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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별 거 없어 보이는 탐사단에 거의 날로 채용받은 다음날.
〈줄을 서시오! 윈스턴 탐사단 면접은 여기오!〉
〈자, 자! 싸우지들 마시고! 미녀는 성격이 나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오!〉
시가지 한 구석에 쳐놓은 적당한 텐트에서 자고 일어난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인간 행렬에 입을 다물지를 못하고 있었다.
〈존나 대체 무슨 염병이 벌어지고 있는 것?〉
〈떽. 말 곱게 쓰여야죠.〉
〈존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것이여요?〉
〈제 눈에는 심사대기열로 보여요!〉
〈아니 그니까, 왜 이 개좆밥 오합지졸 공대에 지원하는 병신들이 저렇게 많냐고.〉
〈언니.〉
〈병신을 병신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와요?〉
〈선ㅂ…… 언니의 미모에 홀린 가엾은 중생?〉
지랄났다, 로마니아.
놀랍게도 어제만 해도 골딱이 한 명 찾기 힘들 지경이었던 면접자들 사이에 드문드문 플래티넘급 인재마저 보였다.
그리고 라리루라가 한 말처럼, 그런 인재들은 90%가 남자였다.
가끔 여자들이 보이긴 하지만 대충 ‘이렇게 많은 인재가 모인다면 안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사람들일 것 가능성이 높고.
뭣보다 그 남자들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나를 아닌 척 힐끔대고 있었다.
‘이 씹새끼들, 나 때문에 이 탐사단에 온 거냐?’
─오소소.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이 불쾌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들이라도 줘팰 수 있겠다.
아니지. 아몰랑 선서에서 시작한 페미니스트식 헌법에 따르면 시간(視姦)은 성폭행 아니었나? 저 개씨부랄 새끼들을 마법적 거세형에 처해도 무죄 아닐까?
하지만 내 입장 상 거열형이든 거세형이든 실행하는 건 불가능한 노릇.
그렇기에 내 멘탈 붕괴 과정은 죽음을 수용하는 5단계를 그대로 준수했다.
“농담이지? 그치? 로망과 신앙의 나라 로마니아 사람들이 다 저렇진 않을 거야.”
첫째로 부정.
“씨이이발!!! 유적 탐사를 하라고!!! 금은보화!!! 매직 아이템!!! 뭐 그런 걸 노리라고!!! 왜 이따위 촌구석에서 여자한테 헬렐레 거리고 있어!!!”
둘째로 분노.
“어쩌지? 이제 와서 무를 순 없는데? 탐사단을 옮겨도 마찬가지 아냐?”
셋째로 공포.
“쓰벌…… 텐트에만 박혀 있으면 되지 않을까?”
넷째로 흥정.
“그래, 염병할. 남자랑 뒹굴 것도 아닌데 뭐.”
마지막으로, 수용.
‘수작 부리는 씹새들은 전부 죽인다.’
마공을 대성한 사파 무림인처럼 살의로 정신을 추스르자 라리루라가 말했다.
〈흑심이 없어도 언니 얼굴은 길 가던 사람들도 다들 한 번씩은 돌아볼 걸요?〉
〈돌아가면 그 자매한테 이 인피면구를 씌우고 할렘가를 돌아다니게 하겠어.〉
특히 오드리 그년은 이 양귀비 얼굴에다 비키니 아머만 입혀놓고 만다.
은밀활동용 인피면구를 왜 이리 미인으로 만든 것이지? 어쩌면 오해가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엿 먹이려는 누군가의 음모가 아닐까?
〈눈에 띄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웅크리고 있자 라리루라가 날 위로해줬다.
바이킹 꼭두각시의 건틀렛이 존나게 딱딱해갖고 그다지 위로는 안 됐다.
〈저만큼 빤히 쳐다보는데 들키지 않는다는 건 인피면구가 효과적이란 증거에요♡! 분장까지 하고 숨어든 사람이 이렇게 눈에 띄게 굴 거라고는 절대 상상 못 할 거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그 정도가 되면 정신승린데.〉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것도 팩트.
공자왈맹자왈에 버금가는 중화의 정신수양신공, 아Q정전을 본받아야 하는 것인가.
‘후…… 좋아. 좋게좋게 생각하자.’
설마 내가 여장을 하고 다니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하겠지. 존나 나는 꿈에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 이뤄질지는 몰랐다. 강북호 이 개빡통 새끼 진짜.
나부터가 그랬는데 남이라고 오죽할까. 여기에 〈인신〉이나 굴라나뢰크의 따까리가 있어도 내가 분장한 노르드라는 생각은 죽어도 못 할 것이었다.
나는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어쨌건 간에 한 번 예지대로 일을 성사시켜볼 필요는 있었으니까.’
나는 예지로 봤던 미래가 이뤄지는 광경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건 확인했지만, 예지가 현실로 이뤄지면 어떻게 될까?’
내가 개입하지 않아서 예지가 그대로 성사되면?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 예지와 어느 정도로 바뀔지. 전부 신경 쓰이잖나.
