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덜컹. 마차가 흔들렸다.
귀족의 저택과 비교해도 몇 배는 값비쌀 마차는 비포장도로에서도 탑승자에게 진동을 느끼게 하지 않았지만, 윈스턴은 뛰어난 감각으로 그 흔들림을 감지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여행길은 그만큼 그에겐 가시방석이었다.
윈스턴은 고민 끝에 질문했다.
〈가주.〉
〈왜?〉
그의 고용주이자 초대 원로원 가문이 아님에도 원로원의 상석에 앉은 국경의 후작, 오델리아 폰 아우렐리우스는 창문 밖을 구경하면서 대답했다.
〈결과를 서둘러서 노획한 유물의 질이 낮아진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오. 그러나…… 어딜 가고 있는 건지 정도는 알려주지 않겠소?〉
〈왜 안 물어보나 했더니 삼가하고 있던 거야?〉
그녀, 오델리아가 윈스턴을 돌아보았다.
초대 원로원 가문은 하얀 머리카락을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평범한 변경의 무가(武家), 아우렐리우스 가문의 금발은 무척 눈에 띈다.
그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인가?
〈코르넬리우스한테 가는 거야.〉
아니다. ‘군계일학’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은화 가운데 놓인 금화처럼 말이다.
〈후작…… 님에게 말이오?〉
윈스턴은 간당간당하게 존칭을 붙였다.
로마니아의 대공, 그러니까 공작은 황실의 혈통이기에 원로원에 출마할 수 없는 구조였다. 황권 독주를 막는 견제기관이 원로원이기 때문이다.
그런 실태 탓에 실질적으로 이 나라에서 황제의 뒤를 잇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계급은 원로원의 상원의원─대개는 후작─이었다.
투표권을 가진 신민들의 지지.
그리고 그 지지도를 일궈낸 치척과 자산을 가진 귀족들.
〈그래. 울프헤딘이란 꼬마가 그 녀석의 저택에 머물고 있다니까.〉
천검제후 오델리아 폰 아우렐리우스는 그 전형례에서 조금 벗어난 인물이며, ‘가문 정치’의 일환으로까지 변질된 원로원의 새로운 바람이었다.
물론 새로운 바람이라기엔 아우렐리우스 가문은 역사가 깊고── ‘바람’이란 산들산들한 표현도 이 가주의 본질에는 맞지 않다.
윈스턴의 감상을 빌리자면, 그녀는 폭풍이다.
여러 의미에서의 뜨거운 감자. 폭풍의 눈.
‘……그것도 좀 다르겠군.’
뜨겁다고 하면 쇳물보다 더하고, ‘폭풍의 눈’은 고사하고 폭풍 그 자체다.
맞서는 이들을 뿌리 째 뽑아버린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울프헤딘과의 머리 싸움에서 선수를 놓친 건 네가 아니라 내 실책이야.〉
〈말씀만이라도 고맙소.〉
〈딱히. 진심인걸. 조금 거칠지만 신속하고 과감무쌍해.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신세대답다고 하면 그런 느낌이긴 하지만. 역시 내가 먼저 찾아냈어야 했는데.〉
─토독. 검은색의 과자를 깨무는 오델리아.
그게 그녀가 이 초콜릿이라는 과자를 누구보다 빠르게 손에 넣은 이유였다.
이 낯설도록 검고 놀라울만큼 단 디저트는 그저 보기 드물게 새로운 감미를 의미하지 않았다. 아즈테카의 격변을 상징하는 상품이지.
〈그 격변의 주인공이 로마니아에 버금가는 강대국들과 함께 일을 벌인 탓에 이 나라는 새 시대의 변화에 한 발짝 늦어졌어.〉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오델리아는 속으로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혹은, 이 나라가 그 변화를 막는 입장이었거나.’
히타이트라는 고대국가의 그림자에서 엿보이는 수상쩍은 그림자.
단지, 입에 담을 만한 일도 아니다. 오델리아는 초콜릿을 윈스턴에게 내밀었다.
〈먹을래?〉
변경백 씩이나 되어서 털털하게 씹어먹는 것도, 그렇게 먹던 걸 내주는 것도 그녀기에 벌일 법한 일이었다. 그런 상대인 걸 알기에 윈스턴도 몸을 의탁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미안하오. 단 걸 먹으면 이가 시리는 나이라.〉
〈하긴, 늙으면 죽어야지.〉
외견이나 말투에서 느껴지는 나이 차이를 보면 윈스턴이 귓방망이를 올려붙여도 그러려니 할 만한 발언. 하지만 윈스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가주는 몇 살이시오? 라는 질문을 참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첫 만남을 이룬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했다가, 레이디에게 할 질문이냐며 분쟁터 뒤의 ‘작은 언덕 째로’ 베어넘겨질 뻔 했던 기억이 생생했던 것도 있다.
〈만날 구실도 있으니 직접 보러 가는 거야.〉
─토독. 오델리아는 초콜릿을 크게 씹었다.
