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93화 (791/1,009)

***

“어째 우리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마차에 있는 시간이 더 긴 것 같다?”

로마니아 국도를 이동하던 중, 다나가 마차에서 문득 그런 불평을 했다.

“새삼스럽긴. 대학 시절이라고 달랐어?”

“그때는 적어도 5대 5였지.”

“지금도 시간으로 치면 그 정도일걸? 집에서는 인상에 남은 사건이 적어서 그렇지.”

아셰라드와 키아라가 탄 마차를 보며 대답하는 나.

진지한 불평은 아니겠지만 공감은 갔다. 시간을 따지면 집에서 머문 시간도 만만치 않은데, 겪은 사건의 농밀함이 체감 시간의 차이를 낳는 느낌.

“고고학자인 노르드에게 반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집에서 기다리거나 따라다니면서 고생하거나? 전 고생하는 게 더 낫다구 생각해요.”

티르시가 하는 말에 대답하는 프랑. 그거야 그렇다는 듯 수긍하는 아내님들에게 미안해진 나는 별 대꾸를 하지 못하고 창밖에 머리를 내밀었다.

“……노르드. 머리 내밀면 위험해.”

“갑갑하다고 마차 위에 올라가신 네페르티티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나는 픽 웃고 눈에 힘을 집중했다.

초목이 괴사한 초원에 구멍이 까맣게 뻥 뚫린 게 보였다.

〈울프헤딘 백작님. 가주님께서 진입 전에 잠시 상의하실 게 있으시답니다.〉

그러고 있자 말을 탄 기사가 다가와서 말했다. 오델리아가 육성한 기사단이라는데, 평균 실력은 꽤 높았지만 미스릴 클래스는 없었다.

〈예. 곧 가죠.〉

그렇게 대답한 나는 마차가 구멍 근처에 멈추자 오델리아를 찾아갔다.

변경백의 마차 근처에는 키아라도 와 있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울프헤딘 경.〉

〈아뇨, 뭘요. 변경백께선?〉

〈나라면 여깄어.〉

자기 검을 찬 오델리아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거의 크레이터처럼 넓은 구멍을 보면서 말했다.

〈이 구멍을 중심으로 야영지를 칠 거야. 여긴 다비드의 영지니까 곧 그놈의 기사단이 올 거고. 너희들은 그 전에 유적인지 뭔지를 찾아 봐.〉

〈학자가 학회장님을 포함해서 몇 명 뿐이어선 사람이 너무 적은데요.〉

남의 영지에 들어온 명분이 치안 유지였으므로 탐사단의 학자들을 전부 데려올 수는 없었다. 이 일행에 우리가 따라온 것도 사실 꽤 아슬아슬하다.

오델리아는 바닥의 흙을 매만졌다.

〈꼭 유적을 찾아낼 필요는 없어. 이 짓을 저질러준 놈들이 멀리 가진 않았을 테고, 내가 놈들을 찾아내서 해치우는 게 더 빠르고 편할 거거든.〉

〈마스터 클래스의 경쟁자입니까. 드문 체험이 되겠군요.〉

키아라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다친 상처는 완치되지 않았지만 모험가로서 목숨을 건 경쟁엔 익숙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구멍 안은 나랑 우리 기사단이 찾아보겠어.〉

오델리아가 일어섰다. 먼저 보내는 건 기사단만 죽어나갈 거라고 말했던 그녀지만, 자신이 함께 온 이상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자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려가는 그들을 눈으로 배웅한 나는 아내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뭔가 알 것 같은 사람?”

오감이 뛰어난 프랑한테도 약간 기대감을 담아 물어보는 나.

그렇지만 아내들이 눈짓한 건 프랑이 아니었다.

“베로니카? 왜 그래?”

마차에서부터 말수가 적었던 베로니카.

그녀는 무슨 바다에 처음 와 본 산골 사람처럼 자신의 감각에 당황한 눈치였다.

“여긴…… 뭔가 이상하다.”

“이상해? 어디가?”

