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13화 (811/1,009)

싸움이 끝나고, 일행이 속속들이 모이는 와중.

나는 정좌한 채로 두 팔을 들고 있었다.

맞다. 혼나고 있는 것이었다. 마초다움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모습이었지만 내 옆에서 얼음 조각상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우리 눈나 때문에 뺑끼를 칠 틈도 없었다.

‘아니, 나라고 눈깔이 안 고쳐질 줄 알았냐고.’

마스터 클래스가 돼서 라한을 잡은 나는 싸움이 끝나기 무섭게 왕성으로 돌아왔다.

달려가면서 엘릭서를 2병이나 까서 삼킨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나랍시고 시발 뒈져버린 눈깔이 그대로 사직서를 낼 줄 알았겠는가!

‘좆 같은 모친실종 눈깔사탕쉑.’

누가 강북호 몸뚱이 부속파츠 아니랄까봐 바로 꿀 빨려고 빤스런 치는 것 보게.

눈깔은 엘릭서의 약효를 돌려도 치료되질 않고, 급하게 의안을 만들어서 끼워넣을까 했다가 그럴 상황이 아닌 것만 같길래 달려왔더니, 이게 왠걸.

다비드가 최후의 자폭수단으로 소환한 존재는 이 왕성 지하로 날려보내졌던 다나였다. 역시 저 문어 대가리들은 병신 새끼가 맞다.

그놈이 아니었어도 다나는 알아서 올라왔거나, 내가 구하러 갔겠지만.

아무튼 간에 다비드가 날 엿먹일 생각이었다면 그 의도는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이기려면 어쩔 수 없었다니까. 크라운 크라운 씨의 설변에 구워삶아져서 그만.”

“지랄 말고. 그리고 저 사람, 사실 로키 신이래.”

“그랬군. 딱히 놀랍지는 않은데스.”

다나가 알려줬지만 앗 그럭군요 싶을 뿐이다.

아는 게 많길래 쎄하긴 했지. 만약 룬으로 셀프 맹세를 하지 않았으면 서로 귀찮아졌을 만큼 수상쩍었거든. 다행히 수만 살 할매답게 그 정도의 눈치는 있어서 살았다.

참고로 그 할매는 지금 기절하듯 잠든 상태였다.

“부상이 심해. 치료는 힘들까?”

합류에 성공한 프랑이 로키를 간병하며 물었다. 그러자 다나도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마나를 퍼부어도 안 나아. 거의 수백 년 묵은 상처겠지.”

“영혼도 크게 다쳤어. 정신력 하나로 살아있는 수준.”

영혼이 보이는 네페르티티도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구나.”

베로니카는 착잡하게 탄식을 했다. 족보 상 슈퍼 고조할매인 로키가 가슴에 구멍이 난 상태로 깨어나질 못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그럴 만 했다.

나로서도 저 로키가 일어나지 않으면 곤란하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도 많댔고.’

우리 생각이 맞다면 그녀는 살아있는 역사서다.

신대부터 계속 존재한 역사의 산증인.

그런 로키가 오딘의 후계자인 나에게 해줄 말이 있다지 않은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거사를 들을 기회였다.

“치료가 통하지 않는다면 본인의 생명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지. 가능한 회복에 이로운 환경과 설비를 조성해주자.”

다나는 깨끗한 천으로 감싼 로키를 눕히고, 티르시랑 상의하면서 포션이나 영양제 등을 투여했다. 응급처치 수준이었지만 우리에게 가능한 일은 그 정도였따.

수고하던 티르시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할 수 있는 일은 했어요…… 그럼, 이제 남은 안건은 하나 뿐이네요.”

─빙글.

네페르티티를 뺀 아내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음.”

보스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군.

“제 3회 가정 내 재판을 개정하기 전에,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다.”

인형보다 더 인형 같은 얼굴로 말하는 다나.

