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루라와 찐한 하룻밤을 보내고서부터, 나는 한가하면서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아틀란티스를 우리 다나 눈나의 고향 근처에 댄 후, 우리 가족은 로마니아로 향했다.
처형을 부르는 우당탕탕 황제 엿 먹이기 대작전!
사실상의 반역. 하지만 쿠데타는 아니다. 군사적 어프로치는 이름만 들어도 웅장해지는 신성 로마니아 제국의 황군과 전면전이 된다.
그렇기에 여론으로 황제를 압박하는 것인데, 그 동안 내가 바쁠 일은 없다.
아르마알스 저택에 박혀서 아내들의 레벨 업을 보좌하며 보낼 뿐.
서면으로 올라오는 보고 양식에도 적응한 터라 대충 술술 읽어보고, ‘뎃?’ 싶은 게 있으면 우리의 실버 서퍼 권력쟁이 노익장들을 찾아뵈는 게 전부.
그렇게 존버의 존버를 거듭한 무렵.
“천통절이 가까워지고 있어요.”
나랑 같이 연구하다 식사 시간을 가진 티르시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하던 걸 멈추고 되물었다.
“천통절이요?”
천통절.
내 이세계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로마니아의 개국일이다.
정통성을 중시해야 하는 황실 입장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캔슬하지 못하는 기념행사!
“황족의 참석은 필수던가요? 십중팔구 귀족들도 모여들겠네요.”
나는 마침 점심 타임이었기에 처먹고 있던 생선 뼈를 주의깊게 발랐다.
대통령은 국가행사에 보이콧할 수 없다. 아, 할 수는 있겠지. 미래를 포기한다면.
황실도 해명없이 존버를 유지하는 건 가능했다.
“저들도 더는 침묵을 고집할 수 없겠군요.”
하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권력기반에 불을 지르는 짓이니까.
“그들이 천통절에 이 일에 대해 해명할 거라는 얘기는 2주째 되는 날부터 나오고 있었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추궁이 몇 주나 지연될 수 있었던 거고요.”
티르시는 칼질을 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세간의 여론은 한 풀 꺾인데다 의구심과 비난은 3주에 가깝게 지연되고 있어요. 다만 황실이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고 문전박대를 계속했으니 더욱 의심만 쌓인 상황이죠.”
“비난이 사그라든 것도 소강기일 뿐이니까요.”
황실이 입을 꾹 닫고 존버하는 동안, 이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고고학계와 협업하면서 초대형 업데이트, 로마니아 줘팸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뜨거운 감자였던 ‘황실 물고기박이 설’은 이 소강기를 거쳐서 더 크게 타오를 것이다.
당면한 싸움은 아직 국가 간의 전쟁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이 될 수도 있다.
전쟁은 국민들의 분노만이 아니라, 통수권자가 죽어나갈 사람들의 목숨보다 더 값진 걸 얻을 수 있다고 믿었을 때도 벌어지는 것 아니던가.
‘아직은 그냥 샌드백이 된 황실을 줘패는 것 뿐.’
하지만 이 사건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명분은 다른 말로 핑계라고도 부를 수 있다.
전쟁 명분이란 게 때로는 사실 초딩들이 책상에 줄을 찍 긋고 ‘이제부터 이 선 넘어오면 때림’이라 명언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법.
‘그렇게 되면 죽어나가는 건 밑의 사람이지.’
딱히 일반 국민들 얘기만은 아니다.
국경과 가까운 귀족들은 똥줄이 타겠지. 도화선 투성이인 폭탄 같은 것이었다.
결국 결론은 이렇다.
“이번 기념행사가 마지막 기회가 되겠군요.”
천통절이 데드라인이자 마지노선이다.
황족들이 얼굴을 비추는 국가행사에서도 묵묵무답이다? 그 꼴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이 안건은 말만 가지곤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할 것이다.
로마니아에게 주어진 마지막 간담회 같은 것!
칼을 갈다 와서 ‘어디 뭐라고 변명할지 보자’고 벼르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모여줘서 고맙읍니다. 작작 좆까시고 이만 꺼지쇼’하고 떠들면 파국밖에 없다.
나는 티슈에다 생선뼈를 뱉었다. 개시발 이세계 생선. 존나 발라먹기 힘드네.
“저희도 천통절에 일이 해결되는 게 가장 좋을 테고요.”
불 붙인 폭탄을 던졌더니 이 미친놈이 그걸 펑 터트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산불이 난다? 그래서는 나도 당분간은 편히 자기는 글렀다.
꿈에 ‘니가 죽였어, 니가 죽였어’거리는 망령이 잔뜩 나타날지도 몰랐다.
내가 생선뼈를 못 먹는 걸 보며 티르시는 쿡쿡 웃었다.
“밥 먹을 때 할 얘기는 아니었네요. 자요.”
─슥슥. 칼질하던 티르시는 생선의 살을 발라선 나한테 내밀었다.
애 키우는 엄마냐고. 그래도 잘 먹겠읍니다.
“티르시도 한 입 드십셔.”
티르시의 수저를 들어서 살을 떠먹여주자 우리 마법사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을 감고 내 쪽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키스해 주고 싶었지만 참고 생선을 먹여줬다.
