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43화 (841/1,009)

***

틀니 딱딱 노괴 듀오에게 대략 설명을 마친 뒤, 나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래, 황제는 어디로 갔댑니까?”

중간에 오델리아가 나타나지 않았던 걸로 보면 짐작은 갔다.

아니나 다를까 오델리아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자존심이 상한 듯 했다.

“내가 막으려고 했지만 친위대장 째로 놓쳤어. 그 머저리를 데리고 도망쳤겠지.”

우리한테 보여주려고 치료하지 않았는지 오델리아는 팔뚝에 남은 칼빵 흔적을 보여줬다. 얕은 상처기는 했지만 트루-소드 마스터인 그녀의 팔에 상처를 남기다니?

친위대장도 그만한 전사라는 뜻이었다.

“나랑 겨뤄볼 땐 그렇게 세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때 감촉으로는 절대 마스터는 아니었는데. 건방지게 실력을 숨겼다 이거지?”

“별의 자손의 영향이었겠죠. 숨기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아무튼 황제와 친위대도 문제는 문제다.

찾아서 생포하든 죄값을 치르게 하든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어르신? 오프툼 씨 일행에게 제 말씀 좀 대신 전해주시렵니까?”

“그러지. 황제의 행방을 알아보도록 시키겠네.”

좋아, 이걸로 일단락 됐군.

우리는 바텐더에게 입 단속을 철저히 시키고서, 하는 김에 술도 사서 나왔다.

‘돌아가면 자기 전에 술이나 마셔야지.’

어제오늘 빡세게 굴러놓고 밤을 샜더니 피곤해 죽을 것 같은 거에요.

***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올라, 나는 황제 모가지 참수단이 시라노 즉위 조작단으로 랭크 업했다는 사실을 잠에서 깨어난 잠꾸러기 미녀님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나서 카페인 포션 빨로 밤을 새서 한층 꼴려진 티르시와, 푹 자고 일어나서 더욱 꼴려진 베로니카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람.

“미리 말해두마. 베스타의 신좌의 적성에 맞는 인간은 최소한 우리 중엔 없느니라.”

대전제부터 넘어가자는 화두를 꺼내면서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했……뎃?

아니, 지금 이 욕망에 충실한 바이콘이 뭐라고 한 것이지?

“못 쓴다고? 아니 왜? 우리 브류나크가 깔쌈한 슛~ 으로 낚아온 대어인데!”

나는 큐트한 브류나크를 쓰담쓰담─정비─하다 빽 소리를 질렀다.

그렇잖은가. 신좌를 쌔벼왔으니까 이제 이걸로 뭔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다짜고짜 못 쓸 물건이라고 못부터 박다니?

“베로니카 너 이 녀석! 베스타 님한테 사과해! 브류나크한테도!”

“어쩐 일로 나의 그대가 신에게 호의적이지?”

인간이 남긴 인공신좌라는 점이랑 베스타 님의 초상화가 내 취향이라서다.

검은 머리의 키 작은 거유 여신님. 아무개 하프 드워프가 생각나는 것도 있다. 물론, 당연하지만 그 얘기를 입에 담을 정도로 빡대갈통은 아닌 나였다.

“기껏 손에 넣은 인공신좌인데 나쁘게 봐 봤자 좋을 거 없잖아.”

“그 점에 있어서만은 동의한다마는, 어쩐지 썩 석연치 않구나…… 뭐, 됐느니라.”

뚱하니 나를 주시하던 베로니카. 같이 분석하던 티르시가 말했다.

“혈통, 인생사, 적성 모두 일치하는 사람이 없는 수준이니까요.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인공신좌는 남에게 계승해주기 위한 신좌도 아니고요.”

“쓰읍……. 사회 시스템의 일부이자 나라를 번영시켜줄 권능들이니 말이죠.”

당연히 누구 하나가 들고 나르기 쉽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실제로 그런 구조이자 인공신좌의 프로토타입인 아르마 슈나스는 티르시가 획득해버렸고, 그 탓에 〈청동 옥좌〉로도 채 획득하지 못했잖은가?

……아니지. 잠깐만?

“계승하지 않아도 힘을 끌어낼 수 있지 않나?”

〈청동 옥좌〉의 매커니즘이 바로 그것이었잖나.

클리안, 아멜리아, 헤니르에 이르기까지 전원이 7개 성좌에 모두 적성이 있을 확률은 가히 0%에 수렴한다. 어디 그뿐인가? 오딘의 눈으로 분석한 결과도 내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바로 그 점이니라.”

“역시 노르드. 말이 통하네요.”

마법 너드파 아내들은 옹기종기 모여선 종이에 술식을 써내려갔다.

“들어 보세요. 저희들 중에 누군가가 베스타의 후계자가 된다고 쳐도, 신도들의 기도를 다 감당하지는 못할 거에요.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 의무도 없고요.”

“성뢰신의 신도는 로마니아에서만 추산 20만을 넘는다. 든든하다고 한다면 든든하지만, 주인님의 가치관을 보면 책임하기엔 너무 많은 수겠지.”

“개씹 레알루다가.”

날 믿는 신도가 20만 명? 나였으면 바로 은퇴 공연 일자 잡는다.