“피고는 폼 잡으면서 다시는 안 다칠게~ 라고 해놓고 눈깔을 홀라당 잃어버리고 온 남편놈. 감형 요소는 그밖의 다른 상처가 없다는 점. 그럼 재판 시작.”

“존나 판사님아. 제 변호사는 어딨죠.”

“여기요.”

라리루라가 변호사의 등을 떠밀었다.

발퀴리에였다.

“누나 따까리잖아!! 시발, 이거 사법살인이야!!”

“노르, 겁 먹지 마! 방청객두 있어!”

프랑이 방청객들의 등을 떠밀었다. 흐음. 방청객 여러분의 피부가 마치 백옥 같군요.

“UNGOGO?”

골렘이네. 백옥 같다 못해서 대리석 수준이야.

“그래도 너희는 내 편이지? 그치!”

“GG.”

돌대가리 씹련들.

눈치채 보니까 아내님들이랑 아내님들 따가리에 포위된 나였다. 이러니까 귀족들이 가문 안에서도 사병을 함부로 못 꾸리게 통제하는 거구나.

백작 차남으로 빙의해서 자기만의 기사단 같은 걸 꾸렸다간 그 자리에서 대가리 깨진다. 이세계물 주인공을 희망하는 여러분은 부디 참고하도록.

죽음의 예감이 솔솔 피어난다. 오들오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변호사가 된다.”

“지껄여 보렴.”

다나의 허가에 나는 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싸움은 시시해! 내 구라를 들어!

─나불나불.

─떠벌떠벌.

나는 필사적인 야부리를 털어가며 ‘내가 별다른 부상이 없으며 눈깔을 훼손한 건 로키가 말해줬던 조언에 의한 피치 못한 결과였음’을 항변했다.

장장 30분에 걸친 항변!

〈강림〉을 해제한 티르시는 석박사 통합과정을 신청한지 반 년이 지나고 현실을 깨달은 대학원생들을 방불케 하는 썩은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저희더러 그걸 믿으라고요?”

“제가 자해를 시도한 건 맞지만, 그건 은근슬쩍 제 눈깔에 자기 권능을 심었던 가짜 천공신에게서 자유와 안전을 되찾기 위한 피치 못할 의식이었다 이겁니다. 믿지 않으셔도 이건 진짜 진짜임.”

내가 오딘의 눈이라고 부르던 권능.

나는 그걸 ‘내 눈깔’이라는 상징적인 부위에 다 쑤셔박고, 나 자신에게 공양했다.

마스터 클래스로 오를 권능을 손에 넣기 위해서!

“신화 속의 오딘은 미미르의 샘에 눈을 바치고 지혜를 얻었다잖아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나무에 꿰는 제물의식으로 룬을 깨달았고요.”

내가 벌인 정신발광 하후돈 쑈도 그 일환이다.

“그 의식은 ‘가짜 천공신의 권능’을 ‘노르드 울프헤딘의 권능’으로 치환하는 과정이었다~ 이거죠. 눈 한짝을 대가로 클린-강북호가 된 건 저 다비드라는 놈의 반응만 봐도 아시잖습니까?”

“……즉,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으니까 봐달라는 얘기시네요♡?”

차갑다 못해 싸늘하게 웃는 라리루라.

나는 식은땀이 흐르지 않게 목이 따갑도록 셀프 변론을 반복했다.

“바로 그거야! 역시 라리루라라니까! 맞아! 권능 자체는 남겨두고 내용물만 바꾼 거지! 덕분에 나 마스터 클래스까지 됐다니까?”

“마스터 클래스? 정말?”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네페르티티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 흐흐흐. 물론이죠. 좀 다치긴 했어도, 솔까 이 정도면 저 잘 해낸 편 아닙니까?”

내가 눈깔을 잃어버리고 온 것에 대해서 그다지 분노하는 것 같지 않던─물론 슬퍼하긴 했지만─ 네페르티티다. 나는 얼른 대굴빡을 헤드뱅잉했다.

지금은 1명이라도 더 내 편이 필요할 때다!

