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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발표가 있은지 2시간 정도가 지났다.
“아, 라리루라. 혹시 베로니카 어딨는지 알아?”
“영지에 계실 걸요? 앗, 같이 가실래요♡?”
“그러지 뭐.”
나는 교황들을 만나기 전에 베로니카를 찾았다. 우리 에이션트 말박힘이께서는 울프헤딘 박물관에 바이콘들을 모아놓고 노닥거리고 있었다.
“로키님! 로키님! 로키님!”
“으헤헤헤헤. 좋아, 좋아!! 좀 더 숭배해도 돼!!”
아주 사이비 교주가 따로 없군. 처음에는 약간 낯설어 하더니 라리루라의 결혼식 뒤에는 어느덧 신도들의 찬양을 만끽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계를 창조한 태초신 수준. 이세계 성직자들 평균이 왜 그 지랄인지 알만 하군.”
“로키님♡! 로키님♡!”
“않이 여보님아.”
귀신같이 분위기를 타서 로키 예찬 쑈에 끼어든 라리루라였다.
크라운 크라운=로키라고 생각하면 쟤 입장에선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돌아온 로큰롤 마니아 같은 기분인 걸까? 그렇게 치면 이해가 가는 것도 같고.
“로키님~ 당신께! 감사합~ 니다! 언어를~ 내게 주심을!!”
“찬송은! 전투다! 각! 개! 전! 투!”
즐기시게 냅두도록 하자.
예배인지 레크레이션인지 모를 과정을 배경으로 바이콘 몇 명을 불러서 일의 진척을 물었다. 베로니카의 권능을 활용한 어느 마법의 연구였다.
“예지자님…… 베로니카 님의 권능도 만능이진 않습니다. 개발, 연구 과정을 생략할 수는 있으나 ‘애초에 실현불가능한 성과’는 얻을 수 없더군요.”
“그 정도는 감수할 만 하죠. 당연한 일입니다.”
종이를 대충 넘기면서 말하는 나. 보고서 양식 한 번 알기 쉽게 짰다. 전문지식 면에서는 상당히 후달리는 나도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또 지식만 얻어도 마법의 숙련도 등은 기존과 변함이 없기에 한계는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 연구를 끝마친 건 순전히 그분 덕분이지요.”
“멋지네요.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자고 있댔죠? 그럼 별 수 없죠.”
나는 수녀원─박물관─을 힐끔거리다가 말했다.
“그런데 여러분이 원래 베로니카한테 존댓말을 썼던가요?”
“아, 저는 그분과 그렇게 긴밀한 관계가 아니란 것도 있습니다만……”
말을 줄이는 바이콘. 내가 고개를 모로 꼬자니 땀을 흘리던 로키가 나타났다.
“마기도라 이후 처음 나타난 바이콘 예언자야. 그야 당연히 존경받겠지.”
“댁처럼?”
“으히히. 게다가 네 여자인데다, 무녀기도 하고. 신의 직속무녀에 미래를 보는 예언자! 그야 원래 친하던 사이가 아니면 절로 황공해지지 않겠어?”
“흠. 그 부분은 베로니카가 고려할 문제네. 내가 참견해도 오지랖이겠지.”
친한 사람한테 존댓말을 듣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는 것도 사실 아닌가.
‘성경인가 어딘가에서 그랬던가. 동경이라는 건 이해에서 가장 먼 감정이라고.’
그래도 내가 개입하면 일이 더 꼬일 것이다. 뭐, 베로니카가 알아서 할 것도 같고.
서류철을 메달에 넣는 나.
선조 할매 로키의 등장으로 허리가 꼿꼿하게 선 바이콘들이 불쌍하다. 별들 앞에 선 이등병 같은 모습이다. 나는 그들에게 가서 쉬라고 말해주려다 문득 떠올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수고하신 여러분께 뭔가 챙겨드릴까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제가 멋대로 정하는 것보다는 여러분 의견을 묻고 싶군요.”
