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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자손과의 싸움이 끝나기 조금 전.
레벨리오 황자는 신전의 암실을 거닐었다. 그가 실행한 방해는 통한 모양이었다. 〈청동 옥좌〉의 권능을 역이용해서 제 3황비의 도망은 막았다.
이제 남은 건 차도살인지계였다.
노르드 폰 울프헤딘과 그의 여자들의 힘으로써 별의 자손을 죽이는 것.
쿠르르릉….
위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싸움의 격렬한 정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착착 진행되는 목적에 안도한 레벨리오는 암실 안의 막다른 길을 발견하고 계속 걸었다. 자재신 리베르타스의 권능이 황자가 벽을 통과하는 것을 도왔다.
단지, 그렇게 도착한 옥좌의 빈 터는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높낮이 차이를 형성하는 옥좌의 단차에서 2명의 사람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외모로 따지면 하얀 머리카락의 미녀가 더 눈에 밟혀야 맞을 텐데도, 레벨리오의 시선은 그녀에게 가지 못했다.
청동 기물을 잡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레벨리오는 얼굴을 굳혔다.
휑 하니 황량한 옥좌의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검고 검은 머리와 눈에 옷에 가려져서 눈에 띄지 않는 근육질 체구. 장신의 남자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남자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지루하고 좆 같지.”
험악한 말투와 반대로 안구는 이지적인 광채를 뿜었다.
그 눈빛과 시선이 마주친 레벨리오는 통하지도 않을 변명은 일찌감치 접었다.
“우리 구면이지?”
“……예. 다시 뵈게 되리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찌찌뽕 씹새야.”
노르드는 클클대며 웃고 어깨를 으쓱했다. 레벨리오가 옥좌가 있던 장소를 살폈을 때, 노르드와 위치를 바꾸며 티르시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신가요, 황자님.”
“이제 그렇게 불릴 일은 없을 겁니다. 여러분과 저, 어느 쪽이 원하는 바를 이루든.”
“그렇다고 이름으로 불러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친근감이라도 쌓이면 곤란해서.”
냉소적으로 받아친 티르시는 말했다. 남편에게 받은 잠깐의 시간이다. 오늘까지 질질 끌어왔었던 의혹과, 한때 삶의 이유였던 질문의 끝을 봐야만 했다.
“재상께 들었습니다. 지난 대숙청은 제 3황비와 엮인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요. 새삼 지지부진하게 떠 보며 질문할 마음도 들지 않으니 직설적으로 묻죠.”
티르시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저의 조부가 당신을 통해서 제 3황비의 정체를 알고, 그 결과 숙청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정녕 사실인가요?”
“예.”
티르시가 그 질문에 품은 감정을 몰랐기에 레벨리오는 선뜻 대답했다.
아마 알았더라도 주저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옛날, 당신의 조부께서는 저를 통해서 황실에 접근했습니다. 그때는 아직 원로원 의원다운 정치활동의 일환이었겠지만, 점차 진실을 알게 됐죠.”
저들에 대한 존중으로 입을 열었지만, 장황하게 대답해 줄 의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레벨리오는 긴 말을 늘어놓기보단 본론만 내뱉었다.
“그러다 첫째 형님의 형수님과 접촉했죠.”
정치적인 목적으로 접근했고, 그 기저에는 한때 제 1황자의 스승이던 수수께끼의 마법사에 관련한 관심도 있었을 것이다.
아르마슈나스의 가주는 마법에 관심이 많았고, 제 1황자의 부인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그리고 제 1황자의 부인은 그 스승과 아멜리아의 위화감을 눈치챈 상태였고.
그래서, 그런 결말로 끝났다.
“저 본인은 그 과정에 있어서 그다지 의미 있는 역할은 아니었고요.”
나이가 나이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접근했던 대상이 배 다른 여동생이었어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그게 하필 레벨리오였고, 하필 여기서 티르시와 마주쳤을 뿐이다.
“물론 별의 자손과 역사의 내막까지 알아챈 건 아닙니다. 단지 황비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국정의 실세라는 것만 알았을 따름이죠.”
숙청 당시에 거센 저항이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황실로서는 절대 타협이 없을 사항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했다간 가족들까지 전부 살해당하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올바른 선택이기는 했다. 저항이 거셌거나, 별의 자손의 존재까지 알아챘다면 황실은 숙청을 넘어 3대의 씨를 말리려고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설명은 충분했으리라고 본 레벨리오는 손가락을 천장─지상─에 가리켰다.
“소망하시는 바는 복수입니까? 그러면 올라가서 싸우시는 편이 나을 텐데요. 지금 첫째 형님께서 별의 자손에게 옥좌를 뺏기셨으니.”
“아뇨, 제가 갈 필요는 없어요.”
