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어렵다.”
천리안을 써서 콜로세움을 보다가 돌아온 나는 여관에서 프랑을 발견하고 멈췄다.
여기저기 투자하고도 남아도는 돈으로 여관 한 층을 통째로 빌린 스위트룸의 중앙 스페이스에서, 아직도 사치에 익숙하지 못한 듯 검소하게 입고서 앉아 있는 쪼꼬만 거유 미소녀.
우리 귀여운 아내님 프랑이시다.
“프랑? 여기서 뭐 해?”
“아, 노르 왔구나. 이것 좀 봐.”
─팔랑. 신문기사를 펼쳐서 보여주는 프랑.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 앉았고, 프랑도 당연하단 것처럼 내 무릎에 올라탔다.
“신문은 왜? 로마니아 어 공부 중이었어?”
“그것도 있구, 열심히 생각해 봐도 로마니아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뭔데 엄청 크게 바뀔 거라는 것 밖에 이해가 안 가.”
“음…… 그럼 우리가 왜 이런 방법을 취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시무룩해지는 프랑을 끌어안았다. 체온이 높은 건 종족 탓일까? 어쨌든 갓난아기처럼 따끈따끈한 체온이 끌어안고 있기 좋았다.
최고급 여관의 한 층을 통째로 빌린 덕에 실내 기온도 선선하고.
“일의 흐름은 간단해. 우선 다른 나라들이 바란 목적을 보자.”
나는 ‘브리타니아 왕자! 원로원과의 회담 결정!’이라는 기사를 짚었다.
“외교 차원에서 다른 나라가 좀만 틈이 보여도 물어뜯어서 득을 보고 싶기 마련이야. 그러니까 이 로마니아가 휘청거릴 때를 노리고 덤벼들겠지.”
“응.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고는 들었어.”
“도의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막아야 할 일이지.”
인류 사회의 전쟁은 나한테는 민폐밖에 안 된다.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건 슬픈 일이구, 노르의 예지도 약해지니까.”
“그렇지. 그래서 나는 굳이 눈에 띄는 무대로는 나가지 않았던 거야.”
“왜? ……앗, 알겠다! 노르가 너무 높은 위치에 있으면 귀족님들의 타겟이 되니까 그런 거 맞지? 분명 좋든 나쁘든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노르 곁으로 모여들 거구!”
“맞아. 우리 프랑 똑또케.”
바로 맞췄다. 프랑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으며 뺨을 비비는 나.
마음이 아늑해지는 향기에 편안하게 눈을 감고 대갈통을 회전시켰다.
‘어그로가 모이면 안 되지. 난수 변수가 늘게 돼.’
전면으로 나서면 날 대상으로 뭐라도 해 보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겠지.
거기까진 좋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출세욕이건 질투건 존나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날 어떻게 해 보려고 덤벼들 거라는 게 문제다.
“인간의 의지는 운명을 바꾸지. 여러 사람들이 노리는 자리는 예언자한텐 부적절해.”
1~2명 정도는 통제가 가능하다.
‘예언 자체가 내가 그 변수를 제압하는 식으로 흘러갈 테고.’
하지만 그게 수십 명이 되면 누가 뭐래도 중과부적이었다.
능력이 되고 말고를 따지기 이전의 문제다. 내 몸은 하나인데 브리타니아랑 게르마니아에서 같은 타이밍에 변수를 쏟아내면 그걸 어떻게 감당해?
‘악의도 없고 해를 끼치지도 않아서 예언에도 안 보이는 경우가 제일 끔찍하지.’
일례로 바이콘들이 만든 내 동상이 있다.
동상만 보면 별로 문제가 되는 행동은 아니다. 호불호를 물으면 싫긴 하지만.
그런데 나비효과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저걸 만들던 장인이 의욕이 넘쳐나서 예정보다 며칠 일찍 만들고, 운 나쁘게 마침 지나가던 다른 귀족들이 보고 ‘울프헤딘이 자길 신격화시킨다!!’ 라며 날 비방하면?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건 예상을 불허하니까. 스노우볼이 어떻게 굴러갈지 몰라.”
아마 시구르드가 굳이 그늘에 숨어서 활동하는 이유도 그게 아닐까.
고지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맵핵을 켤 수 있는 게 예언자다.
굳이 다른 놈들이 저격하기 쉬운 위치에 올라갈 이유가 없단 말이지.
“그래서 공화정을 고른 거야.”
“그 공화정이라는 것도 사실 이해가 잘 안 가.”
“민주주의…… 라고 해도 모르지. 아무튼 시민 개개인이 투표권을 갖는 건 아냐. 아무튼 이세계 나라들은 거의 전부 신분사회니까.”
신분사회가 아닌 건 얼스터 정도일 것이었다.
“귀족들을 포함한 국내의 유력자들이 선출되서 영주와 국가 정책을 맡는 형식이 되겠지. 이쪽은 고대 어드매에 전례가 있어서 어르신들이 맡아줄 거야.”