보너스? 바이콘들 중에 돈에 궁한 사람은 없다.
정기적으로 고액의 월급을 주고는 있는데, 그건 재산을 쭉 깎아먹기만 하면 좋지 않으니까 받아갈 뿐이다. 돈을 주니 마니로도 얼마나 싸웠는데.
장기적으론 바이콘들이 굴릴 사업장을 만들어서 떼 줄 생각이긴 하다.
‘그래도 당장은 실천하기도 요원한 일이니까.’
나름 중대한 문제였다. 이러다 내가 제대로 된 보수도 안 주고 바이콘들을 대학원생으로 부려먹는 악덕 교수가 돼 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그, 그…… 포상…… 말씀이십니까?”
바이콘 연구원 아가씨가 허벅지를 베베 꼬면서 말했다.
“그거라면, 그, 저희도 베로니카 님처럼……”
“떽! 바라는 것도 많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중년의 바이콘 아주머니가 그녀의 뒤통수를 때렸다.
“울프헤딘 님. 저희 걱정일랑 마시기를. 교…… 박물관을 독단으로 세운 걸 허가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이니, 생각할 시간을 주시옵소서.”
“아, 예. 푹 쉬고들 계십시오.”
베로니카처럼? 무슨 부탁이었던 걸까.
아마 권능을 내려달라는 게 아니었을까. 그들이 물러가는 걸 보며 나는 납득했다.
“하긴 뭐, 연구 내용부터가 그쪽이었으니……”
“어이구, 모질이.”
“또 뭔데요 시발.”
이 말박힘이는 왜 또 쌍욕인 것이지? 자기 손주들이라고 피의 실드라도 치려는 것인가? 내가 슥 눈매를 치켜들자 로키는 혀를 내둘렀다.
“됐네요. 암튼 베로니카한테는 좋은 일이고. 나 때는 말이야? 아주 신이라고 하면 하나같이 지들 내키는대로 짐승처럼 허리를──”
“스탑. 무슨 소린지 이해했으니까 그쯤 하시고. 진짜 말이랑 응냐응냐 하던 양반이 짐승이 어쩌고 하는 거 굉장히 우습걸랑요.”
내가 신화를 잘 모르고 인간에게 알려진 것들과 진짜 신화가 다르긴 하다지만, 로키의 애 아빠들 중 1명이 말이라는 건 기정사실 아닌가.
허리에 손을 얹은 로키는 가슴을 폈다.
“스바딜페리는 흔한 말이 아냐! 어엿한 신이지! 쫌 어리긴 했지만!”
“수간 마니아에다 페도필리아라고? 애시르 평균 인성 씹창난 거 바로 티나죠?”
“캭! 충분히 성인이었어! 바보기는 했지만!”
“당사자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라니, 괜히 현실감이 있네요♡!”
바이콘들한테 로키 인형 같은 걸 받아온 라리루라의 말이었다.
“……쓰벌, 잠깐만? 뭔데? 로키 인형도 있어?”
“생산체제를 만들어서 게르마니아 신화를 전면 정정하는 출판물을 낼 거래요! 오딘 님이랑 토르 님 인형도 만들 거라고 하던데요?”
“사업체를 만들라니까 삶을 구가하고 있구만.”
그래. 남의 돈인데 그냥 펑펑 써 제끼렴.
‘하여튼 바이콘들이 날 섬긴다는 걸 거절해두길 다행이지.’
이름이 사물의 본질을 정한다고, 가만 냅뒀으면 북쪽 평양의 시뻘건맛 물씬 나는 울프헤딘의 프로파간다 삐라가 넘쳐났을 거야. 영주님 지건 쓰신다.
안 그래도 영지민들이 난리인데 진짜 우상숭배 일직선이다. 만들고 있다는 발행물은…… 나중에 내가 손을 봐서 일요일 만화동산으로 노선을 틀면 되겠지 뭐.