“엘릭서를 부어도 잘 안 낫길래 놀라긴 했지만, 눈도 못 고칠 건 없죠. 치료되려는 기미는 보였으니까 조금 많이 마시거나 천천히 치료하면 돼요.”

나는 유무를 묻지 못하도록 그렇게 단언했다.

‘아내들이 의심을 못 풀고 엘릭서 병에 채워둔 가라 포션을 맛봤다간 좆되는데스.’

엘릭서 병이 비어있으면 ‘누가 얼마나 다쳤길래 엘릭서가 2병이나 비어?’ 소리가 나올 것 아닌가. 그래서 다른 포션을 넣어서 가라치고 나중에 보충해둘 생각이었단 말이지.

근데 그게 들키면? 어머? 구라까지 걸렸네?

본격적인 검증을 시작했다간 망한다. 내가 우신 갑옷에 룬으로 장난질을 쳐서 겉으로만 멀쩡하게 보이게 해둔 것까지 들켜버리는데샤아앗!!

팔뚝 부분이 똑 떨어지는 갑옷을 보면 아내들이 어떤 리액션을 보일까.

그녀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내가 또 팔뚝이 떨어져나간 걸 엘릭서로 붙이고 왔다는 걸 바로 눈치채겠지.

상상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내 항변은 필사적이었고, 상대적으로 내 염병을 덜 봐 온 데다가 같은 전사였기에 아내들과 감수성이 다른 네페르티티는 바로 내 야부리에 넘어왔다.

“노르드, 엄청 열심히 싸우고 이겼어. 다쳤다고 혼내면 안 돼.”

네페르티티는 팔을 들고 벌을 서는 나를 두둔하듯이 껴안았다.

“다치지 않으려는 버릇이 생기면 그게 더 큰일. 나쁜 버릇, 더 크게 다치는 원인.”

“……후우, 네페르티티. 말이야 맞다만, 우리가 문제시하는 건 그 점이 아니다.”

베로니카는 눈을 마사지하며 말했다.

“주인님은 우리를 기다렸다가 같이 싸우는 등의 선택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를 덜 다치게 하려다가 본인이 이렇게 되서야 무슨 소용이더냐?”

“그보다 종종 생각했는데, 네페르티티도 본인 몸을 너무 안 아끼시는 것 같죠?”

얘기를 듣던 티르시의 눈이 싸늘해졌다.

“마침 잘 됐네요. 네페르티티. 당신도 옆에 같이 앉아요.”

“……………….”

네페르티티는 눈을 깜빡이다가 날 보며 말했다.

“서방님, 좀 더 혼나야 해. 떽.”

“이제 와서 정색해봤자 늦었어요. 손 드세요.”

“……마법사 나빴어.”

시무룩하게 손을 드는 네페르티티. 크헤헤, 배신자의 말로는 그런 법이라고.

그렇게 ‘적당한 부상은 전사의 명예’ 듀오가 두 팔을 들고 혼나고 있을 무렵.

“……끙.”

놀랍게도 앞으로 몇 달은 되야 깨어날 것 같던 로키가 눈을 떴다.

영양제 효과 쌉오졌네. 그녀는 비척거리며 눈을 떴다가, 손을 들고 혼나고 있는 우리를 보고서는 눈을 깜빡거렸다.

“……흠, 그렇군. 끝나면 깨워.”

“다 끝났으니까 얼른 일어나, 이 할매야!!”

얼른 일어나서 구해줘 시발.

***

“눈? 까짓 거 냅두면 알아서 나아.”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섹시한데다 자애롭기까지 한 태초의 여신,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시는 조이걸 로키께서는 한 마디로 사태를 일단락 지어주셨다.

“권능이 정착하고 있느라고 안 고쳐지는 거야. 며칠만 지나면 빈 자리에 눈이 뿅 하고 생겨날걸. 오딘 언니처럼 다른 존재에게 바친 게 아니니까.”

