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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시발?”
라한의 검을 튕겨냈을 때, 나는 찬바람이 살짝 불어온 듯한 느낌에 멈칫했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성 안쪽에서 분 것 같은데, 왜인지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이게 또 이상하다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서걱!
“아, 쓰벌. 생각 좀 하자!”
지체없이 칼날에 손모가지를 커팅당하고 집중을 되살리는 나.
내 육참골단 프로젝트는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라한의 몸에 남긴 상처가 그것이다.
‘상처를 입은 비율은 2:1이지만 내가 유리하지.’
나는 아프지도 않으니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라한의 부상은 운동능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나를 향해서 권능을 쓰려는 듯한 기척도 없다.
‘사실 불안하긴 했는데.’
오딘의 눈…… 슬슬 다른 이름을 찾아야 할 이 눈깔이 제때제때 미래를 보여줄까?
보여주지 않으면 ‘이겼다! 권능 발동!’으로 엔딩 스탭롤이 올라가버린다. 그래서라도 일부러라도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덤벼들지 못하게 육참골단 중인 거였지만.
‘비벼볼 만은 하다.’
킬각은 서서히 라한의 발목에 차오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부상은 어디 전쟁터에 누워만 있으면 칼빵 세게 맞고 뒤진 개씹트루-시체 그 자체로만 보일 정도였기에, 내 반만 다친 라한도 슬슬 저승사자가 지 이름을 복명복창하는 게 들릴 것이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3개.’
하나. 승산은 내게로 기울었다.
둘. 이대로만 가면 이긴다.
셋.
이대로만 갈 리가 없다.
“보스면 보스답게 싸게싸게 2페이즈를 꺼내라!!”
모가지가 도로 붙는 게 필살기로 끝일까? 나는 아니라고 봤고, 크라운 크라운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었다. 라한은 창술에 반격하면서 물러났다.
“……그 여자가 알려주더냐?”
“스포 당하는 건 싫어하는 편인데, 일이 그렇게 되더라고.”
라한은 눈을 독침처럼 얇게 뜨면서 검을 내렸다. 나도 반격을 준비했다.
“로키=로두르는 만언신이자 유희신으로서 2개 이상의 권능을 가졌지. 오딘도 폭풍의 신, 죽음의 신, 마법의 신으로 여러 측면을 가졌고.”
“……………….”
“오딘이야 룬이라는 권능으로 멀티태스킹이 된 거라지만, 로키는 아니라더라? 서로 다른 신격과 권능을 갖추는 방법이 없지는 않더라고.”
내가 싸우러 나가기 전에 들은 얘기였다.
생각해 보길 바란다. 뒤지게 간단한 얘기 아닌가.
예를 들어, 마스터 클래스인 오델리아가 신좌를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
1+1은 2다. 권능도 예외는 아니다.
“단련과 훈련으로 획득한 권능과, 신족으로서의 권능은 다를 수 있지.”
내 경우는 흑마법사 루트도 꼴마초 루트도 같은 직업 분류라서 겹쳤을 뿐.
마스터 창쟁이가 된 뒤에 신좌를 얻어도, 원래 있던 권능이 사라지진 않는다.
“너 얼스터 쪽 신족이라며? 비대한 자아랑 종족 우월주의가 세일즈 포인트인 놈들이 혈통빨을 안 살리고 칼질만 배웠다? 지랄도 정돈껏 하렴.”
라한에게는 권능이 1개 더 있다. 로키=로두르가 말과 차원을 관장하는 신인 것처럼.
내가 그렇게 비아냥대듯 말했을 때였다.
“명예와 긍지는 죽음보다 존엄하다.”
라한은 양팔을 내리고 대답했다.
“볼썽 사납게 연명한 삶은 고달픈 법이지. 기댈 신도 없이 세상에 버려진 이들을 거뒀던 내가, 그 녀석들을 달래며 했던 말을 어길 수는 없다.”
굴라나뢰크는 인류 리셋을 목표로 하는 조직.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모가지만 남아 있던 헤니르에게 몸을 주고 자기 생각을 전파한 새끼는 다름 아닌 저 놈이다.
인류를 제거하고 운명에 어긋나지 않은 세상을 만들자.
라한이 바로 그 이념의 시작인 것이다.
“이 【중간 가지】는 세계수의 일부다. 혼돈의 총아가 비튼 운명은 이곳, 카네쉬의 풍경처럼 베베 꼬여서는 되돌릴 방법도 없다. 호시탐탐 찾아오려 하는 외적을 막을 수단 역시도.”
“외적?”
내가 되물어도 라한은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내가 거둔 이들은 모두 세상을 떴군.”
─슈욱.
쌍검의 칼날이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 의지, 마지막으로 1번 더 꺾겠다.”
그렇게 일방적인 말만 남기고서, 라한은 내 앞에서부터 소실했다.
‘……시작했나.’
【황금의 황혼】은 운명을 고정하는 권능이다.