〈놓쳐버린 유물에 집착할 거 없어. 보기 드문 상품을 파는 상인이 있으면, 상품이 아니라 그걸 파는 상인에게 주목해야지.〉
로마니아 유일의 마스터 클래스.
외적으로부터 국방을 도맡는 변경백이면서, 그 외적을 ‘전부 다’ 격멸함으로써 원로원에서 활동할 시간마저 얻어낸 달인 중의 달인.
천검을 부리는 로마니아의 제후는 말했다.
〈가자. 강철과 포션, 감미의 상인을 만나러.〉
아르마알스 가문에 머무는 청년을 보러 가자고.
***
“쓰벌, 누가 내 욕을 하나.”
귀가 간지러워진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테에엥.”
영 만족스럽지 않다. 이 뻐킹 이세계에는 어째 면봉도 찾아보기 힘들다. 찾으면 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일반 서민층에는 공급되지 않는단 거다.
물론 귀족이 됐으니까 알아보면 나오겠지만, 뭐 그럴 거야 있나.
─슈슈슉.
마나를 면봉으로 바꿔서 귀를 긁었다.
이제야 좀 시원하군.
‘크으, 쓰벌. 진짜 룬 마법 만만세라니까.’
모든 현대마법의 기초. 응용력에선 차원이 다른 개꿀 매직이다.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귀를 파는 것도 예의 상 못할 짓이지만, 뭐 괜찮다. 이 아줌마하고는 꽤나 친근한 사이기도 하고. 일단은 나도 싸장님이에요.
“흐으으음……. 이걸 창에 옮겨달라구요?”
금속성애자 대장장이 클라라는 지팡이를 살폈다.
익숙한 형태. 셀루스티아 남작의 드랍템이었다.
“사실 모르시는 사이에 이것저것 부가기능이 좀 붙어버려서, 때려부수기만 해도 흡수하긴 할 테지만요. 일단 부르는 김에 부탁 좀 드릴까 해서요.”
브류나크의 분신인 미스릴 창은 내 무기지만, 이 사람이 만든 물건.
항마력이나 마나 흡수 기능의 업데이트는 거의 내 의도가 아닌 우연의 산물이었는데, 이 지팡이 옵션의 계승은 또 그렇지 않잖은가.
“어디 가서 이 창은 저희 공방장이 만든 물건입니다~ 하고 말하려면 클라라 씨의 솜씨도 제대로 가미돼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장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후원자님이 생기다니, 전 행운아에요!”
감격하는 클라라. 나는 지팡이를 가리켰다.
“안에 들어있는 건 평범한 룬의 마나입니다.”
“룬의 마나 자체가 평범한 건 아닌데요?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어요!”
“뭐, 그렇긴 한데요.”
그 수수께끼의 검은 마나. 내가 혼돈의 마나라 부르는 마나는 지팡이에 깃들어 있지 않다. 그게 들어있는 건 저 지팡이보단 마법 서적 쪽이었지.
책은 남작하고 같이 갈려나가서 소멸해버렸지만 말이다.
“옮기실 수 있겠습니까?”
복잡한 속내를 품은 질문이었다.
게임 같은 옵션 계승이 가능한가? 가능해도 이 금속성애자가 그걸 할까?
“가능해요. 요즘엔 저도 기술을 배우는 데 맛이 들려서.”
대답은 YES였다.
이제 와서 하지 말자고 그러면 ‘니미’ 소리부터 나올 분위기네.
‘하긴, 생각해보면 브류나크도 창대는 나무였지.’
이 금속성애자도 무조건 다 금속으로만 만드는 건 아니었던 모양. 솔직히 그런 면에서 집착하는 건 장인정신이 아니라 똥고집이지.
어디 클라라가 자기 취향을 밀어붙여서 장비의 성능마저 망칠 위인이던가.
“기술적으론 어떻습니까? 재료는 준비했는데요.”
“문제 없어요! 이 가문의 대장장이들도 그렇고 듀나미스 공방의 이름값도 그렇고, 대장장이 길드 등지에서도 기술을 배워갈 기회가 늘었거든요!”
“들었습니다. 잠도 줄이셨다면서요?”
“오늘은 푹 잤어요. 백작님 무기를 조정하는 데 그 정도는 하고 말고요!”
“제가 명령조로 자라고 안 했으면 오늘도 꼴딱 새다 왔다. 인정?”
“고건 고렇죠.”
자랑이다, 이 인간아. 나는 용광로 뒤에 멀찍이 떨어져서 앉았다.
“얼마나 걸립니까?”
“금방 끝나요. 마법술식 추출 기술도 그렇고, 두 장비 다 나무에다가 주력이 되는 아이템을 붙이는 구조인걸요. 상성은 잘 맞는단 거죠.”
용광로에다 마법 시약 등을 던져서 불을 때우는 그녀.
