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05화 (803/1,009)

크라운 크라운이 데려간 곳은 통제실이었다.

분위기는 조금 낯설었지만 지휘부 같았다. 군데군데 있는 장치는 마도구 유물일까. 기계적이어서 내게 향수를 느끼게 했다. 익숙한 디자인도 있고.

“암무나 호에서도 봤던 마도구네.”

“그게 탐사장치야.”

익숙하게 유물을 조작하는 크라운 크라운. 기계장치를 만지는 것보다는 어디 지구의 박물관에서 볼 법한 기구였다. 군대 지휘부에서 본 지형 미니어처까지 있따.

“대전쟁 말기에나 설치된 유물이지. 일정 수준 이상의 강한 마나 반응을 가진 생명을 표시해 줘. 이거랑 내 권능으로 상황을 살피다가 널 찾아갔던 거고.”

“조작법은?”

“내가 만져볼 테니까 지시할래? 그편이 빨라.”

“전체적으로 훑어 보자. 반응이 나오는 상대는 누구던 상관없어.”

─지잉.

시내를 묘사한 미니어처에 램프 빛이 들어왔다.

“위치가 꼬여 있어서 거리보다는 숫자를 보는 게 알아보기 편할 거야.”

“남동쪽에 있는 4명부터.”

미니어처의 램프 빛에 영상이 나왔다.

거기 있던 것은 우리 아내님들과 오델리아였다. 왜곡된 공간을 빼면 싸그리 초토화되서 화재까지 일어난 거리에서 힘겹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싸움이 있었나?’

확대시켜서 살폈지만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부상을 입은 그녀들은 싸움이 끝나자 이제서야 통증을 느꼈는지 치료를 시작했다. 메달의 갯수도 아내들의 수와 맞다. 전부 갖고 있는 듯 했다.

“……나도 무사하다는 연락을 넣어야겠군.”

“아, 저 메달끼리 연결돼 있었어? 어쩐지. 이걸 꺼낼 때 안에 누가 있더니만.”

크라운 크라운은 그러면서 나한테 검은 상자를 건넸다. 나는 황당해졌다.

“메달 안을 뒤져서 꺼냈어?”

“이해해 줘. 그놈한테서 도망치기 바빴단 말야. 다행히 보안 마법이 바이콘 식어서 내가 이 상잘 꺼낼 때 안에 있던 애가 막지는 않았어.”

“……보안을 억지로 뚫은 게 아니거나, 저지할 틈도 없이 꺼내갔다면 그랬겠지.”

황당하기도 했지만 나는 넘어갔다.

마법이 있는 이 세상에서 사회 고위층에게까지 공연하던 광대다. 라한한테서 기절한 날 챙겨갔던 것도 그렇고 마법 실력은 상당한 모양이다.

“다음 가자.”

“예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열자, 거기도 아내들이었다.

티르시, 라리루라에 키아라다.

운 좋게 아내들마다 프렌드 실드── 아니, 보디가드를 구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들이 메달을 잘 갖고 있는지 걱정하다가 다음으로 넘어갔다.

─지잉.

이번에 찾은 건 라한이었다. 성 근처까지 온 걸 보면 아마 날 쫓아온 듯 했다.

그놈은 영상이 뜨자마자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손만 1번 휘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검이 날아와서 화면에 꽂히고, 관측기구가 파괴됐다. 씨팔럼.

“위치는 알았으니 됐나. 사람은 이게 다야?”

“측정 기준을 좀 낮출까?”

“부탁한다.”

─위잉. 기준을 완화하는 그녀.

지도에 더 많은 램프 빛이 들어왔다. 나는 일단 절대로 우리 가족일 리가 없는 곳을 가리켰다. 빛 갯수가 20개를 넘는데 당연히 적이겠지.

‘다비드의 기사단이군.’

그 위치에는 촉수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우웩.”

크라운 크라운은 혐오스러운 걸 본 것처럼 눈을 찌푸렸다. 그만큼 자유분방한 와꾸들이었지만, 저 우웩 소리에는 사적 감정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그 상원의원 놈은 갈색 피부의 덩치랬지?’

나도 다비드를 찾아서 눈을 굴렸다.

하지만 어딜 둘러봐도 특징적인 거한은 없다. 저 위치에 없는 건 고사하고 탐지 자체가 되지를 않는 것이었다. 대단한 유물이긴 한데 영 맹탕이로군.

“……야.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최소 2명이 뜨질 않는데.”

다비드는 둘째치고, 다나도 안 보인다.

