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52화 (85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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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동물들의 지능을 볼 때, 그 높낮이를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앞날을 보고 계획을 짤 수 있느냐랬던가. 그만큼 과거나 미래를 꿈꾸는 건 인류의 장점 아니겠나.

인류의 진화와 진보도 그러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 그게 인류가 눈부시게 성장한 비결 아닐까?

과거로 가서 미래를 바꾸는 백 투더 퓨처를 상상하는 마음도 마찬가지!

그 시발 뭐시냐, 소설 같은 데에도 많지 않은가. 회귀물이 왜 개꿀잼이겠냐고.

─아 씨발, 나도 비트코인 붐 전으로 돌아가면 떼부자 쌉가능인데.

과거로 가는 대신 군대 재입대 VS 그냥 살기.

마늘냄새 뿜뿜 풍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VS 밸런스 게임.

과거를 안다는 시시한 ‘상식’이, 미래를 안다는 엄청난 어드밴티지로 바뀌는 기적!

존나 끝내주지 않나. 이게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통칭 회귀─의 매력 아니겠는가.

그럼, 이쯤에서 조금 화제를 바꿔보자.

미디어 매체에서 그런 회귀자들이 자신의 미래 지식을 설명하는 데 자주 애용하는 핑계가 있다. 실은 자기가 예언자라는 야부리다.

실제로 예지력을 깨우치고 마이너몽키 리포트가 된 나로서는 쬐끔 아니꼽지만, 회귀와 미래예지는 핵심 부분에서 교집합이 많긴 하다.

예컨대 미래에 ‘사레에 들리지 않고 물 마시는 법’이라는 지식이 생겼고, 미래인이 사람들이 아직 사레에 들리곤 하는 과거에 회귀했다면.

그 시대에는 본인도 전혀 몰랐던 미래 지식으로 꿀을 빨 수가 있을 것이었다.

과거로 회귀한 인간은 그렇다.

그럼 미래를 예지하는 인간은 어떨까.

미래를 보는 힘으로, 훗날의 자신이 배우게 될 지식을 얻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TV가 갓 만들어지던 시기의 인간이 스마트폰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은하 밖으로 진출한 미래의 인류가 쓰는 에너지 활용법을 안다면, 같은 분량의 원료를 써도 훨씬 높은 출력과 유지력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100년, 200년 후의 기술력과 지식을 얻은 기술자는 이전과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그 호기심을 해소시켜줄 당사자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어떤 미래를 보고자 하는가. 예언자의 능력은 그 의지에 기인하는 걸지도 모르지.〉

─화르르르륵!!

베로니카는 형광색 불꽃을 휘감고 속삭였다.

내 마나 코팅이랑은 또 달랐다. 정말로 불꽃 그 자체를 몸에 감았는데도 베로니카는 머리카락 한 올 불타지 않았다. 경악스러운 마나 통제력이었다.

〈내 세대에서라도 선지자님처럼 미래를 읽는 바이콘이 나타난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긴 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어디 가서 자랑하진 못 하겠군.〉

─휙. 그녀가 타오르는 가지의 지팡이를 들었다.

〈역시 아무래도 난, 일족의 안녕보다 주인님을 돕는 걸 더 꿈꿨던 듯 하니.〉

30분은 걸릴 법한 주문이 2초로 끝났다.

그 상식 밖의 속도의 비결은 베로니카가 띄워둔 반딧불들에게 있었다.

반딧불들은 전부 주문을 외우는 입이자, 마법을 짜는 두뇌이며, 베로니카의 일부인 정령이었다. 내 눈깔은 열일을 하며 그게 열화판 브류나크와 같은 존재라는 걸 알려줬다.

하지만 해석은 하지 못했다.

열화판은 다른 말로 양산형이라고 할 수 있다. 브류나크랑 달리 쉽게 만들고 간단히 써먹는 주문 보조 술식! 즉석에서 만든 반딧불이 집채보다 큰 불꽃을 토해냈다.