“말로 설명하기 힘들구나. 그러나 절대 평범한 장소는 아니야. 감각이 곤두선다.”

본능에 이끌리는 것처럼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베로니카.

“……이질감. 맞아, 이질감이다. 뭔지 모를 위화감이 평범한 풍경에 섞여 있군.”

“베로니카한테만 느껴지는 감각이란 거잖아요? 높은 확률로 바이콘 신족의 본능이겠죠. 그렇다면 지금 베로니카가 감지한 건 종족 차원에서의 마법 적성 덕분이라고 봐요.”

티르시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바이콘 신족의 마법이라면 불과 얼음, 그리고 얼음 속성의 연장선인, 공간.”

어느덧 베로니카도 편하게 부르게 된 그녀는 내 옆을 지나치면서 완드를 들었다. 우신의 눈동자로 만든 특수한 완드를 말이다.

“〈균열 연결(Rimula Conciliatio)〉.”

그녀가 주문을 외우자, 구멍 주변의 공간이 좀 일그러지는 듯 보였다.

“힉! 뭐, 뭐에요?! 뭐에요?!”

신기한 듯 쫄아든 듯 내 뒤로 피하는 라리루라. 남작이 공간 마법으로 우주 공간을 불러일으킨 게 떠오르기라도 한 모양인데, 얘 요즘 자꾸 내 뒤로 숨어대네.

“설명이 부족했나요? 미안해요, 라리루라.”

티르시는 쓴웃음을 짓고서 말했다.

“공간을 연결하는 마법이에요. 역시 뭔가 감춰져 있네요.”

“……어떻게 좌표를 맞추셨습니까?”

나는 놀라서 물었다.

공간 마법은 좌표에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여기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도 그 공간좌표를 술식에다 쑤셔박지 못하면 풀리지 않는 공식과 같았다.

주파수를 모르는 전파를 도청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

티르시는 그걸 누워서 떡 먹기처럼 성공해버린 것이었다. 놀랄 수밖에.

“전부 다 지팡이의 힘이죠. 왜 제가 노르드더러 꼭 우신의 눈동자를 챙겨달라고 했겠어요? 마법을 원하는 곳에 유도하는 효과는 전투보다는 이럴 때 더 효과적이라구요.”

나한테 윙크를 하는 티르시.

우리 마법사님도 꽤 넉살이 좋아졌네. 처음부터 이런 성격이긴 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비틀어 열지는 못하겠어요. 마나는 충분할 텐데, 왤까요?”

“차원의 벽이겠죠. 공간 마법으로는 열기 힘들 겁니다.”

이건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문제였다.

‘바람으로 전봇대를 뽑으려는 거랑 같지.’

할 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운 낭비다. 땅에 박힌 걸 뽑으려면 바람을 세게 만들기보단 지면을 파헤쳐야 에너지 낭비가 덜하지 않은가?

이건 내가 가져온 깃털이 나설 차례였다.

“더 정확한 위치는 알아두는 게 낫겠죠. 어디로 가면 되죠?”

“느껴지는대로라면…… 더 아래네요.”

완드의 힘으로 마법을 펼치던 티르시는 그렇게 말했다.

공간 마법의 반발력이 강한 위치는 차원의 벽이 제일 튼튼한 곳.

‘다시 말해서 이 공간의 핵심이다.’

의사가 맥이나 환부를 짚어서 그 촉감으로 병을 진단하는 거랑 같은 방법이었다.

“구멍 밑입니까? 내려가야겠네요.”

어쨌든 그렇게 티르시의 솜씨에 감탄하던 나는 문득 어떤 사실을 눈치챘다.

“……그보다 티르시. 그 지팡이랑 마법, 설마?”

“쉿. 아직 비밀이에요.”

눈치도 빠르시긴. 눈짓으로 그렇게 말하는 티르시였다.

나는 뺨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려가죠. 콜리도 경도 가십시다.”

촤아악─. 까맣게 탄 구멍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우리.

일행과 함께 내려가자 오델리아는 뭔가 두툼한 토막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뭔가 했다가 그 정체를 알아보고 질색했다.

