. 이러다 우리 마법사님이 카페인 중독이 돼 버렸다간 어쩌지. 아니, 이미 늦은 것도 같고.
“베로니카랑 협력해서 우신들의 시체를 분석해 봤어요.”
빠르게도 홍차를 원샷하고 새로 리필하는 그녀.
진짜 기자재 보급이 잘못 터져서 일정 꼬인 날의 랩실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다. 이 예쁜 얼굴에서 트라우마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걸.
“심장 상태는 직접 보러 가실 건가요?”
“음. 어쩔래? 난 여기 앉아서 보면 되는데.”
“아, 그 천리안? 이라는 거? 우린 굳이 안 봐두 괜찮아. 약간 징그럽기두 하구.”
프랑의 대답에 라리루라까지 긍정하자, 나는 걍 소파에 앉은 채로 천리안을 켰다.
옮기는 것도 큰일이었던 우신들의 시체는 같은 곳에 병렬되어서 사람들의 손으로 해체되고 있다. 내장을 뽑아내고 부산물을 채취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오러로도 베기 힘든 비늘을 해체하는 건 근육이 울끈불끈한 씹마초도 반나절만에 엄마를 찾게 만드는 중노동이다.
본격적인 작업은 본국 사람들이 온 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맞다, 노르드. 우신들의 손톱이나 가죽, 비늘의 소유권은 어떻게 됐나요?”
“콜리도 경은 관심 없댔고, 파라오께선 토나슈일루카틀의 머리를 요구하셨습니다.”
‘엄마 시체로 무장한 아들은 쵸큼’이라며 텅구리 메타를 포기한 키아라에겐 나중에 무슈흐렐리틀의 손톱으로 단검을 하나 만들어줄 예정이다.
사양한다고 진짜 낼름 처먹었다간 욕 먹는다고. 사회생할 하루 이틀 해 보나.
티르시는 퀭한 얼굴로 인상을 팍 찡그렸다.
“머리라……. 제가 요청드렸던 눈동자는요?”
“당연히 눈알 한짝은 제 앞으로 챙겼습니다.”
개선장군에겐 증거가 필요하다. 적장의 수급과 손에 넣은 땅은 그 대표격이지.
아즈테카에 다녀온 왕이 토나슈일루카틀의 대가리를 딱 들고 오면 얼마나 개쩔겠는가. 지지도가 떡상하고 국민들이 오줌을 지리며 역사에 이름이 남겨질 게 뻔하지 않나.
당연히 우리 파라오께선 가짜 태양신의 수급을 요구하셨고, 나는 승낙했다.
─눈깔 한 짝, 송곳니 4개.
하지만 자고로 어두는 육미라고 하였으니, ‘몸은 포기하고 머리만 가져가마!’라는 언플에 속아버릴 내가 아니다. 당연히 요구할 건 요구했지.
당장 키아라를 환자로 만든 이빨부터가 머리에 있는 유니크 템이라고.
─송곳니를 4개나?! 틀니를 낀 용은 멋이 없지 않겠느냐! 국민들이 ‘파라오께선 이빨 뽑힌 용을 잡고 자랑하신다네~’ 같은 노래를 부르면 심약한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눈깔 한 짝, 송곳니 4개.
─씁… 좋다! 무슈흐렐리틀의 지분은 포기하마!
─눈깔 한짝, 4달라…… 아, 아니. 송곳니 4개.
결국 극적 타협으로 송곳니 2개, 눈깔 한 짝을 받아낸 나였다.
대신 토나슈일루카틀의 뱃가죽을 내드렸다. 저 가짜 태양신의 가죽을 망토와 융단으로 만들어서 대대손손 왕가의 보물로 삼으시겠다나.
태양의 십자가 없으면 못 이겼을 싸움 아닌가.
저 정도는 당연히 내줘야 할 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잘 해주셨어요! 뛰어난 재료엔 그만큼 강력한 마법을 붙이기 쉽죠! 눈과 가죽, 이빨과 손톱이면 국보 급의 장비를 만들 수 있을 거에요!”
내 보고에 티르시는 손뼉까지 쳐가며 기뻐했다.
국보 급의 장비라. 듣고 보니까 그렇긴 했다. 이 이세계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상위급의 아이템으로 무장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개쩌는 일이다.
파티 레이드 보스에게서 종결 장비가 드랍되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 가족도 쪼렙 유니크~에픽템을 탈출할 때가 오긴 했지.
“칭찬의 의미로 키스해 주셔도 되는데요.”
“좋아요! 키스 정도야 백 번도 더 해 드릴게요!”
─쪽! 농담 삼아서 말했는데 티르시가 끌어안고 뺨에다가 열렬한 키스를 해 줬다. 진짜 좋아해서 뇌를 안 거치고 움직였나. 부탁한 내가 다 놀랍네.
“……무섭다, 밤샘 텐션!”
마시던 오렌지 쥬스를 흘린 라리루라도 그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좀 정신이 나가버리긴 해. 프랑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티르시. 계속 잠을 안 자면 조만간 사고 칠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대형사고 수준으로 멋진 일 솜씰 보여드릴게요!”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티르시가 설명을 시작하자 나는 다시 천리안을 뻗었다.
가장 먼저 채취해서 엄중하게 지켜지는 드래곤 하트(진)가 눈에 띄었다.
“다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토나슈일루카틀은 이 어스틀란 대륙의 어느 몬스터의 근친종 같았어요. 돌연변이라고 해도 좋구요.”
“근친종이라?”