“양분을 재활용하는 것처럼 다시 난다는 거지?”

그녀의 말로 간신히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내가 질문했다.

어차피 이제 와서 내가 아내들에게 감금당하는 일은 없긴 하다. 로마니아 황실도 그렇고, 날 어디 가둬두면 안 될 이유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런 우환이 다 정리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밖을 싸돌아다닐 필요도 없겠네?’라며 다나가 내 모가지에다 개목줄을 철컹- 걸지 않을 거라곤 단언할 수 없는 노릇!

그런 만큼 나는 ‘아니어도 맞다고 해’라는 눈깔 모스 신호를 발사했다.

“그래, 그래. 어차피 소모된 에너지는 그 해산물 년…… 해신의 권능이니까.”

로키는 대충 끄덕거렸다. 내 아이 컨택트를 알아들은 모양.

‘그런데 해신? 가짜 천공신이 아니고?’

역시 그 두 존재는 같은 놈이었나?

구원의 빛이 내려쬐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절로 고개가 모로 꼬아졌다.

“가짜 뇨르드과 가짜 오딘은 동일한 신이야. 저 바니르의 주신이었던 뇨르드의 이름을 빼앗고서, 그 다음으로 오딘 언니의 이름을 뺏은 거지.”

묻지 않아도 설명해주는 로키. 수만 년 짬밥이 우러내는 바이브 오졌다.

“……그 점에 대해 여쭙고 싶은 게 있사옵니다. 유희신께서도─”

“응? 나는 더 이상 유희신도 뭣도 아닌데?”

베로니카가 로키의 대답에 버벅거리자, 그녀는 싱긋 웃었다.

“장난이야. 편하게 로키라고 부르렴. 내 자식의 머나먼 자손이랑 이렇게나마 만나게 돼서 좀 감동스러워서 그래. 응. 역시 신기한 기분이네.”

“……알겠습니다. 존칭만은 윤허해 주시기를.”

“아하하! 고마워! 사실 ‘너 이제 신도 뭣도 아니잖음?’하고 바로 반말을 까버렸으면 울었을 거야. 예의 바른 아이구나. 성실하기도 하고.”

로키는 어린애 대하듯이 베로니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 어, 으…… 으, 으흠.”

황공한데다 놀라운 일이었던 걸까. 베로니카는 돌이 된 것처럼 굳었다가 어쩔 줄 몰라했고, 우리 가족들이 살포시 웃는 걸 보고서야 헛기침을 했다.

“셀루스티아 남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별의 자손’의 기억과 우드가르트 로키의 신화에서 추측해 본 바, 혹시 로키 님께서도 가짜에게……?”

“킁. 뭐, 그렇지. 잘도 알아냈네.”

로키는 뺨을 긁적었다.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우드가르트 로키, 그러니까 거인 로키는 나야. 당시 나는 신좌를 잃지는 않았지만 가짜에게 한 방 먹고 아스가르드의 구신들을 믿지 못했었거든.”

“그래서 토르랑 가짜 로키 앞에 나타났던 거?”

“맞아. 인간의 역사에 남아있는 ‘로키’는 대부분 그 가짜일 거야. 그 무렵의 나는 성격은 꽤 베베 꼬인 편이었지만, 적어도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는 편은 아니었거든.”

한숨을 쉰 로키는 프랑이 준 육포를 우걱거렸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날을 잡아서 한 번에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막 병석에서 일어난 분을 추궁하는 것도 못할 짓이니까요☆! 아, 육포 더 드세요!”

“뭐야? 갑자기 친절해졌네? 내 선물이 그렇게나 맘에 들었어?”

육포 다발을 받은 로키가 은근하게 웃자, 라리루라는 찡긋 윙크했다.

“에헤♡ 그렇다기보단, 이런저런 굉장한 진실을 떼놓고 보면 로키 님이 크라운 크라운 님인 거죠? 혹시 여기랑 여기에 싸인 좀 해 주시겠어요?”

