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44화 (842/1,009)

신이 돼 달라고?

굉장히 뜬금없고 의아한 제안이었다. 나는 무슨 뜻의 부탁일까를 생각하기보다 그냥 솔직하게 떠오르는대로 물어보기로 했다.

“뭘 어떻게 해 달라는 뜻이야?”

아마 나더러 더 강해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나한테 득이 되는 거라면 부탁일 이유가 없어.’

평소처럼 은근히 으스대면서 이렇게 하면 훨씬 강해질 수 있느니라~ 하며 자랑스레 내보였겠지. 게다가 내가 더 강해질 방법은 이미 얘기한 뒤다.

베스타의 신좌에서 힘을 추출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던 차였다.

‘그보단 베로니카가 더 강해지도록 도와달라는 투였어. 맥락을 고려해보면──’

질문을 하기 무섭게 내 뇌리에 번개가 스쳤다.

이세계의 지식이 저절로 이제까지의 대화와 합쳐지면서 답을 내놓았다. 베로니카는 정답 맞추기를 할 생각은 없었던 듯 웃었다.

“얘기가 길어졌으니 더는 길게 말하지 않으마.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신과 사제의 관계니라. 그 베스타나 포모나, 로물루스처럼 말이다.”

“아하. 나더러 네 배후성이 돼 달라는 뜻이군.”

“……배후성?”

“그런 게 있어. 후원자 같은 거.”

이세계의 신도, 성직자, 사제들.

그들의 강함은 사실 〈강림〉이나 〈인신〉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기 자신보다 강대한 신좌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신이나 신좌로부터 얻는 힘의 레벨이 조금 약할 뿐이지.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마침 얼마 전에도 얼핏 말했잖은가.

인공신좌는 자기 신도에게 힘을 직접 나눠주는 게 아니었다. 저 옛날의 진짜 신들과 달리, 자아랄 게 없는 인공신좌들의 본질은 게임의 시스템이나 A.I.와 닮았다.

‘인공신좌마다 갖춘 특성에 따라 기도나 헌신을 할 수록 성장한다.’

─매일 아침 기도하기(0/100). 보상: 마나 300.

─언데드를 퇴치하기(0/10). 보상: 마나 500.

딱 그런 느낌이다.

마나 스탯을 올리는 퀘스트 같은 것. 사티스의 경우처럼 신도들에게 축복이나 가호를 직접 내려준다기보단, 조건을 맞춘 이들의 성장을 복돋는 느낌이지 않을까.

‘그리고 직위에 따라서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백업을 해 준다.’

교단에서 말하는 축복이나 가호다.

3차 직업인 ‘교황’이 얻는 스킬셋은 1차 직업인 ‘일반신도’랑은 격이 다르겠지.

‘물론 나는 사제가 아니라 확실하진 않은데……’

아무튼 대충 그런 느낌이긴 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점을 고려해보면 베로니카의 말은 곧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너한테 내 힘을 나눠달라는 뜻이지?”

베로니카만을 위한 신!

그건 곧 내가 그녀의 배후성이 된다는 뜻이었다.

나더러 신이 되라고 한다면 거부감이 앞서지만, 막말로 신이 된다고 쳐도 신도만 받지 않으면 내 생각과 충돌하는 면은 없었다.

‘베로니카의 인생이야 이미 내가 책임지고 있는 부분이고.’

“결국 지금까지랑 별로 다를 바는 없겠네.”

앉아 있던 나는 베로니카의 허리를 잡았다. 참 얇기도 하다. 약간 잡히는 군살이 부끄러운 듯 딱 굳어선 살짝 거북해 하는 게 또 귀여운 맛이 있다.

이 정도의 군살은 살쪘다고 하기도 뭣한데.

“으, 음. 다만 그렇게 노골적인 얘기는 아니다. 라리루라가 하고 있는 음양합일 의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 마나를 나눠받는다는 면에서는.”

“그래,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

남편과 아내임과 동시에, 신과 사제의 관계!

베로니카는 내게 봉사하고 섬기며 헌신하고, 난 그런 그녀를 보살핀다.

