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활용도는 사람의 숙련도에 따라 바뀐다.
공장 일을 10년 한 인간 컨베이어 벨트와 그냥 매주마다 급여가 나온대서 찾아간 19살 알바생을 비교하면 같은 시간 동안 결과량부터 다를 수밖에 없잖은가?
마나를 다루는지, 다룬다면 얼마나 능숙한지로 사람마다 능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는 이세계에서는 더 그렇다.
고로, 우리 ‘3명’의 싸움은 그 장렬함에 비하면 찰나와도 같았다.
시작도, 경과도, 명암을 가른 결말까지 말이다.
─쉭!!
브류나크를 치켜들고 돌진하자 친위대장은 정면에서 맞이했다. 반사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상대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는 게 제일이다.
〈자신이라 도, 생 겼나!!!〉
뼈와 살이 엉킨 검이 요격을 감행했다.
오딘의 눈으로 살핀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친위대장의 혈육으로 만든 무기에 반사의 권능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콰지끈!!!
빗나간 검이 지면을 두들겼다.
당연하지만 마스터 클래스 씩이나 돼 갖고 저런 화려한 헛방을 치지는 않는다. 지면을 두들긴 혈육검은 로프 반동처럼 튕겼다.
내려칠 때보다 2배는 빠른 속도였다. 내가 용을 써도 못 피할 올려치기였지만 나는 눈을 부라렸다. 손과 발이 교묘하게 창술의 절기를 펼쳤다.
반격기 제 4품새에 ᛁ(Isaz)의 룬을 더한다.
【게르튀르 푸타르크(Geirtýr ᚠᚢᚦᚨᚱᚴ)】·ᛁ(Isaz)
─쩌적!! 에너지를 상쇄하는 초식으로 튕겨지는 공격을 완전히 봉쇄했다.
분자운동마저 감속한 것처럼 얼어붙은 혈육검을 후려쳐서 부쉈다. 징그럽게 부푼 친위대장의 칼이 다시 짓쳐들었지만 이번에는 차원 도약으로 몸을 피했다.
─쐐액!!! 붕붕붕붕!!!
반동으로 더 빨라지고 예상하기 힘들어진 공격. 내가 난해하고 변칙적인 검술을 전부 피하자 친위대장은 짜증을 부리며 고함쳤다.
〈그, 눈!! 빌 어먹을, 권능 이구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지.〉
예리하게 공격을 살피다가 창을 휘둘렀다.
─텅! 브류나크가 혈육검을 쳐냈다. 친위대장의 일그러진 얼굴이 굳었다. 검을 쳐냈다는 건 내가 권능의 빈틈을 간파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오딘의 눈이 분석한 정보와 추측을 조합하자 저 권능의 실체는 대략적으로 보였다.
‘방향을 뒤집는다기보단 튕겨내는 것에 가깝군. 쿨타임은 3초 정도고.’
지속시간은 미지수지만, 얼마나 오래 가건 상관 없는 일.
‘반사해도 위력이 줄어들긴 커녕, 더 강해진다.’
얼핏 생각하면 상대하는 내 입장에선 나쁜 일. 하지만 나는 기쁘게 미소 지었다.
‘오히려 좋지.’
팽그르르─!! 척!! 나는 백 덤블링을 연발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ᛒ(Berkanan)의 룬 만다라를 손에 띄우면서 브류나크를 팔찌로 바꿨다.
무기를 회수한 내 손은 자유로 돌아왔다.
그러나 친위대장은 싸움을 포기한 거냐는 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
지리멸렬한 포효로 지축을 흔들며 오러를 씌운 검무를 펼치는 괴물.
원거리로 날아드는 참격은 자그만 산 정도라면 썰어버리고도 남을 기세였지만, 우리 급의 전사들에게는 힘에 맡긴 붕쯔붕쯔에 불과했다.
방어가 특기인 년이 쏴대는 힘 뿐인 참격에 겁 먹을 내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적성과 특기 차이는 있다.〉
스스스스─!
오러권으로 참격을 흘렸다. 올 곳을 알고 흘릴 힘이 있으니 공포도 실패도 없다.
나는 ᛒ(Berkanan)의 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권능만 봐도 니년은 멀리서 싸우는 데 약해. 보디가드 출신이니 당연한가.〉
그런데도 접근하지 않고 참격을 날려대는 것은 지금 저렇게 광분하고 있는 이유와 같았다. 내가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닌데 무기를 집어넣을 도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나도 그녀도 생사결의 프로페셔널 아닌가.
