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04화 (802/1,009)

〈거창하게도 싸우는구려.〉

고개를 조아리고 보고하던 마법사는 그 혼잣말 같은 소리에 무심코 되물었다.

〈다비드 님?〉

종자가 말을 건 상대는 구리빛 피부의 남자였다.

근골이 장대하여 평생 사술 따위와는 도무지 연이 없을 듯한 거한. 하지만 그의 손에서 피어난 마법들은 인지를 벗어난 것이었다.

마치 현자와 같은 눈을 한 그였지만, 그의 손에 비틀리고 인간이 아니게 된 동료들을 만난 이후 마법사는 사람의 매력을 외모에서 찾아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미 그에게 복종하고 걸어다니는 살덩이나 다름없게 된 지금도.

〈별이 하나 떨어지고, 또 하나는 죽을락 말락 하고 있소. 정말이지 예전부터 히타이트는 지독한 피비린내로 자욱할 지경이오.〉

주인의 혼잣말이 계속되자 종자에 불과한 그는 침묵을 택했다. 그가 중얼거리면서 펼쳐내고 있는 마법의 위대함을 본다면 대다수의 마법사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신께서 보우하셨나 보오.〉

다비드는 수십 미터를 수놓는 마법진을 지웠다.

〈레이디께서 힘을 쓰셨소. 자신의 안위보다도 꺼질락 말락 깜빡이는 별의 생사가 더 중요한 모양이오. 그야 오죽 당연하겠느냐만은.〉

그는 검지를 들었다. 그리고서 원근법을 모르는 아이처럼 한참 떨어져 있는 왕성을 꾸욱 눌렀다. 검지가 허공을 파고들며 쑤셔박혔다.

쭈우우욱….

피부의 껍질을 찢는 것처럼 조금씩 히타이트의 방위체계가 찢겨나갔다.

그는 우묵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곧 찾아뵐 수 있겠군.〉

빈객으로서 호스트를 기다리게 만드는 건 심히 무례한 짓이니까.

하물며 그게 한때 신이였던 여인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

눈을 뜨고 나서, 눈을 감고 있다는 걸 알았다.

뭔 개씹헛소리냐고 하면 그른가? 싶기도 한데, 내 감각으로는 그랬다. 정신은 어떻게 깨어났는데 육체의 의식이 전혀 부상하지 않았다.

뇌가 잠든 상태로 영혼만 일어난 느낌적인 느낌.

‘이게 그 유체이탈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몸을 못 움직이니까 따지자면 가위에 가까운가?

쓰벌, 모르겠네. 그치만 확실한 건 있었다. 내가 지금 반쯤 시체라는 것.

바짝 마른 황태도 젓가락으로 푹 찌르면 구멍이 숭숭 나기 마련인데, 생사람의 보들보들한 심장은 오죽하겠나. 명치 쪼금 옆에 칼을 꽂혔는데 몸이 멀쩡하면 사람이 아니지.

즉, 마스터 클래스는 거의 대부분 사람이 아님. HP를 회복하는 보스몹은 예르나 때부터 시달려서 지긋지긋한 거에요.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헛소릴 하며 의식이 또렷하게 일어났을 때, 나는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스윽….

정체 모를 손길이 내게 뻗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 매지션 ON.’

마나를 제물로 바쳐서, 블랙 매지션 노르드를 턴 종료시까지 특수소환.

눈을 뜨고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 약 2초.

출혈로 멈춘 심장은 무시하고 시체를 움직이는 마법을 자신에게 건다. 그 뭐냐, 아직 진짜 시체는 아니긴 한데 대충 가사상태를 만들어 놨었으니까.

‘아, 그랬지.’

의식의 회복하면서 기억도 돌아왔다.

거의 1대 1로 레벨이 더 높은 마스터 클래스를 이겨보려다가 거의 뒤져나갔던가. 나는 링에 올라가기 직전의 헤비급 챔피언처럼 아드레날린이 훅 올랐다.

─벌떡!!

눈을 부릅뜨면서 일어나서 앞으로 덤블링.

