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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98화 (796/1,009)

번뜩이는 칼날이 목덜미를 스쳤다.

“씹!!”

나는 기겁했다. 저 쌍칼에 팔뚝에 박힌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통증이 생생한 데자뷰가 떠오르네. 하지만 막기도 급급한 수세에서도 활로가 보였다.

막아지네? 같은 생각은 금지다.

리듬 게임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었다. 사람은 ‘어? 이게 되네?’하고 생각하면 삐끗하는 법. 단지 어째서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는 의외로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이었다.

오델리아보다 죽일 생각이 가득하고, 무기도 두 자루라서 막기도 힘든 적!

‘키가 큰 성인 남성. 기본은 쌍검술.’

그럼에도 나는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어째서냐고? 글쎄다. 나로서는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칼의 길이도 적당히 길다.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형태.’

투척용 기술이 1개. 그리고 결정타도 있겠지.

─번뜩!!

라한의 왼쪽 칼이 굽이치며 물러났다.

─채챙!!

나는 브류나크를 넓게 잡고 절도 있게 쳐냈다. 근접한 적의 연속공격을 흐트러트리면서 받아치는 기술. 반격기 제 7품새.

나는 왼칼에 모인 살기를 페인트로 오른쪽에서 덮쳐오는 칼날까지 막아냈다. 오딘의 눈으로 봐도 못 막았을 만큼 예지 직후에 날아오는 속도였다.

까리하게 칭찬을 곁들이자면, ‘정면에서 벌이는 암살’이다.

“허미 씨벌 깜짝아!!”

부웅─!! 내 반격은 라한의 턱끝을 스쳤다.

창을 피한 씹새는 공격을 계속하며 경계했다.

“지금 걸 막을만한 실력은 없어 보였는데.”

“니가 빡대가리라 하는 짓이 뻔히 보이나 보지!”

접근시키지 않는다.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바로 주고 받는 근접전에선 기량의 차이가 승패를 갈라버린다. 최소 3걸음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지난한 일이지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놈의 검술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델리아가 준 단검술.’

라한의 검술은 그 단검술의 분파였다.

당연히 이 새끼가 한땀한땀 자기 밑천을 까발렸다는 건 개소리겠지.

‘아마 달인들의 나라였던 에린의 기술을 이놈이 배운 거겠지.’

라한의 출신이 얼스터 쪽일까. 알 게 뭐냐. 머리에서 궁금증을 지웠다.

운명의 장난인지 필연인지, 오델리아는 에린의 무기술 교본을 얻어서 내게 선물했다.

전에 다나를 노린 공격을 받아칠 수 있던 것은 그래서였다.

‘나는 이미 이 씹새의 검술의 원본을 아니까.’

그 진수를 실컷 탐구했으니까.

몸으로 기억하고, 오딘의 눈으로 읽는다.

‘저 새끼보다 앞서는 이점이 2개.’

이만큼 어드밴티지가 있다면 싸울 수 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았으면 메달을 포기했지, 이 늪까지 찾아오지도 않았다!

─쿵!!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창을 휘두르면서 마나를 조종한다.

오러를 뿜어내자 창이 닿는 범위의 공기가 갈라졌다. 내 창에 닿지도 않았는데 라한은 뒤로 날아갔다. 평범한 창술의 궤를 벗어난 【게르튀르】의 후반부 기술. 공격기 제 7품새.

“먼저 찾아와 놓고 이제 와서 축객령인가? 패배가 두렵거든 네 발로 도망쳐라!”

─퉁!! 라한은 튕겨나자마자 달려들었다. 달인도 놓칠 반사신경의 돌진이었다.

그렇지만 저 새끼의 보법을 예상한 나는 브류나크로 다시 몰아냈다.

달인의 싸움은 그 반복이다.

예측. 페인트. 반격. 공격. 몸에 익힌 기술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것.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부딪히는 냉병기는 마찰열과 압력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오러를 맞부딪히는 싸움. 우신의 가죽도 베어낸 라한의 쌍검도 오러와 마나 코팅을 부풀려서 대충 떼웠다. 낭비가 많지만 별 수 없다. 탕진은 부자의 미학이다.

─서거거걱!!

