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86화 (784/1,009)

***

‘뭘 할 생각일까.’

진심 어린 기대감, 즐거움을 느끼며 오델리아는 검을 고쳐쥐었다.

느닷없고, 귀족의 품위와 예의에서 벗어나기까지 한 대련.

이건 전부 그녀의 즉흥적인 계획이었다. 옛날에 가르친 제자가 보이질 않는 이유를 물었다가 대련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가이우스는 친선대련을 하고 있다네. 나중에 불러주지.

─뭣하러? 같이 보러 가면 되지 않아?

그때 드러내놓고 똥 씹은 표정이 되는 코르넬리우스를 보고, 오델리아는 확신했다. 그 친선대련의 상대라는 게 그녀가 보고 싶었던 상대라는 것을.

노르드의 모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특징적인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어딘지 이상한 기척 때문에.

하지만 앉아있는 노르드를 봤을 때, 오델리아는 작전을 조금 더 수정했다.

말을 거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줄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잘 풀린 건 운이 좋아서였지만.’

그녀는 어쩌다 보니 네페르티티와의 대련 중에 끼어든 게 아니다.

일부러 프랑의 대련을 지켜보며 때를 기다리다 개입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네페르티티가 노르드의 일행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부인이라는 것까진 몰랐지만─, 오델리아에겐 그 대련에 멋대로 끼어들 명분이 있었다.

벽에 부딪힌 제자를 타이르려는 스승.

제 3자로서는 멋대로 끼어들기 힘든, 전형적인 전사의 논리다.

하지만 그 논리를 주장하는 게 후작이자 마스터 클래스인 그녀라면?

이 궤변은 귀족의 예의나 세간의 상식보다 약간 위에 선다.

실제로 오델리아는 지금까지 전혀 제지를 받지 않았으며, 또 ‘왜 저런 몰상식한 짓을 하지?’라고 그녀의 행보를 의아하게 여긴 사람도 없지 않은가.

다른 가문의 호위기사와 빈객에게 시비를 거는 짓거리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에게 가르침이랄 걸 베풀고 나면 어떻게 되겠나.

‘의심을 피하고 관심을 사기 쉬워지지.’

오델리아가 다짜고짜 노르드를 불러냈다면 ‘왜 나한테 접촉하려 들지?’하는 의심을 샀을 테지만, 이렇게 중간에 대화할 계기라는 쿠션 하나를 끼워두면 ‘얘기 좀 할까?’하고 말을 걸 법도 하잖나.

벽에 부딪힌 제자놈을 복돋아주고 싶다는 것도 진심이었고.

‘정작 저 애도 내 생각은 눈치챈 모양이지만.’

오델리아는 독특한 자세를 잡는 노르드를 살펴보았다.

저저 눈 좀 봐라. 귀염성 없는 녀석 같으니.

대귀족답게 행동 하나에도 음험한 책략을 숨겨 놓으시는구만~ 하는 표정인데, 정작 자기도 그런 음험한 뒷사정을 귀신같이 알아차리지 않았나?

그 똑똑한 머리의 방향을 좀만 바꾸면 사람 한 명 묻어버리기도 식은 죽 먹기일 텐데, 누가 누굴 보면서 저런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말인가?

음험하리만치 똑똑하되, 열받을 만큼 솔직하다.

‘딱 코르넬리우스가 좋아할 법한 녀석이네.’

아주 끼리끼리 잘도 만나셨어. 오델리아는 툴툴댔다.

상관은 없다. 오델리아의 생각을 알아차리고도 노르드는 제안에 응했다.

저만한 눈치를 형성하는 인생경험과, 성격, 지능.

다른 달인들처럼 단순하지 못한 베베 꼬인 성격.

그것들과 별개로 전사다운 욕심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나.

‘가이우스와 대련을 하려 했다는 건 강해지는 데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진심을 부딪히는 싸움은 때때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보다 정겹다.

집중력을 짜내며 싸우는 그 순간까지 진심이나 본성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기에, 오델리아는 자신만의 무예를 펼쳐내는 달인에게서 그들이 거쳐온 삶의 굴곡과 본성을 볼 수 있었다.

‘깨달음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전사에게 찾아오지 않으니.’

달인의 무예에는 그들만의 깨달음이 깃든다.

