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검을 치켜든 적수의 모습이 세상에서 소실했다.
“……시발!!”
내가 준비하고 있던 반격과 같은 맥락이었기에 이해하긴 어렵지 않았다.
‘숨었다! 나한테 공격을 맞추기 직전까지!’
투명 마법인가? 차원의 틈새에 숨었나? 쥐뿔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 차원도피 빤쓰런 계획은 실패다.
‘오딘의 눈으로 분석이 안 돼! 권능인가!’
은신의 권능. 그것 뿐이라면 소소한 능력이다.
하지만 오델리아의 경우를 봐라. 언뜻 하찮은 듯 느껴지는 권능이 제일 위협적이다. 한낱 은신으로 끝나는 힘이 마스터 클래스의 권능이라고? 지랄도 정돈껏 해라.
‘나도 차원도약으로 피해?’
안 된다. 은신이라면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테고, 차원의 틈새에 숨어든 거라면 성명절기끼리 붙는 형태가 돼 버릴 것이다.
저 일검의 위력은 상상이 간다. 내 예상으로는 오델리아의 절계 수준이라고 봐야 했다. 야바위를 빼고 정면에서 붙었다간 패색이 농후하다.
번개는 피할 거고, 폭풍은 베어버릴 거다.
뒷목이 쭈뼛 선다. 소름과 죽음의 예감이 내가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극복 못 할 형태로 내게 절체절명을 직감하게 했다.
그렇게 어쩔 방법도 없이 마법을 완성했을 때.
부숴진 얼음 조각 1개가 육중하게 무너졌다. 그 안에 들어있던 새의 시체 같은 것이 질척하게 쏟아지면서 역겨운 악취를 뿌렸다.
─오싹.
그리고 그 직후, 내 목은 싹둑 하고 잘려나갔다.
양옆에서 동시에 날아든 쌍검. 목을 치고, 코를 기점으로 자른 머리를 다시 토막낸다. 석고상 단면도처럼 잘린 내 머리는 깨진 석류처럼 땅바닥으로 쏟아졌다.
──감각이 현실로 돌아온다.
“큭?!”
나는 반사적으로 목을 붙잡았고, 바로 그때.
쿵─!!
부숴진 얼음 조각 1개가 육중하게 무너졌다.
방금 내가 본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내가 본── 내 죽음을 예고하는 미래와 똑같은 모양으로!
“……으!!”
말이 되지 않는 비명이 목에서 올라왔다. 나는 단말마처럼 고함쳤다.
“전장의 안개다, 씹놈아!!!”
푸화아아아아아악─!!!
농밀한 수증기를 360도로 뿜으면서 미채은신술 마마무를 전개했다. 마나를 품은 수증기는 영감을 통한 감지를 방해한다.
‘뒤!!’
칼날이 엄습한다. 하지만 내 목을 잘라낸 칼이 튀어나왔던 건 바로 뒤편.
그리고 상대보다 기예가 후달려도, 뻔한 공격에 맞을 내가 아니다.
“【ᚱ(Raidō)】!!!”
싸우면서 파악한 내 능력으로는 절대로 피하지 못할 공격.
나는 그걸 감지했고, 동시에 차원을 도약하며 그 위치를 전환했다.
라한이 경악하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내 힘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공격으로 마스터 클래스의 예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부우우웅!!!
방어를 뚫고 내 목을 잘라낼 수 있었을 쌍검은 허공을 갈랐다.
엎드리는 것처럼 몸을 숙였던 나는 한손에 끌어모은 폭풍을 발사했다.
“나선환 오버롤──!!!”
─쿠과아아아!!!! 바람이 폭발하며 폭풍이 공격 직후의 라한에게 작렬했다.
“하아아아압!!!!”
하지만, 사상은 병신일지언정 이놈 역시 마스터 클래스다. 절대 빗나가지 않아야 할 자신의 예상이 헛방을 친 찰나에도 불구하고, 라한은 내 폭풍을 양단했다.
미래예지를 관통하는 경악스러운 능력.
“모가지가 텅 비었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바란대로의 전개였다.
마나를 끌어모은 공격이 빗나간 바로 뒤에 내가 갈긴 절대천공영역의 절기를 막은 것이다. 마스터 클래스 할애비가 튀어나와도 지금만은 내 턴이다.
나는 사력을 다해서 브류나크를 一자로 그었다.
【게르튀르 푸타르크】·ᚢ(Ūruz)
룬의 참된 뜻을 표현한 창술은 섬광처럼 뻗어서 그 목을 후려쳤다.
깔끔한 손맛. 라한의 머리가 잘려나가 3바퀴나 공중에서 돌았다.
휘리리리리릭─!
툭, 투두두둑…….
잘려나간 목은 내 오른발 옆을 굴렀다.
“……허억, 허억, 헉…”
라한의 목을 쳐낸 나는 달인답지 않게 쓰러지며 숨을 허덕였다. 병석에서 막 일어난 환자가 되서 마라톤을 완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심코 목덜미를 만졌다.
붙어 있다.
목이 잘리고 머리통이 반쪽나지는 않은 것이다.
‘……또 미래를 예지했나.’
나는 갑갑해진 옷깃을 풀며 신음했다.
내 파멸을 고하는 미래예지. 나는 이번에도 그 힘에 구원받았다.
“……결국은 이렇게 되나.”
이겼는데도 전혀 이긴 기분이 아니었다. 혀끝에 쓴맛이 감도는 듯 하다.
권능을 펼친 마스터 클래스를 상대로, 나 역시 권능의 힘을 빌어서 이겨낸 것이다.
내 힘으로 일궈낸 승리가 아니다.
이 승리는 오딘의 눈의 원 주인이 거둔 승리다. 나는 그놈의 등에 어부바를 받은 셈이었다.