주변 환경을 파악하면서 무기를 찾았다. 우리 딸 브류나크는 내 손에 없다. 내가 누워 있었던 듯한 대리석 바닥에 굴러다니는 중이었다.

‘대리석 바닥?’

머여 시발? 늪지가 아니네?

“……콜록.”

마른 피를 토하고 입을 슥 닦았다. 브류나크를 불러서 낚아챘다.

“음. 일어났네.”

내가 누워있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여자가 말했다.

나한테 손을 뻗었던 건 쟤인가? 나는 폐부에 꽉 찬 피를 계속 쿨럭거리며 토했다. 당장 호흡을 안 해도 되는 상태인데 반사적으로 숨을 쉬려고 하고 있어서였다.

“콜록, 콜록……. 그 위장은 벗기로 했냐?”

“음. 식물인간이 스스로 일어난 것도 놀라운데 이제는 상황파악까지.”

안 구해줬어도 됐나. 괜히 나섰네.

그렇게 한탄하는 여자는, 존나 인상적인 복장의 노출증 환자였다. 티르시가 선조의 마나를 가져올 때 입게 되는 옷이랑 좋은 승부가 되겠다.

마술사의 도우미는 야릇한 옷으로 관객의 눈을 팔리게 만든다던가.

체크무늬의 맥심 화보 패션이다. 컨셉은 광대나 마술사인가?

나는 입가를 슥 닦았다. 바로 오딘의 눈을 켰다.

“……설명을 듣기 전에 뇌피셜을 좀 말해볼까?”

“뇌피셜? 뇌에서 나온 오피셜, 객관성이 결여된 개인의 의견……? 재밌는 단어네.”

아니 시발, 이걸 알아듣네?

이 새끼도 나랑 같은 Z-용사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런 이세계 TS물 주인공 같은 녀석이 지구용사의 의지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E(Earth)-히어로로서 인정 못하고 말고. 아암.

“너, 혹시 크라운 크라운이냐?”

말하고 나서 크게 기침하자, 드디어 폐에 걸린 뭔가가 빠져나왔다.

혈관 모양으로 굳은 선지가 나왔다.

와오. 이거 내 폐 모양이야? 으으, 디스거스팅.

“왜 그렇게 생각해?”

─탁탁. 헤진 코스프레 옷을 털면서 묻는 광대. 헛다리를 짚었을 때 나올 리액션은 아닌데. 나는 선지를 던져버리고 어깨를 풀었다.

“이유가 필요한가? 우리 후배의 마법을 걔보다 잘 다루고, 고대문명의 도시에서 마스터 클래스의 암살자한테서 빼내는 녀석인데. 혹시나 하고 찔러볼 만 하지.”

“음…… 심증 뿐이지만 맞췄어. 그러니까 남의 얼굴 빤히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해치우고 어디로 빠져나갈까 하는 생각은 그만둬 줄래?”

“내가 그렇게 빤히 쳐다봤었나? 니가 생각보다 미인이라 그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주워섬겼지만 주시하는 눈에서는 힘을 풀지 않았다.

그러자 크라운 크라운은 자기 눈가를 가리켰다.

“그 눈으로 빤히 쳐다보지 말아주겠어? 토할 것 같거든.”

“뜬금없이 시비네. 싸우자고? 콜.”

이것저것 신경 쓸 부분은 많지만 몸은 움직인다. 내가 오러를 씌우자 그녀는 팔짱을 끼면서 눈쌀을 조금 찌푸렸다. 어딘가 베로니카를 생각나게 하는 몸짓이다.

“아마 내가 아내로 변장했던 것도 있어서 많이 화가 났는갑네. 믿을 이유도 없고.”

“IQ가 3000쯤 되시나. 존나 어떻게 아셨지.”

“알겠어. 이렇게 하자. 【나는 너를 먼저 배신하거나 해치면 죽는다】.”

크라운 크라운의 등 뒤에 룬 만다라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멍하니 눈만 끔뻑였다. ᚷ(Gebō)의 룬이었다.