내가 가진 이세계인들과의 감성 차이는 언플과 아이디어 뱅크 면에서는 좋다.
그래도 미국인이 한국인의 제사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어설프게 아는 내가 설칠 바에는 전문가들에게 맡긴 거다.
코르넬리우스 어르신은 돈도 인맥도 넘친다.
조만간에 이세계 법률전문가 군단을 꾸릴 거고, 내가 정치활극을 찍을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내 관심사도 아니고.
“이 일로 우리가 얻는 이점은 3개야.”
나는 프랑의 가슴와 밀착하면서 펜을 들었다.
“먼저 별의 자손을 사용한 쇼크 용법으로 로마니아의 패망(敗亡)을 막은 것.”
─사각사각. 내가 문어를 그리자 프랑은 질색을 하면서 얼굴을 돌렸다. 귀엽긴.
“어르신이랑 오델리아는 공포 그 자체인 문어발 새끼들을 딱 들이밀면서 로마니아의 책임을 거의 그놈들에게 전가했어. 아, 전가했다기엔 진짜 그놈들이랑 황제의 잘못인 건 맞지만.”
로마니아의 비선실세, 꼴뚜기즈. 그 따까리였던 황제.
고대 아틀란티스, 에린에 걸쳤던 변이 판데믹.
바이츠니아의 심장 빨갱이 사상충 벌레.
이계의 신, 우신들에게 지배당했었던 아즈테카.
“이 모든 것들을 토대로 우리는 책임을 추궁할 생각이었던 사람들의 의식과, 성명발표의 본질을 다른 데로 돌렸고.”
말이 심하게 들리겠지만 지금 시국에 로마니아 인들은 선택권이 없다.
국내를 확고하게 휘어잡은 지도자도 없고, 외국에서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서 휘둘릴 운명이다. 그 상태에서 전란이 벌어지는 걸 막고 싶다는 게 내 의도였고 말이다.
“이제 세계 정세는 ‘전세계 VS 로마니아’에서 ‘전세계 VS 이계’로 바뀌었어.”
전범을 잡고 삥이나 뜯으려 왔는데, 그 전범이 사실 에일리언이었다!
게다가 그 에일리언은 온 세상에 침투해 있다! 다름 아닌 당신 곁에도!
아틀란티스에서 외교관들이 벌레 괴물로 변해버렸다는 증거도 있지 않은가.
저들은 이 폭로가 팩트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폭로는 각국 정상들의 목적인 ‘죄값 청산’에 브레이크를 달아줘.”
손해배상인가 약탈인가의 차이지만, 그 수위는 생각보다 낮을 것이다.
물론 로마니아의 입지는 여전히 좋지 못하다.
“완전히 죄값을 치르지 않는 건 불가능해. 치룰 죄값이 얼마여야 할지를 두고 다투게 되겠지. 그래렇지만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못하게 됐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고통받거나 하는 일들은 없어지는 거야?”
“절대 없다고는 단언 못하겠지만, 확실히 덜할 거야. 귀족들이 그렇게 할 거거든.”
“귀족들이?”
눈을 깜빡이는 프랑.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높으신 분들은 불이 나도 시다바리들한테 화재 진압까지 떠미는 습성이 있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몰라. 주판 좀 돌려보니까 지금은 자기들이 꽁무니에 불 붙은 것처럼 달리는 게 제일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오네?
외국이 로마니아를 규탄 가능한 명분은 2개다.
1. 전범이라는 역사. 아틀란티스-로마니아 동맹.
2. 그 역사를 숨기고자 다른 나라에서까지 살인행각을 저질렀던 것.
“그런데 전쟁의 명분이 될 악행이 전부 황제와 이족들 몫으로 돌아갔잖아? 여전히 욕은 먹겠지만 반박거리를 찾은 로마니아 귀족들이 알아서 자기 이권을 지키려 들겠지.”
사정을 모르는 채 빨았던 꿀만 갚으면 국제사회 복귀도 꿈은 아니다. 나라 이름은 신성제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뀔 듯 하지만 말이다.
이게 뭐가 좋냐면, 내 손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 없이 혼란이 정리된다는 점이다.
“원로원을 선출제로 정한 것도 그래서야. 단독 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노릴 수 있는’ 권력체계라면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바빠지잖아?”
각국 지도자들은 로마니아한테 쌀 한 톨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애를 쓰겠지.
반대로 그들에 맞설 로마니아 귀족들도 바쁘다.
“내가 방향성은 잡아줬으니, 이제 귀족들이 지 몫을 지키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이 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려고 노력해줄 시간이지.”
영지를 받지 못해도 귀족 신분은 남지만, 거의 껍데기 뿐인 신분이 되고 만다. 자기 이권을 지켜내고 내일도 떵떵거리며 살려면 당분간은 풀 타임으로 야근해야 될 걸?