스콜라키체들의 고향이 습격당하는 건 봤지만, 그게 천리안이었는지 미래예지였는지 구분이 잘 안 갔다. 그밖에 예지는 전부 막아내야 했던 것들이고.
그러니까 ‘평화로운 예지’가 나온 지금이 기회다.
이 주체 못 할 능력을 테스트해 볼 기회 말이다.
‘예지 속의 내가 라리루라랑 텐트에서 뭘 했던 건지는 모르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런 짓을 할 가능성은 매우 적지 않겠나.
‘텐트도 배정받은 곳이랑 똑같다. 그 미래는 이 탐사 중에 벌어진 일이야.’
다시 말하자면 예지가 이뤄지는 미래까지 나랑 우리 후배님은 딴짓에 정신이 팔릴 만큼 안전하고 여유롭다는 뜻! 이건 굉장한 메리트였다.
다른 아내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도 소인원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생각과 미래가 저 예지몽 그대로 굴러가기를 바라서였으니까 말이다.
나는 인피면구 위로 왼눈을 덮었다.
‘이 눈이 뭘 기준으로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지. 이번 밀행에서 그걸 알아낸다.’
보여주는 미래는 파멸이나 불행 외에도 있는지.
아니면 내가 보는 모든 미래는 미연에 막아야만 하는 건지. 모든 불행을 예측해 준다면 나 외에도 우리 아내님들에게 닥칠 간난신고까지 보여주는지.
‘앞으로 벌어질 재앙을 뭐든지 전부 보여준다면.’
생각보다 훨씬 쓸모있는 ‘위험 경보기’일 테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휴식을 취했다.
***
내가 텐트에 서식하는 생물처럼 가만히 모여만 있는 동안 충분한 인원이 모이고, 드디어 우리는 유적의 정보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배급된 텐트를 라리루라(의 꼭두각시)가 등에 잘 매고, 출발.
유출시킨 위치는 한 끗발 한다는 인간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윈스턴이라는 탐사단장도 제법이군.’
정보를 푼 내 입장에서는 미끼를 문 호구였지만 하이에나들이 정보를 통제하는 중에 정보를 찾고 이 탐사단을 꾸린 거라면 무척 뛰어난 편 아닌가.
‘그 정도면 하이에나들 사이에서도 제 1선 라인인데……’
그런 것 치고는 여러모로 허술한 면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결론에 도달하긴 쉬웠다.
‘……덩치 큰 하이에나가 보낸 수족이로군.’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으니까, 제 수족을 보내놓은 것이다.
‘별로 당황할 일은 아니야.’
이렇게 빨리 움직일 정도면 다른 탐사단도 그런 뒷배가 있긴 하겠지. 그렇다고 진짜 아무 능력도 안 가진 2류 3류 탐사단에 들어갈 수도 없다.
‘지금은 말하자면 나중에 떡상할 우량주가 아직 하한가를 치고 있는 타이밍.’
아직 진짜 서민적인 개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 타이밍에 들어왔다면 경쟁자들도 한 끗발은 하는 놈들이라는 거다. 어디 들어갔어도 똑같았을 거라면 그나마 여기가 나을 것이었다.
‘그랬다가 정작 히타이트의 유물을 뺏기면 그게 더 문제니까.’
이 탐사단에서는 우리가 가장 활약해야 한다.
‘정체를 들키는 일 없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딱 건질 것만 챙겨간다.’
유물을 나중에 돈 주고 사들인다? 국가 차원의 자산가를 상대하긴 싫은레후.
〈그러면 지금 경쟁구도는 크게 3분파겠네요?〉
〈맞아. 이 켈노니아 영주인 셀루스티아 남작과 티베리우스 용병단, 그리고 우리 고용주처럼 한 발 먼저 돈 냄새를 맡고 모여든 탐험가들이지.〉
〈티베리우스는 그 놈은 유명한 뒷세계의 장물아비들이다. 하지만 장사치라고 얕봐서는 안 돼. 말이 장물아비지, 약탈부터 살인까지 물건을 얻는 방법에 구애되지 않거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라리루라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카피바라 인싸력으로 그새 사람을 몇 명 사귄 모양이었다.
─힐끗힐끗.
근데 저 씹새끼들 왜 자꾸 여기 눈을 부라려대. 뒤질라고.
목도리로 얼굴을 더 가렸다. 내가 저기압인 걸 눈치챈 라리루라가 말을 계속했다.
