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01화 (799/1,009)

【안녕? 차원의 절해고도에서 동족을 만나다니, 이 이상 기쁠 일이 또 있을까.】

프란체스카 파티의 앞에 나타난 에른스트는 그 마법진을 지우며 말했다.

‘공격해 오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이동〉으로 등장한 그 대마법사의 소탈한 웃음에 프랑은 오싹해졌다. 저 평범한 자세를 먼저 봤다면 호감이 앞설렸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프랑은 조금 전, 미친 것처럼 떠들며 눈동자에 광증을 드러내던 그의 얼굴이 머리 뒤편에서 가시질 않았다.

노르드가 있었다면 평범함을 가장할 줄 아는 광인이 가장 질 나쁘다고 평했겠지.

【……귀인을 뵙습니다. 통성명도 하지 않고 엿본 것은 사죄드리겠습니다.】

프랑이 봤던 것을 보지 못해서일까. 베로니카는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 그녀가 에른스트의 광기를 엿봤다고 해도 대화는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상대는 명실상부한 마스터 클래스.

고작 3명밖에 모이지 못한 그녀들이다. 전투는 피하는 게 옳았다.

【응? 혹시 겁 먹었어? 에이, 농담이야! 상황을 엿본 게 뭐가 어때서? 이런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신중하게 굴지 않는 사람이 더 이상하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에른스트.

방심은 금물이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지는 아직 남아있을 듯 했다.

─스윽. 에른스트는 그녀들을 살폈다.

【초대면인 자리는 어색해지기 쉽지. 미녀에게 둘러싸인 건 뜻밖의 행운이지만 이상하게 드워프 남자는 인기가 없더라고? 드워프 여자들은 확고한 지지층이 있는데.】

【아, 네…….】

【으음! 역시 많이 어색해 보이네. 이럴 땐 공통되는 화제를 찾는 게 제일이지! 그럼 어디, 우리 아가씨들은 어쩌다 이런 곳까지 오셨을까?】

부유하던 에른스트는 팔을 벌렸다.

【그렇게 물어보고 싶지만, 내가 말해놓고도 꼭 뒤를 캐려는 의도 같네. 이럼 안 되지. 내가 먼저 속내를 털어놓는 게 순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물론 상관은 없습니다만, 일행 중에 게르마니아 어를 쓰지 못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도 심념으로 설명해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베로니카는 네페르티티를 이유로 말을 꺼냈다. 실제로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그녀는 손을 채찍 근처 두고 망설이고 있었으니까.

【아, 그랬어? 근데 나도 여러 나라 말을 쓸 줄 아는 건 아니라서. 어어 하는 사이에 알던 나라가 망하고 또 새로 생겨나다 보니 제때제때 배우지를 못하겠더라.】

그러자 에른스트는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술식이 펼쳐지며 공간을 뒤덮었다. 마법의 발현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정면에서 견제하던 네페르티티의 인식보다 한순간 빨랐다.

그녀가 조금만 신중함이 부족했다면 선수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마법이 발동한 즉시 공격을 가해버렸으리라. 그만큼 위협이 되기 충분한 속도였다.

에른스트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언어의 장벽은 참 넓지. 자, 이거면 들리려나?”

“……그래.”

언어를 통하게 하는 마법.

그런 마법이 정말 존재하는가. 정말 존재한다면 만언신의 고유한 권능에까지 한 발짝 내디딘 마법사는 대체 어떤 존재일 것인가.

네페르티티는 의문을 접었다.

떠올린 의문에 답을 얻으면 승산이 희박하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이게 될지도 몰랐다.

“에른스트 에이트리센. 멋진 이름이지?”

“베로니카 에클립시스입니다.”

베로니카를 시작으로 그녀들은 이름을 답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던 에른스트는 프랑의 성을 들었을 때만 잠시 웃었다.

“에이트리넨. 낯설지 않은 성이네.”

“네. 드문 우연이에요.”

“그렇지도 않아. 생각보다 흔한 성이거든. 그거 알아? 에이트리는 게르마니아 신화에도 나오는 꽤 유명한 직인(職人)이다? 그 피가 흐르는 게 딱히 대단한 혈통은 아니지만.”

에른스트는 열망이 흘러넘친 것처럼 말했다.

“드워프는 말이지. 장인의 종족이야.”

당연한 말이었기에 아무도 순간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에른스트는 묵묵부답에도 불구하고 중얼거렸다.

“거기 검은 머리 아가씨도 알지? 드워프는 뭐든 하나에 팍 꽂히면 거기에 평생 몰두하게 돼. 많은 드워프는 본능이 충동질하는 ‘불꽃’에 홀려.”