‘그리고 그 좆뺑이 똥꼬쑈가 내 예지력의 유지로 이어지지.’
양심의 가책 없이 남의 손으로 평화 유지하기. 크~ 넘모 개꿀 아니냐고.
나는 손도 데지 않고 코를 풀게 되는 것이다.
또 권력에 미쳤거나 여유가 남아도는 귀족들은 공화정의 의원석을 더 선점하기도 바쁠 테니, 이 기회를 틈타서 헛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되기까지!
프랑은 이제 맥락이 잡혔는지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노르랑 가주님 어르신들이 별의 자손의 존재를 공표했으니까, 절대 전쟁은 못 하는 거구나. 전쟁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한테 무지 혼날 거야.”
“혹시 너도 괴물 아니냐고 의심받을 수도 있고. 다들 신중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하는 김에 셀레나한테 맡겨서 이 하락장에서 쓸만한 우량주를 풀매수!
“이게 우리가 얻는 이득 첫째야.”
크흐흐. 일 한 번 잘 풀렸다.
주식이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이지만 페업하려는 공방을 매수하는 건 쌉가능이다. 역시 돈은 돈을 낳는 법이지. 공화정이고 뭐고 자본주의가 최고야.
드디어 이해를 마친 프랑은 뭔가 또 이해가 안 가는지 내 소매를 당겼다.
“그치만, 노르. 바이츠니아 문제는 별의 자손이 아니라 굴라나뢰크 때문 아니야?”
“맞는데?”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대답했고, 프랑은 입을 헤 벌렸다.
“……에헤, 일부러였구나? 노르도 참 못됐어.”
“못 되기는? 그놈이 그놈인데.”
설득력을 더하는 김에 바이츠니아도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니 이득이거든.
‘바이츠니아가 능력이 되면 이 문제로 겸사겸사 친교를 맺을 수도 있겠고.’
문제가 되면 나중에 어르신이 ‘착각이었네 엣큥!’해버리면 그만이다. 아무도 손해볼 것 없는 좋은 구라핑 아닌가? 나중에 들켜도 화낼 사람이 없단 게 제일 좋은 부분이지.
“아, 그리고 이게 우리가 얻는 이득 둘째야.”
적들이 내 예지를 어지럽히려고 전쟁과 혼란을 일으키려 할지도 모를 일.
“오늘의 폭로로 문제를 공유한 덕에 그 놈들은 분탕을 일으키지 못하게 됐어.”
당분간은 그 개자식들이 나대더라도 바로 티가 날 것이었다.
이 경계심이 유지되는 한, 최소 몇 년은 말이다.
“거기다가 막내 황자…… 헤니르랑 같이 사라진 레벨리오도 찾고 있지.”
수배령을 내려둔 건 아니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수색을 실행 중이다.
“반역을 방해하려던 제 2황자는 유폐. 제 3황자 및 다른 황족들은 처형은 면했지만 재산을 몰수하거나 하는 식으로 면죄를 받게 될 거야.”
이세계는 혈통빨 월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냅둬도 죽을 일은 없겠지.
그보다 돈과 권력을 잃었다고 바로 칼에 맞으면 그건 지들 평소 행실 문제 아니냐?
뺨을 문지르던 프랑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음…… 응! 이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겠어.”
“많이 복잡하고 추잡하지? 역시 외교관이란 건 거짓말이 특기고, 냉정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비정한 일인가 봐. 나는 영 못하겠다.”
“응! 노르는 절대 하지 마! 조금만 생각해 봤을 뿐인데 벌써 약간 무서워졌어!”
우리 프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가슴에 비수를 박고서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런데, 노르. 이것 뿐이면 이유가 2개인데?”
“흐흐흐. 그렇지.”
나는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로니아를 평화롭게 만들고, 그걸로 세계평화와 내 예지력의 정밀도를 유지한 것. 적들이 설치지 못하게 막고 용돈을 번 것……
‘그것 뿐이면 영 아쉽잖아? 노력한 게 얼만데.’
거의 나랑 틀딱 콤비가 장막 뒤에서 이 나라를 지켜낸 수준인데, 보수가 이게 전부면 영 뒷맛이 씁쓸하잖냐. 노력한 사람은 응당 보상을 받아야지.
“셋째 이득은 좀 있으면 제 발로 찾아올 거야.”
나는 신중하게 프랑의 가슴을 주무르며 말했다.
“이 나라의 마지막 교황님들한테 신좌 렌탈비를 받아낼 거걸랑.”
베스타의 인공신좌는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을 거지만…… 종교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 신좌의 신성력과 축복을 나눠받을 필요가 있지 않겠어?
그럼 당연히 차용증이랑 렌탈비를 지참하셔야지.
‘우리 사이비 종교쟁이님들이 아실까 몰라.’
세상에서 제일 돈 벌기 쉬운 건 대부업이란다.
강북호 은행의 신성력 대출 좀 받아보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