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69화 (768/1,009)

─서걱!

꺼지지 않는 불꽃에 발이 무뎌진 집행관 하나가 그 목을 브류나크에 잃었다.

같은 수준의 전사끼리 승패가 갈렸을 뿐인 일.

이성적으로는 놀랄 것도 없는 결과였지만, 아는 사람이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발퀴리에를 상대하던 집행관이 보결로 들어오려 했을 때, 노르드는 자엘의 검을 쳐내며 접근했다. 다리에 꽂힌 칼은 타격을 준 것 같지도 않았다.

〈이 자식, 마나량이 얼마나……!!〉

〈왜 놀라? 이 세상에 나처럼 실력이 되는데도 정작 자격증만 못 따는 놈이 한둘이냐?〉

이미 노르드의 마나량은 마스터 클래스의 달인을 웃돈다.

오러를 쓰지 못할 때부터 마나량 하나만 가지고 자신보다 뛰어난 달인을 죽여본 그였다. 내포하고 있는 마나량은 몬스터와 비교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준이다.

〈정보전은 중요하지. 역사가도 다들 동의하신 부분.〉

99대대를 저격했을 때, 노르드는 그들이 펼치는 움직임을 봤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려면 집행관들도 전력을 다해서 막고, 피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도삭진의 편린을 노출했다.

유동적으로 역할을 바꾸는 진형.

마법사와 전사, 전위와 후위를 계속 교환하면서 완성되는 활용성.

‘다시 말해서, 한 놈 한 놈의 움직임이 똑같아.’

상식적인 범주에서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집행관 9명이 전혀 색다른 기술을 사용해도 다 간파되거나, 몬스터의 가죽을 못 뚫는다.

마스터 클래스의 안목에 예측당하거나, 공격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를 죽이고자 가정하고 설계한 진형이다. 그래서 아예 진형의 탄탄함을 중시했던 것이다.

이 빈틈을 찌를 능력은 몬스터에겐 없고, 일정 수준 이하의 인간은 가진 기술을 펼치지 못하고서 마나 탈진으로 쇠약사한다.

인류와 몬스터.

사람과 야수.

그 두 존재의 장점을 포괄하는 괴물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좌측 전사 놈이 후위로 전환. 발퀴리에랑 붙던 놈은 전위로. 마법 방패로 나를 저지하고 후퇴를 보조하려는 심보인가. 상관없어. 맞아주고 뚫는다.’

세상에서 오직 1명, 노르드를 제외하면 말이다.

오딘의 눈은 철저하게 짜인 진형의 규칙을 전부 읽어내고, 집행관들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았다. 기술에서 밀려서 공격을 맞아도 오러와 야수회귀의 마나를 뚫을 수 없다.

8명. 아니, 9명이 모여서 1명처럼 움직이는 팀 워크.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건 몸을 나눠서 쓰는 한 사람의 전과 싸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사람이 몇 명 늘어나건 팔과 공방의 횟수가 느는 게 전부 아닌가.

마나량이 앞서는 노르드에게 그 정도는 오차의 축에도 끼지 않았다.

‘불사신인가? 갑옷을 피해서 목을 찔렀는데 피 한 방울 안 나온다고?’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정말 인간이냐?’

그러나 맞서는 집행관들에게, 공격을 정면에서 맞으며 끝을 모르는 마나로 반격하는 노르드의 전투법은 광전사의 그것이었다.

인간의 기예를 극한까지 단련한 몬스터.

포악한 몬스터처럼 날뛰고, 자신들보다 뛰어난 전사처럼 행동을 예측당한다.

〈진형을 3번 형태로 전환한다!!!〉

노르드가 칼날을 우신 가죽 갑옷으로 받으면서 자신의 어깻죽지에 창을 꼽자, 자엘은 심념을 쓰는 것조차 잊고 육성으로 외쳤다.

도삭진의 3번 형태. 접근 자체가 어려운 초월종 몬스터를 잡는 원거리 진형.

그렇게 물러난 자엘은 손바닥에 바람을 모아서 쏘아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휘잉. 그의 손에는 산들바람만이 피었다.

마나가 빠져나간다.

아니, 소멸당한다.

〈니들이랑 내 마나가 서로 부딪혀서 소멸하는 구조네.〉

손바닥을 뻗은 노르드가 말했다.

술식을 꿰고 있다면 통제를 흐트러트리는 것도 가능하다. 완성된 마법을 상대로는 의미가 없지만, 계속 유지되는 술식이라면 개입할 가치가 있다.

〈술식의 출력을 높였다. 교환비는 3대 1이야. 아, 물론 내가 1이고.〉

압도적인 탈력감이 무릎을 휘청이게 만들었다. 자엘은 검을 놓쳤다.

일류 마법사이자 전사인 집행관 8명의 마나가, 노르드 1명에게 일패도지했다.

이대로 질 순 없다. 자엘은 탈진의 여파로 피를 토하며 외쳤다.

〈오러를 강화해라!! 목숨을 아끼지 마!!〉

집행관들은 마나를 난폭하게 소모하면서 단숨에 오러를 두껍게 했다. 그들은 방어를 포기하고 자신들이 사냥해온 몬스터들처럼 손에 쥔 이빨을 박아넣고자 돌격했다.

노르드가 계속 기다렸던대로.

─라리루라. 지금.

─아핫♡! 드래곤 파워 총출동이에요!

룬 마법으로 전해진 텔레파시에 라리루라는 새 기술을 발동했다.

크라운 크라운의 책에서 본 〈꼭두극〉의 상위 응용.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나량 부족으로 쓰지 못했던 절기가 라리루라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폐막 유희(Claudendo Ludicrum)〉.