동격의 상대가 승산을 버리는 미친 짓을 할 리 없다.
그렇다고 알기 때문에, 그녀는 직감한 것이었다.
내가 브류나크를 집어넣은 게 이기기 위한 빌드업이란 걸.
〈우리 여보의 아이디어다. 짜릿할 테니 즐겨 봐.〉
선전포고를 날리며 나는 메달을 내던지고, 그걸 마나의 창으로 꿰뚫었다.
─펑! 인벤토리의 구멍이 찢어지며 터져나오는 인공 미스릴 주괴!
〈뇌치금!!〉
주괴에 번개를 휘감아서 형상을 재련했다. 금속 주괴들은 한 데 뭉치며 거인도 묶을 듯한 시뻘건 사슬로 변화했다. 나는 그걸 공중에서 쥐었다.
열기가 제법 뜨거웠는데, 마나 코팅을 두껍게 한 손을 태울 정도는 아니었다.
〈귀갑묶기다 씹년아!!!!〉
─차르르르르르르륵!!!
몸통처럼 두꺼운 사슬을 쥐고 친위대장의 상하좌우를 누볐다. 이동과 흐름을 의미하는 ᚱ(Raidō)의 룬으로 속력을 더하자 친위대장은 나를 미처 잡지 못하고 애꿎은 공기만 베어댔다.
막 휘저은 검에 잘려서 베어나간 쇠사슬보다 그 몸에 감긴 사슬이 더 많았다.
〈끄으으…!! 이깟 사 슬로 내목이 조일쏘 냐!!〉
뇌치금으로 아예 족쇄처럼 구속돼도 친위대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열기는 살을 문드러지게 했지만 권능마저 발휘하면 목을 조여봤자 힘 싸움도 안 된다. 애당초 목을 조인다고 뒤질 듯한 년도 아니고.
촤르륵─! 쿠드득!! 나는 사슬을 붙잡고 웃었다.
〈그래도 끊기는 어렵겠지. 이 정도면 되겠어?〉
〈아무렴, 차고도 넘치느니라.〉
룬 만다라를 펼친 베로니카도 지팡이를 뉘이며 미소로 회답했다.
〈캬아아아악!!!!!〉
위기를 짐작한 친위대장은 힘을 주면서 사슬을 뜯어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다. 야수회귀의 마나로 덮인 미스릴이다. 1mm 합금판보다 1m 강철판이 찢기 힘든 법.
베로니카가 내 마나와 같은 색의 뿔을 현란하게 발광시키며 마법을 사용했다.
〈나와 브류나크가 마련한 선물이니라! 그대여, 화려하게 시험해 보거라!〉
나는 사슬을 당기면서 브류나크를 들어올렸다. 팔찌를 휘감고 튀어나온 전격이 써클을 그리며 회전했다. 내 마법과 비교해도 수준이 다른 뇌격이 넘쳐흘렀다.
쿠오오오오오오─.
번개는 가만히 타오르는 화롯불처럼 정숙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빛을 나약한 촌부의 침묵이라고 여기진 않을 것이었다.
이 고요함은 신벌을 내리는 제왕의 품격이었다.
‘성뢰신 베스타의 권능.’
베로니카가 인공신좌에서 권능을 추출하는 마법으로 내가 일시적으로나마 베스타의 권능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게 미래 지식 치트의 참맛이지.〉
나는 뻗은 손에서 순백의 번개를 해방했다.
번개는 말 그대로 뇌속이었다. 빛이 번뜩였다고 생각한 순간, 피할 도리도 없이 벼락이 비대화한 친위대장의 몸에 꽂히며 360도로 산란했다.
번개가 꽂혔다기엔 너무나도 정숙했지만, 내가 사슬을 놓기 무섭게 친위대장마저 미처 끊지 못한 강화 미스릴 사슬을 엿가락처럼 녹여버렸다.
잔재주 없이 순수하기에 티없이 파괴적인 신벌.
〈멍청한 놈!!! 내 권능 을 잊었 느냐──!!!〉
그 벼락불에도 친위대장의 권능은 기어이 힘을 발휘했다. 놀랍게도 반사의 범위는 제대로 펼치면 전신에 이르는 듯 했다.
쿠오오오오─!!!
잠깐 길항하던 벼락불은 미리 발동해뒀던 듯한 권능에 튕겨져 날아왔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마스터 클래스라도 번개를 피하려는 건 꽤 무모한 시도였다. 나처럼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화엄경(火嚴鏡).〉
단지, 우리는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화르륵!