굴라나뢰크의 이념을 구체화한 힘!
생각 나름으로는 킬 플랜이 어긋날 확률을 0%로 만드는 권능이라고 해도 좋았다.
킬각을 내준 시점에서 내 목은 몸통이랑 빠빠이 해 버린다는 뜻이었다.
뽀뽀뽀나 듀라한도 아니고 몸이랑 작별한 목을 다음날에 도로 붙일 수도 없다. 붙게 되더라도 그 모가지는 내가 아니라 아스가르드 핸섬남 헤니르 씨의 모가지겠지.
그렇기에 이 찰나의 순간, 나는 온 신경을 나의 내면에 집중했다.
─일렁.
어떠한 힘이 눈가에 머물려는 게 느껴졌다.
미래를 예지해 줄 생각일까.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 눈깔이 본 미래의 나는 라한의 칼날의 목이랑 세이 굿바이를 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었다.
크라운 크라운은 말했다. 이 힘을 포기하라고.
이 눈을 포기하고 더한 경지로 나아가라고.
‘……하지만.’
하지만 나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만화와 영화를 보며 자랐던 지구인 강북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TV를 보며 했던 순수한 의문을.
‘주인공한테 힘을 줬다 뺐는 전개는 에바 아님?’
미디어매체에서 ‘이거슨 나아쁜 힘이에오’하면서 내려치기 하는 다크 사이드의 힘.
사악한 은하제국 황제의 언리미티드 빠워. 스컬 그레이몬의 해골 간지. 롯데월드타워의 절대 밴쥐. 약간 삐끗한 패턴의 진화 및 변신.
등장인물을 타락시키는 암흑의 파워. 그런 부정적인 측면의 능력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그런 나쁜 힘들은 하나같이 쌉간지가 아니던가!!
‘암흑진화 뽕은 못 참지.’
그래서 나는 생각하길 거듭하고, 확신했다.
‘선하기만 한 힘도, 사악하기만 한 존재도 없다.’
내 삶을 좌우한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
나를 이끄는 깨달음. 거듭 정의한 나의 신념을 다시금 돌아본 것이었다.
가까운 경우는 스콜라키체와 막시카들부터 그러했다. 빼앗는 자는 뺏기는 자이고, 절대적인 선과 악을 찾고 구분하려던 좆밥 강북호는 더는 없다.
나는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이 길을 택했다.
내 전임자였던 오딘 역시, 흑마법사이되 교수는 아니었으니까.
“어머니, 아버지. 잠깐 불꽃 효도 좀 하겠슴다.”
─푸욱!!
라한이 눈앞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아픔을 못 느끼게 된 육신에 자해를 가했다.
안와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눈깔을 후벼판 것이었다.
한때의 하프 인간 타뷸라처럼.
그도 아니면 우리의 짝눈 여신 오딘처럼 말이다.
“……이 멍청한 해신의 노리개가!!!!”
권능을 발동 중인 라한의 노호성이 천지에서 터져나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저 새끼에게는 마치 내가 눈깔을 가짜 천공신에게 바쳐서 이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전혀 다르다.
“강씨세가는 무교다. 기도 따위 하지 않아.”
나는 누군지도 모를 신의 눈을, 거기에 깃들어 있는 권능을 전부 바쳤다.
──오딘이 룬을 깨우칠 때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인신공양.
제물을 받기를 싫어하던, 약간 나사가 풀렸지만 심성은 착한 여신의 마법.
나는 크라운 크라운에게 그걸 배워왔던 것이다.
권능이 회전한다. 셰이드의 꿈에서 가짜 오딘을 쓰러트리고 손에 넣었던 권능이 소멸하고, 텅 빈 눈구멍에 완전히 동일한 힘이 내려앉았다.
‘그릇은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
눈을 버림으로써 얻은 것은 오딘의 진정한 힘. 지혜를 품은 여신의 눈동자.
천공신의 후계자인, 울프헤딘의 진짜 권능이었다.
그렇게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의 연결이 끊기고, 정순한 권능이 내게 깃드는 찰나.
【………놓치지 않아.】
끈덕지게 늘어지는 듯한 손자국을 내 목덜미에 남기고, 내 체감시간이 돌아왔다.
“스포일러 ON!!!”
─부릅!!
눈을 크게 뜨고 권능을 발동했다.
10초 이후의 미래가 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내 목을 동강내는 쌍검에 목이 달아나고 있었다. 이 결말은 절대로 비틀지 못할 확정된 운명이었다.
신조차 거역하지 못할 죽음의 선고!
단지 우리들 인간은,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혼돈의 화신이었다.
【게르튀르 푸타르크】·ᚦ(Thurisaz).
반격기 제 7품새. 360도에서 들이닥치는 여러 명의 공격도 완벽하게 막는 반격기는 미래 그대로 나타난 라한의 공격을 받아쳤다.
내 눈에 비치는 미래의 상(象)은 라한의 심장에 창이 우뚝 서는 광경이었다.