“아니, 진짜로 똑같은 거 아냐? 제대로 형식을 갖춘다는 점 외에는.”

“……그래, 그렇지.”

베로니카는 내가 그렇게 지적해도 오히려 웃을 뿐이었다.

“그대는 언제고 내 주인님이자, 신이었다. 오랜 소원을 들어주고 구원을 내리며 보살펴주는 존재. 그걸 신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겠느냐?”

사랑스러운 걸 보는 눈빛으로 내 턱을 쓰다듬는 베로니카.

베로니카는 구신의 후계자인 나를 섬긴다.

바이콘의 예지자와 구원의 계도자.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서 강림한 바이콘 신족의 새로운 주인.

내가 그녀와 재회한 날에 거부했을 뿐, 우리의 관계는 쭉 그래왔다.

아틀란티스에서 내게 무릎 꿇고 충성을 바치던 바이콘들은 아직 눈에 선명하다. 내가 신이나 절대자로서 군림하길 꺼려하지 않았다면 나는 저들의 신적인 존재로 숭배받았겠지.

그래서 나는 픽 웃었다.

“뭐라고 부르긴. ‘여보’나 ‘주인님’이지.”

“……후훗. 여보라고 불리고 싶으냐?”

“가끔씩은? 지금 호칭도 나쁘진 않지만.”

아무튼 신이 돼 달라는 건 그런 의미였다.

‘오딘의 사제, 포모나의 사제처럼 날 섬기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내게 축복과 가호를 받는 것!

개꿀인 점은 내가 약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이 신도를 기른다고 약해지면 인공신좌는 진즉 말라붙었어야지 않겠는가.

나는 딱히 신은 아니지만, 격식을 차리면 그에 비슷한 행위가 가능한 것일까?

‘베로니카가 꺼낸 말이다. 가능하긴 하겠지.’

태초신 오딘의 후계자. 예언의 울프헤딘.

마스터 클래스로서 권능도 갖췄겠다, 격은 충분하다. 개뜬금없이 인간에서 신이 돼 버린 인공신좌들보다는 전통성이랑 근-본도 있겠군.

나는 베로니카의 뺨을 문질렀다. 여신답게 잡티 하나 없다.

“우리 베로니카는 자지를 넣어주면 정신이 헬렐레해져서 주인님 정액에서 마나를 뽑아갈 겨를이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귀여움받고 싶었구나?”

“……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갑자기 평어체 쓰기 있냐? 훅 들어오네.

요요 깜찍한 것. 나는 부끄러워하는 베로니카의 목을 장난스럽게 깨물었다. 옆구리를 꽉 잡힌 여신님은 몸을 빼지도 못하고 바동거렸다.

“뭐, 무, 무슨 짓이냐?!”

“갈! 베로니카 네 이년! 얌전히 있거라! 신께서 성은을 내려주신다는데 어딜!”

“그런 관계를 한사코 거절한 건 그대잖느냐!”

듣고 보니 그렇다. 내가 오딘의 후계자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바로 배를 까뒤집고 복종의 태세를 보였던 베로니카 아닌가.

‘결국 구신이랑 그들에게 헌신하는 신족이라는 관계로 돌아온 셈인가.’

하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왜냐고? 그야 신 대 신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쌓았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아닌가. 저때 내가 이 관계를 받아들였다면 절대로 부부는 못 됐을 것이었다.

아마 내가 그 관계인 채 손을 댔어도 베로니카는 얌전했겠지만, 그랬다가는 그냥 사이비 종교잖아. 내가 ‘제우스’한 다음 ‘헤라클레스’ 당했을지도 모른다.

신화에서도 가정에서도 마망을 막 대한 애비는 자식한테 프래깅 당하는 게 국룰이지.

이미르처럼 발기발기 찢어져서 감나무 밑에 파묻히고 싶지는 않다. 그랬다가는 저택 마당에 쁘띠 세계수가 자라버릴 거라고.

“원래 배우자는 배후성보다 존귀한 직위란다.”

나는 베로니카를 뒤에서 붙잡고 아랫배를 꾹꾹 눌렀다.