불꽃의 거울이 친위대장을 둘러싸고, 산란하는 번개를 흡수하고 반대 방향으로 토해냈다. 불꽃은 벼락불의 힘으로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구조다.
내가 쏜 공격이 반사되는 것까지가 베로니카의 계획이다.
공격을 더 강하게 반사해봤자 벼락불과 거울의 유지에 보탬이 될 뿐.
그리고 베스타의 벼락불은 탈출을 허락할 만큼 자비롭지 않다.
〈끄, 아, 아?!!!〉
하물며 친위대장의 권능은 반사 효과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었다.
무한동력은 존재하지 않기에 구조는 붕괴한다.
〈무슨, 일이……!!!〉
반사를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그 붕괴를 지연시키려고 했던 친위대장.
치지지지직…!
그러나, 아직 권능이 발동 중인 그녀의 육신을 벼락은 태워 들어갔다. 튕겨져 나오지만 않는다면 베스타의 벼락불은 권능마저 태운다.
마나도, 권능도,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오딘의 눈이 분석하길, 〈정화의 벼락불(Fulmen Purgationis)〉.
벌을 내린 죄인을 완전히 ‘정화’하는 권능이다.
내가 쏜 것이긴 했지만, 물리적인 방어력만으론 절대로 버티지 못할 권능이었다.
─쿠오오오오!!
뿌리까지 침투한 벼락이 몸을 안팎으로 튀겼다.
권능을 써서 몸을 지켜도 피하지 못하면 파국은 필연적이다. 친위대장의 육신은 권능도 생명력도 무의미하게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혓바닥의 핏기가 증발하며 기포가 터졌다.
〈■, ■■!! 뜨겁, 다……!! 죽■, ■……!! 죽, 는……!!〉
〈손속은 않으마. 너도 나도 피차 유별난 신을 섬기는 사이 아니더냐.〉
베로니카는 불꽃 거울을 큐브 형태로 압축했다. 번개의 텀이 더 짧아지면서 친위대장을 움츠러든 소사체가 될 때까지 태웠다.
〈똑같이 진실로 신을 숭배하고, 축복을 받고서 그의 도움이 되고자 싸웠다. 고로 네가 진 이유는 오직 하나 뿐이니라.〉
─통. 불꽃 지팡이를 땅에 찧은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사람…… 아니, 신을 보는 눈이 없었군. 결국 너 자신의 부덕이로다.〉
휘르르르─.
벼락과 불이 사라진 흙바닥에 바람이 몰아쳤다.
“……윽.”
그렇게 싸움이 끝나고 마음을 놓은 나는 엄청난 마나 고갈에 휘청거렸다.
‘그럴 만 하지. 베스타의 권능을 마나로 재현한 셈이니까.’
신좌처럼 권능만 쏙 추출하는 건 어려운 터라, 베스타의 벼락불을 재현한 건 순전히 내 마나다. MP 소모가 존나 큰 고레벨 궁극기인 것이었다.
다나는 권능으로 자신과 발퀴리에의 MP를 대체하는데, 나는 그 정반대인 것이다.
‘지금 상태로도 2~3발이 고작인가?’
전투에 드는 마나를 고려하면 한 차례 싸우면서 1번이나 쓰면 다행이겠군.
그래도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맞추기만 하면 무조건 고정 데미지니까.’
지금 같은 케이스가 흔할 리는 없으니, 감전 = 치명타다.
간을 볼 것도 없이 무상성 궁극 데미지를 꽂는 스킬이 구릴 리가 있나. 하르마게돈 만세다. 나는 개운한 느낌으로 턱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그래도 마나 소비가 큰 건 확실히 문제인데……”
─힐끔. 벼락불이 꽂힌 곳에 눈을 굴리는 나.
친위대장의 시체 역시 흔적도 남지 않았다. 딱 한 가지, 넘쳐나며 내게 흘러들어온 마나만이 이 땅에 그녀가 찾아왔음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슈와아아아아아악!!
…두근!
브류나크와 반씩 나눠서 흡수한 마나가 내 혼을 더욱 확장시켰다.
주먹을 쥐었다 펴 본 나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마나통 늘어나는 것 보게. 싸운 보람 있는데.”
〈정화의 벼락불〉을 1번 더 쓰고도 남을 정돈 되겠다.
고렙 보스몹은 경험치도 남다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