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03화 (801/1,009)

─촤르르르르륵.

프랑은 골렘 코어 나이프를 후광처럼 머리 뒤에 회전시켰다.

정갈하게 회전하는 나이프들은 하나하나에 새긴 ᚨ(Ansuz)의 룬으로 증폭시켰다. 거신 골렘을 다룬 경험이 프랑의 상상력과 마나 운용을 지원했다.

“밀어붙여!”

오델리아는 분신체를 베어내며 외쳤다.

놓쳐버린 분신이 본체나, 본체와 똑같은 의식을 가진 존재이진 않을 것이었다. 그런 게 가능하면 이 카네쉬에 본체가 직접 왔을 리도 없었다.

본체는 공방처럼 안전한 곳에 남아서 분신만을 하인 부리듯 보낸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이 싸움 자체가 아무 의미 없어진다. 권능이라고 해도 너무 강력하다. 자신의 권능을 토대로 오델리아는 그럴 리 없다고 읽었다.

“사령탑은 하나야! 분신을 해치우고 도망친 세 놈도 쫓아가서 해치우면──”

“아니에요.”

“……뭐?!”

프랑은 망설임없이 그녀의 의견을 부정했다.

이런 경험은 국경만을 지키던 오델리아보다 이 세상 방방 곳곳을 여행하며 온갖 괴물들을 만나본 프랑 쪽이 훨씬 앞선다.

‘불사신 같은 건 없어.’

에른스트의 도취한 장광설에서 느낀 그의 생각과 지금까지의 경험.

거기에 정답의 힌트가 숨어 있다.

노르드가 예르나를 쓰러트렸다고 생각했을 때, 숨겨진 방에서 튀어나온 예르나의 본체는 프랑을 인질로 노르드를 협박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노르드가 죽었다고 확신했던 흑마법사가 부활해서 라리루라를 노린 적도 있다. 서로 다르지만 ‘죽은 줄 알았던 자가 부활했다’는 점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초월자들에게 육체의 손망실은 무의미한 것.

인간이 만든 엘릭서만 있어도 치유되는 부상이 어찌 영혼의 소멸에 비하리오.

신에 준하는 존재들의 죽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영혼의 소멸.

목을 잘라도 죽지 않는 괴물도 영혼이 부숴지면 죽는다. 신대의 신들조차 그랬다.

그럼 에른스트의 영혼은 소멸했는가? 아니었다. 분명 방심하고 있을 때 【탈각검】과의 조합으로 치명상을 입혔지만 그는 태연하게 되살아났다.

‘어쩌면 되살아났다는 말부터가 착각일까.’

죽지 않았다. 영혼은 처음부터 멀쩡했다.

“……분신은 권능이 아냐.”

프랑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답을 외쳤다.

“권능의 소모를 강화시키는 권역에서 ‘남발하게 되는 권능’을 쓰진 않을 거에요!”

분신은 에른스트의 권능이 아니다.

남의 권능에 간섭하는 마법마저 만든 에른스트 아닌가. 본체와 같은 성능의 분신을 못 만들 거란 법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처음 공격은 분명 통했어요! 하지만 그 다음엔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났죠!”

분신은 왜 분신인가? 본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본체와 분신을 구분하는 기준은?

“영혼!”

프랑은 외쳤다.

“자신의 영혼을 다른 곳에 옮기는 권능!”

고함친 순간, 백일몽처럼 환영이 스쳐지나갔다.

책을 넘기는 늙은 드워프의 등. 흐릿한 촛불에 의존하며, 생기를 잃어가는 얼굴에서 눈동자만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마법의 탐구자.

그는 부족한 재능을 집착과 광증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능한 자신’이 싫었다.

더 뛰어난 자신을 갈망하며 완벽한 천재가 되는 자신을 공상했다. 그리고 그 공상을 이뤄주는 게 마법의 힘이었기에, 그는 소원대로 천재가 되었다.

초월자가 된 지금도 여전히 마나가 제대로 듣지 않는 육신을 버리고, 가장 마법사에 적합한 몸을 만들었다. 분신체의 육신에 환생한 것이었다.

“정답! 거 봐, 하면 되잖아!”

광소를 터트리는 에른스트. 프랑은 그의 권능의 핵심을 찔렀다.

【혼저취정련】. 영혼을 옮기는 권능.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힘이기에 부담이 적고, 권능의 체력 소모가 2배로 올라가는 필드에서 몇 번이나 연발해도 문제없다.

계속 재언(再言)했듯이 마법의 진수는 창의력.

