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드득!!!
아멜리아는 이빨을 갈았다.
역겨운 이족보행 생물의 도발에 분노해서? 웃기지도 않는 착각이다. 오히려 많은 별의 자손들은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생명들을 귀여워했다.
그 생명에게 공포를 주고 진짜 신앙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지혜와 양식을 갖춘 선각자(先覺者)들의 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고 미쳐버리는 지성체의 비명은 부수입일 뿐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짓밟지 못했던 자는 세계수의 신들과, 그 신들의 유산을 손에 넣고 거들먹대는 일부의 인간들 뿐이었다.
그밖에는 감히 짓밟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옛 지배자들이 전부다.
그러나 노르드는 그 옛 지배자 중에서도 으뜸을 다투는 심해의 군주를 거부했다. 유혹이란 이름의 강요와 협박을 끊어냈으며, 살아남기까지 했다.
그런 존재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를 악물어서라도 공포를 떨치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노르드가 강대한 인간이라서가 아니었다. 죽음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그는 아멜리아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초월자를 괄시하는 존재였기에.
옛 지배자에 대한 공포가 곧, 그 공포를 극복한 노르드에 대한 공포였다.
【……ᛁᚨ! ᛁᚨ!!】
주먹을 쥔 그녀는 발작하는 것처럼 외쳤다.
【ᛁᚨ!!! ᛁᚨ!!! ᚲᚦᚢᛚᚺᚢ: ᚠᚺᛏᚨᚷᚾ!!! ᛁᚨ! ᛁᚨ──!!!】
─신이시여, 신이시여. 심해의 군주께서 꿈꾸며 기다리신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별의 자손은 신을 섬기는 경구를 외쳤다. 마음 속에 솟는 공포를 떨쳐내고자. 그렇게 하면 공포가 사라지고 신의 자비가 내려오리라는 것처럼.
【ᛁᚺᚨᚨ!! ᛁᚺᚨᚨ──!! ᚲᚦᚢᛚᚺᚢ: ᚠᚺᛏᚨᚷᚾ!! ᚹᚷᚨᚺ:ᚾᚨᚷᛚ: ᚠᚺᛏᚨᚷᚾ──!!!!】
─경배하라, 경배하라. 심해의 군주께서 꿈꾸며 기다리신다. 처소에서 기다리신다.
본체의 입으로 뱉지 않은 동포의 언어는 일그러졌다. 그나마 흡사한 룬 어로 쏟아지는 혈족의 기도문은 더없이 처절했다.
…덜덜덜.
부질없는 탄원이었다. 손은 떨림을 그치는 일이 없었고 공포를 피하려는 것처럼 세운 피조물들도 안심감을 주기에는 못 미더웠다.
아멜리아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그녀는 위대한 존재의 혈족이었다.
심해의 군주로부터 형질을 나눠받은, 태어나길 존엄하고자 태어난 존재였다.
바닥 없는 공포를 흩뿌리고 정신을 무너트려야 마땅한 이족이다. 두려움에 떠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 대상은 옛 지배자들 같은 초월자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인간이라는 하등한 지성체 따위에게 공포를 느끼다니?
태어난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처음 겪는 일이기에, 그 미지는 오만하기만 하던 별의 자손에게 공포를 주었다.
【ᛁᚺᚨᚨ!! ᛁᚺᚨᚨ!! ᛁᚺᚨᚨ!!】
그리고 파멸을 앞둔 지금도 아멜리아의 신께선 기도에 답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별의 자손(The star-spawn)인 그녀보다 늑대 따위를 더 아끼는 것처럼.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이럴 수는 없어.】
대답이 없는 기도는 한계에 봉착한 아멜리아의 이성을 크게 흔들었다.
그리고 지금, 늑대는 이 나라에 돌아왔다.
그녀를 죽이고자 찾아왔다.