이번에는 티르시가 선뜻 대답했다.
상황은 알고 있었다. 라리루라는 봉인을 풀고서 밖으로 나가기 전에 노르드가 천리안으로 지상의 화재와 분위기를 살폈으니까.
단지 복수를 해서 풀리는 감정이 있고, 풀리지 않는 감정이 있다. 잔불을 들춰내가며 원래 얼마 없었던 원한을 키우고 싶지도 않았고.
의문은 풀렸고 내막은 알았다.
그녀의 인생을 좌우했던, 어린아이로서 알지도 못한 채 극기해야 했던 과거의 사건.
그 진상을 알아내는 기분은 풀리지 않던 수식의 정답을 듣는 느낌과 비슷했다. 마음 한켠에서 케케묵은 체증이 사라진 것만 같아서 티르시는 깊게 숨을 토해내고서 미소지었다.
“네. 이젠 정말 미련없이, 앞날만 보면서 살 수 있겠어요.”
분명 별의 자손은 용서하기 힘든 상대였지만, 꼭 티르시가 손수 쓰러트릴 필요는 없었다. 처음부터 보복을 꿈꾼 적은 없었으니까.
애당초 죽이거나 복수할 마음도 없었던 상대다.
그런데 죽여도 무방한 괴물이라는 걸 알자마자 잘 됐다고 희희낙락 복수하러 달려가는 건 좀 꼴사납지 않은가. 그만큼 원망스럽다면 처음부터 복수심에 활활 불타올랐어야 맞다.
아멜리아가 평범한 황족이었으면 죽이려는 생각까진 품지 않았을 테니, 이제 와서 분노에 타오른다면 그게 더 옹졸맞을 것이었다.
별의 자손을 토벌할 필요는 있어도, 그건 이젠 없는 가족들을 향한 공양보다는 새로 만든 가족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기분이 더 컸다.
복수가 아닌 징벌. 누가 심판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머지는 가족들에게 맡기겠어요.”
티르시에게는 과분한 가족들이 그녀를 대신해서 싸워주고 있으니까.
물러나는 티르시를 보고 레벨리오는 다시 노르드에게 눈을 돌렸다.
황자로서 살던 그의 안목으로 보자면, 노르드의 모습이나 행동거지가 기품이나 품격에 차 있다곤 하기 어려웠다. 출신부터 다르니 그럴 만도 했다.
다만 속세의 기준과는 좀 달라도, 저 위압감을 풍격(風格)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
마스터 클래스. 신의 경지에 손을 뻗은 인간.
아틀란티스에서 봤던, 익살맞기까지 한 모습과 저 예리한 기척. 어느 쪽이 진실일까.
레벨리오가 제반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당대의 황제보다는 더 황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어울릴 듯 했다.
“옥좌가 사라진 게 아쉽습니다. 앉아 계셨다면 무척 근사했을 텐데요.”
“왕이나 신 노릇은 게임에서도 질리도록 했어. 그러는 너야말로 옥좌가 없어서 슬프겠군. 여기에 있던 옥좌에 네 신을 앉히고 싶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레벨리오의 생각을 꿰뚫어본 것처럼 말했다.
“존나게 말세일세. 나름 황태자라는 놈이 남의 손에 국보를 넘겨주고.”
“아쉬울 노릇이 뭐가 있을까요. 아르마슈나스의 가주와 엮인 덕분에 황제가 얼마나 무의미한 꼭두각시인지 알게 된지 오래입니다.”
조종당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혹은 알고도 복종할 수밖에 없는 노예 아닌가.
그들은 평화롭게 말을 주고 받으면서 눈빛만이 싸늘해져갔다.
“어디서 들었더라. 세계수의 뿌리가 있는 곳에 워프할 수 있는 신이 있댔지. 그래서 【긴 다리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늪과 지혜의 신이.”
“옥좌를 설치한 위치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청동 옥좌〉는 방비가 튼튼하죠.”
그 방비를 무너트린 장본인은 뻥 뚫린 싱크홀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언제 창이 날아와서 가슴에 꽂힐지 모르잖은가. 여유와 방심은 명확히 다르다.
노르드는 손을 까딱거렸다.
“이제 와서 헤니르를 따른다고 뭐가 바뀌지?”
가장 번성한 제국의 황자가 인류를 배제하는 게 목적인 신을 신봉한다니?
정상인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네가 올 때까지 생각해 봤다. 별의 자손이라는 놈들을 알고, 그놈들을 해치우고 싶었을 만도 해. 그 수단이랍시고 헤니르를 고른 건 좀 많이 모자라 보인다만.”