“……부끄러워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네요.”
“흐흐.”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저 놈들이 어떻게 나올까.’
고려해야 할 점은 많다.
싸잡아서 황실이라고 부르지만, 그 황실이라는 곳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 아니던가!
‘황실 시종들에게 캐냈다는 정보로는 특별할 게 없었어.’
황족을 보필하는 시종들은 대다수가 귀족이다.
명문가의 삼남삼녀들!
그들은 종종 황족보다 자기 가문에 더 충성하며 첩자가 되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첩자짓을 하며 추구하는 정보는 국가의 대소사가 메인이다.
어떤 황자는 권력에 관심이 없네.
누구는 야욕이 크지만 여색에 약하네.
이 황녀는 지금 결혼에 불만이 많네.
뭐 그런 것들.
결국 로맨스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궁중암투 관련 지식 뿐이다.
너무 편향됐다. 나한테는 불필요한 정보다.
‘황궁의 사사로운 정치구도는 우리가 알고 싶은 부분이 아냐. 그런 것보다는 별의 자손이 어디의 누구에게, 얼마나 손을 뻗었느냐는 거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랬나. 나는 종이에 필기했다.
1. 로마니아의 체제 유지.
2. 별의 자손들의 안전.
3. 황족과 황실의 안전.
이게 로마니아가 지키고 싶은 대상의 리스트다.
순위는 무작위지만 우리의 폭로에 대처할 적의 행동 모토는 여기에 기반한다.
‘셀루스티아 남작은 지들이 로마니아를 주무르고 있다는 듯 떠들었어.’
─끼적끼적. 나는 글을 써내려갔다.
원로원의 반(反) 황제파 수장, 다비드.
귀찮은 대소사의 ‘처리’를 도맡는 셀루스티아.
이 이중구조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황족이 더해진다면 그렇게 자부할 만 했다.
국내의 최고 권력과 내외를 견제하는 삼권분립 기관을 전부 휘어잡은 것이니까.
‘그럼 황실에 있는 별의 자손은 누구인가.’
나는 깃털펜 끝을 집고 까딱거렸다.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역시 황제겠지.”
황제로서 군림해서 권력을 휘두른다.
제일 알기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가짜라는 걸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황제 본인으로 변장하는 게 제일.”
하지만 황제는 후보에서 탈락이다.
감이냐고? 맞다. 감이다.
하지만 100% 감에만 기반한 건 아니다.
‘나랑 싸웠던 놈들의 언동과, 가짜 오딘/로키의 경우를 생각하자.’
직접 수뇌부로 위장하는 건 옛 지배자들이 벌써 좆망 테크를 거치며 미친 짓이라는 걸 인증했다. 한쪽은 뒤졌고 한쪽은 패퇴해서 빤스런을 쳤으니.
그놈들이 감히 자기네 신들마저 실패한 방법에 도전했을까?
“지랄.”
신들이 실패한 일인데 자신은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해내면 해내는대로 신에 대한 모독이고. 신실한 교인이 할 만한 짓이 아니다. 이족다운 신앙심으로 가득하던 놈들의 언동을 생각하면 어림도 없다.
갬성을 제외해도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별의 자손들은 로키를 피해다녔어. 눈에 띄는 황제로 군림했을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세대교체 때마다 다음 황제로 변신하는 것도 귀찮다.
세뇌교육이나 마법 등으로 황태자를 조종했어도 모든 황제가 즉위하자마자 사람이 바뀐 듯 군다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그럼 어떤 방식을 취했을까.
‘대가리에 자신이 넘치는 새끼들이라면 더 쉽고 편한 방법이 있지.’
비선실세.
인간인 황제를 뒤에서 휘두르는 것이다.
‘마법으로 지배해? 아냐. 그런 건 티가 난다.’
나는 저택의 도서실로 달려갔다. 다나가 고고학자들 몇 명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마누라 누나 안녕.”
다나는 내가 부르자 고개를 들었다.
“야근도 안 했는데 환각이 보이나. 뺑끼 마스터 남편놈이 왜 도서실에서 보이지.”
“석사인 내가 도서관에 오는 게 뭐가 이상한 것?”
“조사 좀 도와달라니까 엄근진하게 정색이나 빨던 놈이 제 발로 찾아왔으니까 그렇지. 그보다 왜? 뭐 찾는 거라도 있는 모양인데.”
“아줌마, 혹시 여기 로마니아 황족의 역사서도 있어요? 가계도, 세습도 같은 거.”
“가계도? 왜 또 그런…… 됐다. 기다려 봐.”
다나는 캐묻는 대신에 내가 찾던 책들을 가져다줬다.
“옛다. 3~4권밖에 없네.”
“땡큐, 누나. 내 일 끝나면 좀 도와줄까?”
“번역 빼면 거의 잼병인 흑우는 필요 없어요.”
“저도 유적복원이랑 조사는 잘 하그든요? 저도 대학원생일 때 많이 해봤그든요?”
“씁. 역사교합자격증도 없는 찐따가 도서관에서 사람 말 하게 돼 있나?”
