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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분주하게 바깥의 사람들과의 연락을 주고 받은지 몇 시간이 지났다.
급한 불을 끄고 나서 왕성의 방 하나를 마법의 힘─과 발퀴리에 총출동─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자, 우리는 간신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피곤한 몸에 밥을 욱여넣길 잠시, 나는 경천동지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미── 스릴!!!!!”
초콜릿 케이크를 처먹던 나는 먹던 걸 삼키기가 무섭게 천장에 머리를 찧을 만큼 뛰었다. 과장된 경악에 프랑의 눈이 등잔만 해졌다.
“우리 프랑이!!!!!!! 미스릴 클래스가 됐다고!!!!!”
“으, 응.”
츠즈즈즈즈….
나이프에 희미하게 오러를 씌운 프랑은 허리를 펴면서 우물쭈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랑스러운 망설임조차 귀엽고 대견한 나머지, 프랑을 안고서 빙글빙글 돌았다! 씨이이이발!! 내가 마스터-꼴마초가 된 것보다 더 기쁘다아아앗──!!
“즈에에엔장!! 우리 프랑 너무 천재 아니냐고!! 이 남편은 자랑스러워욧!!!”
성장속도는 내가 앞서겠지만, 나야 온갖 씹사기 스킬이랑 버프로 잔뜩 떡칠을 해놓은 몸. 마스터 클래스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프랑은 어떤가?
내가 아는 프랑은 노력가이긴 해도 재능이 마구 넘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직한 피와 땀, 그리고 고결한 깨달음으로 오러-걸이 된 것이다!!
프랑은 내가 기쁨을 주체 못하고 자이언트 스윙 같은 빙글빙글 회전을 시전하자 허둥지둥 거리다 내 가슴을 껴안았다.
“그, 그치만 노르두 대단해! 아까는 칭찬해주지 못해서 미안!!”
“우쭈쭈쭈. 괜찮아, 괜찮아. 우리 프랑 그런 걸 신경쓰고 있었구나? 뭐 어때!! 이 아빠는 프랑이 오러를 쓰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오히려 내가 횡설수설 자기변호를 하면서 더욱 레벨 업 했다는 사실을 변명거리로 꺼내버렸던 게 잘못이다. 아내들도 분위기가 애매해지지 않았던가.
화를 내다 갑자기 칭찬해주는 것도 힘들었겠지. 이해한다.
나는 칭찬받는 게 서투르군. 아쉬워요 아쉬워.
“선배! 선배! 저는요?! 저는요?!”
“그래!! 프리실라도 이리 오렴!! 너 요 녀석, 왜 칭찬 안 받고 얌전히 있었어!!!!!”
“에헤헤헤헤♡ 에헤헤헤♡!”
라리루라도 냉큼 끌어안고 마구 뽀뽀를 해줬다.
세상에 시발, 유희신의 신좌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내가 라한을 솔플 뛰는 사이에 우리 아내님들이 이렇게나 급성장을 하다니?
“오늘이 며칠이지? 가족 내 기념일로 정하자!!!!”
“……에흠. 에흠.”
그렇게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자 티르시도 살짝 헛기침을 했다.
─꼬옥.
하지만 그녀가 내 눈치를 살필 때는 어느새 네페르티티가 내 머리를 꼬옥 끌어안은 뒤였기에, 내 귀에 티르시의 소심한 어필은 미처 들리지 못했다.
“노르드도 잘했어. 기특해.”
─쪽.
뺨에 키스를 해준 네페르티티는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작게 웃어줬다.
칭찬해주는 거야 감정이 샘솟는대로 말하면 그만이었지만, 칭찬 받는 건 좀 어색하다. 나는 광대가 승천하려는 걸 참으면서 시시덕댔다.
“흐흐흐흐. 역시 그렇죠? 제가 좀 대단했죠?”
“응…… 아이를 칭찬하는 14가지 방법, 효과적.”
“넹? 뭐라고 하셨나요?”
“아니. 아무 말도.”
아무튼 그렇게 헤벌쭉거리고 있자 다나는 근처 테이블에 넙죽 엎드리듯 턱을 괬다.
그러고는 내가 다친 것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가, 낯설기 짝이 없는 감각에 간지러워진 듯 머리를 헝클어트리고서 말했다.
“하아, 그래. 잘 됐네. 고민하는 것 같더니.”
“그렇지? 그렇지? 눈깔 값 했지?”
“시끄러, 멍청아. 아예 다치지도 않고 성장하면 오죽 좋아? 세질 때마다 애가 반병신이 되는데 그때마다 ‘참 잘했어요~’하고 칭찬해주면 엇나갈까 무섭다고.”
“오딘의 신자는 대대손손 버서커였다. 버서커는 다쳐야 세지는 법.”
‘광기의 신 오딘’은 로키가 ‘해신’이라고 부르는 가짜 천공신의 영향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상남자랑 애는 다쳐가며 강하게 크는 것 아니던가!
