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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16화 (814/1,009)

“그 이후, 【해신】의 행보는 어떻게 되지?”

내가 묻자 로키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뇨르드의 가죽을 쓰고, 오딘 언니를 방해하는 식으로 나왔지.”

“아버지 뇨르드의 변화를 느낀 프레이야는 오딘한테 붙었고?”

“맞아. 그리고 그놈들. 옛 지배자라느니, 고신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불리는 놈들 중의 한 놈이 나한테서 ‘로키’라는 이름을 빼앗아갔어.”

부아가 치미는 듯 발을 구르던 그녀는 환상으로 모습을 만들었다.

“노란 넝마 천을 뒤집어쓴, 빌어먹게도 못 생긴 개자식이었어. 나는 그놈이랑 싸우느라고 만언신의 권능은 대부분 소실했고. 애초에 신좌로 만들지도 않은 나만의 권능이긴 했지만.”

로키의 얘기를 듣던 내 뇌리에 셀루스티아 남작의 기억이 스쳤다.

“그래도 네가 가짜라는 걸 눈치챈 신도 있었어. 일단 슬레이프니르는 네가 가짜로 바뀐 뒤 로키가 살짝 이상해졌다며 토르한테 상담했었더라고.”

“뭐?”

허를 찔린 것처럼 입을 벙긋대는 로키.

“……그랬구나. 그 아이가…”

우리 사이에 어떻게 그걸 아느냐는 질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나는 잠깐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싶었지만, 이 사실을 로키가 평생 모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로키가 마음을 정리하길 기다리다가 입을 여는 나.

“옛 지배자는 우리 차원에서는 힘을 못 쓴다며? 그런데 어떻게 널 노렸대?”

“……예외는 있던 거지. 같은 신끼리도 격의 차이나 능력의 궁합은 있는 법이니까. 어쩌면 그 본체를 부르는 의식을 벌였을지도.”

“소환? 앗, 이름을 부른다는 그거 말이군요.”

“그렇지. 이름을 부르기 쉬운 신이라면 소환도 쉽겠지? 그게 약하단 뜻은 아니었지만.”

질문한 라리루라랑 똑같이 표정을 구기는 로키. 베로니카가 위로하듯 말했다.

“신좌를 빼앗기진 않으셨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일 아니겠습니까.”

“……딱히 다행은 아니야. 내 가짜가 설치는 걸 막지 못했으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피치 못할 일 아니었을까.

우주를 관측하다가 슈퍼 외계 괴물과 눈이 마주치다니?

그런 사태를 예상해야 했다는 건 억지다. 저들의 노력으로 세상은 충분히 번성했었다.

단지, 열흘 내내 붉은 꽃은 없다지 않은가.

신은 태어날 때부터 강대한 존재이기에, 그만큼 운명의 흐름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였단 얘기일 뿐이다.

정해진 수명이 없는 신에게도 파멸의 때는 온다.

사람의 죽음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끝맺음.

나부터가 완벽무결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런 불운과 운명의 장난 속에서 개개인이 저지른 크고 작은 흠을 트집 잡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건강하던 성군이 갑자기 병으로 급사한 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오딘이 남긴 안배들을 세 보다가 말했다.

“오딘도 라그나로크를 막으려고 노력하던 중에 【해신】에게 당했나?”

“그래. 문어 대가리가 【천공신】이 되고, 원래 쓰던 뇨르드의 이름은 다른 옛 지배자에게 넘겨주든가 했겠지. 덕분에 우리는 라그나로크를 저지할 일말의 가능성마저 잃었어.”

한심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일까. 조금 시선을 피하는 로키.

“그러면 라그나로크 관련 신화에 나오는 오딘과 로키는 대부분이 가짜라는 얘기지? 하지만 라그나로크 때 오딘과 로키도 죽지 않았나? 가짜들은 안 죽었던 거야?”

“아니, 죽었어. 그나마 살아남은 【해신】 년도 치명타를 입고 지 친구들이랑 궁전에서 휴지기에 들어갔지. 내 가짜는 아주 제대로 끝장이 났고.”

로키는 그나마 통쾌하다는 듯 얼른 긍정했다.

“라그나로크는 아스가르드만이 아닌, 너희들이 나르메르-나일이니 얼스터니 하는 식으로 부르는 신들을 포함한 세계수의 신들을 거의 파멸시켰어. 하지만 걔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은 거야.”

‘우리’라고 말하지 못한 게 애석한 듯 턱을 괴는 그녀.

로키가 참전 안 한 이유도 대충 알 만 했다.

“……언니가 날 찾아내서 까마귀를 보냈어.”

내 생각을 어렴풋이 읽은 듯 대답하는 그녀.

“너는 우리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라고. 너도 같이 죽어버리면 의미가 없다고.”

“그런가.”

아마 가짜 로키는 로키가 라그나로크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이름과 배역을 쌔버간 거였겠지만, 가짜로 돌아다니던 무렵 예언을 알게 됐겠지.

로키가 라그나로크에 참전했었다면 가짜가 살고 진짜 로키만 죽었을지도 몰랐다.