오델리아가 그들의 본성을 볼 수 있는 이유였다.

슥….

그때, 노르드의 흐느적대던 동작이 빠릿해졌다.

─번뜩!!!

흐물거리던 창끝이 눈 깜짝할 새에 오델리아의 머리를 노렸다. 섬뜩한 속도가 위력을 암시했다. 피하려던 그녀는 눈을 가만히 좁혔다.

‘실패했네.’

무슨 기술을 하려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전까지와 다를 게 없다.

오델리아는 그녀의 절기로 창대를 후려쳤다.

원소선경(Terminus Elementorum)

흐드러진 낙엽

─휘잉. 검과 창이 부딪히며 바람이 터져나왔다.

노르드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었다.

〈뎃?〉

〈타격을 흘리는 기술이야. 마저 받아보련.〉

창술의 에너지를 바람으로 흩뿌린 그녀는 즉시 목검을 찔러넣었다.

원소선경(Terminus Elementorum)

검끝의 빗방울

흐르는 것처럼 팔이 흐릿해지고 목검이 소나기 같은 찌르기를 펼쳤다. 아까 전부터 계속 퍼붓던 기술. 하지만 마냥 본다고 적응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안목을 벗어날 수 없으면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 네페르티티에게 지적한 ‘뻔한 궤도’와는 연이 먼 찌르기가 쏟아졌다.

노르드는 간신히 피해내며 기겁했다.

〈아악!! 제 기술 봐 주신다믄서요!!〉

〈지금 건 아까랑 다를 게 없던데 뭘. 실패야?〉

〈싸우면서 쓰는 건 처음이라!!〉

즉답하는 노르드. 연습해 봤던 게 며칠밖에 안 되는데 바로 나올 리 있나.

저번에도 그랬듯이 가이우스라면 성공할 때까지 기다려줄 거라고 봤던 것이다.

〈그럼 얼른 성공해 봐. 기대감이 가시기 전에.〉

그의 스승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쓰벌, 말이야 쉽지!’

노르드는 검의 리치 밖으로 몸을 빼냈다. 일단 숨이라도 돌릴 생각이었다.

오델리아의 예상과 다를 게 없었다. 마스터 클래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럼. 창이면 검을 상대로 거리를 둬야지.〉

너무나 상식적이라서 시시할 지경이다.

그녀의 목검에서 마나가 물방울처럼 뿜어졌다.

퓨퓨뷰뷰뷰뷰븃─!!

광탄처럼 날아오는 마나 덩어리! 노르드는 창을 회전시켜서 막았다.

묵직하다. 물방울처럼 작은 투사체가 산사태에 섞여서 쏟아지는 바위 같았다.

【게르튀르】 반격기 제 2품새. 풍차처럼 도는 창대가 마나를 분해하고 흡수했다. 마나로 발휘된 공격을 빨아들이고 자신의 다음 공격을 강화하는 절기였다.

‘여기서 그치면 지금까지랑 다를 게 없다.’

노르드는 이를 악물고 집중했다.

룬 문자의 뜻을 【게르튀르】의 동작에 담는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전할 수 있다.

즉, 이것은 육체의 무예로 펼치는 룬 마법!

“씨이이이발!! 몸으로 말해요옷!!”

기합이 지나친 나머지 무심코 외치며 노르드는 창술을 펼쳤다.

또다시 【게르튀르】 공격기 제 1품새. 창대를 후리며 베어내는 초식.

창에서 터져나오는 마나가 폭발적으로 부풀었다.

【게르튀르 푸타르크】· ᚢ(Ūruz).

원시의 힘, 들소를 상징하는 룬이 창에 담기며 사나운 무소의 돌진처럼 절기를 강화시켰다. 오델리아의 눈이 처음으로 놀라움에 부릅뜨였다.

낮게 내려갔던 그녀의 입꼬리가 즐겁게 휘었다.

원소선경(Terminus Elementorum)

흐드러진 물방울

더 적절한 기술은 봉인한다. 같은 기술을 써야 위력의 차이가 실감될 테니.

나무 창이 그녀의 검을 두들겼다.

─꽈앙!!!!! 놀라운 위력에 목검이 터져나갔다.