퍼렁별 사이어인이자 Z-용사인 이 몸은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강해진다……
“즉, 고통이 싸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드루이드 쉑 또 자아분열 왔죠?”
쭈욱~.
입은 험했지만 내 뺨을 잡아당기는 다나도 차마 참지 못하고 살포시 웃고 말았다.
‘음. 나쁘지 않군.’
나도 강해지고, 아내들도 강해지고, 지구로 돌아갈 방법의 단서도 찾았다.
이만큼 많은 수확을 한 번에 거두다니?
오늘만큼은 솔직히 기뻐해도 벌은 받지 않을 것이었다.
“어쨌든 왕따는 좋지 않지. 다나, 베로니카, 티르시도 칭찬 받으러 컴온!”
“……흥. 몰라요.”
“티르시는 싫은가 보군. 그럼 나만 칭찬해다오.”
오늘의 MVP 중 1명인 티르시는 토라진 것처럼 눈을 돌렸지만, 베로니카는 뻔뻔스럽게 일어나서는 고양이처럼 내 가슴에 머리를 고롱거렸다.
“나도 혼자 괴물들이랑 싸우느라 피곤해. 칭찬 받을 자격 있지?”
다나도 냉큼 나한테 안겨붙은 건 물론이다.
“……그, 그럼 저도.”
괜히 튕겼다가 고립무원이 된 티르시만 토라진 척 달라붙었다.
그렇게 한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과를 공유하는 우리.
─웅웅!!!
중간에 ‘아빠가 거짓말 해써요!!’라며 진동하는 브류나크는 슬쩍 뒤로 빼돌렸다.
─나중에 꿈에서 1시간 정도 같이 놀아줄게.
─……웅웅.
─부족해? 그럼 2시간?
─……웅웅웅!!
오케이, 3시간. 딜.
참고로 라한을 해치운 뒤, 그 새끼의 마나는 나&브류나크로 노나먹었다.
출신이나 기술이 다른데도 마나 계승이 벌어진 건 의외였지만, 아무튼 마나가 늘어났으니 나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내 마나량은 몹시도 늘어난 수준.
‘게다가 추가로 진: 오딘의 눈을 사용하면……’
나는 슬쩍 실눈을 뜨고 브류나크의 날을 봤다.
─흔들흔들.
떠오르는 룬의 의미가 이해가 갔다.
‘더 이상은 참된 뜻을 깨닫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아.’
진: 오딘의 눈과 브류나크가 흡수한 룬 마법의 적성을 무시하는 효과!
이 능력을 합치면 이제 나는 모든 룬 마법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었다.
─부웅!
내 손바닥에 처음 보는 룬이 만다라를 펼쳤다.
‘이렇게 룬 마법의 고등 응용법도 가능하고.’
더 제대로 써먹으려면 내가 룬을 이해하는 ‘지혜’에 그치지 않고 룬을 사용하는 ‘지식’까지 습득할 필요가 있지만, 이건 날 잡고 베로니카한테 배우면 그만이다.
‘크헤헤. 권능 레벨업 개꿀.’
오딘의 눈이 가진 마법에 대한 분석능력에, 그 연장선인 예지능력!
내 눈깔은 그것들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아니, 이어받다 못해서 더 강력해진 것이었다.
해신의 권능으로 오염된 힘을 초월해서, 오롯이 나 자신의 권능으로 말이다.
‘이 정도면 거의 예르나를 잡을 때의 폭주 때랑 필적하겠는데.’
나는 손을 쥐었다 피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이 권능 자체로 울프헤딘의 마지막 힘인 듯한 느낌도 들고.’
그만큼 몸에 잘 맞는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나한테 권능을 나눠주는 척 했던 ‘해신’은 오히려 내 성장세를 억누르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리려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예지능력도 9초 정도라면 선명하게 보이지.’
9초 안에서는 자유롭게 미래를 볼 수 있다. 내 의지대로 말이다.
‘다나가 올라오는 걸 예지했던 것처럼.’
심지어 체력 소모는 있지만 쿨타임도 없다!
나는 이제 카드 게임에서 자타공인 천하무적이 된 셈이었다. 존나 신의 카드를 제물로 푸른 눈의 백룡을 소환하는 미친 놈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위험하거나 확실히 알아둬야 하는 미래는 그것보다 더 미래까지 보이고.’
이쪽은 다나가 ‘너 눈깔 어쨌어?’라고 물어보는 미래를 봤을 때 눈치챘다. 그건 대략 2~3분 뒤의 미래였지만 내가 좆될 위기였기에 바로 예지됐다.
아직 제대로 못 다루는 느낌은 있지만, 포텐셜 자체는 기존보다 높다.
‘여기에 의존하는 것도 못할 짓이긴 하지만.’