5개의 손가락으로 군악대 수준의 꼭두각시들을 조종할 수 있는 기술.

─끼익!

〈도산결계〉처럼 투명한 역장이 확산하며 팔방에서 돌진하던 집행관들이 정지했다.

실에 묶인 듯한 포박은 찰나지간. 몸은 느려질 테지만, 그들만한 달인이라면 알아차리고 동작을 취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우리 서폿 일 잘 하네.〉

이때만 기다리던, 그들만큼 뛰어난 전사의 창이 아니었다면.

〈이거면 옥타킬 씹가능이지.〉

브류나크의 창날은 소름돋을 만큼 예리하게 번뜩였다.

파공성을 내지 않고, 높낮이가 다른 8개의 목을 싸그리 수확해버릴 정도로 말이다.

지이이잉…!!

노르드의 힘을 견딘 브류나크가 참수의 반발에 잘게 진동했다.

【게르튀르】 반격기 제 1품새.

적이 360도에서 덮쳐오는 1대 다 전투에 가장 효과적인 절기였다.

푸화아아악─!!

8개의 머리는 한 사람의 것처럼 하늘을 날았다. 자엘은 목이 달아단 자신의 몸을 보며 바닥에 머리를 찧고, 그대로 입을 뻐끔거리다가 눈에서 빛을 잃었다.

〈……자, 이걸로 일단락이 된 셈인데.〉

─휘리릭. 휘두른 창을 되돌리면서 노르드는 등 뒤로 돌아섰다.

〈언제까지 구경하고 있을래?〉

〈흠? 아, 벌써 끝났습니까?〉

마도서의 페이지를 넘겨보던 셀루스티아 남작은 도서관을 닫을 시간에 사서에게 불려진 학생처럼 멀거니 대답했다. 지팡이는 그의 왼쪽에 부유하고 있었다.

노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존나 한가해 보이네. 너 뭐하러 왔냐?〉

〈별로 흥미로운 싸움이 아니라서요.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울프헤딘 백작님께 조금 상담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만.〉

〈해 봐.〉

〈두 분을 여기서 죽이는 것과, 퇴각하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것.〉

─탁.

마도서를 닫은 남작은 고개를 모로 꼬았다.

〈어느 쪽이 현명한 선택일까요?〉

상황에 안 맞는 이질적인 헛소리였지만 눈동자 어디에도 광기는 엿보이지 않았다. 그런 남작에게 소름이 끼친 듯 라리루라는 팔뚝을 쓰다듬었다.

노르드는 죽은 집행관들을 창끝으로 가리켰다.

〈이길 줄 알고 덤볐다가 털리면 그것만큼 꼴사나운 일도 없다?〉

〈정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귀하랑은 상성이 안 좋아서요. 사실 여기에 오기 전에 저주 10발 정도 더 날려봤는데 전부 흡수되더랍니다.〉

뭐 이 시발?

코피를 흘린 걸 떠올린 노르드가 인상을 쓰자, 그는 깔깔대며 웃었다.

〈씨팔럼. 흑마법사 교수였군.〉

〈바다에 산다고 전부 물고기는 아니죠. 정말로 고민입니다. 놓치기엔 아까운데, 덤비면 십중팔구 죽을 것 같고…… 그 창에 베이면 아마 영혼까지 소멸하겠죠?〉

〈뒤지게 동문서답만 해대네. 됐어, 개새꺄. 딱 하나만 더 묻는다.〉

─스릉. 피에 젖어도 날카로운 창날이 남작에게 겨눠졌다.

〈너, 〈편찬대대〉에서 나왔냐?〉

〈아니오.〉

6백 년 정도 셀루스티아 남작을 계속하고 있던 남자는 산뜻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음을 정한 듯 지팡이를 쥐었다.

〈존귀하신 분께 인사 올리옵니다. 천공신의 신관장, 셀루스티아입니다.〉

〈오딘 교단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네. 오딘은 생전에 신자를 두지 않았으니까요. 멋대로 믿는 이들이 있었을 뿐이고, 자기가 벌인 일을 수습하기도 바빴을 겁니다.〉

셀루스티아는 지팡이 끝을 흔들며 말했다.

뜬구름 잡는 말에 노르드가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자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궁금하시면 자엘 군의 영혼을 뒤져보시기를. 그는 황실로부터 고대에 일어난 대전쟁의 원인과 전말에 대해서 듣고 알고 있으니. 아, 물론……〉

─물컹. 남작의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기어나왔다.

〈……귀하는 이미 짐작하고 계신 듯 하군요.〉

〈호기심이란 게 한 번 생기면 끝이 없더라고. 해결해도 해결해도 계속 생겨나.〉

〈지혜는 소금물로 메꾼 갈증과 같아서 영원히 충족되는 일이 없습니다. 적당히 체념하고 궁금한 채로 살아가는 타협도 중요합니다.〉

〈고민하다가 인생빵을 건 니가 할 말이냐?〉

〈듣고 보면 그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습니까?〉

노르드는 넓게 퍼트린 감각으로 스며나오는 투명한 괴물들을 느꼈다. 원형을 알지 못할 수준까지 문드러진 인간의 영혼이었다.

【ᛈᚺ:ᛝᛚ ᚢᛁ:ᛗ ᚷᛚ ᚹ:ᚾ ᚨᚠ ᚺ:ᚲᚦ ᚢᛚ ᚺᚢ──】

수십 단어의 룬 문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영창하던 남작이 문득 시시덕거렸다.

〈신분 상승의 기회잖습니까? 이건 못 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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