유니콘/바이콘들이 신족이 아니게 되서 멸망을 피한 것처럼, 로키는 ‘로키’가 아니게 되었기에 라그나로크에서 살아남은 것이겠지.

오딘과의 지혜 승부에 낚인 가짜 로키는 독박을 써 버린 것이다. 파멸이라는 독박을.

그리고 오딘의 그런 승부 방식은 어떠한 결론을 암시했다.

내가 자신을 쳐다보자 로키가 말했다.

“내 가짜는 헤임달에게 뒤졌고, 【해신】 자식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지. 그게 왜겠어? 언니가 절대 순순히 당해주지는 않았으니까야.”

“오딘이 뇨르드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덤벼든 【해신】에게 한 방 먹여줬다는 건가.”

하지만 오딘은 끝끝내 패배했다.

그건 해신이 강적인 것도 있었겠지만, 오딘에겐 이러나 저러나 죽을 운명이 정해져 있었으니까다. 신들은 운명의 흐름에 거스르지 못한다는 건 새삼 말할 것도 없는 사실 아니던가.

단지 오딘은 패배는 했어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자기가 죽는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죽은 후의 안배에 집중한 거군.”

“……응.”

자신의 죽음이 끝이 아닌 시작이 되도록 말이다.

“그래서 오딘으로 변신한 【해신】도 대놓고 깽판을 치지는 못했다?”

“언니한테 이겼어도 타격이 컸겠지. 제대로 행동하긴 어려웠을 거고, 그대로 라그나로크 때 자기 목숨만 건져서 도망쳤던 걸로 알아.”

그렇게 말하던 로키는 고개를 숙였다.

이제부터 할 말이 가장 부끄러운 얘기라는 듯이.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언니의 후계자인 너에게 책임을 지우게 됐어.”

“아, 그 얘긴 생략하자. 비슷한 얘기라면 오딘의 분신이랑도 충분히 했고.”

“어?”

내가 선뜻 대답하자 고개를 휙 쳐드는 로키.

덕분에 나도 눈을 껌뻑거렸다.

“뎃? 뭘 놀라고 있는 것이지?”

아, 혹시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애초에 오딘의 분신부터가 내게 책임을 씌우는 걸 꺼려했지 않았나. 원한다면 나 꼴리는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었고.

그걸 거절하고 운명을 받아들인 건 나다. 내가 고른 미래인데 누굴 탓하랴.

“이제 와서 발을 뺄 생각은 없어. 그런 건 됐고, 질문에 대답이나 해 줘.”

“어, 으. 응.”

당황하는 태초의 여신을 앞두고 턱을 쓰다듬는 나.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얘기나 단서를 모아보자.

‘로키는 울프헤딘을 찾고 있었지만, 내가 여기에 오기 전부터 활동했다.’

오딘이 아무나 되는대로 집어서 내가 망친 세상 좀 고쳐주는레후~하고 패스할 것 같지는 않으니, 당연히 후계자도 엄선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예를 들면 오딘처럼 더 많은 지식을 추구하려던 인물.

그러다가 알아서는 안 될 금단의 지식, 옛 지배자들의 존재를 알게 된 놈.

“시구르드.”

풀네임은 까먹었다. 왕자니까 시구르드 뭐시기 히타이트겠지.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다른 차원을 연구하던 히타이트. 그곳의 왕자였다는 그놈이 원래 네가 생각했던 오딘의 후계자 ‘울프헤딘’ 후보였겠지. 크라운 크라운으로서 놈을 도운 것도 그래서였겠고.”

히타이트는 다른 차원을 연구했다.

왕자인 시구르드가 그 연구와 무관했을 확률은 낮다.

“히타이트는 차원 마법을 연구하다가 옛 지배자들을 발견했고, 그 결과가 아틀란티스에 범람하게 된 어인들, 즉 인간을 변이시키는 저주였을 거야.”

그리고 마침 【해신】 때문에 야수회귀가 오염당한 에린도 길길이 날뛰었겠고.

황금시대를 종식시킨 대전쟁의 발발이다.

신대의 멸망 후 수천 년이 지나서 세워진 인간 문명의 황금기도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인류의 시대를 곱창낸 대전쟁이다. 그런 시대가 격동하는 시기에 시구르드가 군계일학으로 활동했다면 그야 ‘쟤가 오딘의 후계자인가?’ 싶을 수밖에.

나는 놈의 인성은 대략 짐작이 가도 그 인성이 어떤 성격으로 드러나는지 모르는 바, 착각할 법 하다고는 생각했다.

프레이야의 신좌를 얻은 레티티아와, 바이콘의 선지자를 데리고 옛 지배자가 흩뿌린 재앙을 극복하며 오딘의 신좌까지 되찾은 새끼 아닌가.

솔직히 저만큼 무대와 위업을 갖춘 상황이다.

전란의 한복판이었던 만큼 나보다 더 영웅적일 정도고, 시구르드가 제대로 된 새끼였다면 정말로 그놈이 오딘의 후계자가 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지.’

