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63화 (861/1,009)

***

견적을 낸 교황들이 빚을 지러 가는 카푸어처럼 떠나가고 나서, 나는 술병을 땄다.

─꼴꼴꼴꼴.

로키도 소파에 대충 앉았고, 내가 술을 따라준 상대는 감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거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크흐흐. 감사라뇨. 교황님께서 선물해주신 포도주가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이렇게 술을 따라주셨다는 건 제 연기가 마음에 드셨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제 딴에는 혼신의 연기였건만, 백작님보다 절절한 눈물은 못 흘리겠더랍니다.〉

〈하하! 불안하셨군요! 괜찮습니다. 작전은 대성공이니까요.〉

─짠!

포모나교의 소년 교황은 나랑 잔을 부딪히면서 웃음을 주고 받았다.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하!〉

〈……후후후후. 크후후후후후!〉

포모나 교단에서 수확한 것들로 빚은 빵과 술, 그리고 과일들에 둘러싸인 우리는 광소를 흘리며 깔깔거렸다. 로키는 혀를 내두르더니 과일을 하나 집었다.

〈부디 맛있게 드셔 주십시오, 로키님. 그게 제 유일한 기쁨입니다.〉

교황들을 속이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데 협력한 소년 교황이 얼른 말했다.

순박한 이상주의자라는 연기를 10년 넘게 계속 해 왔다는 계산적인 남자가, 마치 자기 신을 섬기듯이 로키를 섬기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와삭.

사과를 베어물은 나는 심신 양면으로 만족스런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이 교회 과일 잘 키우네. 아내님들 멕이게 포장해 가야지.

〈로키님. 술도 한 잔 어떠십니까? 엄선하고 또 엄선한 최고급 맥주도 있습니다.〉

〈으헤헤. 요즘 애들답지 않게 반듯하네. 좋아! 같이 한 잔 꺾자!〉

이제 숭배받는 게 사뭇 익숙해진 듯한─신분을 생각하면 이러는 편이 당연하긴 하다─ 로키는 그 대접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칭찬을 내렸다.

내 칭찬을 받은 프랑처럼 얼굴이 흐물흐물 녹아내린 소년 교황도 즐겁게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저희 풍요신님께서도 만언신의 신도셨으니.〉

맞다. 놀랍게도 그렇다고 한다.

나는 다시 들어도 비현실적인 대답이 포도주를 들이키며 생각했다.

풍요신 포모나가 생전 로키의 신도였다니?

‘시부럴. 세상은 이렇게 좁은데, 세상사는 한치 앞길도 예상할 수가 없으니 원.’

이런 미치광이 인간들한테 운명이 비틀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혼돈의 총아라는 별명은 진짜 말 그대로였다.

사형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던 황제를 털어내서 회수한 설계도에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들의 경악과 황당함은 도저히 형언이 불가능했다.

무슨 FBI의 뒷조사 파일처럼 인공신들의 생전 행적에 대한 것도 적혀있더라.

그중 포모나의 내용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던 건 로키랑 베로니카 뿐이다.

‘음. 역시 바이콘들한테는 상식 교육이 시급해.’

당연히 상식인인 나랑 다나는 머리를 붙잡고서 혼란에 빠졌다.

─뭔 씨팔 풍요신이 로키를 믿어? 돌았음?

─미쳤음? 선 넘네? 이거 주작임. 내가 봐서 암.

─얘들아. 듣는 로키 눈물 날려고 그래.

그러나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현실은 드라마랑 달리 각본이 없어서 복선이며, 스토리를 좆박아도 항의할 데가 없기 마련. 회의 중에 바닥이 무너져서 유명 귀족들이 똥통에 빠져 죽기도 한다잖은가?

하물며 풍요신의 로키 신앙에 대해서는 그만한 복선도 있었더라.

〈백작께서는 7대신 체계가 고대 초기부터 200년에 걸쳐, 인간 출신 마스터 클래스 일곱의 힘을 모아서 만들어졌다고 말씀해 주셨지요?〉

손을 모아서 기도하며 말하는 소년 교황.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황제의 자백으로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풍요신님께서는 마도신 아르마 슈나스, 평원신 로물루스 직후의 세 번째 인공신이시죠.〉

여기서 다시 잠깐의 이세계 종교에 관한 TMI를 떠들어보도록 하자.

이세계의 신들은 족보를 따지자면 대충 이렇다.