무기가 스치면 빙판이 조각나서 날아오른다.

날아간 빙판이 검압과 창술에 조각난다. 위치를 바꾸며 물러나고 다시 부딪혔다. 앞을 가리는 빙판 정도로는 일깨운 오감을 막지 못했다.

발생한 여파에 튕겨나간 얼음 덩이는 시꺼멓게 죽은 물을 흩뿌렸다.

“아 거 더럽게!! 얌전히 좀 싸워, 쌍검충 새꺄!!”

“결착을 서두르는군! 조바심이 나나, 울프헤딘!!”

점차 사나워지는 얼굴로 라한이 외쳤다. 저놈도 여유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좋은 징조인가? 모른다. 방심하지 않는 건 손해지만 그만큼 내가 몰아붙이고 있다는 증거니 나쁘지만은 않다. 문제는 내가 입고 있는 부상이다.

“당연히 서두르지! 미아보호소도 없는 동네인데 찾아야 할 가족들은 많거든!!”

고함치면서 바닥을 부순다.

─푸화아아악!!!

술식이랄 것도 없이 오러와 마나-카데터에 직결한 저위마법을 분사했다. 냉기를 와류에 휘감으며 라한이 검풍을 뿜어냈다.

바라던 바다. 풍차처럼 창을 돌려가며 흡수했다.

“환불 고맙다, 새끼야!!”

“칫!”

접전 중에는 창에 마법을 부여할 틈이 없지만, 적이 받아친 냉기를 다시 흡수하면 가능하다. 난 【게르튀르 푸타르크】의 일격을 휘둘렀다.

─콰아앙!!!

시체 늪이 폭산하면서 오염된 눈 결정을 드넓게 흩날렸다.

라한의 반신이 얼어붙었다. 금방 깨부숴버리긴 했지만 데미지는 통하고 있다. 오델리아도 인정한 공격력에 잔재주를 섞으면 타격은 누적된다.

‘상처야 나한테도 누적되지만.’

어깨가 쓰라리다. 어느샌가 입은 부상이다.

‘시발, 방어력은 높였는데.’

내 우주 방어를 뚫는 걸 낭비라고 본 건지 베는 대신 타격을 누적시키고 있었다.

갑옷을 뚫고 살과 뼈를 두들기는 기술!

피멍이 드는 수준을 넘어서 세포가 괴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우거의 견장이나 우신의 가죽이 마나를 막아주지 않았으면 더 다쳤을 것이었다.

승산은 있었지만 승률은 생각보다 낮은 듯 했다.

‘뭐든지 좋아. 지금보다 더 변수를 만들어낸다.’

라한은 아직 권능도 쓰지 않았다. 전투에 쓰기 애매한 능력일까. 아껴두고 있는 거였다간 승패의 저울이 어어 하는 사이에 놈한테 기울어버린다.

그리고 변수는 내 예상 밖의 위치에서 찾아왔다.

─사락. 분홍색의 마나가 길게 늘어졌다.

“실?”

라한이 멈칫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불투명한 역장이 전개되면서 구속했다. 라한은 검으로 역장마저 베어냈지만, 벤다고 없어지는 물건이 아니다. 칼로 물을 베는 거랑 똑같다.

‘그 사기꾼 놈?’

당혹감에 앞서서 오러 투창을 날리는 나.

라리루라의 〈폐막유희〉를 흉내낸 것일까?

‘아니야.’

라한은 이를 갈며 회피에 골몰하고 있다. 저게 눈대중으로 흉내낸다고 나오는 경지겠는가. 〈폐막유희〉는 많은 마나량과 섬세한 기술이 요구되는 상위마법이다.

그래서 난 저 사기꾼 놈이 나를 도와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라리루라의 흉내를 내가면서 이만한 달인 간의 싸움에 끼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대충 다비드의 기사단이라도 찾아내서 끌고 온 뒤, 근처에서 죽여버리고 ‘습격을 받아서 도와주러 못 갔다’는 식의 변명이라도 준비하고 있을 줄로 알았다.

그러다 내가 지면 도망치거나 어부지리를 노릴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라리루라의 기술을 100% 흉내내면서 날 도우려 하다니? 그럴 능력이 된다고 쳐도, 굳이 내 승리를 바라야 하는 이유라도 있다는 말인가?