【■■■■■■■■!!!】

별의 자손의 축복을 풀어헤친 친위대장은 촉수 다발을 휘둘렀다.

─츠자자자작!! 불꽃이 찢겨나갔다. 살벌한 위력 못지 않은 섬세한 검술이었다.

〈호.〉

베로니카가 감탄한 소리를 내자 친위대장은 뭉개진 얼굴로 숨을 씩씩댔다.

촉수로 변한 팔은 몸만큼 두꺼워졌고, 등에서는 꺾인 날개가 다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바닥을 짚고 지나치게 강해진 힘에 튕겨나가는 걸 억제했다.

대가리에서 솟은 기다란 촉수는 끝으로 갈 수록 얇아지며 꿈틀댔다. 더듬이 역할을 하는 감지기관 등으로 생각되는데, 그 주변에 정체 모를 흑색의 구슬이 빙빙 떠다녔다.

나는 눈밑에 눈깔이 한 쌍 더 돋은 친위대장을 살피고 인상을 썼다.

‘정신은 광기에 잠식됐지만 이성이 무뎌지지는 않았나.’

징그러운 괴물로 변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친위대장은 아직까진 아슬아슬하게 인간의 형상을 남긴 상태다. 촉수를 팔과 다리처럼 쓰고 있으니까.

베로니카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 자신의 검술을 펼쳐냈을 지경.

축복에 잡아먹히지 않고, 자기 능력과 신체능력 모두 살리는 전투형태였다.

─터덥!

나는 브류나크를 들고 베로니카 앞에 착지했다.

〈조심해. 징그러운 거랑 별개로 쎄지긴 했는가 보니까.〉

〈그런가 보군. 허나 지혜가 뒤따르지 않아서야 몬스터에 불과할 테지.〉

─주의해서 대비하거라. 권능을 사용한 낌새가 없느니라.

상대를 얕보는 말 뒤로 슬쩍 들려온 텔레파시.

여유만만한 얼굴과 다르게 안색은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바로 알았다. 깨우친 능력이 자기 그릇보다 과분해서 폭주에 빠진 듯한 모양새다.

내가 망령도시에 날뛰었을 때처럼 권능이 매우 강력하게 발현된 대신, 통제는 어려운 상태였다. 내 경우랑 달리 시간을 들이면 극복될 부분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살짝 주저하다가 물었다.

─저기요 여신님? 멀쩡한 거 맞죠? 혹시 예전에 너희 주인님이 그랬던 것처럼 저기 어디 먼 별에서 외계-전파 같은 거 수신한 거 아니지?

─흠. 전혀 멀쩡하지 못하군. 그대가 씻겨준 듯 하지만 아직도 배가 얼얼하다.

아, 이거 평소의 베로니카다. 괜찮은 거 맞네.

【■ ■■■ ■■…… 년놈들 이, 감 히……】

췩췩 거리며 젖은 울음소리를 내던 친위대장은 점점 인간의 말을 되찾았다.

〈트르르르르르하아아아아악!!!!〉

괴물처럼 포효하면서 친위대장이 돌진해왔다.

팔에 비해서 쇠꼬챙이처럼 작아진 검이 파도를 연상시키는 소용돌이를 휘감고 굵어졌다. 씹년이 지도 템 좋은 거 쓰면서 나한테 지랄한 거야?

〈바깥 우주의 신성을 담은 무기로군. 그렇다면 신성을 추출하면 그만이지.〉

베로니카는 육망성을 그렸다. 손톱이 지나가는 위치에 룬이 피어났다.

─푸스슥!

무기의 소용돌이가 꺼지며 다시 쬐끄맣게 돌아가버렸다. 친위대장은 더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그런 쥐좆만한 검으로 검술을 펼치기는 쉽지 않았다.

쫘자자작─!!!

그리고 그 사소한 차이는 비등한 실력끼리 붙을 때는 매우 큰 약점이다.

【게르튀르】의 초식을 펼치며 순식간에 두꺼운 촉수 다발을 그었다.

단지 좋아하기엔 좀 일렀다.