〈사람의 팔입니까?〉

그 두툼한 토막은 굴강한 전사의 팔이었다.

〈맞아. 잘려나갔지만 나름 실력자였겠어.〉

토막을 흙으로 덮어서 묻은 오델리아가 말했다.

〈다비드의 기사단이야. 우리보다 먼저 여기 온 모양이다. 거리로 보면 당연하네.〉

〈팔의 주인, 이 구멍을 만든 싸움에서 졌어?〉

〈설마. 이만한 파괴에 휩쓸린 거면 원형도 안 남았겠지.〉

네페르티티가 말했지만 다나가 부정했다.

〈단면도 뭔가에 베인 것처럼 깨끗하잖아.〉

〈……응. 굉장한 솜씨.〉

다나의 생각은 이치에 맞았지만, 그녀는 모르고 네페르티티는 알아챈 것도 있었다.

〈미스릴 갑옷을 싹둑 잘랐어. 오러로도 저렇겐 안 돼.〉

〈오러로도?〉

〈마나가 많고 적고가 아냐. 기량이 달라.〉

나를 포함한 달인들은 그 평가에 공감했다.

팔뚝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워낙 선명해서 그 모양으로 다듬은 대리석 조각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저대로 굳혀서 미술관에 두면 예숨품인 줄 알겠다.

‘단면만 봐도 알겠군. 존나 쎈 칼잽이 새끼가 한 짓이다.’

화가들이 다른 그림쟁이의 붓질만 보고 솜씨를 예상하는 거랑 같은 원리!

저 기사의 팔을 잘라낸 새끼는 비현실적일 만큼 검 솜씨가 뛰어난 새끼였다.

‘근데 흔적이 뭔가 익숙한 느낌이……’

나는 혼자 고개를 모로 꼬다가,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말했다.

〈그 대마법사. 어, 그러니까……〉

〈에른스트 에이트리센.〉

〈예. 에른스트와 싸워서 초원을 소멸시킨 놈이 어슬렁거리다가 여기로 찾아온 다비드의 기사단을 썰어버린 게 아닐까 싶은데요.〉

프랑의 지원을 받아서 설명했다. 오델리아는 그 허리에서 칼을 뽑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기사단이 왔다가 패퇴하진 않았을 거라고 봐.〉

〈팔을 벤 인물의 실력을 보면 기사단이 살아서 도망쳤다는 건 논외입니다.〉

키아라가 말을 받고 내가 그 패스를 낚아챘다.

〈시체의 다른 부위는 찾으셨습니까?〉

〈너희, 어땠어?〉

〈구멍 안에 다른 시체는 없습니다, 가주님.〉

기사단이 확신을 갖고 대답했다. 오델리아는 것 보라는 듯 눈을 돌렸다.

〈전부 베어죽였으면 시체가 굴러다녀야 맞아. 시체를 숨길 생각이었으면 팔뚝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는 건 이상하고. 그러면, 이런 뜻이겠지?〉

그녀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원소선경(Terminus Elementorum)

절계(絶季)

─쫘자자작!!

나한테 갈겼을 때는 개선문처럼 큰 균열을 만들었던 오델리아의 절기. 업소용 냉장고보다 조금 큰 정도였지만 위력은 변함없었다.

그렇게 갈라진 차원의 건너편에는 어떤 도시의 정경이 엿보였다.

〈흥미롭네. 모험가들의 마음을 알겠어.〉

〈어……〉

기껏 꺼낸 깃털을 쓰지도 못하고 벙쪄버린 나.

‘아니 씹, 할매요. 그걸 왜 잘라요?’

열쇠가 있는데 문을 잘라버리면 만든 사람들이 불쌍해지잖아.

나는 그렇게 동정했다가, 눈을 반개했다.

‘아니지? 이것 봐라?’

이 구멍으로 파고든 기사단은 사라졌다.

공격을 받아서 팔을 잘린 놈은 있어도, 전멸은 면했다.