‘이세계의 신화, 동화에다 우리 세상 동화를 좀 섞어서 팔면 돈 좀 되겠는데.’
그럴러면 장본인으로부터 썰을 몇 개 들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오호? 요 맹랑한 것들. 이 로키님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가~?”
우리가 쫌 호기심이 드는 걸 눈치챘는지 로키는 으스대기 시작했다.
“네에~! 듣고 싶어요~!”
손을 만세하듯 올리며 활기차게 대답하는 우리 후배님.
여전히 성격 밝은 걸로는 세계 제일이다.
이게 어떻게 백작 부인 겸 유부녀인 것이지.
“맨입으론 못 해주지. 내 경험담은 레어하다고. 보수는 비싸단 말이지.”
“뭘 원하는데?”
“밥!”
짠! 포즈를 취하며 삿대질하는 로키.
“천하제일의 대식가이신 로키=로두르님께 하루 3끼가 웬말이냐! 새참에 오후 간식, 야식, 디저트에 음료수와 술 뷔페까지 매일 5끼씩 대령하거라!!”
“다 먹을 순 있고?”
“이것도 네 지갑사정을 고려해서 타협한 거야!”
그랬지 참. 베로니카의 식성은 이 삐에로한테서 온 거였던가.
신화에서도 대식가라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좋아. 그 정도라면 못 들어줄 것 없지.”
“꺄! 울프헤딘 님 만세! 천재!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아주 신났군. 하긴, 카네쉬에 갇혀 살았으면 그 시간 동안은 음식 맛을 즐기고 싶어도 그럴 여유 없었을 것 아닌가. 단식 후의 폭식은 늘 즐거운 법이다.
‘음식은…… 바이콘들한테 맡기지 뭐.’
자기네 신에게 바칠 공물을 스스로 만드는 거니 아주 좋아하지 않겠는가?
내가 바이콘들 수녀원을 보자 라리루라는 눈치 빠르게 깨닫고 내 귀에 속삭였다.
“……선배. 바이콘 분들 요리 솜씨는 베로니카 언니만 못하는데요.”
“알어.”
브리타니아 토박이인 다나조차 비명을 지르게 만든 동물시체 파스타의 추억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맥주에 라임을 탄 음료수도 좋다고 마시는 사람도 떨게 만드는 파멸적인 음식 솜씨다.
그치만 대식가랬지 미식가라곤 안 했는걸?
꼬우면 나중에 계약을 조정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때는 아쉬운 쪽이 굽혀야겠지?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예배실 의자에 앉아서 로키의 썰을 듣기 시작했다.
“뇨르드가 아직 진짜였던 시절에 바니르랑 애시르는 전쟁이 잦았어. 그야 이미르의 목을 딴지도 한참 지났으니, 우리끼리도 싸울 만 하잖아? 다른 동네 신들도 거의 마찬가지였고.”
“우리 좆간의 종특이 어디서 왔는지 알겠구만.”
“주둥이 꿰매고 들으렴. 그러다 성벽이 와르르 무너졌는데, 하필 그걸 고칠 신이 뻗어버린 거야. 창세의 권능으로 세우자니 그것도 마뜩찮았고.”
“아, 그 뒤는 저도 알아요! 신화에서는 무슨…… 석공이라는 사람이 나타났었죠?”
“응. 바로 맞췄어. 인간 사이의 전승도 완전 꼬이지는 않았나 봐?”
똑같이 끼어들었는데 차별 대우 무엇. 후배님의 말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로키였다.
이 전직 유희신은 그다지 꼰대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다 보면 옛날 얘기가 즐거워지는 법 아닌가. 그건 신이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라리루라는 막간의 토막 상식을 자랑하며 내게 손짓발짓을 했다.
“석공은 자기가 무너진 성벽을 고쳐줄 테니 그 보수로 프레이야를 신부로 달라고 했대요. 당연히 신들은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지만……”
“내가 바로 콜 때렸지! 실패하면 보수도 없다고 조건을 걸고 시간 제한을 더럽게 짜게 잡으면 그 바보는 좋아라 무료 봉사를 해 줄 거 아냐!”
