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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 재상은 별의 자손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티르시가 확인했다.
“영혼을 살폈죠. 그는 사람이 맞아요.”
혹시라도 ‘까비 들켰네’하고 덤벼들까봐 권능을 둘러놓고 살폈다.
참고로 그 자리에는 나도 있었고, 여차할 때는 아내들도 튀어나올 생각이었다. 수도 한폭반에서 싸우게 될 가능성을 고려했기에 신중하게 대화를 먼저 시도했던 거고.
라리루라의 권능으로 빤스런을 막고서 티르시가 마법으로 감싸쥐었기에, 만약 재상이 별의 자손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얼음 조각상이 됐을 것이었다.
‘별의 자손도 영혼의 형태만은 못 숨기지.’
겉으로 봐서는 몰라도, 가죽을 벗기면 흐물흐물 거리는 촉수 괴물이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상은 그냥 인간이었지만.
“알아보기는 쉽겠다. 부럽네. 나는 확신하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한때 별의 자손 슬레이어였던 로키가 대답했다. 기술의 발전을 보고 한탄하는 옛날 탐정 같구만. 티르시는 샐쭉 웃었다.
“영혼을 살피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재상처럼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도하기만 해도 감옥에 갇힐 거에요. 거의 공격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재상은 얌전히 받았잖아? 후보랄 게 한 명 줄었으니 잘 됐네.”
그래도 왕비나 친위대장에게 지금 같은 시도는 감행하지 못할 것이었다.
결국 행동 패턴을 보고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게 제일이라는 얘기였고, 우리는 모임을 빠져나왔다. 이제부터는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 했다.
그렇게 모여서 다음 일을 구상하고 있을 때였다.
─키잉!
“……레휑?”
전조도 없이 미래예지가 발동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 이미지를 느끼고 꺼벙한 소리를 냈고, 다른 누구보다 먼저 로키가 고개를 돌렸다.
“예지야?”
“……어. 근데 언제인지는 모르겠네. 이미지로는 마지막 날이 아닐까 싶은데.”
옥좌의 앞에서 있는 황자들과 대치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전원은 아니다. 나, 티르시, 라리루라, 로키다.
안타깝게도 크게 쓸모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이 예지라는 게 장면만 보이는 거다 보니까, 거기가 어디고 왜 저렇게 됐는지는 직접 생각해야 한다.
‘이건 내가 처음 미래를 봤을 때부터 쭉 그랬던 단점이지.’
시간과 장소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눈을 매만지면서 어떤 광경이 보였는지를 전했다.
“황자들이 있는 곳에 네가 있었다고?”
다나는 내가 전해준 미래를 듣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유물을 기동하기 직전에나 찾을 모양인데.”
좋지 않은 스포일러를 당했지만 썩 나쁘기만 한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조금 더 자세하게 보였던 미래에 대해서 말했고, 집단지성으로 분석을 시도했다.
존나 예고편 무비만 보면서 본편을 생각하는 것 같군.
“100% 지하겠네. 음습한 개짓거리는 쿰쿰한 곳에서 하는 게 당연하고.”
“다나의 편견은 어쨌든 소거법으로 봐도 그래요. 수도 안에 있다면 보통 사람들의 발길이 못 미칠 곳일 테니까요.”
“주변이 고대 로마니아 느낌이던데. 약간 신전 같기도 했고.”
“……신전?”
베로니카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대여. 천통절의 마지막 의식이 벌어지는 곳이 어디었지?”
“어…… 7개의 신전을 들려서, 마지막은 수도에 있는 신전이지?”
“초대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로물루스 교.”
우리는 아이 컨택트를 나누었다.
“거기겠군.”
로마니아는─신성제국이라는 것 치곤─ 국교랄 게 없지만, 초대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장소라면 옥좌라는 유물이 자리하기엔 딱 좋았다.
그래도 나는 얼탱이가 나가서 중얼거렸다.
“거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황제는 〈청동옥좌〉의 위치를 모르나?”
“……지키는 사람을 포섭했다면 가능.”
네페르티티는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청동옥좌〉에 관한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만큼 그나마 말이 되는 의견이긴 한데…… 나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성배가 대놓고 짝퉁인데요? 6번째 신전에 있는 황자도 반역에 동참했다고요?”
“으음~ 그건 아닐 걸요? 그 막내 황자가 차기 황태자라는 소문도 돌던데요~?”
라리루라가 턱에 손가락을 얹자 티르시가 대뜸 말했다.
“……어차피 황제가 나오는 순간은 반역을 벌일 때에요. 막내 황자를 납치하고 가짜로 바꿔치던가, 아니면 회유했던가 하겠죠.”
“아, 됐어. 되도 않는 추측은 그만 하자.”
이런 종류의 고찰이 망상이 되기 십상이라는 걸 알기에 다나는 손을 저었다.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잖아. 황자들이 실패하면 반역 사실을 알게 되기 전으로 돌아갈 뿐 아냐? 그때는 원래 세운 작전대로 행동하면 돼.”
언플을 통해서 황제를 압박하는 계획을 말하는 것이었다. 타당한 의견이기도 하고.
베로니카도 큰 단서 없이는 무의미한 고민이란 데에는 동의하는 듯 첨언했다.
“옥좌를 기동시키고 나서 성배를 바꿔쳤을 가능성은 없을 테니 말이다.”
“……뭐, 그렇긴 해. 내 미래예지에서 황자들은 성배를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성뢰를 옥좌에 써버린다면 성배만 도로 돌려놔도 들킬 것이었다.