라그나로크에서 살아남은 옛 지배자를── 우신 토나슈일루카틀과 무슈흐렐리틀을 영면에 들게 만들고, 심해의 군주까지도 물어뜯었던 짐승이.
축복을 거부하고도 변함없이 그녀보다 더 많은 총애를 받는 그 괴물이……
──이미 아멜리아의 발밑에 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우웅! 우웅! 우웅!
옥좌의 권능이 순차적으로 발동했다.
아멜리아는 자재신 리베르타스의 권능을 쓰기를 포기했다. 그 권능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던 건 도망치기 위해서였지만, 누군가가 간섭한 탓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난생 처음 겪는 공포심에 그녀는 예언의 모순을 잊었다.
공포는 예언자에게 지켜지는 계집들을 죽이고 도망치는 게 가능한 일인지를 고민하는 대신, 그저 가진 힘을 싸그리 쏟아붓게 만들었다.
【■■■■■■■■■■■■■■!!!!】
산양과 산양의 자식들이 포효를 내질렀다.
이제까지 없던 총공격의 전조였다. 베로니카는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잘 했다, 다나! 주인님도 자랑스러워 하겠어! 네 인신공격도 어연 신의 경지니라!〉
〈너 그거 쌍욕인 거 알고 말하는 거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소리에 성을 내는 다나. 그녀는 발퀴리에를 괴물들에게 돌격하게 시키고서 자신은 아멜리아를 견제했다.
저 괴물들을 에인헤리로 회수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발퀴리에의 힘을 안다면 숫자만 내세워서는 못 이긴다는 사실도 알 것이었다.
‘그럼에도 감행했다. 함정이라는 뜻이야.’
영혼을 수확했다가 다나가 혼돈의 마나에 침범당하건, 애초에 수확이 불가능한 피조물이건, 저것들 상대로 권능을 사용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나는 〈영혼 수확(Messis Animae)〉 대신에 검을 만들어냈다.
채찍과 골렘의 대검, 빛의 칼날과 핑크색 실이 쏟아지며 착란하는 아멜리아과 그 수하들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마나와 권능의 파편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ᚺ(Hagalaz)! ᛒ(Berkanan)! ᚦ(Thurisaz)!】
쿠와아아아악─!!
온 신전이 격전의 현장이었지만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곳은 베로니카와 산양이 마주보는 직선 상의 수 미터였다.
〈주문의 길이를 줄여두길 망정이지, 이러다간 혀가 꼬일 것 같구나!〉
룬 만다라를 등 뒤에 12개나 띄운 베로니카는 이 5분 가량의 시간에 벌써 생애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마법을 쏟아낸 상태였다.
그러고도 산양이 쏟아내는 양수를 전부 증발시키기엔 출력이 모자랐다.
【Meeeeheeehehe─.】
분투하는 그녀를 보며 산양의 머리 중 몇 개가 웃음을 흘려댔다
베로니카는 이해했다. 산양은 그녀와의 격차를 감지하고 비웃는 것이라고.
어미로서도, 강함 면에서도 자기가 훨씬 뛰어나다는 듯한 속삭임이 명확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런 사고가 가능한 이성마저 갖췄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 이 시간에도 성장하고 있을 것일까.
후자라면 싸움을 지연하는 건 패착이었다.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괴물이, 상당히 건방을 떠는구나.〉
지팡이를 휘둘러서 불길을 조종하며 베로니카는 눈을 반개했다.
베로니카가 산양의 출산을 방치했다가는 그만큼 파티의 부담이 늘어난다.
옥새를 꺼낸 그녀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마나를 이끌어냈다.
아멜리아라는 진짜 적이 건재한 상태에서 마법사인 그녀가 무력해지는 건 심한 부담이었다. 단지 산양이 계속 성장해서 강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게다가 아직 권능이랄 것도 없는 베로니카였다. 이 스피드로 장기전이 되면 그녀는 전투를 유지할 능력과 에너지원이 제일 먼저 바닥날 것이었다.