“마 니 똘게이가?”
“나는 굳이 따지자면 양성애자야!”
“알고 싶지 않은데스.”
애초에 똘게이는 그런 뜻도 아니고.
‘어쩜 사람이 저렇게 숨 쉬듯 사기를 친담.’
쯧쯧. 상대가 악의가 있던 것도 아니고 원하는 걸 정당한 조건에서 요청했을 뿐인데, 보수가 좀 비싸다고 바로 속이고 볼 생각부터 하다니?
인성이 파탄난 게 확실하다. 이러니 신이라는 것들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내가 정색해도 로키는 의기양양하게 떠들어댔다.
“그랬더니 아니 글쎄, 석공 자식이 한참 고민을 하더니만 말을 1필 데려오겠다는 거 아냐! 푸풉. 고작 말 한 마리 데려와서 뭘 한다고? 난 얼씨구 좋다 싶어서 냅다 딜을 받았지!”
“……오딘은 뭐랬는데?”
“부랄친구 특) 인성은 도토리 키재기임.”
태초신이란…… 뭘까…….
내 눈이 썩어들어가자 로키는 서둘러 항변했다.
“사기는 석공 새끼가 먼저 쳤지!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콜 때리지도 않았어! 엄맛 하는 사이에 성벽을 거의 다 지어서 내가 얼마나 피가 바짝바짝 말랐는데!”
“쯧쯧……. 숨 쉬듯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놈은 인과응보를 받기 마련이거늘.”
“네,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왠지 라리루라가 짠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뭐지? 요즘 밤자리에 쓸쓸함을 암시?
─방방! 여기가 클라이맥스라는 듯이 폴짝대는 로키.
“나도 처음에는 허세를 부렸는데, 보고 있자니 아주 돌아버리겠더라고! 어떻게 안 쫄겠어! 이제 간신히 화평 좀 하려고 찾아온 뇨르드 댁 딸년이 웬 정체도 모를 놈한테 팔려가게 생겼는데!”
아마 당시 프레이야는 전쟁을 끝내자는 뜻에서 처음 친교를 나누러 왔던 모양이다.
그때의 경험과 전쟁에서 본 강함을 믿고, 훗날 가짜 뇨르드를 피해서 아스가르드로 왔던 것일까? 라리루라는 고개를 모로 꼬다가 물었다.
“그런데 프레이야 님은 무슨 깡으로 그 제안을 받으셨대요? 얼굴도 처음 봤을 사람한테 시집까지 가게 되는데, 저라면 절대 싫었을 거에요.”
“뭐, 뭐어. 그건 뭐냐, 시간적인 압박으로 현지 담당자가 재량껏 판단을……”
“물어보지도 않았구만.”
“그건 오딘 언니가 그랬어!! 그건 오딘 언니가 그랬다고!!”
“로하다 추키야.”
아스가르드는 좆좆소였구나. 패트와 매트 같은 년들.
“하여튼! 일이 그렇게까지 커지자 아스가르드는 미증유의 혼란과 도탄에 빠졌지!”
“너랑 느그 짝눈 언니만 그랬겠지.”
“언니는 ‘뇨르드를 불러서 성벽을 부수면 완공 못한 게 되지 않을까?’ 거리다가 자기 까마귀한테 쪼이고! 눈 밑 퀭한 퇴폐음란녀는 ‘로키님이 저로 변신해서 시집 가시면 되겠군요. 인간이니 100년 정도만 물고 빨리다 오시면 됩니다’라며 나를 협박하던 그때!”
─두구두구두구! 능숙한 음유시인처럼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로키가 말했다.
“이른 아침, 성벽에 붕괴의 룬을 새기…… 사색을 즐기며 산책하던 나는 발견했지!! 석공이 고친 벽에 성내에 숨어들기 위한 개구멍이 있다는 걸!!”