예~ 전에 베로니카가 한 번 쓴 걸 보고 나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룬이었다. 왜냐하면 저 문자의 참된 뜻은 아무리 활용해도 사용처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봤지? 맹세의 룬이야.”

ᚷ(Gebō)의 룬은 맹세의 룬.

자기 자신에게만 걸 수 있는 맹세였고, 그녀는 내 신뢰의 대가로 저울에 자기 목숨을 건 것이다. 내가 선빵을 치기 전까지는 저항하지 않겠다고.

“……후우.”

그래서 나는 몸에 힘을 풀었다.

환상일 가능성은 없었다. 오딘의 눈이 분석해서 진짜라는 걸 확인했다.

내 감각마저 가짜라고 생각할 거라면 애초부터 내가 자유롭게 싸울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 그게 팩트라면 지금 나는 통 속의 뇌나 다름없는데, 반항은 무슨.

나는 계속 잘게 떨리는 브류나크를 팔에 차고서 손짓했다.

“믿을게. 그러니까 네 허리에 찬 메달 좀 줄래? 그거 내 거지?”

“아, 이거?”

크라운 크라운은 인공 미스릴 메달을 허리에다 차고 있었다. 라한이 주웠던 물건인데 회수했나? 사정은 차차 들으면 된다.

“자.”

─휙!

던진 메달을 낚아채고 안에서 포션을 찾았다.

좀 망설이다가 엘릭서를 꺼냈다. 아내들의 예비 목숨 같은 것이지만, 내가 뒤지는 것보단 낫겠지. 엘릭서 병을 까자 크라운 크라운은 어이없어 했다.

“엄청 속물적이네? 내가 목숨을 거니까 곧바로 믿고.”

“꼴마초 특) 믿을 땐 믿음.”

“어디가 꼴마초야. 소인배구만.”

“소인배 특) 소인배 존나 찾음.”

“어? 꼴받네? 한 대 때리고 싶네?”

“이미 맹세했쥬? 아무 것도 못하쥬? 선빵 치면 뒤지쥬?”

“씨발.”

곱디 고운 목소리로 뱉는 욕설에는 좀 임팩트가 있었다. 걸걸한 성격이랑은 별개로 욕을 별로 안 하는 인상이었는데 말이다.

“너야말로 쉽게 믿는데? 내가 메달만 갖고 튀면 어쩌려고?”

“나는 사람의 마음을 대충 읽을 수 있거든.”

아, 그러셔요. 하도 권능쟁이들이랑 싸우다 보니 별로 놀랍지도 않다.

나는 목에다 엘릭서를 들이부었다.

─꿀꺽, 꿀꺽.

흡수하고, 빨아들인 엘릭서를 혈관에 흘렸다.

약효를 분해해서 몸에 회전시켰다. 프리모르의 손가락을 자라게 할 때나, 잘린 팔을 붙였을 때도 비슷한 짓은 하지 않았나.

약효를 느끼면서 나는 웃통을 벗었다.

“뭐야? 눈호강이라도 시켜줄려고?”

개소리니까 무시. 웃통을 벗자 몸에 난 피멍과 내상이 치료되는 게 보였다.

문제는 심장이다. 낫질 않는다.

“쉽게 안 나을 거야. 오래된 상처는 엘릭서로도 안 낫거든.”

오래된 상처? 잘 뛰지도 않는 심장이 덜컹했다.

“……내가 기절한지 얼마나 지났지?”

내가 묻자 크라운 크라운은 고개를 저었다.

“으음. 대충 3분 정도?”

“농담 말고.”

“【나는 너에게 거짓을 말할 수 없다】.”

다시금 맹세의 룬을 발동하는 그녀.

한 번 마음을 정하니까 호쾌하군.

“됐지? 너, 내가 데려와서 치료하려고 손을 뻗자마자 벌떡 일어났거든?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알아서 일어나서 싸울 수 있었던 거 아냐?”

“모르지, 나야.”

만에 하나의 얘기는 생각할 가치가 없다. 암튼 좀 안심했다.

“상처의 문제는 그 칼의 효과겠군.”

라한의 칼이 가진 효과라고 치면 말은 된다.