달려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격한 놈’과 다비드의 기사단의 강함의 격차를 상상해 보자. 차라리 호랑이를 상대로 새끼 사슴이 도망쳤다는 게 더 말이 된다.

‘차원 벽 안으로 들어간 거다.’

‘공격한 놈’, 미지의 마스터 클래스 칼잽이는 그 뒤를 쫓아서 들어갔나?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다.

〈다비드의 기사단은 어떻게 안에 들어갔지?〉

〈……열쇠가 있었거나, 그게 아니면.〉

라리루라는 소형화한 링링이 6호의 팔을 만지며 말했다.

〈변경백님처럼, 억지로 문을 열어서?〉

〈……………….〉

나처럼 눈빛이 사나워지는 오델리아. 나는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그 수상쩍은 상원의원 씨는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의 실력자였습니까?〉

이건 꼭 물어봐야 할 문제였다.

차원을 연다는 게, 뉘집 개한테 이름을 붙이는 것 마냥 간단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알기론 마법사야. 아는 게 많고 화술이 뛰어나서 타고난 매력으로 하원의원 대다수를 구슬렸지만, 마법 실력은 높지 않아. 내 눈에도 강자론 안 보였고.〉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긴 한데요.〉

〈그만. 굳이 다 말할 것 없어. 마주치면 강적이 될 거라고 생각하렴.〉

남작은 룬 지팡이를 다루면서 마스터 클래스에 준하는 힘을 보여줬다.

전문분야인 저주가 통하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쎈 새끼였지.

‘능력에 비해서 가진 마나는 적었다. 위장이거나 어떤 이유로 훌드폴크의 옥새 같은 마나 저장소가 필요한 거군. 그게 없으면 싸우지 못하나?’

위장하려고 별주부전 토끼처럼 마나통을 뚝 뗐을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오델리아는 검을 넣으면서 말했다.

〈에른스트. 그놈과 싸운 누군가. 그리고 다비드. 강적이 최소 3명인가.〉

〈난전, 못해도 저희까지 합쳐서 4파전이 되길 바라야겠군요.〉

나는 일행을 향해서 말했다.

〈가시죠. 어부지리를 노리건, 1명씩 해치우건 유적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3명 중 1명이라도 저 안에 없다면 협공당할 염려도 줄어드니까요.〉

〈합당한 의견이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던 키아라가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위기를 깨달은 듯한 표정. 내 직감은 그 표정을 보고서야 경종을 울렸다.

─싹둑.

섬칫한 위협을 깨달은 찰나, 나는 목을 향해서 번뜩이는 예기를 느꼈다.

〈……스파씨이이이바!!!!〉

팔을 치켜들었다. 브류나크를 뽑으려고 했다간 그 0.1초의 선택 미스가 내 목을 몸통과 작별하게 만들 거라는 예감을 느껴서였다.

─콰득!!!!

우신 가죽 갑옷에 칼날이 먹혀들었다.

가드한 팔에 통증. 뼈에는 닿지 않았지만 수cm 쯤 박혔다. 근육이 푹 삶은 앞다리살처럼 썰려진 게 고통 속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다나의 가호를 받은 오러로 간신히 찢어지던 게 이 가죽이다.

그런데 마나의 기척을 숨기고 접근한 일검으로 내 방어를 뚫고 가죽까지 벴다고?

〈침략자들의 유해인가. 괜찮은 가죽을 입었군.〉

느닷없이 내 목을 노린 놈은 그렇게 말했다.

모가지에서 뿜어지는 마나의 광채. 역수로 쥔 검 1쌍. 검이 뿜는 불길한 마나가 오러보다 흉험하게 일렁거리면서 내 팔뚝에서 박혀서 번들거렸다.

〈얌전히 있어라. 베기 힘들다.〉

그놈이 거침없이 다른쪽 칼을 치켜들었다.

씨발! 오른팔로 막아서 브류나크를 뽑아낼 수가 없다!