“멍멍 씨발럼아.”
“응~ 쿨한 척 개역겹고~. 꼬우면 저희 역사서 기록대조본 3000페이지 얘기 한 번 나눠 보아요. 가독성 좆망한 현실 나무위키에는 감동이 있다…….”
“그 똥 저리 안 치워?”
나는 학술지의 마지막에 인용서적 참고서적으로 기재될 듯한 폰트 3pt짜리 책에서 도망쳤다. 한 번 읽을 때마다 현미경이 필수인 책 따위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거에요.
─휙휙.
한적한 곳에 앉아서 가계도를 넘겨보는 나.
‘수백 년 내내 비선실세로 군림한다.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야.’
세상에 병신이 얼마나 많은데, 황제 중에 남의 말을 진상 손님 편의점 알바 대하듯 무시하는 상병신이 한 명이라도 없었겠는가.
별의 자손들이 지능이 높다지만 그런 개지랄을 전부 감당하진 못했겠지.
‘애초에 진짜 대가리가 좋으면 그런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게 틀을 짜는 게 맞아.’
다시 말하자면.
‘다루기 쉬운 황제를 즉위시키면서, 황제에게서 자문을 받는 위치를 선점했을 거다.’
싹수가 노란 새끼는 황제가 되기도 전에 컷.
황궁을 손 안에 넣고 굴리며 제일 다루기 쉬운 황제를 즉위시킨다.
그리고 각 황제에 맞춰서 그들이 의존하고, 또 무시 못할 포지션에 들어간다.
나처럼 사랑하는 여자한테 약한 황제는 본처의 자리를 꿰차고, 심약한 황제는 스승이나 부모로서 입지를 다지며, 현명한 황제를 상대로는 자문자가 된다.
그런 식으로 굴린다면 로마니아가 줄창 강대국 역할로 군림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나는 가계도를 뒤졌다.
‘99대대 같은 조직을 꾸리고 불편한 역사를 말소하는 게 이 나라의 황제의 숙명.’
양심에 떳떳하고 선량한 놈은 거의 나가리됐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정신이 올곧기만 한 황족은 역사말소 같은 더러운 짓도 꺼려했을 것 아닌가.
계속 뒤지고 뒤지며 역사기록과 대조해보자 알 수 있었다.
선량하다고 알려졌거나, 그런 에피소드를 가진 황족은 황태자조차 되지 못했다.
황제의 자질을 가진 착한 황자도 예외는 아니다.
반면 난폭한 황제는 별로 없다. 완전히 없지는 않지만 그런 황제에겐 그때마다 고삐를 쥔 놈들이 있었다. 유독 강성했던 원로원 의원이나 명문가의 가주 등이 말이다.
아니면 폭군이면서 자기 여자에겐 끔뻑 죽었던 경우도 보였다.
암군, 성군, 폭군. 역대 황제들의 성품.
책을 둘러보며 당대의 권력구도까지 거슬러올라왔던 나는 확신했다.
현명하고 나발이고 별의 자손들에게도 호불호와 선호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다. 그게 수백 년이나 증거로 남아 있다면 방식도 편향될 수밖에.
‘카드 게임의 플레이 취향 같은 거지.’
─사각사각.
지금의 권력구도를 그리고 황제의 인품에 ‘폭(暴)’ 자를 적었다.
그리고 상황이 가장 흡사한 전대 황조를 찾아서 대조한다. 고대국가이니만큼 역사도 길다. 흡사한 케이스는 7개. 인물과 권력구도도 정리했다.
역대 황조와 7개의 유사한 정권을 대조하고, 이 시대의 황조에 포개놓았다.
─사락.
그리고 그걸 등잔불에 비췄다. 종이가 반투명한 질감이 되면서 빛이 투과되었다.
그러자,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황제에게 영향력이 큰 인물은 다섯.’
그중 예전 황조에도 비슷한 인물상이 존재했던 사람은 3명.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제 3황비.
충성심으로는 제일 가는 재상.
친위기사단에서 제일 가는 강자인 직속호위.
별의 자손이 지금의 황제를 컨트롤하고 있다면 저 3인 중의 누군가의 ‘배역’을 맡고 있을 것이다. 이게 제일 확실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 테니.
대상을 죽이고 가죽을 뒤집어썼거나, 예전부터 쭉 그 인물로서 살아왔든가 하겠지.
내용물이 바뀌었어도 주변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별의 자손의 위장은 신들조차 구분하지 못했을 만큼 완벽했으니까.
‘하지만 구분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나는 종이를 모아서 도서실 밖으로 가지고 나와 불살랐다.
타닥, 타닥…!
불타는 종잇조각을 보며 팔짱을 끼는 나.
컴퓨터의 마피아 게임 같은 거다. 겉으로 봐선 모르더라도 행동에서 티가 날 수밖에 없다. 티를 내지 않는다면 황제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거고.
“몰아넣을만큼 몰아넣었군.”
우려할 점은 그놈의 목을 따버리기 전에 날아들 발버둥이 얼마나 아플지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내 편견에 따르자면, 사이비 광신도는 얌전하게 오랏줄에 묶이는 경우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