‘모르는 부분이 남은 만큼 좀 탐탁찮긴 한데……’
별 수 없나. 실전에서는 뭐든지 전부 파악하고 행동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예지로 위험도 감지할 수 있고, 정보도 충분히 모았다. 좆도 모른 채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하는 주먹구구식 닥돌보다는 낫지 뭐.
아무튼 이쯤 되면 대충 틀이 잡힌 느낌이었다.
“처음 생각한대로 황자들을 만나러는 가야겠지.”
막아서든 협력하든 신전의 지하에는 돌입한다.
“경비가 엄중한데다 어떤 방비가 있을지 모르니 라리루라의 권능을 써서.”
“선배. 여차할 때 스스로 차원벽을 부수고 탈출할 수 있는 멤버가 낫지 않아요?”
옥좌를 감춘 수단은 차원벽일 확률이 높다. 저 카네쉬에서 벌어진 일도 있다. 차원이동을 못하는 일행이 차원의 틈새에 떨어졌다간 대참사다.
그래도 나는 피식 웃었다.
“이미 예지에 나온 4명이 딱 그 조건에 맞잖아.”
“……앗. 마침 차원이동이 가능한 멤버네요?”
나, 티르시, 라리루라. 이 3인조는 각자 차원을 뚫거나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
“로키는 빼고 말이지.”
내가 바라보자 로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데려가. 의식 중에 황실의 용태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남아봤자 누가 별의 자손인지 한 번에 알아차릴 것도 아닌데.”
“……라리루라의 차원이동도 완벽한 건 아니고, 조언해줄 사람은 있는 게 좋겠지.”
우리는 의견을 나누고 세부사항을 조율했다.
“천통절 마지막 날까지는 기다리자. 재상이 준 쪽지의 내용대로라면 고작 반나절 차이로 옥좌의 기동 여부가 달라지진 않아.”
서둘러 쳐들어갔다가 황자들이 급하게 기동하는 편이 더 안 좋고.
‘날치기 일처리는 늘 좆망할 가능성을 내포하는 법.’
반역 직후라는 유리한 상황에서 어떤 놈이 별의 자손인지 알아볼 기회도 날아가고, 천통절도 취소된다. 수도 중앙에 통제가 불가능한 옥좌가 폭주하기라도 하면 그날로 공동묘지 하나 뚝딱이다.
‘일이 이렇게나 꼬인 거, 차라리 반역이 터지는 편이 나아.’
아내들한테는 차마 말 못할 냉정한 계산이었다.
어르신과 오델리아도 있고, 재상이 뿌린 씨앗도 있으니 현장의 피해는 억누를 수 있을 것이었다. 황자가 굳이 귀족들을 죽이려고 들지는 않을 테니.
그리고 반역이 터지면 최소한 친위대장이 별의 자손인지는 확인 가능하다.
‘황자들은 천통절 급습을 통한 반역을 꾸몄어.’
다시 말하자면 황제와, 황제를 지키는 친위대장까지 한꺼번에 족칠 각이 섰다는 뜻!
‘그놈도 메소드 연기를 하겠답시고 자길 죽이려 들 적에게 덤벼들지는 않을 테니까.’
혹시나 옥좌의 힘이 친위대장을 웃돌아도 놈이 황제를 지키고 선다?
그럼 그놈은 별의 자손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혹시 황실 담당 문어인데도 끝까지 싸우려고 들 수도 있지만, 뒤지기 싫으면 본체의 힘을 드러낼 거다. 황자들이 계산한 킬각을 웃돌려면 그래야 할 것이니까.
이건 사족이지만 친위대장이 인간이래도 상관없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친위대의 대빵 씩이나 돼 갖고 황제 놈이 벌인 짓들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역사 말소의 공범이라면 인간이어도 구해줄 의리는 없었다.
그래도 걱정거리는 있다. 나는 일행을 돌아봤다.
“다들 조심해. 별의 자손은 당연하지만, 재상의 말로는〈청동옥좌〉라는 유물도 신들의 힘을 이끌어내는 유물이라고 하니까.”
재상이 적어준 내용으로는 그랬다.
─옥좌는 아홉 하늘을 완상(玩賞)하는 자리이니, 이에 앉은 이는 제국의 천리를 관장하리라.
황자들이 말해줬다는 전승이다. 〈청동옥좌〉의 개괄적인 성능 묘사인 듯 하다.
‘인간 관점에서 남긴 추상적인 표현이라 얼마나 강한 물건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아마 신좌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싸웠다간 수도의 절반은 날아갈 거다.
마스터 클래스끼리 맞붙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네페르티티의 고향처럼 이 수도가 파괴에 휘말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차라리 황자들이 통제하는 편이 이롭다.
‘……여차할 땐 조종사만 저격해서 죽여도 옥좌 자체는 멈출 테니.’
사람 목숨을 저울질하는 꼴이지만 별 수 없다.
‘오딘의 눈이라면 분석해서 멈추는 것도 가능할 테고.’
셀루스티아 남작의 용도는 폭로 이후로 바꿔야 할 듯 싶었다.
‘원래대로는 황실의 개였던 남작의 증언을 언플 용도로 터트릴 생각이었는데.’
내부배신자로서 증거를 제공한다면 막타로 아주 적절하니까.
황자들의 반역이라는 트롤 짓만 아니었다면 딱 황제 앞에 데려가서 무릎 꿇리고 언플이 가능했을 것이다. 남작으로 변신한 발퀴리에한텐 미안하지만 말이다.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가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쯧.”
예지력이 잠잠한 지금도, 내 감은 여전히 형언 못할 불안감을 호소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