쓰벌, 이름이 비슷한 게 갑자기 빡치네. 다비드 새끼는 뭔데 우리 눈나랑 이름이 닮고 지랄이지. 내가 질문하자 유물을 조작하는 크라운 크라운.

“어음, 이게 최저치인데. 시내에 없는 거 아냐?”

“다크써클이 섹시한 보라머리 납작찌찌 박사를 납치해온 적은 없고?”

“여기 데려온 건 너 뿐이야.”

“……그러냐.”

정말로 시내에 없는 건가? 건물에 있는 인원도 확인이 되는데.

나는 잠시 걱정하다가 별 수 없이 메달 속 발퀴리에를 불렀다.

“남편놈으로부터 알림. 잠시 분실했던 메달을 회수했다. 나는 무사하다.”

“수신 양호. 본인이라는 증거를 제시 바람.”

무전기 흉내가 익숙해졌는지 발퀴리에는 수신한 말만 그대로 복명복창했다.

지식을 공유하는 그들이기 때문이 업로드한 브리타니아 어가 통했다. 나는 미리 지정했던 암호를 복창했고, 상대방은 바로 안도한 듯 답변을 보냈다.

“진짜군요. 이쪽은 티르시. 걱정 많이 했어요.”

“쌍칼잽이랑 맞닥뜨렸다가 몸을 피했음. 자칭 크라운 크라운 씨의 도움으로 왕성 안에 대기 중. 유물 장치로 여러분 모습도 잘 보임.”

“이쪽도 무사해요. 라리루라 양이 크라운 크라운이라는 이름에 흥분 중이지만요.”

“그래 보임.”

크라운 크라운이라는 말에 딱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는 라리루라. 영상 속의 그녀가 폴짝거리면서 긍정적인 의미로 착란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영상을 보기만 해도 웃기네. 이래야 라리루라지.

“개노잼 가짜를 보다가 트루 개그우먼을 보니까 웃음이 절로 나네.”

“이쪽은 크라운 크라운. 열받아 죽겠다고 알림. 내가 쟤보다 선배라고 알림.”

“안 물어봤다고 알림.”

발퀴리에가 메달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설명을 하자 프랑도 무전에 나왔다.

“어, 그게! 프, 프랑이야! 다들 괜찮아?!”

“이쪽은 노르드. 발퀴리에가 우리 프랑 말투를 따라하는 게 좀 웃기다고 알림.”

“이쪽은 티르시. 소규모 교전 외에는 없었어요.”

그렇게 신원을 확인하고 상황을 공유하는 우리.

당연히 내 가슴에 시리도록 빵꾸가 나 버렸다는 사실은 감췄다. 그리고 나서 프랑한테서 온 얘길 들은 나는 그만 놀라서 되물었다.

“에른스트를 잡았다고?”

“아, 응! 넷이서 간신히 이겼어. 운도 좋았구, 적이 방심한 덕분이었지만……”

“이쪽은 티르시. 잘 하셨어요. 피로가 클 텐데 합류하지 말고 숨어서 체력부터 회복하세요. 저희 일행은 여유가 있으니 합류할게요. 노르드. 어디로 가면 되나요?”

나는 심장 빵구를 만지작대다가, 상관없겠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차원벽이 제일 얇은 곳은 어디야?”

“서문.”

“이쪽은 노르드. 서문으로 오라고 알림. 방향을 알려주는 깃털을 건네주겠음.”

일단 깃털을 메달에 넣는 나.

하지만 왕성 근처까지 와도 문제는 문제다.

“왕성 주변에 차원벽이 존재함. 이걸 뚫고 성 안에 들어오긴 지난함.”

여기 크라운 크라운을 남기고 내만이라도 밖에 나가서 합류해야 하나?

가슴에 난 빵꾸랑 창백한 혈색은 어떻게 숨기지.

내가 그렇게 말을 꺼내놓고 고민했을 때였다.

“이쪽은 티르시. 뚫고 진입할게요.”

티르시가 당당하게 그리 말한 것은 말이다.

나 이상으로 놀랐는지 프랑은 헛기침을 해가며 질문했다.

“에, 엣흠! 이쪽은 프랑! 가능하겠냐고 물음!”

“이쪽은 티르시. 걱정하실 것 없어요.”

“그, 그렇구나! ……앗! 베로니카가 우리두 쫌만 쉬다가 합류하겠다고 말함! 그리고, 그리고…… 네페르티티가 체력 포션 다 마셔서 미안하다구 사과함!”

“……풉.”