“불꽃이요?”

대답을 하면서도 프랑은 고민했다.

메달 안의 발퀴리에에게 구조요청을 부탁할까? 마스터 클래스에게 들키지 않는 건 어렵다. 안에 있는 발퀴리에를 전부 꺼내면 도망칠 순 있을까?

도무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결국 무기로 시작해서 무기로 끝나는 전사들과 비교하면 마법사는 어떤 수단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권능의 존재까지 있다. 호흡이 갑갑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불꽃.”

─화륵. 에른스트가 불꽃을 피웠다.

조금도 마스터 클래스의 마법사 같지 않은 약한 불꽃이었다.

“……우주에 별빛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우리 드워프의 시조가 되는 존재들은 태어났어. 신들이 세계수를 만드는 데 사용한 거인의 시체에서부터.”

그는 그 작은 불꽃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드워프의 시조는 우주를 수놓는 세계수를, 그 세계수에서 뻗아나간 별들을 보았지. 그리고는 그 빛에 매료되었어. 그게 우리가 불과 흙에 적성을 가지는 이유야.”

드워프는 만들어지지 않은 종족. 그렇기에 가장 창의적인 종족.

키아라도 이야기한 사실이었다.

“별빛은 어둑어둑한 우주를 밝히는 불꽃이었어. 그래서 내가 태어났을 때는 벌써 많은 드워프들이 용광로 속의 불꽃과 거기에서 녹는 철에 홀렸지.”

“……금속과 용광로의 불이 드워프가 주무를 수 있는 가장 작은 별이니까요?”

“반쪽이여도 드워프구나? 잘 아네.”

그럴 것이다. 프랑도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답변이라기보단, 본능적으로 한 말이었으니까. 고민을 거치지 않고 내린 정답은 당연히 직관에 기반한다.

프랑 자신도 스스로 만들고 기르는 걸 좋아하는 하프 드워프 아니던가.

정원의 텃밭, 가족들을 위한 요리, 손수 짠 옷들이나 골렘.

드워프의 피가 원초적으로 선호하는 취미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진리에 홀렸어.”

대마법사는 검지에 피운 불꽃의 온도를 높였다.

“용광로의 불? 뭔가를 만들 때 뇌리에 번뜩이는 영감이라는 불꽃? 전부 시시하지. 빛나는 별들의 불꽃을 이 손에 넣고서, 심지어 내키는대로 끌 수마저 있다면? 그만큼 멋진 일이 달리 있을까!”

공기 중의 수분이 말라갔다.

아주 작은, 검지 끄트머리에 핀 성냥개비 같은 불꽃이 뿜은 열기로 말이다.

에른스트는 프랑을 바라보았다.

“마법은 가장 창조적인 작업이야. 신들이 만든 작품을, 세계수의 법칙을 비틀고 나만의 취향으로 덧칠하지. 그래서 나는 내 삶과 창의성을 마도에 바친 거야.”

“……네 설명은 이해하기 힘들어.”

네페르티티는 과감하리만치 단호하게 말했다.

“아까부터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뭐기는! 말했잖아? 내가 여기 있는 이유야!”

그는 카네쉬의 정상에 있는 왕성을 가리켰다.

“우리들 드워프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 하나에 몰두하고, 그 뜻과 미학을 지키며 창조에 매진하는 종족이야! 당연하게도 마법을 만드는 걸 삶의 보람으로 삼는 나는 여기에 이끌렸고!”

“귀인께서는…… 이곳에 새 마법을 연구하려고 오셨다는 뜻입니까?”

“아냐, 아냐! 그렇게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일까!”

머리를 흔든 그는 설명이 막막하다는 듯 이마를 붙잡았다.

조금씩 격양되던 그의 악센트는 남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높이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워? 테이블 게임에 새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나, 화가가 처음 보는 색감의 물감을 봤을 때랑 똑같아. 무심코 저절로 신경이 쓰이고, 원하게 되는 거라고.”

다른 사람의 이해와 세간의 인식을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인간군상.

세상은 그런 이를 광인이라고 부른다.

파스스…. 에른스트는 불꽃을 쥐어서 꺼트렸다.

“히타이트는 다른 세계를, 세계수 위그드라실에 열린 또 하나의 차원을 알아내려고 했어. 알겠어? 아스가르드도 니플헤임도 미드가르드도 아닌, 전혀 다른 세상을 말이야.”

히타이트가 찾아다녔다는 다른 차원.

이 【중간 가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

‘그건 혹시……’

그의 장광설을 듣던 프랑 일행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기존엔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차원.

지금으로부터 수만 년 전, 신들이 라그나로크를 앞두고 창조한 세계.