그나마 컨디션이 멀쩡한 지금이 호기다.
‘건곤일척이라. 주인님이 좋아할 듯한 표현이군.’
상황에 걸맞지 않은 감흥은 찰나에 불과했다.
─번쩍!!
그녀는 손전등처럼 빛의 마나를 뿜어냈다. 지나치게 밝은 빛에 눈꺼풀이 타오르자 산양은 비명을 지르며 양수를 뿜어냈다.
【보호 지시 실행.】
발퀴리에들의 마나가 방패처럼 펼쳐지며 양수를 막아냈다. 가호를 받은 발퀴리에들이 여럿 모이자 방어하는 것 정도는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자욱한 증기에도 눈을 돌리지 않고 베로니카는 속삭였다.
【ᚴ(Kaunan).】
휘르르르르─.
인지능력을 강화시키는 룬. 베로니카는 자신이 흩뿌린 빛의 마나가 공기 중에서 움직이는 흐름을 파악했다. 빛의 마나는 양수에 이끌리고 있었다.
‘주인님이 말했던대로인가.’
혼돈의 마나는 어둠과 음의 마나와 닮은 성질을 띈다.
승산을 확신한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치링, 치링, 치링, 치링─!!
베로니카는 12개의 만다라를 전면에 배치했다. 룬 만다라가 제각각 회전했다. 산양은 그 시도를 방심으로 여기고 기력을 끌어올렸다.
뿔 달린 암컷이 주문을 외워대는 동안, 산양은 10마리는 더 새끼를 낳을 수 있었다.
【Meee-【Mee, Meeee-】【Meee-】 】
산양은 입과 아가미로 ‘아이들’의 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합주곡을 불렀다.
지금 막 창조되었을 뿐인 존재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의 존재의의를 확신했다.
─치덕, 치덕. 로물루스 신전의 경건한 장식물이 검은 양수를 뒤집어썼다.
별의 자손이 외세계(外世界)의 신앙을 기반으로 창조한 그녀는 인간의 신전을 그녀의 만신전으로 삼을 심산으로 괴물을 토해냈다.
베로니카가 그 만삭을 기다리던 것도 모른 채.
〈우물 안 개구리. 네게 딱 어울리는 멸칭인 듯 싶구나.〉
ᚺ(Hagalaz). ᛊ(Sowulo). ᛃ(Jēra).
재앙과 태양과 수확의 룬. 만다라가 회전하면서 양수의 마나를 빨아들였다.
산양은 아이들을 위한 영양이 빨려들어가자 격노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우람한 양뿔로 베로니카를 들이받으려는 듯 하던 산양이 멈칫했다.
신전에 흩뿌려진 마나가 공회전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산양은 본능에 따라 절벽을 오르다 떨어져 죽고, 무리에서 낙오된 양은 종종 우물에 빠져서는 그곳에 끼인 채로 말라 죽는다더군.〉
태양은 불과 빛. 산양의 양수는 물과 어둠.
상반되는 마나는 서로를 끌어당긴다.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줄 상대에게 품는 사랑일까. 정반대의 존재를 세상에서 없애고자 하는 증오심일까.
철학적인 의문은 잠시 잊었다. 중요한 건 산양이 그 법칙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기에.
베로니카는 높이 지팡이를 내걸었다.
알과 새끼는 한 번 낳아버리면 더는 어미의 소유물이 아니다. 신체의 일부가 아니기에 내키는대로 지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산양의 양수는 산양이 통제하지 못하는 마나의 덩어리였다.
미스릴 클래스 이상의 괴물을 쏟아낼 마나를 ᛃ(Jēra)의 룬으로 당겨서 회전시켰다.
절대천공영역. 노르드와 베로니카가 함께 만든 마법.
그 원리로 적과 자신의 마나를 한 데 응축했다.
【ᚨ(Ansuz)! ᚨ(Ansuz)! ᚨ(Ansuz)! ᚨ(Ansuz)!!!!】
마법을 강화하는 룬이 위력을 거듭 강화했다.