“개구멍이요?”
“맞아! 권능과 차원 조작으로도 못 파고들게 해 둔 벽에 구멍이 숨겨져 있었어! 이게 왠걸! 사실 석공의 정체는 태초신들의 숙적인 요툰 족이었던 거야!”
요툰.
로키가 말하길, 바로 저번에 설명한 바 있는 그 태초의 거인이랜다. 이미르로부터 태어난 악의의 결정체이라는 괴물들 말이다.
분명 그 요툰이 태초신들이 이미르를 죽이고자 결심한 원인이 됐다던가 그랬지.
“우리가 이미르를 죽이면서 벌였던 요툰 전쟁의 생존자가, 세월이 흘러서 갈라진 우리들을 이간질하려 했던 거야! 프레이야를 납치하고 성벽을 무너트려서 전쟁을 유발, 복수하려는 생각이었겠지!”
“애초에 나쁜 맘을 품고 온 거였네요?”
“맞아! 나랑 오딘 언니는 안심ㅎ…… 경악하며 상의했지! 해치우자니 전쟁 직후라 상황이 여의치 않았거든. 그러던 그때, 재색겸비의 여신 로키님께 영감이 번뜩이는 게 아니겠어?”
말하다 말고 팔뚝으로 가슴을 모으며 고혹적인 자세를 잡는 미친 광대.
“미인계를 쓰자! 대가리가 여섯 개인 요툰한텐 100% 안 통할 테니, 그놈의 말한테!”
“……그 말도 신족이었다며?”
“응! 걔도 요툰이 인간 석공인 줄 알고,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수복하는 위업인데 같이 안 하싈?’이란 말에 홀라당 속아넘어간 어린 신이었어!”
“본능에 충실한 양반이셨군.”
크고 웅장한 것에 홀리는 건 수컷의 본능.
신들의 수장, 주신 오딘이 사는 성을 고친다는 위업 아닌가. 씨발 못 참지 하면서 속아 넘어갔을 슬레이프니르 아빠에게 묵념이다.
“저…… 그래서, 미인계는 통했나요?”
“당연한 말씀. 이 로키님이 유혹하는데 제까짓 게 배겨? 자기가 먼저 나한테 꼭 안겨붙어선…… 후후, 쪼그만 녀석이 얼마나 귀엽던지.”
크고 웅장한 젖에 꼴리는 건 수컷의 본능.
미녀의 유혹에 넘어가서 몇날 며칠을 덮쳤는데 알고 보니 그게 구신의 일각이자 위대한 태초신, 주신 오딘의 의자매였다?
그 사실을 듣고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베로니카의 선조에게 다시 한 번 깊이 묵념이다. 나였으면 그냥 자살했음.
“아무튼 그래서! 결과적으로 힘이 부친 요툰은 성벽을 완공하지 못했단 말씀!”
“아, 그래…….”
“녀석은 계획이 실패하니까 기어이 정체를 드러냈는데, 마침 뭔 일인지도 모르고 배를 긁으며 지나가던 번개망치 천둥벌거숭이한테 ‘네가 첫 제물이다!’라며 개기다 대가리가 터져나갔지. 잘 됐네, 잘 됐어!”
─짝짝짝! 로키의 공허한 박수 소리에 나는 관자놀이를 붙잡았다.
“후일담이지만 스바딜페리는 슬레이프니르랑도 만나봤어! 근데 자긴 앞으로 남은 평생 얌전히 살 테니까 신경 쓰지 말아달라더라고!”
그야 그럴 수밖에. 어린 날의 치기로 벌인 일이 주신의 여동생이랑 섹스하고 악신이랑 사이 좋게 공구리를 치는 경험으로 돌아온 것 아닌가.
슬레이프니르 아빠 입장에서는 거의 어린 시절 정말로 겪었던 무서운 얘기 같은 거 아니냐. 아스가르드 괴담 대회를 열면 1등은 확정이겠다.