‘뭐하는 새끼야, 대체?’

상상할 수 있는 정체는 많았지만 뇌피셜 뿐이니 망상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적은 아니라고 믿고, 나는 마나를 한껏 일깨웠다.

─쿠르르르릉!!

좌우의 손에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불과 얼음의 마나가 휘몰아쳤다.

“대마법? 멍청한 수단을 선택했군!! 눈을 뜨고 방치해 줄 거라고 여겼나!!”

일갈한 라한은 쌍검을 쥔 채로 품에서 단검을 몇 자루나 투척했다.

예상대로의 투척기술! 그런데 나한테 날아오는 단검은 적었다.

─슈슈슛!!!!

던진 단검의 거의 대부분은 뒤로 날아갔다.

역장을 전개하는 사람에게 던진 것이었다. 놈은 단검으로 견제하면서 나한테 달려왔다. 마치 내가 당장이라도 마법을 풀고 자기한테 달려들 거라고 예상한 것처럼.

“응, 좆까.”

그렇지만 나는 눈을 부라리며 마나를 더 거세게 짜냈다.

“……뭐?”

경악한 건 라한 뿐이었다.

내가 아내를 버릴 거라곤 생각 못한 것이었다. 다나를 지키면서 드러냈던 분노를 말미암아 내린 생각이겠지. 사실 정답이기는 했다.

‘킹치만 저 사기꾼은 라리루라가 아니잖아?’

단검에 맞아 뒤지건 말건 내 알 바 아님.

도와준 건 고맙지만 죽으면 죽는 거지. 아군이 줄기는 하겠지만 저년 하나 살리자고 내가 목숨을 걸고 악수를 둬야 하나?

라한을 죽이는 건 아내들이 안전해진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낯빛 하나 안 바꾸고 날 속이던 사기꾼 새끼를 아내들 목숨만큼 소중히 하라고? 지랄.

역장이 풀리기 전까진 마법을 멈출 이유가 없다.

“꼴사나운 놈! 같잖은 위선을 떠들더니 이기고 싶은 마음에 네 여자도 내쳤나!!”

“헤니르는 안 그런대냐? 최고네! 널 살려뒀다가 인질로 쓰면 반응이 볼만하겠어!”

패드립 연발. 딜교는 내 승리다.

이를 악문 라한은 쌍검을 번뜩였다.

아는 자세였다. 에린식 단검술의 일격기. 마나를 담을수록 검의 예기가 늘어나고 검속이 빨라지는, 아주 간단하면서 막을 방법이 없는 절기였다.

‘넘어왔다.’

이 싸움은 내 피해가 너무 격렬하다.

장기전은 패배를 의미한다. 이번 공격으로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휘리릭.

나는 절대천공영역을 준비하며 룬의 마나를 기동시켰다.

브류나크와 교수 슬레이어의 보조가 있다면 이 동시 발동이 가능하다. 결국 CPU를 멀티로 쪼개 쓰는 식이지만, 그딴 건 좆도 문제가 아니다.

룬 마법도 절대천공영역도 넌더리 나게 써 왔던 기술!

눈을 감고서도 쓸 수 있다. 집중력과 정신력을 둘로 나눠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이대로 유인해서 ᚱ(Raidō)의 룬으로 피한다.’

피하고 나서 절대천공영역의 폭풍을 맞추면 끝. 내 승리다.

공간 째로 베여도 상관없다. 내 방어에 추가로 ‘공간’이라는 갑옷을 하나 더 덧입는 것이다. 방어 쪽에도 마나를 순간적으로 3배까지 늘리면 그만인 문제였다.

파스스스……!!

라한의 보법이 바뀐다. 모르는 기술이다. 원본이 되는 검술의 기술은 아니다.

스스로 개발하고 발전시킨 저놈만의 절기일까. 오딘의 눈만 믿을 뿐이다.

역장은 지금도 펼쳐지고 있다.

나도, 라한도 자신의 최고 성명절기를 펼쳐내기 직전의 임계상태에 들어섰다.

그리고 혈관이 터질 듯한 집중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훅!

검을 치켜든 적수의 모습이 세상에서 소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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