미래는 종종 바뀌기도 하는 거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나라 하나의 군사력이 손 잡고 걸어다니는 수준인걸.”
아무튼 내가 오죽 신나했으면 ‘적습인가?!’하며 달려온 오델리아가 그런 말을 남기고 다시 떠났을 정도였다. 나는 설레는 가슴을 다스렸다.
창밖으로는 학자들이 발퀴리에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돌아다녔다.
‘……남들에게 못 줄 물건은 전부 회수한 뒤다.’
다나가 찾은 차원이동 논문은 그쪽 선반 전체의 공통적인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걸 챙겨간 뒤, 유물들을 챙기는 한편 학자들을 불렀다. 지금 저들은 유물을 찾기보다는 유적 자체의 년도 파악에 힘쓰는 중이다.
‘바이콘들의 도움을 받으면 지구로 돌아갈 방법 자체는 찾아낼 수 있겠지.’
차원 좌표를 찾기 어렵다는 게 내가 고민 중인 문제였지만, 그 점은 정말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나는 티르시의 완드를 살폈다.
그러다 티르시랑 눈이 마주쳤다. 눈을 깜빡거리다가 왜 그러느냐는 듯 웃는 그녀.
나는 시시한 설명 대신 웃음으로만 돌려주었다.
‘전문가는 전문가라니까.’
굳이 그녀의 완드가 아니어도 라리루라가 받은 유희신의 신좌도 있다.
차원에 간섭한다는 유희신의 힘을 빌리면 좌표 정도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연구 자체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많은 고민거리가 해소되어 가는 듯 했다.
성장과 함께 밝은 미래를 예감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좁은 대학의 기숙실에서 앞날을 생각할 때마다 한숨을 쉬던 과거가 마치 10년도 더 전의 옛날 일 같다. 나는 기쁨의 한숨을 쉬고 축 늘어졌다.
“……엣흠.”
그러고 있자 은근히 아내들도 몸이 달아오른 듯 했다. 아내들이랑 달라붙어서 놀던 나도 엘릭서를 들이부은 탓에 쥬지에 기운이 넘쳤다.
─똑똑.
하지만 그렇게 핑크빛 기류가 흐르고, 운 좋게 감금 구속 플레이를 면할 것 같다는 예감에 살짝 발기하려던 차.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옙. 들어오십쇼.”
얼른 왕성의 일실에 놓인 넓은 테이블에 착석하면서 대답했다. 내 풀발 쥬지드라는 너무 눈에 확 띄기 때문에 이렇게 숨는 수밖에 없었다.
“로키인데, 방해했어?”
“아, 누군가 했더니. 방해는. 들어와.”
어쩌다 보니까 계속 반말을 이어가고 있는 나는 그녀를 불러들였다.
“이거, 제가 만든 건데 맛이라도 보세요.”
“빵이야? 드워프들의 솜씨는 워낙 오랜만이라서 기대되는걸.”
프랑이 잘라준 케이크를 기쁘게 받는 로키.
대전쟁에 참전한 직후, 고대 말기부터 지금까지 카네쉬의 왕성에서 의식을 잃듯이 잠자고 깨어나기만을 반복했다는 그녀다. 음식이 그리웠겠지.
“~~♡♪♬”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게 눈 감추듯 케이크를 해치우는 로키. 프랑은 잘 먹는 게 기뻤는지 추가로 이것저것 꺼내줬고, 로키는 다 잘 먹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는데 잘도 먹네.”
“여자는 간식이 들어가는 배가 달리 있어.”
그 배로 이어지는 통로 옆에 구멍이 났으면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베로니카를 포함한 바이콘 신족들의 먹성이 어디서 왔는지는 뻔하다.
로키는 신화에서도 많이 먹는 신이라는 전승이 있었던 것 같고.
“후우, 잘 먹었다. 먹을 걸로 영양을 보충한 건 얼마만인지 몰라.”
테이블 한가득 그릇을 해치운 로키는 그럼에도 아직 생기가 적어 보였다.
그도 그렇다. 저 가슴의 구멍이 바로 이 발랄한 여신의 쇠퇴한 영혼을 보여주는 상처.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장수종족이 아닌 인간의 관점으로도 그리 오래 살지 못하리란 사실은 우리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쉬면서 생각해 봤는데, 역시 이런 건 빨리빨리 해 두는 게 낫겠다 싶더라구.”
우리가 호위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발퀴리에들 몇 명만 데리고서 쉬던 로키는, 내 그런 눈빛에도 별 것 아니라는 듯 윙크를 날리고서 말했다.
“우리 애기들, 옛날 얘기는 좋아하나 몰라?”
좋아하는 편이 좋을 거라며 로키는 미소지었다.
“그렇게 지루하진 않을 거야.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박진감이 있을 테니.”
이래봬도 한때는 이야기꾼이기도 했으니까.
두 손 가득 환상의 빛을 퍼올리면서, 로키는 그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