대마법사인 에른스트는 권능마저 마법의 술식과 결합시킨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건 추론능력이 아니야!”

에른스트는 작열하는 불덩이를 수십 발 만들며 외쳤다.

“나는 원석이 불순물을 떼어내고 황금으로 진일보하는 순간을! 흙이 금속이 되는 찰나를! 나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예술의 극치를 보고 싶다!”

공세에 나서는 여인들을 전부 막으며 에른스트는 프랑에게 마법을 쏘았다.

에른스트 2인분의 마법 폭격.

1발 1발이 프랑의 몸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프랑은 닥쳐오는 죽음의 형태를 피부로 느끼며 소름이 돋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백토인형〉.”

골렘을 만든다. 전투에 제일 적합한 형태를 창의력으로 구상했다.

제일 좋은 건 팔이다. 드워프의 손재주를 살릴 수 있는 손. 에른스트도 분신을 일부만 꺼낼 때는 팔만 꺼내서 마법을 쓰지 않았나.

─콰득!!

프랑의 뒤에 커다란 골렘의 팔이 2개 나타났다.

하얀 팔은 길이만 1미터에, 손에 망치와 방패를 들었다. 프랑은 거의 성벽처럼 두꺼운 방패로 몸 전방을 가렸다. 불덩이가 쏟아지며 꽂혔다.

미스릴보다 강고한 바위는 폭발하는 불덩이들을 버티지 못하고 찢어졌다.

“버틸 수 있지?! 그렇지!!”

〈백토인형〉의 새 형태는 에른스트의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찢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진흙이 패인 자리에 차올라서, 흠집을 메꾸며 보충했다.

골렘의 불사성을 살린, 재생하는 방패.

“방패가 부숴지면 남아도는 마나로 보충시키면 그만이지! 내 실드의 흉내냐! 이거 참 선구자로서 자랑스러운걸!”

“예술의 본질은 흉내야! 최초의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했으니까!”

“그 멘트 좋은걸! 내 자서전에 써 줄게!”

─짜악!! 손뼉을 부딪힌 에른스트는 베로니카의 열선에 불타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독창성이 없으면 3류에 그친다!”

방어하지 않는다. 실드와 분신 형성속도에 모든 수비를 맡기고, 6명의 에른스트는 대마법에 준할 마법의 폭격을 2초만에 천지에 흩뿌렸다.

빛의 칼날이 날아다니면서 모든 이들을 노렸다.

오델리아와 네페르티티는 고절한 무예로 사방을 방어하고, 베로니카는 장전해 뒀던 〈공간 이동〉으로 피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지킨 것이다.

그러면 프랑은?

프랑의 육체와 무예는 아직 저들만큼 뛰어나지 않다. 그녀는 피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구두 밑창보다 더 아래에 진흙을 피웠다.

발이 빠지지 않는, 단단하고 유동적인 진흙을.

─쐐액!!

발밑의 진흙이 무빙워크처럼 밀리며 이동속도와 보법을 가속시켰다.

프랑은 방패로 포위를 뚫으며 공격을 회피했다. 하는 김에 지나치는 코스에 무방비하게 있던 분신체를 망치를 휘둘러서 곤죽처럼 분쇄했다.

그 반동으로 망치의 머리도 꺾여서 바닥에 떨어졌지만, 금새 보충된다.

“재밌네! 비행 마법도 아니고, 딱 보법을 쓸 수 있는 범위에서 지면을 움직였나!”

“처음 보면 놀랄 만 해!”

프랑은 내달리는 발판 위를 더욱 내달렸다.

셰이드의 꿈에서 노르드와 놀며 보았던 기구를 재해석한 응용법이었다.

이 물질형성이 형태와 질감, 강도를 전환하는 〈백토인형〉의 진가.

룬 각인의 증폭효과로 형태의 제한마저 극복한, 삶의 경험을 힘으로 치환하는 마법.

적을 다정하게 포용할 수도, 곤죽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여인의 자애와 분노는 표리일체다.

온화한 지모신의 분노보다 두려운 것은 없으며, 어머니의 강함은 모성과 사랑에서 비롯한다. 어떤 역사와 신화에서든 그래왔다.

프란체스카 에이트리넨의 본질에서 태어난 힘.

“결핍에 대한 공포만으로 이렇게 바뀌었나!”

에른스트는 줄어든 분신체를 회복시켰다.

마스터 클래스의 안목으로도 처리능력이 예상을 따라가기 힘들다.