혹사하면 강해지는 부위가 있으면 오히려 허접 좆밥 잡몹이 돼 버리는 부위도 있다. 알코올 중독 술고래의 간이 그런 식이라던가.

“하욱♡”

─문질문질.

자궁도 아마 비슷할 것이었다. 잊을만 하면 내 자지에 얻어맞은 베로니카의 자궁은 아직 미사용 상태인데도 배 위로 만져줘도 개처럼 침을 흘렸다.

“그, 그만……! 으극, 머, 멍청한 녀석♡ 오늘은 아직 준비도 안 해 왔단 말이다!!”

“사제가 되는 의식이랄 게 따로 있나?”

생각해 보니 있었다. 세례다.

‘머리에 기름을 끼얹거나 하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바이콘들에게 있어서 전통을 지키는 역할이 예지자다. 뭐 베로니카한테 맡기면 알아서 준비해 오겠지.

“그런데, 굳이 의식이 아니어도 되지 않아?”

나는 발기한 자지를 베로니카의 엉덩이에 살살 비볐다.

으음. 이 감촉은 티팬티렸다. 발랑 까진 여신도 같으니.

“오늘부터 노르드 교단의 여신도는 신 앞에서는 마이크로 비키니만 입는다. 예외는 신이 다른 걸 입히고 하고 싶을 때 뿐이다. 교리로 명언하겠음.”

“헛소리 말고 놓거라. 나 혼자서 어떻게 그대의 성욕을 감당하라는 말이냐. 자고 일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대의 남근으로 혼절시킬 셈이냐?”

“날 말리려는 생각이라기엔 그 워딩은 좀 너무 꼴리는데.”

그래도 맞는 말이었다. 못 참고 푹푹 찍 뷰루룻 했다간 베로니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절했다가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게 될 것이니까.

밤까지 참던가 해야 하나. 나는 눈물을 삼켰다.

“성녀가 세상 허접 보지라서 신님은 슬퍼용.”

“……시끄럽느니라. 정 굶주렸거든 발퀴리에로 자위나 하도록.”

“그건 또 씽크빅한 표현이네.”

이 세상 인류의 90%보다 강한 리얼돌 메이드로 딸딸이라. 과분한 사용법이군.

─메다닥!

아무튼 그렇게 베로니카는 도망치고, 나는 복에 겹게도 다른 아내들에게 은근슬쩍 권유해서 존나 발기한 쥬지드라를 진정시킬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럴 시간이 없었다.

〈울프헤딘 백작님. 내객께서 방문하셨습니다.〉

〈……20분 후에 들라 하십시오.〉

귀족 특) 맨날 차 마시고 손님 만남.

왕족이나 대귀족 쯤 되면 이 정규 패턴을 한 번 꼬아서 만남을 색다르게 만들곤 하는데, 아무래도 날 찾아온 사람은 그것과 거리가 좀 있는 모양.

귀찮긴 해도, 국룰을 어기고 복잡한 첫 만남을 꾀하는 건 오델리아 정도로 충분하다.

약속도 없이 찾아왔으니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 상대가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찰싹 달라붙은 다나 누나와 네페르티티를 데리고 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손님들과 만났다.

날렵한 생김새의 마른 성직자와 후드를 쓴 여인. 색다른 조합이군.

후드 밑에서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 꽤 미인이라 성직자가 뚱뚱했으면 무척 수상해 보였을 것이다. 부패한 성직자가 비싼 여관에 오피를 부른 느낌이었을 것.

종교에 냉소적인 자칭 일침맨들은 성직자야말로 가장 세련된 사기꾼이라고 떠들고 다니던데, 혹시 그들이 여기 있었으면 ‘사이비쉑 헌금으로 교회 못 세워서 모텔 왔죠?’ 거렸을지도 모른다.

단출한 외투를 걸친 다나가 입을 살짝 벌렸다.

〈……교황 예하?〉

〈예. 베스타의 충실한 종, 알키데스라 합니다.〉

어머 시발.

미안해요, 베스타 씨. 본의 아닌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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