하지만 모든 상처가 이렇지는 않았다. 처음 베인 팔뚝도 피는 흘렀다.

“그래. 상처의 변화를 멈추는 건가 보더라고.”

“결정타를 박을 때만 쓰는 건가. 뭐하러 그런 걸…… 아하.”

참수한 몸통이 상하지 않게 하는 무기구만.

칼이 효과를 발동하는 동안에는 치료도, 열화도 안 되는 건가.

뒤지게 예리했던 걸 보면 사람을 죽일 때도 꽤 쓸모가 많았을 것이고 말이다. 나는 한 병을 내리 퍼부어도 거의 메워지질 않는 상처에 혀를 찼다.

“……엘릭서로도 안 고쳐지나.”

“그보다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알아야 혹시 또 기절했을 때 치료하든가 하지.”

“흑마법이다, 왜.”

시체에 빙의하는 마법이다. 에퀴녹스가 최초로 말을 걸 때 썼던 거 있잖은가.

“흐음…… 죽었다가 살아나다니, 꼭 언니 같네.”

“언니?”

내가 눈을 찌푸리자 웃는 크라운 크라운.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아직 좀 이를 것 같지?”

“……그래. 상처 치료가 먼저지.”

다시 상급 포션을 깠다. 크라운 크라운한테도 한 병 던져줬다.

“왜 나를 줘?”

“너도 다쳤잖아. 가슴 쪽이냐?”

그녀는 말문이 막힌 듯 했다. 그러다가는 피식 웃었다.

“오래된 부상은 잘 낫지 않는다니까?”

“나는 마셔야 돼. 가사상태지만 몸을 움직이면 산소가 부족해진다. 누워 있을 것도 아니고, 뇌에 산소를 채워줄 내장이 망가졌으니 활동할 동안엔 응급처치로 때워야겠지.”

흑마법과 마나로 몸을 이래저래 조작했다.

언데드에게 호흡은 필요없고, 폐가 불수의근이 맞는가 하는 점은 수의학에서 배운 부분도 아니다. 내가 지구에 있던 무렵엔 아직 논쟁거리였던가.

그래도 가사상태를 좀 풀고, 치료가 안 되는 폐 쪽은 일부러 막았다.

“쓰으읍, 하아아아……”

의식해서 한쪽 폐만을 회생시킨다.

다행히 사람은 폐를 한 쪽 떼도 살 수는 있다. 나는 폐 기능이 약화된 것도 아니고, 한 쪽만으로 어떻게든 돌릴 수 있다. 심장이 안 뛰긴 하지만.

구멍난 심장은 환부가 괴사한 탓에 출혈은 나지 않았다.

이거라면 터지지 않는 선에서 일단 천천히 뛰게 할 순 있겠다.

─욱씬!

통증이 올라왔다.

어둠과 음의 마나는 몸에 잘 맞긴 했지만, 뒤진 심장과 폐를 억지로 뛰게 만들었는데 아픈 게 당연했다. 나는 아릿한 피 냄새를 느끼며 손을 쥐었다.

“콜록……. 이 정도면 되겠지.”

“……지독하네. 리치라도 되려고?”

“울 사람이 많아서 그건 안 돼. 그렇지 않아도 다시는 안 다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 꼴이 나서 좀 심각하게 곤란한 참이라고.”

아내님들이랑 만나기 전에 치료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약속을 어기는 못난 꼴마초는 되고 싶지 않다.

이미 다쳤는데 늦은 거 아니냐고? 후유증 없이 회복하면 다친 게 아니다. 이건 꼴마초 교의 교리에도 적혀 있는 사실이다.

“아무튼 도와준 건 고맙다. 나중에 신세 진 건 갚으러 오마.”

웅웅….

아까부터 떨리는 브류나크를 잠깐 쓰다듬어주고 나는 말했다.

“여긴 뭐하는 곳이고, 출구는 어디야? 여기에서 치료하기 힘들다면 나가야겠어. 칼을 뺏어서 분석하고 술식을 해체시키면 상처도 고쳐지겠지.”