짐승에서 진화한 신인류의 계보.

‘노르의 고향.’

지구.

그 우주가 존재하는 세계.

프랑이 숨을 삼켰을 때, 에른스트는 그 머리를 뒤로 젖혔다.

“나는 수백 년 전, 마법사 길드를 만들 때부터 그 미지의 별들을 찾아내고 싶었어. 내가 모르는 불꽃. 전혀 다른 미지의 차원……”

에른스트는 속닥거렸다. 절절한 연애시를 쓰는 풋풋한 청년처럼.

“일종의 호기심이자 충동이지. 좋아하는 것들의 새로운 모습에 흥분하지 않는 녀석은 장인 기질이 결여됐어. 정말이지 감수성이라고는 코빼기도 없는 놈들 아냐?”

색다른 소재에는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하다.

누구나가 그럴 것이라고 믿는 에른스트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별의 아이들은 꽝이었어. 그놈들의 고향은 저 우신들이 온 이계랑 다를 게 없더라고. 그렇지만 이런 시행착오는 선구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방법을 찾으시면.”

베로니카가 질문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뒤에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베로니카 너는 마법사 길드에 가 본 적 없니? 네가 아까 전부터 준비하던 〈공간 이동〉에서는 내가 만든 술식의 편린이 보이는데.”

태연하게 베로니카가 마련해두고 있던 구명삭을 지적하고서 에른스트는 대답했다.

“미발견 생물과 마법은 해체하고 연구해 봐야지. 학문이란 그런 거잖아?”

“……연구입니까? 네. 저도 여러모로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베로니카는 전부 알았다는 것처럼 대답했다.

“주인님의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어서 말이다, 빌어먹을 놈.”

존대를 그만두고 씹어내뱉듯 욕을 토해냈을 때, 베로니카는 마법을 발동했다.

주문을 완료한 〈공간 이동〉 술식을 즉석에서 전환한다.

─꾸기기긱!!

방대한 마나가 왜곡된 공간에 간섭했다. 에른스트의 좌우에서 그를 짓뭉개는 공간의 압착기였다. 간략하면서도 치명적인 공간 마법의 절기였다.

아무리 단단한 물질도 공간이 일그러지면 같이 뭉개지기에.

“뭐에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박애주의자로는 안 보였는데.”

하지만 당연하게도, 에른스트는 그 발동을 읽고 웃었다.

위협적인 기습은 맞다. 다만 방어할 것도 없었다.

그가 24시간 펼쳐두는 【팔방 32면진】은 동서남북으로 분류한 자연원소 속성과, 그밖의 빛/어둠/공간/물리 공격을 전부 차단하는 방어막이다.

8개의 각 속성마다 4장씩, 32장의 실드.

고위 마법사의 치명적이고 강력한 공간 마법도 상쇄한다. 한때 에른스트와 동격이었던 대마법사 아르마 슈나스에게 한쪽 팔을 잃은 패착에서 만든 마법이었다.

신들조차 이 절대방어를 일격에 부수긴 어렵다.

게다가 방패는 파괴당해도 보충하면 그만이다.

즉살의 권능을 가진 라한도 【팔방 32면진】을 한 순간에 전부 뚫지 못했기에, 그와의 첫 전투에서도 에른스트는 목을 베이지 않았다.

─쩌엉!!!!

그렇게 에른스트가 미소지은 것보다 약간 늦게 네페르티티의 채찍이 【팔방 32면진】을 때렸다. 예측은 했지만 경시하고 있던 공격이다.

─출렁.

하지만 그녀의 채찍은 32장의 실드를 전부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마나를 체내에 관통시키는 기술.

노르드가 채찍에 새겨준 ᛒ(Berkanan)의 룬이다. 오러를 실은 채찍질은 모든 실드에 충격을 새기며 【팔방 32면진】에 마나가 차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프랑이 한 박자 먼저 던졌던 소태도도 실드에 틀어박혔다.

“뭐야?”

마스터 클래스는 수준이 낮은 상대의 행동이나 생각을 예상할 수는 있어도, 물건을 감정하는 안목까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에른스트는 그 찰나지간에 프랑의 의도가 그의 실드를 부수는 것임을 알았다.

알았지만 막지 않았다.

순간적인 위력이 더 특출난 베로니카가 술수를 부리는가. 그는 그 점만 주시했다.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마법은 칼 1자루에 박살날 방어가 아니었기에.

그래서였다.

─쩌억!!

신경도 쓰지 않은 소태도가 【팔방 32면진】을 싸그리 쪼개며 한 순간에 철거해버렸을 때, 에른스트는 약 반세기만에 겪은 충격에 진심으로 놀랐다.