〈티베리우스? 말로만 듣던 암회 같은 건가요?〉
〈비슷해. 용병단에 가깝고, 지역유착성이 없지. 돈이 될 전장을 찾아가다 못해서, 전쟁이 없으면 스스로 일으켜서라도 돈을 버는 말종들이거든.〉
〈여러분들도 무슨 던전인지는 잘 모르시고요?〉
〈고용주들도 모른다던데? 그래도 저 던전에서 한 탕 못 건져도 일당은 많이 받잖아? 당연히 그 일당만큼 위험하긴 하겠지만 말이야.〉
〈으흐흐. 그래도 안심하라고! 우리 곁에만 붙어 있으면 안전할 테니까!〉
─텅! 가슴을 친 모험가가 으쓱거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올가다. 골드 클래스 모험가. 오크 왕의 숙적. 들어본 적 있나?〉
〈아! 켈노니아에 온지는 얼마 안 됐지만, 이름만이라면 들어봤던 것 같아요!〉
절대 못 들어봤군. 라리루라도 은근 철면피야.
‘우신하고 맞짱 뜬 직후에 갑자기 수준이 골딱 실딱 레벨로 팍 다운그레이드 되니까 현자 타임이 오지네. 대부분 맨몸인 라리루라만 못할 텐데.’
하지만 나 역시 아직 마스터 클래스는 아니다.
과신이 지나치면 오만과 패착이 된다.
〈방심은 금물이지.〉
이 허접 좆밥들 사이에 어떤 괴물이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쐐액!
그렇게 한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기에, 나는 한창 지 업적을 지껄이며 즐거워하던 골딱이 올가의 등을 가볍게 밀쳤다.
〈어억! 젠장, 무슨 짓이야! 넘어질 뻔──〉
─퍽!! 올가의 불평을 화살이 막았다. 땅에 박힌 화살을 보고 흠칫하는 그.
〈죽기 싫으면 정신 똑바려 차려.〉
쓰벌, 누가 말한 거지? 아. 내 목소리구나.
세상 암컷 그 자체라서 못 알아봤네.
그냥 닥치고 있을걸.
〈고, 고맙다! 다들 무장해라! 적습! 적습이다!〉
그래도 짬밥을 전부 똥으로 배출한 건 아닌 듯 빠릿빠릿하긴 했다.
〈탐사단장!〉
〈그려. 보이는구만. 학자들은 물러나 있게.〉
─파사사삭! 숲도 아닌데 좀 떨어진 곳에서 평범하게 걷던 탐험가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설펐던 건 아니다.
아직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다.
설마 이런 평범한 길변에서 저들이 우릴 죽이려 들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윈스턴은 이마에 쓴 고글을 들췄다.
〈이보게들. 이 무슨 짓인가? 도적떼도 아닌 듯 보이는데.〉
〈흐흐. 마침 우리 얘길 하시길래.〉
잠깐 올가에게 눈길을 주는 윈스턴.
〈티베리우스 용병단?〉
〈암. 알아들으시니 다행이군.〉
순진한 모험가처럼 생긴 새끼가 자기 첫 인상을 화려한 표정 기예로 부정했다. ─낼름. 칼을 뽑고 입술을 핥던 놈이 낄낄거리자 윈스턴이 말했다.
〈던전을 두고 다투는 짓이야 모험가들이 으레 벌이는 짓이라고 들었지. 그런데 아직 유적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벌써부터 수작질이신가? 아주 국법이 두렵지도 않나 보군.〉
〈말을 조심해라, 늙은이. 그리고 뭐? 법률? 그 법률을 집행해야 하는 영주는 인생역전에 바쁘신 듯 하지 않나? 외곽 순찰에 돌릴 여력은 없지.〉
남자는 망나니처럼 칼을 깔짝댔다.
〈좋게 좋게 생각해. 던전 근처는 이보다 훨씬 살벌한 살육전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거든. 가서 끔찍하게 죽는 것보단 여기서 죽는 게…… 응?〉
모험가 같던 남자가 말을 멈췄다.
목걸이를 쓰다듬던 나랑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멍하다 못해서 멍청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말로 끝낼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드는데.
〈……캬아! 절세의 미녀군! 너만한 계집이 왜 이런 땀내나는 곳에 섞여 있느냐?〉
전언철회.
내 예지력도 떡락했군.
‘그래 시발. 이런 동네였지.’
오랜만에 제대로 이세계 느낌 나네.
〈운이 좋군요, 대장!〉
〈그래, 운이 좋군! 어이! 그 계집을 넘긴다면 몇 놈 정도는 살려서 돌려보내줄.〉
─퍽!! 지껄이던 남자의 미간에 검붉은 화살이 꽂혔다.
끼릭….
아즈테카의 유물 곡궁에 현을 매긴 나는 고요해진 분위기를 씹고 말했다.
〈더 듣고 있게? 앞으로도 이런 녀석들은 비일비재할 텐데.〉
〈됐네. 어차피 피 좀 봐야 끝날 일일 듯 하니.〉
─퉷. 침을 뱉은 윈스턴이 외쳤다.
〈계약사항은 기억하고 있겠지! 사람과 싸우는 것도 자네들 일일세! 전투 준비!!〉
〈다들 가자!! 니르바나 양을 지켜라!!〉
〈저 잡놈들이 털끝 하나 닿게 하지 마라!!〉
아냐 시발, 지키지 마. 둘러싸지 마.
그냥 너희도 같이 꺼져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