단 일격으로 오델리아의 절기를 뚫고서 무기를 부숴버린 것이었다.

박살나는 목검의 파편. 무기를 잃은 오델리아는 후퇴하면서 감탄했다.

‘공격의 위력이 올랐어? 이렇게나 큰 폭으로?’

달인급 전사들의 전투력은 정체기에 빠져든다. 기술의 완성도를 극한까지 갈고닦았기 때문에 더 성장할 여지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르드는 어떤가?

‘처음엔 쓴 기술과는 비교가 안 돼.’

마치 대마법이 창술의 형상으로 날아드는 것만 같았다.

이만한 위력, 이만한 공격력을 미스릴 클래스가 쓸 수 있는가?

할 수 없겠지. 인간보다 강인한 몬스터도 이런 공격을 뿜어댄다면 모험가 길드의 총장은 초월종 몬스터─마스터 클래스─로 판정할 것이었다.

‘이 녀석이 정말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원로의 권력과 재력으로 조사하고 특유의 눈을 살려서 판단했기에 오델리아는 알고 있다. 노르드의 행보에서는 일부러 실력을 숨기는 듯한 느낌이 없었다.

과거, 카르미네 대학을 나와서 학자로 활동하던 무렵의 그는 정말로 약했다.

약했지만 살아남았다.

매번 살아남아서 이겨왔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1단계 밑의 힘으로 이겨낸 것이었다.

그런 그가 오델리아와 같은 경지가 된다면?

─슈칵!! 싸움에 집중하라는 듯 공격이 목검을 잃은 그녀를 스쳤다.

〈좋아. 너의 이 기술, 마음에 들었어.〉

긁힌 상처도 나지 않았지만 오델리아의 뇌리는 진심으로 바뀌었다.

회피. 회피. 회피에 이은 회피.

피하긴 어렵지 않다. 아직 룬을 담은 초식은 저 휘두르기 하나 뿐.

노르드에게 회피를 읽혀봤자, 오델리아도 그의 공격을 읽고 있다.

‘마법에도 조예가 깊은 듯 보이던데, 서로 다른 종류의 기술을 하나로 합쳤나.’

피하는 데만 집중하면 맞을 일도 없다.

극대화된 오감이 그녀의 사고를 가속시켰다.

‘마법의 진가는 술식 간의 결합. 하지만 전사와 싸우면서 주문없이 사용할 정도로 숙련하려면 쓸 수 있는 마법의 갯수는 한정돼.’

그래서 노르드는 룬과 무예의 조합을 개발했다.

근래 노르드의 마법은 거의 단발적인 활용이나 창술의 보조에 그쳤기 때문이다.

‘조합이 한정되면 대응하기도 쉬워. 자기보다 더 강한 적을 상대로는 막고 피하는 것도 급급하지. 어떤 놈들이랑 싸워왔는지는 몰라도 한가하게 주문이나 외우고 있을 시간은 없었을 거야.’

그 추측도 정답이었다.

굉장한 마나를 가졌고, 그 마나를 공격에 쓰기 좋은 마법도 많이 있었지만, 정작 실전에선 너무 빠른 공방 중에 마법까지 섞어 쓸 여유가 없다.

그래서 노르드는 특유의 재기를 살려서 무대를 마련하길 애용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겐 매번 전술이나 상성을 구사해서 이겼다.

거친 입담을 통한 도발과, 같이 싸우는 이들의 서포트도 그 일환이었다.

‘힘은 충분해. 맞추기만 하면 이겼겠지. 그래도 내심 못마땅하지? 네 몸은 어쨌든, 아내들의 안전까지 배팅한 작전이 좋게 느껴지진 않을 테니.’

뛰어난 책략을 통해서 이겼다?

그런 표현은 기만이다. 오델리아도 영민한 편이기에 기분은 이해했다.

〈강한 힘, 뛰어난 기량으로 압도해서 이기는 게 왕도. 남자답네.〉

〈보시다시피 꼴마초라서요. 장래희망 3지망을 먼치킨으로 정하긴 했죠.〉

노르드는 계속 공격하면서 담담하게 인정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삼가한 사족이지만, 1지망은 기둥서방이고 2지망은 박사 금장이다.

싸움은 수단이고, 수단은 확실할수록 좋다.