〈Rrrrrrrrrrwuuuuooooo──!!!!〉

순간적으로 야성을 해방한 키아라가 부상을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깁스가 찢어발겨지며 사람 치고는 긴 손톱이 앰부쉬를 갈긴 씹새끼에게 날아들었다.

〈흥.〉

쌍칼잽이는 나를 노리던 칼을 비틀었다.

검로가 비틀리면서 키아라의 팔을 베었다. ─퍽! 피가 튀면서 그의 팔뚝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 부상으로 멈출 만큼 어수룩한 키아라가 아니다.

〈도축이 취미십니까? 그럼 챙겨가시길.〉

자기 팔을 낚아챈 키아라는 그걸 말뚝처럼 내려찍었다.

〈선빵 따인 건 오랜만이다, 쌍검충 새끼야!!〉

나도 칼을 힘으로 비틀면서 브류나크를 뽑아서 휘둘렀다.

〈둘 다 용맹하군. 짐승 사냥은 오랜만인데.〉

입꼬리를 비튼 쌍칼잽이는 우리 공격을 양손의 칼로 가드했다.

역수로 쥔 검은 방어에도 뛰어난 듯, 우리들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으면서도 버텨냈다.

〈음.〉

하지만 내 업그레이드 【게르튀르】도 키아라의 진심 펀치도 태연하게 흘려넘길 위력은 아니었다. 양팔이 막힌 쌍칼잽이는 찰나지간 몸이 멈췄다.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구나? 차원을 베진 못하나 봐?〉

그 찰나를 천검제후의 검이 꿰뚫었다.

우리가 틀어막은 사이에 오델리아의 찌르기가 그 씹새의 대갈통에 꽂혔다.

〈잡종이 하나. 반신이 넷. 초인이 하나인가.〉

아니, 꽂힌 줄로만 알았다.

오델리아의 검은 상대가 상체를 뒤틀어서 귀를 할퀴는 선에서 그쳤다.

이 미친 새끼, 오델리아의 검까지 피해냈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반사신경과 예측!

‘시발, 이 놈인가!’

오델리아가 못 알아봤으니 다비드일 리는 없고, 드워프도 아니다.

이 씹새가 대마법사 에른스트와 싸웠던 마스터 클래스가 분명하다!

〈유희신 정도는 아니겠지만 2번째 후보로서는 괜찮겠군.〉

놈은 머리를 젖히면서 팽이처럼 돌며 물러났다.

창을 비틀며 찔러넣었다. 후퇴하는 칼잽이한테 창은 유리한 무기다.

─물렁.

하지만 찔러넣은 브류나크는 신기루가 비틀리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부러진 게 아니었다. 고무 호스를 파이프에 밀어넣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휘었다.

〈비록 내 고향은 아니지만, 기꺼이 초대하지.〉

공간이 비틀린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 성의 이름은 카네쉬. 히타이트의 옛 도읍, 카네쉬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칼잽이는 쌍검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후욱!!

항거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 몰아치며, 내 몸을 뒤로 튕겨보냈다.

〈건방지게!〉

오델리아는 저항하지 않고 참격을 날렸다.

균열로 빠지는 우리를 노리려던 쌍칼잽이는 그 탓에 추가 공격을 감행하지 못했지만, 오델리아도 공격하느라 몸을 피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놈은 쌍수무기의 이점을 살려서 다른 칼을 다나에게 휘둘렀다.

〈이 씨팔럼이 감히 누굴 노려!!!!〉

─채앵!!!

브류나크로 검을 튕겨냈다. 베인 팔은 평소보다 강한 힘을 발휘했다.

놈이 눈을 크게 떴다.

1초가 10초처럼 늘어나는 찰나. 솟아나는 온갖 창의적인 욕지거리를 입에 담을 시간도 없다. 나는 치솟는 분노로 뻐큐를 날려주고, 끝끝내 균열까지 밀려져 날아갔다.

몸이 슬라임이 된 것처럼 휜다.

비틀린 공간 때문에 강렬한 멀미를 일으키면서, 우리들은 이차원의 틈새에 자리한 도시의 상공에 뿔뿔이 내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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