패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원 주인이라는 놈이 때를 맞춰서 내게 미래를 보여준 건 아니겠지만, 남의 힘으로 이긴 거나 마찬가지니까.
‘……제길.’
치미는 짜증과 갑갑함에 입가를 훔쳤다.
오델리아의 영지는 국경. 에린과 교류하던 고대문명 국가가 많은 지역이다.
유적이나 기록, 귀족 가문 등에서 나온 무술의 교본 같은 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많고 많은 교본 중 하나를 손에 넣고서,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남에게 준다. 확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하필 내가 싸울 놈의 기술을 맛볼 수 있는 형태로 벌어진다고?’
라한과 에른스트와 싸우게 된 내가, 바로 며칠 전에 기술을 체험하게 됐다?
이런 건 운빨 같은 말로 정의할 게 아니다.
나는 여기서 뒤지면 안 될 운명이었기에, 그에 맞춘 흐름에 휩쓸렸던 건 아닐까.
좋은 일이냐고? 전혀 아니다.
운명의 장난은 불쾌함을 동반한다. 승리의 여신이라는 년은─우리 아내님들을 빼면─ 절대 미소만 짓지 않는다. 내가 혜택을 받는 쪽이라도 그렇다.
이 불평등한 행운이 언제 불행이란 형태로 내게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잖은가.
오딘을 비롯한 신들이 멸망했을 때처럼 말이다.
……단지.
이때 나는 그런 나중 일을 생각하기보다, 좀 더 마초답게 승리를 만끽했어야 했다.
─푸욱.
그렇게만 했다면, 목 없는 시체가 일어나서 내 심장에 대뜸 칼을 꽂는 꼬라지는 보지 않아도 됐을지도 몰랐으니까.
“……커, 흑….”
가슴으로부터 튀어나온 쌍검의 한 짝을 보면서 나는 피를 한 바가지 각혈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나. 빌어먹을.”
떨어져나간 라한의 목이 혀를 찼다.
칼이 뽑혀나갔다. 더 뒤로 피하려고 했는데,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내게 떨어진 모가지가 전리품에 흠을 낸 게 아쉬운 말했다.
“……권능의 발동을 느꼈다. 그런만큼 몸 쪽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는 않았건만.”
애미 시발. 난 입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지랄 맞은, 새끼……. 목이 잘렸는데 멀쩡해?”
“남의 목을 많이 자르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며 그는 목을 주웠다.
저 새끼의 모가지는 원래부터 붙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랄맞은 실수였다. 공격할 장소를 고를 경황이 아니었다지만, 적어도 그 뒤에 방심하진 말았어야 했는데. 비교적 취약한 급소랍시고 목을 노린 게 잘못이었다.
운 좋게 거둔 승리를 운 나쁘게 잃은 셈이다.
─콜록. 나는 폐에 차는 피를 느끼며 각혈했다.
“쓰벌, 개미친 씹새끼……”
왜 라한의 목은 원래부터 잘려나가 있었는가.
존나 물어볼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이 새끼의 목적을 되새겨 보면 된다.
“자기 몸으로도, ‘시험해’ 본 거냐……?”
“시험? 천부당만부당한 소리.”
라한은 떨어진 자신의 목을 단면에 이어붙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줄창 이상한 마나를 흘려대던 목은 애초부터가 그런 구조인 것처럼 달라붙었다. 레고 모가지를 끼우는 것도 저것보단 어려운 척을 하겠네.
목을 뚜둑거리며 접합을 확인한 라한이 말했다.
“마스터 클래스는 자신의 권좌를 이룬 존재다. 신을 참칭할 수 있는 강자이지. 그렇다면 당연히 가장 먼저, 이 목부터 쳐내야만 하지 않겠나.”
“직접 목을 잘라서, 헤니르의 목이랑 니 몸통이 달라붙는지 확인했다고……?”
자른 목이 다시 붙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면서?
저만한 검술을 휘두르며 신에 준하는 힘을 가진 달인 중의 달인인 주제에, 섬기는 이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었다는 뜻 아닌가.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사람을 베러 다니지는 않았다.”
또 또라이의 개소리였지만, 그럴 만도 했다.
남의 목을 잘라서 헤니르에게 바치는 게 생활의 일부인 미치광이잖은가.
자기 몸과의 적합성도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해 볼 법 하잖은가.
‘염, 병…… 당연히 고려해야 했었어……’
발상은 미치광이지만, 논리는 이성에 기반했다. 엘리트 꼴마초라면 예상해야 했다.
나는 숨 쉬기도 어려워진 가슴을 붙잡았다.
내가 꿈에서 싱크로했을 만큼 육신이 비슷했던 헤니르의 몸. 라한이 사용하는 검술이 나도 쓰기 편했던 것. 전부 같은 답을 가리키는 단서였는데.
헤니르에게 적합한 몸과, 라한의 몸과, 내 몸은 서로 비슷하다.
애초에 그렇잖은가. 정말 적합한 육신이 하나도 없었다면, 예르나 년을 구조했던 무렵의 헤니르는 무슨 수단으로 제 발로 걸어다녔었는가.
적합한 육체가 있었다면, 왜 지금은 쓰지 않고 있었는가.
그건 그 육체의 원 주인이 헤니르의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돌려줘야만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의 육체는 이미 한 번 신군께 바치고, 돌려받았던 물건이다.”
목을 붙인 라한은 검을 고쳐쥐며 말했다.
예르나를 구했을 무렵의 헤니르는, 그가 바쳤던 육신을 쓰고 있었노라고.
그리고 지금은 자신만큼 헤니르에게 맞는 몸을 찾아 살육을 거듭하고 있노라고.
“……애미 뒤진 굴라그의 창업공신이셨군.”
─쿨럭.
나는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