동격의 오델리아까지 있다. 하수들의 공격쯤은 눈에 뻔히 보이는데, 정작 6배로 불어난 손발로도 막지 못하는 순간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약자들부터 정리해가며 승산을 올릴까?

안 될 소리. 결코 안 될 소리다. 에른스트는 그 입매를 비틀었다.

불꽃을 두려워하는 자가 드워프일 수는 없다.

너절한 재능으로 구차하게 살고자 했다면 여기 다다르기 전에 백 번도 더 죽었다.

철을 두드리며 얻은 화상은 장인의 훈장. 설사 그 오만의 끝에 쇳물을 뒤집어쓰고 죽는다 한들, 미학을 추구한 끝에 있는 게 파국이라면야 그것도 하나의 결말일지니.

“기대된다! 네가 그 결핍의 본질을 다시 보게 될 때가! 허전함을 채워주던 희망을 빼앗겼을 때가! 잠시 채워졌던 만큼 깊어진 결핍을 자각했을 때, 너는 진정한 드워프로 거듭날 테지!!”

“관심 없다구 했잖아!!”

이번에야말로 치미는 분노로 프랑은 손에 붙든 코어 나이프를 휘둘렀다.

에른스트의 안목은 프랑의 의도를 예상했다. 예상했지만, 순식간에 대처하지 못했다.

“역시 내가 사람을 볼 줄 안다니까.”

똑같이 프랑의 의도를 읽은 오델리아가 부상을 각오하고, 맹공을 퍼부어 에른스트의 모든 의식을 회피와 생존에 집중시켰기 때문이었다.

오델리아는 첫 만남에서 건넸던 말을 떠올리며 가가대소를 터트렸다.

“내가 말했잖아? 재능 있다고.”

프랑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물 웅덩이처럼 확산한 흙에서 9쌍의 팔이 튀어나왔다. 갑옷의 조형은 척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만큼 검을 내지르는 속도도 빨랐다.

─콰드드득!! 6명의 에른스트들은 꼬챙이 형을 당한 죄인처럼 매달렸다.

“크학……! 하하하하하!!”

배를 관통한 검이 변형하며 몸을 구속하자 에른스트는 피를 울컥거리며 웃었다.

분신은 최대 9명까지. 죽이지만 않으면 추가로 더 꺼낼 수 없다. 6명을 한순간이나마 구속한다면 분신을 꺼내고 영혼을 옮기긴 불가능하다.

그러나 【혼저취정련】의 진가는 아직 더 있다.

“멋진 영감을 준 점, 진심으로 고맙다.”

에른스트는 프랑의 마법에서 느낀 영감을 지금 바로 새로운 마법으로 창조하고자 했다. 분신들을 자폭시키고자 마나가 끓어넘쳤을 때였다.

“내가 그 꼴을 봐 줄 것 같아?”

차원을 가르는 검술이 풍경을 베었다.

이겼다. 오델리아는 확신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베어낸 풍경의 모습이 직전과는 다르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려는 곳에 프랑과 베로니카가 있었다. 이대로라면 에른스트 대신 아군을 베어버린다.

“……제길!!”

무슨 짓을 당했는지 깨닫고 검을 멈췄다.

무모한 급제동이었다. 체력 소모는 더 커지고 팔에 부담이 막대하게 걸렸다. 그녀는 욱씬대는 팔을 누르며 몸을 90도 돌렸다.

‘최소한의 〈공간 이동〉으로 내가 바라보는 위치를 바꿨어!’

오델리아의 몸통을 돌려서 그녀의 검이 아군을 향하도록.

마스터 클래스인 오델리아와 동격인 달인이기에 에른스트는 다시는 통하지 않을 1번 뿐인 기습을 최고의 순간에 사용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눈치채고 검을 멈춘 오델리아는 백 번의 칭찬으로도 모자란 판단력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었다. 천검제후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힘 조절 덕분이기도 했다.

단지, 그녀 자신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영혼을 옮기는 권능은 편리한 힘이야.”

자폭한 에른스트들이 한 데 뭉치고 있었으니까.

꾸물거리는 살점은 실드로 몸을 지키며 말했다.

“나 같은 초월자에게 육체는 한낱 그릇이지만, 무의미하진 않아. 천재도 노력하고, 붓을 가릴 줄 알아야지. 마나 신경계부터가 다른데 똑같이 취급하면 쓰나.”

살점은 어린아이의 찰흙놀이처럼 뭉개지고 변하면서 노인이 되었다.

에른스트다. 이 잠깐 사이에 50년은 늙어버린 듯, 중년의 모습일 때보다 훨씬 나약하고 초로한 노인 시대의 육체였다.