그래도 일단 슬레이프니르의 행적을 보면 스바 뭐시기 씨로서는 그렇게 나쁜 추억은 아니었던 듯 싶다. 어릴 적 만난 야한 눈나와의 첫 경험이라고 치면 그럴 만 한가.
친근하던 아저씨가 사실은 이미르 마피아 갱의 생존자였고, 아스가르드 마피아 보스의 여동생과 욕망이 끌리는대로 첫날밤을 보내고 나서야 모든 전말을 알게 되는 에필로그.
존나 무슨 일반인이 주인공인 느와르 영화 같은 스토리네.
‘오랜 세월 전해진 개꿀잼 신화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구나.’
그래. 아마 그는 어린 시절 만난 업계 전설 누나와의 추억을 안주 삼아, 남은 한평생을 꿋꿋이 살아갔으리라…….
“혹시 싶어서 묻는데. 이 얘기, 바이콘들은……”
“알던데? 역대 선지자들이 잘 전승했더라!”
“베로니카……”
“베로니카 언니……”
지금 얘기의 어디가 자랑스러운 부분인 것이지.
이미르의 망령을 해치웠다는 부분인가.
우리 말대가리 친구들한테 한시바삐 상식을 가르칠 필요성이 늘었군.
“그런데 그, 슈바슈바? 씨는 요툰한테 협력했단 이유로 벌을 받진 않았나요?”
“그야 나랑 오딘 언니가 지켜줬지. 나쁜 맘에서 협력했던 것도 아니고.”
“……슬레이프니르가 왜 오딘을 따랐는지도 알 것 같은 대답이네.”
이런 면에서는 미워할 수만도 없는 태초신 시스터즈였다.
단지, 사람 모습이랑 동물 모습 중 어느 쪽으로 한 건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 점만은 진짜 추호도 알고 싶지 않은데스.
‘아무튼, 이 얘기는 도저히 동화로 못 쓰겠구만.’
너무 생생한 체험이라서 쓰려고 치면 각색이 좀 필요하겠다. 내가 뭔가 창세신화를 들었을 때보다 더 지쳐서 한숨을 쉬자 라리루라가 절절하게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나은 진실도 있네요……. 이런 애기를 사제나 수녀님들이 알면 현실을 부정하던가, 신앙의 근간이 흔들릴 거에요…….”
“내 말이. 믿는 신은 달라도 명색이 가장 오랜 신이라는 녀석들이──”
……잠깐만?
라리루라랑 사이 좋게 멘탈을 추스르던 차였다.
‘자꾸 까먹긴 하지만, 얘 이래봬도 신이잖아?’
푼수떼기로밖에는 안 보이는 로키도 찐퉁 신은 맞다. 그것도 로마니아의 인공신들과는 달리, 근본 그 자체인 태초의 여신 로키=로두르다.
인간과 세계수를 창조한 창세신이기도 하다.
나는 불쑥 솟아난 영감에 눈을 반짝거렸다.
“로키. 너 이번에도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또? 너희랑 있으면 이런 일이 잦네. 뭔데?”
나랑 라리루라에 대한 호감이 커서일까. 쉽사리 허락해주는 그녀에게 내 계획을 설명했다. 로마니아의 교황들 얘기를 끝내자 그녀는 눈을 깜빡이다 헛웃음을 지었다.
“저기 있지, 울프헤딘? 거짓말이라는 건 언젠간 어떤 식으로든 들키기 마련이야. 너처럼 숨 쉬듯 거짓말을 하다 보면 벌 받는다?”
“흐음, 무슨 의미지? 자기소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댔나. 나처럼 거짓말이랑 연이 없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이러시나. 꼴마초 강북호는 억울한 것이에요.
나는 동정심 어린 눈으로 로키를 바라보았다.
하여튼, 왜 구라쟁이들은 이렇게 자기객관화가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