별의 자손은 황실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레벨리오 입장에선 사면초가다. 그 막막함 탓에 어느날 접선해 온 하이엘프라든지 벌레박이 바이콘한테 넘어갔어도 이상하진 않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노르드는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운명의 일그러짐을 혐오한다는 새끼가 부하로 들어왔다고 인간을 살려두겠냐? 이용만 당하다가 뒤지는 게 장래희망인 건 알겠는데, 자살은 혼자 해라. 빡대가리 황자 새끼야.”
“합당한 지적이십니다. 그러나 제가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모욕과 다름없는 비난에도 레벨리오는 곤란한 듯 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당신보다 더 많은 걸 알 테지요. 처음 뵀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노르드는 레벨리오의 대답을 이해했다.
황자는 노르드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헤니르를 택했노라고 말한 것이었다.
‘인류가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헤니르를 따르고 싶어질 이유라.’
캐물어봤자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노르드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엄마아빠도 팔아먹을 광신도 새끼. 하여튼 이 세상 병신들은 왜들 그리 신을 좋아하는가 몰라. 뭐 받아먹을 것도 별로 없을 텐데.”
“당신이 그걸 말합니까? 지독한 해학이군요.”
레벨리오는 같잖은 말은 그만두라는 듯 눈쌀을 찌푸렸다.
놀랍게도 그의 표정은 아니꼬움으로 가득했다. 마치 축복받은 행운을 타고 난 사람에게 궤변으로 기만당한 빈민처럼.
“당신만큼 신과 엮이고, 신에게 사랑받고,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은 달리 없습니다. 이 세계수에 인간이라는 생물이 창조된 이래로요.”
“그건 또 흥미로운 관점이네.”
마냥 부정할 얘기는 아니기도 했다.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은 신들도 많고, 어쩌다 알게 된 신들도 여럿 있었으니까. 그들에게 받은 도움이라는 게 단 한 차례도 일방적인 후원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걸 따져봐도 말이다.
“하물며 당신 또한 일종의 신이나 다름없지요. 당신이 부인들에게 행하는 행위는 신이 신도에게 베푸는 사랑과도 같습니다. 지켜주고 보듬어주며 책임지고 아낀다. 무엇이 다르죠?”
지켜보던 티르시로서는 좀 놀랍게도, 노르드도 그 말에는 잠시 말이 막힌 듯 했다.
“남보다 뛰어난 자가 그만한 책무를 지는 것을 미덕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많은 부인들에게 사랑받는 대가로 목숨마저 걸 수 있듯이, 신 또한 그렇습니다. 신앙 또한 그렇습니다.”
레벨리오는 기사 모양의 청동 기물을 쥐었다.
“신앙이란 약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보루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당신처럼 강하고 뛰어나지는 못하니, 절대자를 바라는 마음에 잘못은 없습니다.”
절대자. 그 단어에 티르시는 문득 떠올렸다.
비슷한 주제로 노르드와 나눴던 대화를 말이다.
그녀가 바라보자, 그녀의 남편은 픽 웃어주고는 진심으로 말했다.
“나는 로마니아의 인공신이라는 걸 나쁘게만은 보지 않아.”
생뚱맞은 대답을 뱉은 노르드가 옥좌가 있었던 자리를 발로 짓밟았다.
이 위치에서 옥좌를 탈취하는 것.
그게 대역을 제압하고서 가짜인 척 숨어들었던 레벨리오가 꾸미던 일이며, 그 사실을 이미 전부 눈치채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공신의 원본이 되는 양반들이 협박이나 강압적인 수단으로 힘을 갈취당한 게 아니라면, 저건 인간이 후대의 인류에게 남기는 유산이지. 하물며 영혼이 들어있지도 않으니 희생한 것도 아니겠고.”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뭐가 제일 좋냐면, 이 나라의 신은 인공물답게 인공지능…… 골렘 같다는 거야.”
스릉─. 노르드는 창을 뽑았다.
“골렘 같다는 게 장점이 됩니까?”
“그렇지. 내가 만난 신들은 다들 실패자였거든. 차라리 알파고가 낫지.”
그가 내뱉은 폭언에 레벨리오는 한순간 반박할 말을 잃었다.
알아듣지 못한 말도 있었지만 신을 실패자라고 명언한 것 아닌가.
“오딘, 로키, 이름 모를 얼스터의 신에 사티스. 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후회하는, 그런 인간적인 신들이었어. 여기서 인간답다는 건 좆도 완벽하지 않다는 얘기고.”
“……………….”
“전지전능한 신이 있으면 나라도 믿었지. 하다 못해 아무 감정 없이 기도를 처리하는 구조더라도 괜찮아. 그건 동전을 던지면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 같은 거잖아. 그쯤 되면 그냥 신성마법 자판기나 다름없으니.”
기계장치의 신, 인공신.
신앙심을 동전으로 기적이라는 상품을 사는 자판기의 신이다.