“그 사정도 말하자면 긴데, 틀린 얘기는 아니네. 그치만 내 사인으로 괜찮아? 감정가들이 보면 ‘이 사인은 최근에 새로 쓴 건디요. 그럼 가짜 아님?’ 할 텐데.”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자기만족이라♡!”

“그렇다면야.”

피식 웃은 로키는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선물이라니?”

“아핫♡ 뭐일 것 같아요? 맞추면 상으로 키스해 드릴게요~.”

눈에 V자를 한 손가락을 가져다대는 라리루라.

프랑도 약간 우물쭈물하면서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어쩐지 나이프를 들고 있네. 저걸로 날 찌르려는 건 아닐 텐데, 무슨 대오각성이라도 한 걸까?

“대화는 끝나셨습니까?”

내가 호기심을 느끼며 심사숙고하고 있자, 우리 가족의 가정 내 재판 탓에 잠깐 쫓겨나듯 물러나 있던 마스터 콤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앗, 예. 죄송했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다행이군요. 워낙 살벌해서 오늘 경의 시체를 치우려나 싶었습니다. 하하하.”

좆도 안 웃겨 시발럼아.

평생 홀가분하게 혼자 살아서 그런가. 유부남의 비애를 이해 못하는 키아라였다.

“크흠. 콜리도 경도 변경백도 감사했습니다. 두 분 모두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인사는 됐어. 나가서 남은 일을 마저 수습하고 생존 연락부터 보내야지.”

‘다비드’였던 괴생물의 시체를 보던 오델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말에 우리는 잠깐 숙연해졌다. 라한이 우리를 이 카네쉬에 밀어넣었을 때, 균열 근처에는 오델리아의 기사단도 있지 않았는가.

그들이 라한을 상대로 살아남았을까?

아마 아니겠지. 기사단의 시체를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뤄주려면 오델리아도 당분간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었다.

“죄책감 가질 것 없어. 날 노린 마법을 만들어 온 에른스트랑 싸우고도 몸 성히 이겼던 건 너희 덕분이니까.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은 셈이지.”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제 아내들을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뭘. 나 혼자서 마스터 클래스 둘을 상대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편했지. 가슴을 펴.”

생각해 보면 그녀는 에른스트와 라한이 싸웠던 일 때문에 여기 온 것이던가.

갑자기 나타난 로키를 보고 호기심을 느낀 듯한 오델리아가 말을 아끼고 있는 건 그래서였던 모양이다.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로키는 눈치 빠르게 몇 마디를 거들었다.

“지하에 있던 공간의 폭주점은 다나라는 아이가 파괴ㅎ…… 고쳐줬지? 기다려. 왜곡장을 해제하고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그녀를 따라가자, 로키는 왕성의 상황실 같은 곳으로 돌아가선 유물과 마도구를 조정했다. 창밖의 풍경이 몽환적인 공간에서 푸른 하늘로 되돌아갔다.

“아직 해도 안 졌네. 며칠은 있었던 기분인데.”

“농밀한 시간이었군요. 그만큼 거둘 게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델리아의 군소리와 거기에 대꾸하는 키아라의 목소리.

나는 그걸 들으면서, 처음 방문했을 때는 시야가 좁아진 탓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했다. 정확하게는, 나보다 먼저 그걸 발견한 다나 덕에.

그녀는 책을 한 권 들고 오더니 눈치를 살피며 작게 속삭였다.

“……야, 이것 좀 봐.”

─툭.

옆구리를 찌르듯 건드리며 종이다발을 보여주는 그녀.

기술력은 황금시대에서도 탑급이었던 나라답게, 그 종이와 잉크는 세월에도 부패되지 않고 나에게 보고서의 제목과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리저리 구른 가치가 있었네.”

나는 그 제목을 살피고, 드디어 실감했다.

《차원이동 방법에 대한 제언.》

내 수년 간의 발버둥과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결실을 맺는 날.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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