나랑 크라운 크라운은 프랑의 어색한 문어체에 입을 틀어막았다. 하여튼 우리 프랑은 시도 때도 없이 귀엽게 굴어서 탈이야.

“후후. 프랑도 참. 왜 그렇게 허둥대세요?”

티르시도 쿡쿡거리다가 물었다.

“아, 으음……! 이런저런 일이 있었음! 그래두 썩 나쁜 일은 아님!”

“나중에 몰아서 들을게요. 바로 합류하죠.”

“아, 기다려 봐.”

그때 크라운 크라운이 메달에 고개를 내밀고서 말했다.

“너희가 찾는 다비드라는 놈은 아마 바깥 별의 자손일 거야.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마. 싸우게 될 거라고 각오하고 있기를 권장할게.”

“……이쪽은 티르시. 당신이 그 크라운 크라운 씨인가요?”

“응. 지난 수백 년 동안 보이는 족족 잡아족쳐 놨더니 이제는 정체를 감추고 인류 사이에 숨기로 한 듯 하더라고. 조심해.”

“질문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설명이시네요. 만나뵐 때까지 살아계시길 빕니다. ……이후에 추가로 명령권자 라리루라가 발언했으나, 중언부언이 심하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전언의 후반부는 발퀴리에의 설명이었다. 라리루라가 라리루라 했나 보다.

나는 이 수상하기까지 한 광대를 내려다보았다.

“잡아족쳤다고?”

“그래. 예전에는 몸 상태가 지금보다 좋았거든. 아, 동기는 개인적인 복수고.”

“그러냐. 별의 자손이라는 건?”

“내가 저놈들을 부르는 호칭. 이계에서 왔지만, 너무 먼 곳에서 왔다가 라그나로크 이후 돌아가지 못한 채 【중간가지】에 갇힌 머저리들이야.”

심한 폭언이었다. 말투가 아니라 씹어 내뱉는 듯한 표정이 그랬다.

어지간히 원한이 있는 모양이로군.

“이건 네가 가져라. 나는 여는 방법도 모르니까.”

쓴웃음을 짓고 돌려받았던 박스를 그녀 옆에다 두었다.

그리고 메달에 대고 말했다.

“이쪽은 노르드. 서문을 뚫고 들어오신 다음에 프랑 쪽이랑도 합류해 주십셔.”

티르시한테는 편지를 남겨두면 되겠지.

하지만 정작 메달로부터는 대답이 없었다.

“……티르시? 발퀴리에? 들려요?”

눈을 찌푸린 나는 발퀴리에에게 질문했는데, 그 말에도 대답이 없다.

‘통신이 막혔어? 재밍인가?’

이것과 비슷한 증세는 겪어본 적이 있다.

〈아공간〉의 연결이 단절됐을 때의 침묵.

메달을 연결하는 공간 마법이 차원벽에 의해서 차단된 것이었다.

‘……아니지. 그건 이상한데?’

경황이 없어서 눈치를 못 챘는데, 생각해 보면 연결된 것 자체가 이상했다.

차원벽이 빈틈도 없이 성을 둘러싸고 있었다면 좀 전의 연락은 어떻게 됐지?

“……크라운 크라운. 왕성의 차원벽에 빠져나갈 틈이 없는 거 맞아?”

“말했잖아. 지하에 시설이 있다고. 그쪽은 유물 기능의 폭주 탓에 차원벽이 없어. 안 그랬으면 이 유물로 시내를 살펴보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녀는 나보다 더 초조한 것처럼 먹통이 돼버린 유물을 조작하다가 혀를 찼다.

“……안 돼. 기능이 거의 멈췄어. 제 3자가 지금 네 통신을 엿듣고 차원벽으로 구멍을 틀어막은 것 같아. 그리고 이만한 기술력을 가진 상대라면──”

“씨발, 다비드인가. 차원벽이라는 게 그렇게 막 세울 수 있는 거냐?”

차원이라는 개념은 알았지만, 그건 이계나 지구 쪽의 지식이다.

고대유물도 아니고 마법의 일종으로 다루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99대대 집행관의 영혼을 심문하지 않았더라면 존재 자체도 몰랐겠지.

크라운 크라운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의미없는 질문에 대꾸하기보다는 간신히 근처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복구시킨 유물을 가리켰다.

“축하해. 좋은 소식이야.”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아까 그 애, 너를 만나러 왔나 보네.”

─지잉.

성문 앞에 라한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 씹놈들. 존나 쌍으로 가지가지 하는군.”

팔짱을 끼고서 화면을 바라보는 게, 튀지 말고 얼른 나오라는 시위 같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쌍욕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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