‘부모없이 자연발생한 태초신들과 그 후손들은 타고난 로열 블러드.’

오딘 3남매나 나르메르-나일의 태양신 라 등은 전자이고, 후자는 바이콘 및 유니콘들이다. 신들이 쑤컹쑤컹해대다가 낳은 신족들은 같은 계보고.

‘혈통보증서가 붙은 진짜 신들은 이쪽이지.’

【중간 가지】의 대륙과 차원에 터를 잡았었던 저들 패밀리. 창세신의 혈통.

그리고 창세의 권능이 바로 저 양반들만이 가진 혈통보증서인 것이었다.

파라오의 힘을 뺏은 에퀴녹스나 신좌를 계승한 다나, 라리루라라면 몰라도 티르시는 따로 창세의 권능을 쓸 수가 없다. 진짜 신이 아니니까.

나는 몇 번 써 본 적은 있지만, 토르의 신좌를 얻었던 엔리르? 인가 하던 놈이 전투에 쓰지 않았듯이 내 적성과는 별로 맞지 않는 편인 듯 했다.

‘진짜 뇌신 토르만 해도 우직하게 뭘 만들거나 할 타입은 아니잖아?’

내가 점토가 없어서 미켈란젤로 같은 작품을 못 만들겠냐고.

여건이 돼도 재능이 없으니 오딘처럼 발퀴리에 같은 걸 만들진 못한단 말이지.

신세한탄은 이쯤하자. 어차피 창세의 권능으로 뭘 해봤자 내가 창 몇 번 휘두르면 떡을 치니까. 이야기를 되돌려서, 다시 신들의 출신 얘기다.

상술한 갓-패밀리가 나르메르-나일, 에린, 게르마니아 등 인간들의 첫 국가를 통치하던 진짜 신들이다. 나머지 국가들은 고대 이후에나 등장했고.

‘근본 있는 종교 교단들은 여기에 유래하지.’

네페르티티가 몸을 의탁하던 하토르 교단 등은 신대로부터 이어진 진짜 종교다.

하지만 슬레이프니르나 헤니르 따까리 라한처럼 신자가 교단을 세울 만한 네임드가 아니거나 하면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기도 한다.

특히 신대-고대-현재를 거쳐서 지금 남은 종교 교단은 나르메르-나일의 일부나 로마니아의 가짜 종교가 인류 사회에 남은 교단의 거의 전부다.

내가 언제 ‘프레이야 교단’ 같은 걸 언급한 적이 있었는가?

현대 이세계에서 대부분의 신들의 종교는 거의 토속신앙이랑 별로 다를 것 없는 처지였다. 존나 강했다는 오딘이랑 토르도 그들을 모시는 교단은 따로 없고.

자, 그리고 여기서부터 중요한 포인트다.

‘인공신은 라그나로크 이후, 신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다면서 새로 생겨난 거지.’

로마니아 7대신은 고대 이후 발족한 신흥종교. 그리고 신성력 자판기다.

〈따라서 풍요신님의 생전. 신들이 건재하셨을 무렵에는 신을 믿는 게 더 당연하죠. 풍요신께서 아직 인간 ‘포모나’였을 적에는요.〉

황실의 역사 말소가 두려워서 바보 연기를 하던 소년 교황의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신대 → 고대 초기 → 인공신 탄생 → 황금시대.

이게 이세계 인류 역사의 흐름이다.

따라서 인공신들은 살아 생전에 얼마든지 다른 신을 믿을 수 있었다.

왜냐? 그때는 아직 신들이 하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신대 무렵엔 로마니아에도 찐퉁 신들이 통치했었다는 얘기!

‘그 로마니아의 고유 신이 바로 우라누스다.’

문득 떠오르는 건, 그 옛날 프랑과 갔던 야수회귀의 유적이다.

─처, 천공신이면 오딘 님 아니에요?

─우라누스님이오.

─오….

─우라누스님.

─히잉….

게르마니아 권 니다벨리르 출신의 프랑과 브리타이아 인 로마니아 종교 사제의 말싸움.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근본이 없는 논쟁이라 그리울 정도다.

‘와 시발, 진짜 그게 대체 언제적이지.’

갑자기 추억 돋는다. 그 파라곤인가 하던 탈모 사제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려나.

나는 웃으면서 풍요신 교단이 수확한 밀로 만든 스콘을 우물거렸다. 중요한 건 먹고 살려고 모험가를 하던 아딱이 땡중도 우라누스의 이름을 알았다는 부분이다.