6명도 박찰 뿐더러, 내 주변에 20만명을 책임질 능력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신이라는 게 얼마나 허황되고, 또 고된 존재인지도 알 만 하다.

“긴 시간 변함없던 체계가 무너져버린 지금, 이 이후의 로마니아가 어찌 될지는 아직 저희들끼리 상의 가능한 범주를 넘었다고 봐요.”

“인공신좌를 되찾을 수는 있는가. 또 되찾으면 어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니라.”

“대충 이해함.”

〈청동 옥좌〉는 헤니르가 박살을 내 버렸다.

남아 있었어도 한 번 명계에서 뽑아낸 인공신좌들을 대가리 원위치가 가능한지 불분명한데, 옥좌부터가 박살났으니 골치가 아플 노릇.

“이대로 신성제국 로마니아라는 국호를 바꾸고, 신이 없는 나라가 될지도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던 티르시가 이상한 표정을 하고 날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나저나 참…… 신을 사칭한다는 발상은 대체 뭘 드셔야 가능한 건가요?”

“사칭이라뇨. 잠시 전권 대리인을 맡을 뿐인데.”

원숭이에서 진화하면 누구라도 문제없이 가능한 사고방식이다.

당연히 이 복잡한 짓거리를 위해서 발품을 뛰어야만 하겠지만, 그건 차차 해결하면 그만인 문제 아닌가. 나는 브류나크를 가볍게 두드렸다.

─파지지직.

그러자 나타나는 베스타의 신좌.

아주 홀로그램 부르듯 툭툭 튀어나오는군. 이거 말년에 고생시켜서 어쩌냐.

“주인님은 〈청동 옥좌〉의 구조를 분석했다.”

베로니카는 그 번개에 데일까 무섭다는 것처럼 살짝 몸을 젖혔다.

“인공신좌로부터 권능과 마나만을 얻는 술식을 알고 있다는 뜻이잖느냐.”

“조금 많이 조정할 필요가 있긴 하겠지만.”

매개체인 옥좌가 없으니까 설계부터 다시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내가 컴맹이라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대충 외장 하드랑 CPU 정도로는 다를 것.

“이 작업은 차차 진행하죠. 노르드의 눈이 있는 이상 시간은 금방 끝날 거에요.”

“우리 일족의 마법사들도 있고 말이다.”

우린 베스타 골수 빼먹기 프로젝트를 논의하다 연구를 잠시 파장했다. 티르시가 어르신에게 불려갔기 때문이었는데, 베로니카는 계속 남았다.

“……음? 나의 그대여?”

브류나크를 만지작대던 베로니카가 날 부르길래 종이를 정리하던 손이 멈췄다.

“왜 불러?”

“……흠. 아니, 미안하다. 내가 말하는 건 조금 멋없군. 다른 얘기부터 하자꾸나.”

뭔데 그러지. 창대를 받은 내가 쳐다보자 우리 여신님은 내 목을 만졌다.

─더듬.

아니, 만져지고 나서 알았는데 내 목이 아니라 목에 채운 목줄을 만진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목줄이 아니랬지만, 암만 봐도 목줄 맞다.

“이모저모 생각해 보았다만,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생겼느니라.”

“좋네. 눈치 안 보고 말했다는 점이 특히.”

무슨 죄 지은 것마냥 어렵사리 말하는 것보다는 이러는 편이 나았다.

솔직히 어지간한 부탁은 섹스 한 번 거하게 떠 주면 보답도 충분할 건데.

“별의 자손과 싸우면서 문득 다시 인식했다. 내 성장이 적잖이 더딘 점이 말이야.”

베로니카의 눈동자는 조금 신비롭다. 출신부터 남다르기 때문일까. 보고 있으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이지적인 홍채였다.

“그렇다고 불평불만을 말할 생각은 없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비교하면 그대와 만난 시간은 농밀하기는 했지만 짧았지. 새삼 눈에 들어올 만큼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곤 기대하기 힘들 터다.”

“괜찮다고 해도 위로는 안 되겠지?”

“아무렴. 나는 신좌 같은 걸 받지도 못하는 신분이니.”

그럴 만도 했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신좌를 계승하진 못하겠지. 인공신좌와 〈청동 옥좌〉도 그렇기에 개발된 물건일 거고.

그리고 베로니카는 태어날 때부터 여신이다.

로키와 슬레이프니르의 피가 흐르는 그녀다. 새 신좌를 받는 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가 나만큼 강해지려면 자기 힘으로 마스터 클래스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얼마나 뒤지게 힘든 일인지는 나도 잘 알고.

“머지 않아 자신의 것이 아닌 신좌를 봉인하는 헤니르와 싸우게 될 터. 아르마 슈나스의 신좌도 못 쓸 게 자명하니, 우리의 강함이 더 중요해진다.”

서론을 끝마친 베로니카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따라서 나는 제안하겠다.”

그녀는 내가 찬 것과 똑같은 목줄을 꺼냈다.

내 손을 잡아선 그 목줄을 들려주고, 개가 복종하고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턱을 치켜들었다. 베로니카의 날렵하고 늘씬한 목선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그대…… 아니, 주인님.”

목줄을 쥔 손에 뺨을 비비며 그녀가 웃었다.

“나만을 위한 신이 돼 주지 않겠느냐?”

단언컨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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