빛과 불꽃의 궁극점. 화염이 태양처럼 번쩍였다. 베로니카는 지팡이를 내려찧었다.
〈그 잘난 우물 속에서 말라죽거라, 교만한 것.〉
촤아아아아아아악──!!
태양은 하늘에서 빛의 기둥을 만들어냈다. 아멜리아는 착란한 와중에도 전략의 기점을 지키고자 번영신의 운명을 조작하는 권능을 발동했다.
〈어딜!!〉
그때였다. 네페르티티가 뚫은 공간으로 자그만 체구를 던지듯 달려든 프랑이 골렘의 팔을 4개로 늘렸다. 오른쪽에만 무게가 쏠린 팔은 전부 창을 쥐고, 내질렀다.
【게르튀르】의 찌르기 초식.
창날 하나하나가 아멜리아보다 컸다. 맞았다간 풍요신의 회복력으로 회복하는 동안에 라리루라의 권능을 피해낼 방법이 없다.
【Iugl Adipuuuuuuuuuuu…!!!】
인간으로 변신한 얼굴을 흉측하게 뭉개며 아멜리아는 번영신의 회피 권능을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동시에 여러 대상에게 발동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불기둥은 산양을 불살랐다.
번영신의 권능을 사용해도 불태워버릴 생각으로 날린 마법이다. 견딜 재간이 있을까.
【■■■■■■■■!!!!!】
벗어나고자 해도 불기둥은 자체적으로 무게라도 가진 것처럼 산양을 뭉갰다. 중력 마법의 작용이 뿜어낸 양수를 산양의 등에 그대로 끼얹었다.
〈불 좀 빌릴게요, 언니!〉
라리루라는 권능의 실로 멈추게 만든 괴물들을 크게 휘둘렀다.
그녀의 힘과 다른 차원 조작의 작용. 괴물들은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날아서는 포효를 지르지도 못하고 불기둥에 빨려들어가듯 꽂혔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
중력과 함께 지반을 융해시킨 불기둥은 수맥을 찾는 구덩이처럼 산양과 그 일그러진 자식들을 파묻고, 그대로 재조차도 남기지 않고 불태웠다.
패색이 짙은 걸 눈치챈 아멜리아는 등을 돌리고 달렸다.
당연했다. 지하와 연결된 구멍이 생겨버렸다.
그가 올라온다. 죽어서도 심해의 군주를 물리친 천공신의 후계자가.
【ᛁᚨ!!! ᛁᚺᚨᚨ!! ᛁᚺᚨᚨ──!!!】
도망치는 아멜리아는 사악한 지혜로 차원을 누비지도, 황비처럼 기품있게 걷지도 못했다. 두려움에 도망을 택한 그녀의 앞에 다나가 날개짓하며 내려앉았다.
아멜리아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길을 막고 서봤자 소용 없다. 번영신의 권능이 작용하고 있는 한, 어떤 공격도 그녀를 해치지 못한다. 그럴 운명으로 고정된다.
“[빛의 검(Claíomh Solais)].”
─푸욱.
그래서, 아멜리아는 자기 목에 박힌 빛의 검을 보고서 망연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을 던진 다나는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공격을 피하는 권능이라면, 공격만 아니면 될 거 아냐.〉
육신과 영혼을 회복시키는 치유마법.
빛의 마나로 치환된 창세의 권능이 순식간에 그 마법의 출력을 증가시켰다.
─찌이이이이이잉!!!!!!
회복을 넘은 괴사. 암세포보다 치명적인 치유의 광채였다.
살가죽을 뚫고 빠져나온 촉수는 허망하게 다른 곳을 향해서 손을 뻗다가, 말라비틀어지는 것처럼 괴사하며 쪼그라들었다.
─철퍽.
양수로 젖은 바닥에 말라붙은 이족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