하지만 육체의 강함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주변에 100개를 넘는 손이 지팡이를 들고 떠 다니고 있었다.

“손재주를 극한까지 살린다. 일손이 부족하면 ‘손’을 늘려서 해결한다. 좋은걸. 강자 1명을 상대하는 【구주저인】보다는 집단전에 걸맞아.”

늙은 성대로도 천진난만하게 말하며 에른스트는 깔깔댔다.

─파사삭. 그 웃음에 흐트러진 것처럼 손 일부가 무너졌다.

그는 영혼을 부여한 손이 무너지는 꼴을 보면서 혀를 찼다.

“……연구가 아직 필요하군. 얼른 끝내자고.”

“누가 할 소리를.”

오델리아는 쏘아붙이며 프랑 앞으로 뛰었다.

노르드의 아내들을 일행을 지키는 형태로 서서 그녀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프란체스카. 방금 그거 다시 할 수 있어?”

“네.”

땀을 닦으며 프랑은 대답했다.

오델리아도 체력은 아직 많다. 절계를 3~4번 쓸 정도는 될 것이었다. 단지 맞추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32장의 실드도 벌써 공간 방어로 맞췄을 것이다.

“실드는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프랑은 아껴두고 있던 【탈각검】을 쥐었다. 그 검을 힐긋 쳐다보는 베로니카.

“초를 쳐서 미안하다만, 저 노인이 본체인 것은 확실하더냐?”

“응. 영혼이 들어있어. 확실해.”

네페르티티도 다친 부위를 숨기며 말했다.

앞서 떠올린 것과 같은 이유로 여기 없는 다른 분신들에게는 혼을 옮길 수 없다. 영혼은 하나 뿐이고, 프랑의 설명을 들은 그녀에게는 에른스트의 혼이 톡톡히 보였다.

저 노인의 몸에 들어있는 혼을 부수면 끝이다.

“작전 타임은 끝났어? 한 데 모여있는 건 조금 곤란한데.”

에른스트는 양반다리를 하며 웃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프란체스카만 살려두고 싶거든.”

“해 봐. 그럴 능력이 된다면.”

오델리아는 검을 땅에 닿을 듯 낮추고 돌진했다.

그게 방아쇠가 된 것처럼 프랑도 움직였다. 손 안의 【탈각검】을 투척 자세로. 날아드는 마법은 방패와 동료들이 막아줬다.

팽이처럼 회전하며 날아가는 【탈각검】.

에른스트는 그 효과를 알지 못했다. 실드를 부수려고 한다는 건 읽었지만 원리를 몰랐다. 그래서 막으려들기보다는 비행 마법으로 회피했다.

“그럴 거라 생각했느니라.”

그걸 기다리던 베로니카는 마법을 발동했다.

빗나간 【탈각검】을 〈공간 이동〉 시켰다. 저 텅 빈 뒤통수의 몇 cm 뒤로.

에른스트가 온 신경을 기울여서 유념하고 있는 건 프랑과 오델리아 뿐! 쓸 때마다 매번 장전해둔 베로니카의 〈공간 이동〉은 그만큼 경계하지 않았으리라.

“그걸로 오델리아를 날려보냈어야지.”

─텁!! 【탈각검】을 붙잡은 에른스트는 아까운 것처럼 탄식했다.

부유하던 손 중 하나가 【탈각검】을 낚아챘다.

“젊은 팔이 좋긴 하군.”

99개의 팔들이 마법을 외웠다.

공간의 미로를 부수며 오델리아를 포함한 모든 이들을 초토화시킬 융단폭격. 남은 마나를 아끼지 않고 불어넣은 역대 최고량의 마법 세례다.

“하압!!”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절계로 차원을 가르고서 오델리아는 폭격을 지웠다.

지운 직후에, 나머지 40발이 쏟아졌다.

막힐 걸 뻔히 아는데 뭣하러 한 번에 쏘겠는가. 차원이 수복되는 공간을 빠져나가며 오델리아에게 공격이 쏟아졌다. 전원이 그 폭격을 요격했다.

‘……아.’

프랑만을 빼고.

자신도 수비를 돕고자 감지능력을 최대로 키운 그녀는 눈치챘다.

자신의 마나가 느껴졌다. 아직 새 육체에 적응 못한 듯, 감각이 무뎌진 에른스트의 바로 아래에. 마법이 흘러넘쳐서 마나를 느끼기도 힘든 장소에.