프랑이 던진 흑요석 소태도는 아즈테카 왕가의 보물.

【탈각검(Euayotl Kiuak)】.

우신 숭배 이후로 버려진 오래된 신앙의 소태도.

껍데기를 벗기는 칼이라는 이름의 유물에 맞게, 【탈각검】이 가진 효과는 안에 생명이 들어있는 껍데기를 종류를 불문하고 박살내는 것이었다.

탈각검의 효과에 부숴지는 【껍데기】. 여기엔 마법사의 실드도 포함된다.

실드에 아주 작게 금만 간다면 탈각검은 어떠한 방어막이건 쪼갤 수 있었다.

네페르티티의 공격으로 실드를 전부 발생시키고 프랑의 투척으로 부순다.

상의 한 번 없이 실행한 팀워크는 기적적으로 저 성벽 같은 방어를 철거했다.

…쿠자작!!

방심한 대가로 에른스트는 1초도 못 미칠 다음 순간에 베로니카의 〈공간 압착〉에 짓뭉개졌다. 그의 몸은 신기루에 잡아먹힌 것처럼 사라졌다.

─뎅그랑. 탈각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후우……”

공격을 성공시킨 베로니카는 불타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숨을 내쉬었다.

키에 맞게 짧은 팔이 덜렁거리면서 프레스기의 틈새로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에른스트의 팔이다.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그 찰나에 도망치는 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공간 압착〉으로 포위한 공간은 〈공간 이동〉으로도 벗어날 수 없었다.

단지, 그녀들은 누구도 무기를 내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에른스트가 장광설을 떠들 때부터 수백 미터나 바깥에서 펼쳐진 투명한 결계가 전혀 풀릴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난은 집어치워.”

네페르티티가 채찍을 휘둘렀다.

─콰지직!! 낭창낭창하게 휜 채찍은 룬 마법의 힘으로 길게 뻗으며 비틀린 건물 옆을 후려쳤다. 돌 무더기와 함께 중년 드워프의 모습이 드러났다.

“결계를 눈치채고 있었어? 여자는 너무 눈치가 빨라도 못 쓰는 법인데.”

피하지 못했던 에른스트는 상처도 없이 공중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는 알기 힘든 수식을 두고 고민하는 것처럼 그 다리에 턱을 괬다.

“다시 묻는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야? 내 얘기를 들어준 건 결계를 깨달아서였지? 그렇다면 너희가 먼저 싸움을 시작하면 안 되지 않나?”

“헛소리를 듣기 싫은 게 첫째. 참고 들어주려다 한계에 도달한 게 둘째니라.”

베로니카가 꿈쩍도 않고 지팡이를 세우자 그는 눈을 끔뻑거렸다.

“……셋째는? 보통 이럴 때는 이유를 3개 정도 대는 게 보통 아닌가?”

“남자는 너무 눈치가 없어도 못 쓰는 법이에요.”

프랑은 에른스트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새로 나이프를 꺼냈다.

그렇게 대답의 진의를 묻고자 에른스트가 입을 열었을 때.

“정말이라니까. 나는 자기중심적이고 눈치 없는 남자가 제일 싫더라.”

사근사근한 군소리가 그의 목덜미를 베어냈다.

원소선경(Terminus Elementorum)

수림의 그늘

─쫘아아아악!!!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채워뒀던 32장의 실드가 또 다시 절반 이상 베어졌다.

“……여우 같은 계집이!!”

에르스트는 방금까지만 해도 흘러넘치던 유유자적한 기분을 씻은 듯 잊고, 최대의 집중력으로 【팔방 32면진】을 전부 공간 방어로 전환했다.

저 검의 주인이 펼치는 절기를 막기 위해서.

에른스트는 지팡이를 띄우며 이를 갈았다.

“망할 방해꾼이 여기서까지 나타나는군. 멍청한 몸통 수집광 놈. 귀한 유적에 밀어넣을 멧돼지가 따로 있지, 저 계집까지 안에 데리고 와?”

“이 나이에 계집애 취급이라. 젊게 보여지는 건 기쁘지만 네 눈에 좋게 보이는 게 나한테 얼마나 의미 있을까는 고민해 볼 부분이네.”

─사락. 프랑 일행을 지키는 위치에 선 그녀는 검끝을 치켜세웠다.

“매번 네가 사건을 친 곳에 찾아가기만 했으니, 내 쪽에서 기습한 건 처음이지?”

─파츳! 칼날에 예리한 오러를 씌운 오델리아는 눈을 반개했다.

“어때? 살금살금 움직이는 거, 나도 꽤 잘하지 않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