운명의 흐름이건 시구르드 새끼의 의지였건, 그 알기 쉬운 결말은 오지 않았다.

운명이나 미래는 바꿀 수 있지만, 과거를 바꿀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욱 몇백 년이나 흘러서 지금.

“내가 이 세상에 떨어졌다. 그런 얘기로군.”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소소한 부분을 넘어가긴 했지만, 신대로부터 쭉 이어진 전말은 대충 알았다.

라그나로크는 구신(舊神)과 고신(高紳)의 싸움.

황금시대의 대전쟁은 그 영향.

이것만 확실히 알아냈어도 의문은 거의 다 풀린 셈이었다.

“알아야 할 건 다 들었네. 시구르드가 왜 〈편찬대대〉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고?”

“그래. 아마 레티티아만이 설득에 응했고, 나랑 마기도라…… 선지자는 거절했다가 당했지. 결국 나는 신의 멸망도 인간의 멸망도 못 막은 셈이네.”

자조하듯 중얼거리는 로키.

딱─!

나는 저도 모르게 그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뭐, 므, 머?”

“음, 청량한 소리로군. 유라시아 지반보다 오래 된 이마답다.”

나도 모르게 라리루라처럼 대해버렸다. 이마를 붙드는 태초신에게 나는 무시코 저지른 불경을 얼버무릴 겸 태평하게 말했다.

“네 어디가 실패한 거냐? 이렇게 우리한테 인수인계 잘 해 줬잖아.”

“……뭐?”

“오딘이 그랬다며. 못 이길 싸움이니까 다음을 기약하라고. 시키는대로 잘 했네. 몇만 몇천 년을 쭉 존버하고 존버해서 기어이 너희 언니의 후임을 찾았잖아?”

나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턱을 괬다. 로키는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입술을 떨다가, 곧 웃음보를 터트렸다. 듣는 사람이 다 즐거울 정도로 쾌활한 웃음이었다.

“……푸흐흐! 푸하하하하하!! 너, 진짜 속 편하게 말하는 거 알지?!”

“어렵게 말해서 뭐해? 간단한 일인데.”

시구르드 새끼를 줘패고, 로마니아 황실의 뒤에 있는 【해신】 따까리도 줘팬다.

그리고 옛 지배자들이 다시는 이세계를 넘보지 못하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

좆도 바뀐 게 없네. 간단하구만 뭘.

“확실히 새삼스럽긴 해. 이야기의 배경은 차원 단위로 더럽게 커졌지만.”

“응. 그래두 난 들어서 좋았어!”

“저도요! 인수인계 확실히 받았어요~♡”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핫!!”

아내들도 이제 와서 뭐 어떻냐는 듯 대답하자, 그것 때문인지 로키는 이제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댔다. 저러다 상처 벌어질라.

─찌리릿!

그때였다. 나는 한순간 오딘의 눈이 읽은 몇 초 뒤의 미래를 보고 숨을 삼켰다.

“아아, 하아, 하…… 죽는 줄 알았네. 그래. 그 정도로 낙천적이여야 언니의 후임이지.”

눈물을 닦던 로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다행이야! 라한이랑 싸울 때에도 목이 달아날 뻔 하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지를 않나, 리벤지한답시고 가서도 이리저리 베이지를 않나, 아주 만신창이가 되길래 이렇게 무모해선 어쩌나 하고 걱정 많이 했는데!”

─툭툭. 내 어깨를 두들기는 로키.

딱 내가 몇초 전에 미래예지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렇게 듬직한 녀석이 언니의 후계자라니, 그 바보 언니도 하여간… 인복… 은…”

희희낙락 말하던 로키는 영화의 기법처럼 눈을 감았다 뜨는 잠깐 사이에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내 뒤나 주변을 힐끔거렸다.

맞다. 우리 아내님들이 앉아계시는 곳을 힐끔댄 것이다.

로키는 겁먹은 것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서, 설명할 건 대부분 말했으니 나는 가볼게? 무슨 일 있어도 부르진 마!”

─메다닥!!!

파란을 부르는 트릭스터 여신은 단호한 도망을 감행했다.

그러자 자리에 남겨진 건 나랑 우리 아내님들 뿐.

──아니, 구라쟁이 양치기 쓉새끼(Sheep-Bitch)와 분노가 극에 달한 늑대들 뿐이다.

프랑은 무표정하게 내 개인 인벤토리인 석판을 찾아서, 우신 가죽 갑옷을 꺼냈다.

“티르시 씨. 권능.”

“네.”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강림〉 마법 없이도 권능을 일으켰다.

─쩌적! 티르시의 권능에 얼음이 돼 버린 룬은 물체변화 효과가 풀렸다.

툭…….

똑 하고 떨어지는 우신 가죽 갑옷의 팔뚝 부분.

라한의 칼에 내 팔이 잘려나갔으니, 내 갑옷도 잘려나간 게 당연했다.

“……………….”

“……………….”

다나가 말없이 일어나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달칵!!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유독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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