한 번에 많은 말을 했다 싶었는데, 크라운 크라운은 또 고개를 저었다.

“여긴 히타이트의 왕성, 그 중추야. 출구는…… 유감이지만 당장은 없어.”

“……………….”

나는 더 질문하기보단 눈앞에 보이는 문에다가 뭉게뭉게-총을 갈겼다.

─쿠웅!! 강렬한 반동이 손을 때렸다.

벽을 두들긴 듯 하다. 당연하지만 그냥 벽이면 내 주먹에 부숴졌을 것이다.

“차원벽인가.”

“왕성의 방위기능이야. 360도 전체를 다 감싸다 못해서, 폭주한 술식의 여파가 거리까지 공간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발휘하고 있지.”

“해제할 방법은?”

그녀가 말해주고 싶은 게 많듯이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더 중요한 것부터 물었다. 눈을 부라려도 술식의 핵심은 여기가 아니었다.

하다 못해 분석하려고 해도 이 현상을 일으키는 유물의 코어를 봐야 했다.

“여기는 없어. 조금 조작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셔터를 내리는 건 힘들어.”

“어디로 가면 되지?”

“지하. 이계와 연결되고 차원이 비틀린 폭주의 중심.”

“그렇군.”

나는 깃털을 꺼내서 휘둘러보고, 이마저도 전혀 통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 크라운 크라운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왜?”

“너는 어떻게 날 데리고 여기로 들어왔지?”

“차원을 뛰어넘는 게 내 권능이야. 하지만 연속해서는 못 써. 다시 쓰려면 못해도 며칠은 신체를 회복시키거나…… 쓰고 나서 내가 죽을걸?”

그녀가 윗옷을 들췄다. 나는 눈을 돌렸다.

“……왜 딴 데를 봐?”

“유부남이라서.”

“내 가슴은 주물렀으면서?”

“네가 진짜인지 확인하는 절차였는데 뭘. 환자 맥을 촉진하는 거랑 똑같지.”

“그럼 지금 이것도 봐도 되겠네.”

“그러게.”

봤다.

비틀려서 뚫린 것만 같은 매우 큰 부상이었다. 나는 목을 긁적였다.

“권능을 또 쓰면 죽는다고?”

“즉사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치료는 힘들겠지. 내 영혼에까지 이른 상처야.”

“그럼 관둬.”

맹세의 룬과, 진짜로 부상당한 듯한 몸을 보면 못 믿을 이유는 없다.

물어볼 게 많은데 죽어서는 곤란하고, 도움이 된 건지는 몰라도 목숨을 구해주려고 한 사람을 대충 일회용 텔레포트 아이템으로 쓸 수는 없었다.

나는 브류나크를 달래며 문 앞에 섰다.

“지하는 위험하고, 이쪽은 차원벽이라고 했지?”

“그런데…… 잠깐, 뭐 하려고?”

“차원벽이라면 여기가 더 안전하겠지. 기다려.”

“잠깐만!”

─휘리릭! 마나의 실에 묶였다. 룬 마법으로 이 벽을 뛰어넘으려다가 멈추는 나.

“뭐야.”

묶인 채로 쳐다보자 그녀는 질색하며 말했다.

“아, 진짜. 무식하기는! 머리 쓰기 귀찮아 하는 건 아주 쏙 빼닮았네!”

“누구를?”

“됐고! 갈 거면 잠깐 따라와!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마도구가 있으니까!”

“그런 게 있으면 먼저 말했어야지.”

위치를 찾아내는 게 우선일까. 아니, 기다리기만 해도 라한이 먼저 찾아오겠지.

‘다시 싸우면 이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능력의 상성은 유리하겠지만 결과는 대 봐야 알겠지.

단지 아내들이 돌아다니는 곳에 저런 미친 놈을 풀어둘 수만은 없었다. 메달은 회수했지만 날 찾으려면 아내들을 찾아가는 게 제일 빠를 테니까.

나는 한숨을 쉬고 일단 그녀를 따라갔다.

─일렁.

시야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마나는 무시하고서.

심장도 뛰지 않는데, 컨디션은 유례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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