─부우웅!!!!!!
나는 돌풍을 일으키며 돌아서며 미래에서 보인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씨발?!”
그러나 그 위치에 라한의 심장은 없었다.
“[황금의 여명].”
미래를 읽고 정해진 운명을 비춰주는 내 권능을 초월하여, 그 놈은 검을 내려쳤다.
운명에 종속된 신족의 한계를 초월하는 권능.
그게 라한이 얼스터의 신족으로서 갖춘 본연의 권능이었다.
모든 것을 전부 드러낸 타락한 신족. 그놈한테서부터 어떤 이미지가 흘러들어왔다.
몬스터로부터 밀밭을 지키며 싸우는 인간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신족.
운명을 극복하는 종족을 누구보다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던 신의 사자.
하지만 그가 죽은 이들을 공양하고, 영혼을 거둬 사후세계로 보내주던 시기는 사그라들듯 끝났다. 신들이 멸망한 황혼에서 살아남은 얼스터의 신은 오직 그 뿐이었다.
인간의 가능성에 매료돼고, 그와 비슷한 권능을 손에 넣었기에.
그는 모든 인연을 잃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채로 인간의 파멸을 지켜보고, 그처럼 세계수의 뒤편에 남겨진 목만 남은 벗을 찾았다. 그 벗에게 몸을 내주고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세계에 혼돈은 필요하지 않노라고.
【황금의 황혼】은 그 결심에서 발현한 권능.
운명을 극복하려던 권능을 봉인하고, 적대하는 이들에게 파멸이라는 운명을 내린다.
한때 신이었던 망령으로서.
─서걱!!
목을 노린 칼날이 뼈를 썰고 내 육체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내가 목 앞에 끼운 팔을 말이다.
“개똥철학이로군. 존중할 가치도 없다.”
“………………!!”
‘오딘의 눈’은 하나 남은 내 눈에 그대로 깃들어 있다.
달인의 동작은 미래예지를 거칠 것도 없이 뻔히 보인다. 창을 들지 않은 손은 썰려나갔지만, 그와 동시에 내 무릎차기가 놈의 명치에 박혔다.
으저적… 퍼엉!!
“카아아아악……!!”
오러의 파괴력은 심폐정지술의 묘리로 방어구를 뚫고 내장을 뭉갰다.
사신보다 사신 같던 라한이라도 육신은 생물의 것. 이 상처는 크다.
“이걸로 심장과 폐를 찔린 빚은 갚았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
창을 든 팔꿈치로 라한의 어깨를 내려쳤다.
격통에 무릎꿇으려는 턱에다 똑같이 무릎차기를 먹였다. 절묘한 힘조절과 중력의 손길보다 신속한 타격은 쓰러지거나 피하는 것보다 빠르게 라한의 몸을 부수며 공중에 띄웠다.
투콰과콰과콰과곽─!!! 노도의 타격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라한은 이제 내 움직임을 읽을 수 없다.
마스터 클래스의 안목에 예지를 더한 내 공격은 부상으로 더뎌진 어설픈 방어를 쳐내고, 부수면서 라한의 몸을 용서없이 때려부쉈다.
쌍검은 분질러지고, 내 연격은 뼈마디 안 남기고 그의 몸을 때려부쉈다.
─콰아아앙!!!
마나의 창을 던져서 바닥에 꿰고 창의 권역까지 물러났다. 방심했다가 살아난 놈에게 죽을 뻔 하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다.
라한의 모든 내력을 보고서도 나는 그리 행동할 수 있었다.
“니가 니 좆대로 선택한 결말을 남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라.”
상대의 운명을 확정하는 권능과 자신의 운명을 초월하는 권능.
어느 것이고 강력하다. 권능끼리 조합하면 거의 무적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개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 권능이 강력한 이유는, 동시에 손에 넣을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희망과 절망에서 태어난 힘이기 때문이다.
“네가 죽여왔던 사람들이야말로, 네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유산이었을 텐데.”
라한이 죽이려 했던 다나가 얼스터의 후예였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수를 쏟아부은 최후의 순간, 조금 더 앞서 있던 건 나였다.
이미 버렸던 과거를 다시 집어들었을 때부터, 이 새끼는 더 이상 내 적이 아니었다.
─츠팟.
자세를 잡은 브류나크로부터 이제껏 없이 맑은 오러가 뿜어졌다.
마스터 클래스의 깨달음을 담은 창술은 낙뢰를 방불케 하며 라한의 머리를 내려쳤다.
뼈와 살을 박살내며 파고든 창이 라한의 몸통을 머리부터 복부까지 으깼다.
수천 년을 묵은 비뚤어진 신념의 신족은 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쓰다가 남긴 막대한 마나를 뿜어내다가, 영혼이 소멸하자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내 팔뚝이 굴러떨어지는 가운데, 굴라나뢰크의 마지막 구성원은 최후를 맞이했다.
어느 오래된 추억 속의 밀밭과도 같은, 황금색 마나의 파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