내가 발기부전에 걸렸을 때, 오프툼과 찾아왔던 천공신 우라누스 교단도 있잖은가?

오딘의 망령이 말하길 우라누스는 지구로 가서 제우스와 그리스 신들을 만들고 아빠 노릇을 했다는데, 지금도 이세계엔 그 신대 무렵 신앙이 남아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라누스가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고자가 되서 죽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인공신이라는 7대신 체계엔 들어가지 못했어도, 아직 로마니아가 있기도 전. 이 풍요로운 평원에 인간들의 부락이 군웅할거하던 무렵의 담당 신은 우라누스였단 소리다.

소년 교황은 과일을 맛나게 처먹는 로키를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우라누스 님께선 천재지변의 화신이셨다지요. 신대인들은 천둥이 치면 그분을 두려워하고 비가 내리면 그분께 감사하셨다고 합니다.〉

〈그럴 만 해. 그 할배, 인신공양은 안 받았어도 제물 받아먹는 건 엄청 좋아했고.〉

포도를 쪽쪽 빨면서 로키가 현장감 있는 첨언을 해 주었다.

〈우라누스는 성격이 베베 꼬여서 별명이 이미르 주니어였어. 친구도 없어서 부하들만 데리고 다녔지. 부하들의 힘도 너희가 말하는 미스릴 클래스 정도였나?〉

〈뭐여. 생각보다 졸라 약하네?〉

〈할배 본인은 쎘지만 말이지. 그리고 뭘 놀라? 각 나라의 신화만 봐도 신이 인간에게 엿 먹거나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은 없고.〉

〈인간보다 나약한 신이 있나 하면, 나만큼 똑똑하고 쎈 인간들도 있는 거지.〉

아까 교황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했던 얘기다.

‘신이라고 다 쎄다는 건 착각이라는 소리겠지.’

바이콘 신족들도 높아봤자 미스릴 클래스였고.

〈그러한 시기, 대지의 지력을 살리며 그 해의 수확이 풍요롭도록 기원하던 분이 계셨습니다. 예. 바로 저희의 풍요신 포모나 님이십니다.〉

성표를 쥐며 소년 교황은 진득하게 설명했다.

〈추측이지만, 아마도 그러던 차에 풍요신님은 로마니아의 예전 토지에서 자유롭게 살던 요정들과 만나셨을 겁니다. 지극히 당연한 만남이죠.〉

〈식물을 기르는 점에서 요정 이상 가는 존재는 없으니까요.〉

브류나크에 대해서 알려준 것도 바이콘의 성지 안에 흘러들어왔던 요정이었지.

생전부터 풍작을 일으키고, 그 능력이 만개하여 풍요신이 된 포모나 아닌가.

당연히 소문을 듣거나 해서 만나거나, 찾아가 볼 기회는 있었을 것이었다.

‘시대적으로도 장소적으로도 마주칠 만 하고.’

내가 복선이 있었다고 한 건 그래서다.

라그나로크 전후라면 로키는 이미 은인자중하고 바이콘/유니콘들은 【중간 가지】의 성지에서 선지자의 예언을 믿고 존버하던 시기다.

왜 우리 베로니카가 로마니아의 전통 옷을 입고 다니겠는가?

라그나로크 이후, 고대문명 시기 바이콘 신족의 생활반경은 주로 그 지방에 걸쳐져 있었으니까지. 왜냐고? 그야 고대 초기에는 거기가 인간이 가장 적은 지역이었을 거 아녀.

후손들이 별의 자손들을 따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초대 황제 로물루스.

로마니아를 개국한 그가 평원을 일통하고 자기 제국을 건국하기 전, 로마니아는 인간의 손이 덜 닿았던 곳이었으리라.

그리고 나서 2~3백 년 뒤의 황금시대에 아틀란티스가 까꿍 하고, 이하 생략.

이렇듯 게르마니아 출신의 신족들이라도 신대와 고대의 과도기 쯤에는 로마니아에 있었을 법 했다. 내가 처음 만난 요정도 로마니아에 있는 바이콘의 성지에 있었는데 뭘.

그 시절을 상상하는 듯 소년 교황은 가슴 뛰는 얼굴로 미소지었다.

〈요정들과 노니던 젊을 무렵의 포모나님께서는 그들과 식물을 길러내는 지혜를 주고받으셨겠죠. 그야말로 전설 속의 하이엘프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을 겁니다.〉

〈아, 예.〉

하이엘프 같다고 하니까 색안경부터 씌이네.