감정이 없는 기계적인 시스템은 고장이 날지는 몰라도 미치진 않을 것이었다.
“근데 이 세상의 신들은 그렇지 않아.”
초인 같은 왕이건 존나 쎈 신이건, 하다못해서 외계 문어 대가리건. 생각하는 꼴은 보통 사람과 비교해도 거의 도토리 키재기였다.
사람처럼 행동하고, 실수도 저지른다.
그러니까 사람과 같은 기준을 내밀어도 되었다. 신에게 완벽초인을 바라는 게 왜 잘못인지는 이 점 하나만 봐도 일목요연하지 않은가.
신이라는 절대자와 완벽초인은 창작물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신앙이 약자의 보루? 의존하는 대상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건 보면 알 텐데. 그런데도 모든 불편을 그놈 1명한테 해결해 달라고 매달리는 게 정상적인 어디 신앙이냐?”
거기에 비하면 있건 없건 간에 맹목적으로 믿는 지구의 종교가 그나마 건실하다.
전지전능도 아닌 상대에게 책무를 덮어씌운다면 책임 회피와 뭐가 다른가.
신자들의 소원을 짊어진 신은 어떻게 될까.
전부 이뤄주지는 못해도 책임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까?
노르드는 그마저도 아니라고 봤다.
인간이 믿어야 할 신은 인간다워야 한다. 문어 대가리여서는 얘기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정작 그 ‘인간다움’이란 영원함이나 완벽함과 거리가 멀다.
“동사무소 민원담당 같은 거지. 우리 황자님은 서비스 직이 좆으로 보이시나.”
돌이켜 보면 노르드 스스로도 그랬다.
노르드가 실패하고 큰 부상을 입었을 때는 거의 한결 같은 이유였잖은가.
아내들의 몫까지 부담을 짊어지고, 그녀들에게 아무 상처도 주지 않으려고 혼자 싸웠을 때. 노르드는 그럴 때만 패배까지 몰리고 크게 다쳤다.
완벽한 철인은 없다. 뛰어난 초인도 남의 삶을 전부 책임져 줄 수는 없었다.
일개 인간 주제에 타인의 삶까지 책임지겠다니, 이 얼마나 오만한 소리인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전부 오롯이 책임진다는 건 또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노르드는 얼마 전에도 그 교훈을 새삼 깨우쳤던 참이었다.
무척 재능 넘치고 아름답기는 해도, 꼴랑 아내들 6명만 책임져보려 해도 이렇다.
인생은 남이 대신해서 짊어지거나, 맡아줄 짐이 아니다.
여럿이서 맞들고 지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웃음을 참지 못한 노르드는 승려처럼 기도하듯 손을 세우며 염불을 외웠다.
“황자여. 애미애비가 병신이라 조실부모한 것과 다름없는 씹새여. 마망이나 키다리 아저씨를 원하거든 라노벨 코너에서나 찾아보거라.”
현실이나 삶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그리고 만만한 게 아니기에, 남에게 맡길 수도 대신 맡아줄 수도 없는 것.
“신앙 토론은 여기까지 하지.”
노르드는 기도하듯 세웠던 손을 치우며 말했다.
“〈청동 옥좌〉의 분석도 끝났으니까.”
더는 대화로 시간을 끌 이유도 없었다.
오딘의 눈이 레벨리오가 가진 기물을 전부 분석했으니 말이다.
─쿠르르륵!
노르드가 짓밟았던 옥좌의 빈 터가 녹아내리고 흙으로 메워졌다. 마법으로 열쇠를 납땜하듯 메워버린 것이었다. 레벨리오는 눈썹을 꿈틀했다.
“구조를 보니까 여기로 올 것 같긴 했어. 네가 올 줄은 몰랐다만, 쫄레쫄레 와준 덕분에 〈청동 옥좌〉를 정상적으로 탈취할 방법은 막혔다.”
옥좌가 있던 장소를 통해서 신좌를 다시 흡수할 수는 없게 되었다.
레벨리오가 이곳까지 온 목적은 파탄난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네가 나를 이길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겠지.”
당장 노르드를 빼도 마스터 클래스가 몇이던가.
정상적인 계획이라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부 계획이 있기 마련.
그리고 감히 예상하건대, 이제 굴라나뢰크에는 남은 전력이라곤 하나 뿐이다.
노르드는 눈을 반개했다.
“너도 시간은 충분히 끌었잖아? 불러 봐. 너희 신이라는 양반 죽빵이나 갈겨주게.”
“다소 착각하고 계신 듯 합니다만.”
레벨리오는 다시금 지상을 가리켰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왕림토록 청했습니다.”
쿠르르르르릉─!!!!
인간을 섬기는 신전에 천둥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