그게 노르드가 강함을 추구하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가 겪은 일들을 아는 것도 아니면서, 오델리아는 완벽하게 노르드가 이 신기술을 만든 연원마저 파악한 것이었다.

〈그래? 절대강자를 칭하는 단어로서는 발음이 꽤 귀엽네.〉

〈꼴마초가요?〉

〈너 바보니? 당연히 먼치킨 쪽이지.〉

뚱하니 받아친 오델리아는 피하면서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클래스 제도를 정립시킨 건 나야. 이전에도 비슷한 표현쯤은 있었지만, 옛날에 나는 내 비대화된 자부심을 못 참고 나 잘난 맛에 그 순위를 정립했지.〉

〈그래서 퍼트리기까지 하셨습니까? 마스터 부심 오졌다.〉

〈나는 유명인이라서 소문이 제 발로 걸어다녔거든. 그래도 널 보면 너무 적당한 분류였다고 생각해. 특히 몬스터까지 클래스 제도에 넣은 뒤로는 더.〉

〈그런 얘긴 콜리도 경한테 따지셔야죠.〉

구경하던 이들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저게 어디 살벌한 공격을 주고받는 이들이 나눌 만한 대화인가? 스치기만 해도 뒤집히는 대련장 탓에 철천지 원수끼리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

〈나는 날 기준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분류했어. 나만한 기량을 갖추고 하수에겐 스치지도 않고서 이겨야 비로소 마스터 클래스. 명료하지?〉

〈창이 스치지도 않는 하수는 너무 명료해서 좀 꼴받는데요.〉

〈명료하긴 했지만 생각이 짧았지.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강자가 있고, 그들만의 강함이 있다는 걸 간과한 거야.〉

〈대놓고 씹으시네. 혹시 보청기 필요하세요?〉

부숴진 바닥이 튀어오른 파편에 숨은 노르드가 사각에서 창을 휘둘렀다. 오델리아는 그의 공격을 창을 검으로 쳐올리는 것처럼 막았다.

─까앙!!! 허공에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손에 아무 것도 쥐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마스터 클래스의 권능.〉

오델리아는 왼손으로 검을 쥐는 시늉을 했다.

변함없이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노르드는 섬칫한 예리함을 느꼈다.

〈이걸 손에 넣은 녀석들이 전부 나처럼 건실한 노력파일 거라 믿었던 거지.〉

〈……………….〉

〈나는 산을 올라갔으니까 너희들이 올라오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만, 산 꼭대기에서 태어났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녀석들이 남들의 고생을 알려고나 하겠어?〉

〈아뇨.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있기도 바쁘겠죠.〉

노르드는 실력에 비해 허망하게 죽은 강자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인간이 이 경지에 오를 방법이 단련밖에 없을 줄로만 알다니, 나도 세상 물정을 몰랐지.〉

만족스러운 대답에 오델리아는 웃었다.

〈그렇지만 권능의존형 마스터 클래스도 일단은 마스터야. 넌 미스릴 클래스는 넘었어도, 마스터로서는 약간 낙제점이고.〉

〈팩트란 건 생각보다 사람을 아프게 하네요.〉

노르드가 인상을 써도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국경의 수호자는 픽 웃었다.

〈교사로서 형편없는 말이지만, 나도 네가 낙제점인 이유까지는 모르겠어. 그건 당사자만이 알 벽이기도 하고, 네가 겪는 문제는 훨씬 더 이질적인 느낌이 들거든.〉

그럴 수밖에. 오델리아에게 알리지 않은, 알리지 못할 사실이 어디 1~2개던가.

오히려 이 잠깐의 싸움에서 이만큼 조언해준 게 용할 지경이다.

〈조언 감사합니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노르드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노력이나 깨달음만 가지고 극복할 수 없는 벽.

그 벽의 존재를 알게 된 걸로도 충분했으니까.

〈벌써? 감사인사는 아직 이르지.〉

하지만 오델리아는 웃는 낯으로 부정했다.

─두둥실. 고운 금발이 마나의 여파로 떠올랐다.

〈……예?〉

〈얘는. 아직 내 권능을 못 봤잖아? 재밌는 걸 보여준 보답이야.〉

찌르르르…! 그녀가 쥔 무언가가 떨렸다.