그루터기에 앉아서 요정들과 미소 짓는 성녀라. 분명 그림 같긴 했겠다만.

〈그리고 그 요정들은 어느 여신의 혈통이었죠. 예. 식물과 대화하는 능력은 만언신의 권능. 고로 요정들의 시조는 다름 아닌……〉

〈만언신 로키=로두르. 즉, 나라는 말씀!!!!〉

귀청 준내 따갑네. 할매 벌써 취했어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포도주를 꼴깍댔다.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요정 특유의 짖궂고 장난스러운 면모가 어디서 왔겠는가?

요정왕도 말하지 않았나. 그가 식물과 대화하는 권능은 로두르의 축복이라고.

〈그러므로 밀밭과 과수원의 성녀, 풍요신 포모나님께서 식물을 기르는 요정들의 신을 믿으셨던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요.〉

논리를 따지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로키를 보고 말았다.

〈그래서 로두르 씨? 당신도 요정들처럼 식물을 기르거나 할 수 있어요?〉

말로 하진 않았지만 로키의 적성은 대충 안다.

얼음 속성의 궁극은 공간 속성이고, 베로니카와 바이콘들은 불꽃과 빛을 다룬다.

불과 얼음. 공간을 오가는 열의 이동, 엔트로피.

그러니까 유희신은 구천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차원의 신인 것이다.

유희신의 권능 【보천의 편자】은 그 궁극적인 발현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의문스럽다는 말이지.’

로키가 만언신으로서의 면모도 갖췄다지만 풍작이랑은 별 연관이 없어 뵈는데.

내 지적에 포도 씨를 뱉던 로두르 씨, 그러니까 로키는 움직임을 뚝 그쳤다.

─슥. 눈을 피하는 로키=로두르.

〈……아들딸이 일취월장해서 자신을 뛰어넘는 게 바로 부모의 기쁨이지.〉

〈못 한다는 거군.〉

〈이 씨! 그러는 너도 베로니카처럼 먼 미래를 보진 못하면서!〉

〈그래, 그래. 권능, 축복, 가호를 어떻게 승화하는지는 신자들 나름이지.〉

개개인의 적성은 부모 자식을 안 가리는 법이다.

오딘 바라기 로키의 우직한 올곧음과 유희신의 적성은 유니콘, 바이콘들에게.

트릭스터 로키의 사고뭉치 성격과 만언신의 적성은 요정들에게 간 것이 아닐까.

하이로메인 교수한테 목숨을 거는 동성애자 유니콘이 생각나는 순간이군 그래.

피는 못 속인다고, 후손들을 한 데 모아서 융합하면 로키 2도 만들어지겠어.

〈후후. 제가 로키 님을 따르는 데 이보다 많은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너, 아까부터 충분히 많이 떠들었는데.〉

〈윽!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과연 로키 님!〉

이거 순 광신도구만.

레이디 가가가 마이클 잭슨의 극렬 팬이라던데, 이 꼬마 교황님은 비유하자면 마이클 잭슨을 만난 레이디 가가의 팬이라고 보면 될까.

음. 역시 난 천재야. 딱 들어맞는 비유로군.

〈하여튼, 그러니까 제가 이것을 반출해도 어디 가서 혼날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화자찬하고 있자 꼬마 교황은 손수 로키 메뚜기에게 온갖 먹거리를 갖다 바치고서는, 내게 다가와서는 정중하게 가져온 함을 내밀었다.

〈이건?〉

〈선물이 마음에 드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바라시는 물건일 듯 싶군요.〉

폐허에서 기다리면서도 내심 노심초사했다는 그.

나는 그 함을 열고 나서, 눈치챘다.

이거. 성물함(聖物函)이다.

〈자고로 선물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건네주는 게 제일 아니겠습니까?〉

〈크, 당연하지요. 역시 말이 통하십니다.〉

교황이 열어준 궤짝을 들여다 보자, 문득 어느 고전소설이 떠오르는 나였다.

어느 동네에서는 잘 익은 보리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늑대가 달린다’고 말한다던가.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이 보리밭 속을 늑대가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랜다.

〈15대 교황이 평생을 들여서 만든 걸작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크흐흐.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늑대의 문양이 각인된 고풍스러운 성물을 보며 나는 헤벌쭉 웃었다.

이세계인들은 은유를 참 좋아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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