─쿠르륵. 독특한 연소음이었다.
파란색 불꽃이 피어났고, 설명은 그게 끝인지 더 이상 말이 없어진 클라라가 작업을 시작했다. 일을 하는 표정이 진지하길래 나는 그대로 기다렸다.
마법진을 새긴 용광로와 모루 앞에서 융해하지 않아야 정상인 보석은 형상을 무너트리며 녹았고, 그 보석 주물은 실타래로 추출되었다.
사라락….
자세하게 보자, 그건 그냥 실타래가 아니었다.
컴퓨터의 데이터 코드처럼 술식이 길게 늘어난 띠 같다. 아구몬이 진화할 때 디지바이스가 뿜는 그거랑 닮았네. 클라라는 그 술식 뭉치를 그대로 창대에 내려꽂았다.
실패에 대한 부담이나 걱정은 없었다.
저주에 걸린 무기라도 저 작업이 대장장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단 걸 들었고, 또 브류나크한테 저 창은 맘에 드는 USB 정도니까.
쿠릉─!!
그리고 클라라가 추출한 술식을 옮겨넣었을 때, 마나의 여파가 대장간을 휩쓸었다.
파란색 파동이 망치와 모루를 넘어트리고 내 앞머리를 흔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브류나크는 떨리면서 공중에 떠올랐고, 술식을 조정하는 클라라는 대장장이라기보단 마법사처럼 떠오른 삐져나온 술식 코드를 정리했다.
매직 아이템이 곧 고급 무기인 이세계다.
잘나가는 대장장이는 당연히 제작 마법 정도는 갖고 있고 말고. 게임에서도 대장장이 스킬 쯤은 있잖은가? 전사랑 마법사만 마나 쓰라는 법 있나.
“……다 됐어요!”
─척. 창대를 잡으며 클라라가 기쁘게 외쳤다.
빨리 끝난다고 했을 뿐, 간단한 작업은 아니었던 걸까. 땀에 흥건해진 그녀였다.
“받아보세요.”
“넹.”
내밀어진 창대를 잡고, 당황하는 나.
무슨 대성당의 종 같은 걸 드는 것처럼 묵직한 손맛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라가 가뿐하게 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감각의 착각이었다.
‘아니……’
100% 착각이진 않은가.
내 감각에 착오를 일으킬 만큼 무겁다. 무게가 아니라 존재감이.
“1개의 무기에 여러 가지 룬이 새겨지다니 전대미문이에요. 술식을 상처없이 새기긴 했지만, 저는 그냥 무기에서 무기로 힘을 옮겼을 뿐이죠. 이런 식으로요.”
─퉁.
떨어진 망치를 바닥에서 탁자로 옮긴 클라라가 말했다.
“깜냥이 되면 분석해볼 요량이었는데, 엄두도 안 나더라구요. 대장장이의 기술이 아니에요. 보고도 안 믿겨질 정도로 고도의 마법기술이죠. 유물이 다 그렇지만요.”
“그러게요.”
아마 유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밖에 나가서 창을 몇 번 휘둘러본 나는 마법을 발동했다. 당연히 룬으로.
“ᛒ(Berkanan).”
─콩. 창대로 사뿐하게 바닥을 찍는 나.
쿠과과과과─!!!
그러자 바닥은 모래를 덮고 위장한 생물이 먹잇감을 낚아채는 것처럼 뒤틀렸다. 물체에 작용하는 변신 마법이 이렇게까지 강화되다니?
‘내 체감이지만…… 거의 3~4배 정도인가?’
일부 기능으로 한정하면 10배 정도의 상승폭마저도 느껴진다.
겜창인생 갬성으로 묘사하면 마법 강화 효과는 +300%지만, 캐스팅 속도나 그밖의 기능은 훨씬 높은 느낌. 나는 추가로 룬을 더 사용했다.
“ᚺ(Hagalaz).”
예기치 못한 재앙을 상징하는 룬!
아직 참된 뜻을 깨닫지도 못한 데다가, 나랑 잘 맞지도 않는 룬이었다.
꽈르릉─!!!
하지만 각인 작업도 건성으로 한 ᚺ(Hagalaz)는 솟아난 흙을 폭산시켰다.
“애미!! 콜록, 콜록!!”
진짜 룬 문자의 뜻 그대로 예기치 못한 재앙에 콜록거리면서 황사를 피한 나는, 그제서야 파괴의 결과물과 내 창을 번갈아보면서 살짝 전율했다.
“세상에 씨발.”
그건 감격의 떨림이었다.
위력 강화는 당연하다. 남작이 써댔을 때부터 그 점은 알고 있었다.
내가 감격한 건 그밖의 이유였다.
‘이거, 룬 마법의 적성까지 보조해주는 건가?’
보석에 들어 있던 룬에 한해서, 적성의 한계도 무시할 수 있는 비보!
안에 들어있는 룬의 갯수를 생각하면, 그 힘은 ‘모든 룬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