보이지 않는 검? 틀렸다.

오델리아의 손에 쥐인 것은 자연 그 자체였다.

〈이게 변경의 깨달음, 그 진수(眞髓)란다.〉

자연의 검이 풍경을 십자로 갈랐다.

번쩍이는 검끝에서 노르드는 국경을 보았다. 그 국경의 언덕에 검을 꽂고, 사계절의 변화를 몇십 년이고 바라보는 변경백의 등을.

천 개의 검이란 천 개의 깨달음이다.

빗방울과 낙엽에도 깃드는 무예의 진수.

그 모든 게 그녀의 검.

그렇기 때문에, 천검제후(千劍諸侯).

원소선경(Terminus Elementorum)

절계(絶季)

노르드가 서 있던 풍경이 4조각으로 잘려나갔다.

변경의 경계에서 얻은 오델리아의 권능이란, 곧 자연을 검으로 자연을 베는 힘.

손에 잡히는 바람으로 차원을 베어가른다.

어떤 대상을 어떻게 베어낼지는 그녀의 기량에 달렸지만, 검을 쥔지 어연 수십 년. 오델리아의 검술은 이미 공간을 넘어서 차원마저 베어낼 수 있었다.

“…………시발, 뒤질 뻔 했네.”

맞출 생각이 없었을 텐데도 식겁해지는 위력에 룬 마법으로 차원을 도약한 노르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델리아는 저릿해진 팔을 내렸다.

〈후우…….〉

‘절계’는 그녀도 모든 힘을 다해야 간신히 쓸 수 있는 기술.

오델리아는 폭포수처럼 흐른 땀을 닦아내면서 씩 웃었다.

〈오랜만에 운동하니까 개운하니 좋네.〉

싹둑 잘려나간 차원은 천천히 고쳐졌다.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노르드는 중얼거리며 물었다.

〈저, 아우렐리우스 변경백?〉

〈왜? 저 기술은 안 가르쳐 준다?〉

〈이거, 오늘 외에도 여러 번 쓰셨어요?〉

〈……그럭저럭.〉

반쯤 무시당해서 울컥했지만, 그녀도 노르드의 말을 반쯤 씹지 않았던가.

그래서 오델리아는 별 말 없이 긍정했다.

〈자주 써서 유명할걸? 국경에 대마법사가 1명 있는데, 그 녀석이──〉

〈주로 어디어디서 쓰셨습니까?〉

〈……국경지대라면 앵간하면 1번씩 다.〉

〈지도 상으로는요? 표시 좀 해 주시겠습니까?〉

안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는 노르드.

오델리아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내 필살검을 본 소감이 꼴랑 그거?’

입이 댓발 나올 뻔 했지만, 체통에 맞지 않으니 삼갔다.

─사각사각. 깃털펜을 놀리는 오델리아.

〈……자, 대충 이쯤이야. 됐니?〉

〈예. 정말 감사합니다.〉

노르드는 지도에 악의적으로─삐져서─ 까맣게 칠해진 부분을 노려보았다.

‘차원을 가르는 검이다. 변경백이 벤 공간은 그 안쪽이 보이고.’

정확하게는, 잉크에 가려지지 않은 부분을.

‘하지만 이 양반은 히타이트 레이스에 참가했다.’

윈스턴이 보여줬던 가문패가 떠올랐다. 문장은 아우렐리우스 가문의 것이었다.

그녀는 윈스턴을 시켜서 노르드가 뿌린 미끼성 정보를 굳이 물었다.

‘다시 말하자면, 변경백은 히타이트의 유적지를 모른다는 거야.’

차원을 베어댔지만, 그 안에서 히타이트의 유적 등을 찾아낸 적은 없다는 뜻!

‘저 검으로 차원을 갈라댄 변경백이 히타이트를 모른다. 즉, 유적에서 주운 깃털로 들어갈 수 있는 히타이트의 유적은 그녀의 활동범위 안엔 없어.’

그래서 노르드가 내린 대답은 한 가지였다.

해도에서 찾아낸 히타이트의 위치를 토대로, 저 검으로 베인 적이 없는 지역.

현실 지형과 잘려나가지 않은 차원들의 교집합.

‘여기다.’

다음으로 향할 히타이트의 유적은 그곳에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