〈하 하 하하 하 하!!!!〉

〈애미.〉

피가 튀었지만 깊이가 얇았다. 오러로 되는대로 긁긴 했는데 체격이 너무 달라서 상대적으로 얇은 상처가 돼 버리고 만다. 큰 덩치의 이점이다.

─콰드드드드!!

팔만 징그럽게 커진 친위대장이 나를 무시하고 돌격했다. 정원의 흙을 불도저처럼 갈아버리며 내 뒤의 베로니카를 먼저 노릴 생각인 듯 했다.

─올 것 없다! 공격할 생각부터 하거라!

당장 그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베로니카가 만류했다.

조언 뿐이었으면 혼나더라도 못 참고 끼어들고 말았겠지만, 베로니카의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오딘의 눈에 보였다.

〈지팡 이와, 팔 부터, 으깨주 마!〉

내가 창을 당겼을 때, 친위대장의 빈손이 베로니카를 정확하게 후려쳤다.

장애물에 걸리지도 않고 지면을 휩쓴 촉수 팔이 베로니카가 있던 곳을 초토화시켰다. 주문만 외던 그녀는 피하지도 않았다.

─질척.

〈그, 아.〉

정확하게는 피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었다. 친위대장의 촉수 팔은 여름 시즌 대구의 아스팔트처럼 끈덕지게 녹아내리고 말았다.

〈불덩이에 손을 넣는 머저리가 어디 있느냐.〉

불꽃을 선녀의 날개옷처럼 입은 베로니카는 별 웃기지도 않는 머저리를 본 것처럼 지팡이를 친위대장의 가슴팍에 댔다.

〈……베로니카!! 잠깐 불꽃옷 치워 봐!!〉

하지만 놀라운 대마법이 발동하기 직전에 나는 룬을 발동하며 외쳤다.

【ᚱ(Raidō)!!】

오러 투창을 친위대장의 등판에다 꽂고, 직후에 차원을 빠져나가면서 베로니카의 옆에서 실체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다시 차원의 틈새로.

─투캉!!!!

베로니카가 쏜 마법이 180도 반전해서 그녀가 있던 위치에 꽂혔다.

이 불꽃 옷이 어떤 방어 효과를 가졌지는 몰라도, 저 반사를 정통으로 맞았다면 다치고도 남았을 거다. 하여튼 미래예지 만만세다.

〈그, 하. 하. 하. 하!!!〉

팔뚝을 새롭게 기른 친위대장은 아예 자기 팔을 직접 뽑아버렸다.

─쭈르르르륵! 츄륵!!

그러자 뽑혀진 촉수 팔이 굵은 검이 돼 버렸다. 인체공학적인 무기로군. 환경보호단체가 보면 기립박수를 치면서 군대에 도입하라고 시위하겠어.

‘공격을 반사하는 게 친위대장의 권능인가?’

나는 혀를 차며 강력한 공격기를 자제할 마음을 먹었다.

‘강한 공격을 했다가 반사당하면 좆 같으니까.’

견제구를 갈길까. 하지만 처음에 팔이 녹아내린 걸 보면 패시브는 아니다.

‘발동 타이밍을 자기가 정한다면 애매한 공격은 몸으로 때울 듯 싶은데……’

은근히 골치 아픈 권능이다.

어떤 조건으로 발동하는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고로 게임이건 만화건 반사능력은 일단 기본은 먹고 들어가는 능력 아닌가.

패시브가 아니라면 그만큼 반사 가능한 용량은 높을 듯 했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조금 시간을 들여서 어떤 식으로 공략할지 생각하면──

〈그대여. 고심하는 중에 미안하다만, 오늘 머리 쓰는 역할은 내 몫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베로니카를 내려주자, 우리 여신님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저런 능력을 파훼하는 방법이 있더구나. 다음 1방으로 끝내자.〉

〈……믿겠다. 확실히 너는 예언자의 후손이 맞군.〉

우리 집안 선조 중에는 예언자 없나.

흙수저 맨땅 계정 예언자는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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