아까 부러졌던 망치의 머리가 있었다.

“……저걸로!”

─물컹. 프랑은 남은 마나를 전부 끌어모았다.

잘려나간 망치의 머리가 수은처럼 녹아내렸다.

망치의 머리가 떨어진 위치는 하늘을 나는 에른스트의 바로 아래.

아직 붕괴되지 않았던 망치의 머리에는 마나가 담겨있다. 프랑은 망치의 머리를 매질로 순식간에 금속량을 부풀렸다.

그 판단이 에른스트의 감지능력과 안목을 조금 웃돌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제일 강한 공격을.’

떠오르는 건 창이었다. 창을 쥔 팔이다.

듬직한 팔로 땀을 흘리며 매일 우직하게 훈련을 하던 남자의 창.

뺀질대는 척, 게으른 척 하면서도 누구보다 더 성실한 그이의 뒷모습. 저택의 창가에서, 격전지의 한복판에서, 복수를 이룬 망령도시에서 지켜봤던 사랑하는 남편의 창술.

형태를 떠올리려고 머리를 쥐어짤 것도 없었다. 눈만 감아도 떠오른다.

촉감마저 선명하다. 흉내쯤이야 못 낼 것도 없다.

──【게르튀르】 공격기 제 1품새.

가장 빠른 쾌속의 찌르기.

재능없는 몸으로는 배우지 못할 절기를 골렘의 팔로 대신 펼친다.

프랑이 가진 룬의 마나는 흙에 뿌리박고 9쌍의 팔뚝을 만들었다. 오리할콘에 버금가는 바위창의 첨단에는 흐릿하게 파괴의 마나가 담겨져 있었다.

“오러?”

그 마나를 느낀 네페르티티가 눈을 크게 떴을 때, 창들이 아래에서부터 에른스트의 실드를 관통했다. 오러에 싸인 바위창. 흙과 물리의 복합속성.

─콰칭!!!

공간 속성을 막는 실드는 취약하게 부숴졌다.

“그래……!! 그래야만 드워프의 혈통이지!!”

유효타를 허용한 에른스트는 원석의 광채를 본 아이처럼 얼굴을 빛냈다.

남은 실드는 고작 6장. 오델리아가 돌진했다. 1번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에른스트는 생각했다. 그녀의 검이 공간을 가르지 않을 때까지는.

원소선경(Terminus Elementorum)

사그라드는 모닥불.

평범한 참격. 오델리아가 처음 배웠던 상단세의 내려치기였다.

“끄으으으윽…!!”

맨몸으로 마법을 얻어맞으며 휘두른 검은 13장 남은 실드를 전부 부쉈다. 그렇게 오델리아가 쓰러지자, 베로니카는 순간적으로 마법을 발동했다.

프랑의 방패를 뽑아서 중력 마법으로 투척했다.

에른스트의 남은 실드는 0장. 장전한 마법도 10개가 채 안 된다.

투척한 방패가 마법을 상쇄하며 날았다. 에른스트는 샐쭉 웃으면서 이 찰나에 쏠 수 있는 마법을 전부 퍼부었다. 방패가 부숴지면서 폭발했다.

그리고, 방패의 그늘에서 네페르티티가 도약했다.

“……뭐, 그렇겠지.”

세팅해둔 마법을 전부 오델리아에게 퍼붓고서, 몸을 지키는 건 이미 부숴진 실드에만 의존했다. 【탈각검】을 붙잡았다고 수비를 덜 신경쓴 죄다.

그래도 공세에 나서지 않았으면 마나가 동나서 졌을 것이다.

대마법사의 마나도 무한하진 않다. 분신은 손을 늘리는 데 써버렸다. 끝이다.

후회는 없다. 의지를 관철하다 보면 꺾일 날도 오리라고 여겼으니, 그게 오늘이었을 뿐이다. 그는 가슴으로 날아드는 채찍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친 사상의 예술가. 채찍에 맞아 죽다.

“진부한 얘기구만.”

─펑!!

《사막의 뱀》은 낙뢰처럼 그의 가슴을 뚫고, 그 안에 잠자고 있던 영혼을 가루가 되도록 분쇄했다. 분신이 소멸하며 에른스트의 의식은 송두리 째로 소멸했다.

10미터도 되지 않는 높이를 떨어지는 그 잠깐 사이에 시체는 오늘날까지 유예했던 세월을 전부 맞이한 것처럼 한 줌의 흙으로 변하며 무너졌다.

─사락.

한때 대마법사였던 사토(沙土)가 불타는 거리에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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