“그래요. 신체구조는 많이 달랐지만 그밖의 여러 면에 유사점이 눈에 띄었죠.”
“언니, 질문 있어요! 아즈테카 인이나 스콜라키체 분들 말고도 토나슈일루카틀의 후손이던 몬스터가 있었다는 건가요?”
아직도 미미하게 맥박치고 있는 심장을 보면서 아내들의 대화를 듣는 나.
라리루라의 질문에 티르시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요. 후손은 커녕 그 반대였죠.”
“반대라뇨?”
“그 몬스터가 토나슈일루카틀의 ‘원종(原種)’이던 거에요.”
아즈테카의 여황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신이란 몬스터의 육신을 빌린 신이랬던가.’
신에 버금가는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사실 몬스터로 영락한 신이었던 것이다.
“분석 결과로는 신좌와 〈인신〉의 관계와 다름없었어요. 여러 면에서 사뭇 달랐지만, ‘강대한 힘을 받아서 능력 이상의 권능을 발휘한다’는 점이 몹시 유사했죠.”
천리안을 푼 나는 진지해진 티르시에게 물었다.
“신의 영혼이 몬스터의 육체에 깃들었다?”
“비슷해요. 정신은 몸을 따라가지만, 그 반대도 있을 수 있죠. 마도(魔道)는 심오하니까요. 몬스터의 몸을 권능과 영혼이 성장시킨 걸로 보여요.”
쥬지를 잃고 암컷타락해버린 TS물 주인공들이 남자에게 헤으응하는 것의 정반대.
신이 강림한 아즈테카 몬스터의 육체는 그만한 진화를 거친 것이었다. 아르세우스가 빙의한 치코리타는 레전드 치코르세우스가 되는 것일까.
유이링 황녀의 언니, 메이링의 몸에 토나슈일루카틀의 비늘이 솟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몬스터가 아니다, 신이다!’라며 엄청 강한 괴물이 됐다는 거군요♡!”
“네. 하지만 근본은 어디까지나 몬스터죠. 신의 심장이지만, 본질은 몬스터의 내장기관. 따라서 그 몬스터의 내장으로서 갈무리하면──”
“인간이 섭취할 수 있다?”
“동물에게서 추출한 약. 희귀하지도 않잖아요?”
손가락을 세우며 칼질 시늉을 하는 티르시.
“무슈흐렐리틀의 심장은 안 되요. 저 몬스터의 원종으로 보이는 생물은 독성이 무척 강하거든요. 무슈흐렐리틀의 심장은 매직 아이템의 재료로 쓰는 게 최선이에요.”
“토나슈일루카틀은 가능한 거구요?”
“네. 단지, 보시다시피 크기부터가 문제라 제독 과정과 액기스 추출이 어려워요. 저렇게 큰 심장을 저희끼리 전부 먹어치울 수도 없잖아요?”
당연한 말씀. 굽고 찌고 볶고 삶아먹어도 매끼 단백질 풀 코스로 1년 내내 처먹고도 남을 거다. 드래곤 1마리면 결식아동 천 명을 1년간 배불리 먹일 수 있다구요.
“압착기 같은 걸 구해다 드려야 하나요?”
“네. 추출기, 압착기, 분쇄기, 여과기까지 온갖 기자재가 필요한데…… 찾기도 어렵고 운반하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심장이 썩기 전에 조치부터 취해둔 거구요.”
2주일 내내 밤을 꼴딱 새 가면서 말이지.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티르시였지만 얼마나 고생했을지 모르겠다. 마법을 사내 새끼들이 멱 감듯 대충 써제끼는 꼴마초 노르드는 도와주고 싶어도 방해된다고 쫓겨날 것 같고.
0.1mm의 오차와 미세한 술식 조정이 결과물을 좌우하는 연금술의 세계.
고고학과 풍둔 아가리술 원툴인 석사가 깝쳐도 될 영역이 아니었다.
차라리 보통 수단으론 못 구할 연금술 마도구를 구해주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거의 폐차기처럼 크고 우람한 것들로 정렬해야 비벼볼 만할 듯.
“그래도 완성해서 나눠먹으면 마나량 문제는 꽤 해결이 되겠네요.”
“먹은 후에 체화하는 과정은 필요하겠지만, 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성장률을 보여줄 거에요. 부작용도 없앨 자신이 있고요!”
주특기인 분야라서 그런 걸까? 의지를 불태우는 티르시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프랑이 나더러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남자는 멋지다’라는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는데, 그게 딱히 드워프 여성만의 이상형은 아니었던 모양.
나는 스콘을 뜯어먹으며 끄덕거렸다.
“서두를 것 없으니까 천천히 해 주세요. 수도의 인프라가 정리되면 여유도 생길 테니까요. 다나랑 네페르티티도 온다니까 오늘 저녁은 같이 먹죠.”
그렇게 말한 나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날 저녁은 단란한 가족식사가 되지 못했다.
첫째 이유는 유적 탐사대의 복귀가 몬스터들의 범람으로 지연됐기 때문이었고.
『언니……! 메이링 언니!!』
둘째 이유는, 황녀님께서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백작의 배, 잘 빌려탔습니다. 히타이트의 고대 선박이 빠르긴 빠르더군요.”
“제 고향에서는 끝내주는 탈것이 남자의 매력 중 하나라서요, 왕자님.”
감격스런 자매상봉을 벌이는 키 작은 여인들을 배경으로, 울프헤딘 백작과 조지인가 하던 브리타니아 왕자님은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