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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포모나교 교황의 선물을 받은 날, 황제의 처형이 집행되었다.
딱히 할 말은 없다. 하도 죽어 마땅한 씹새라서 이것저것 캐낼 게 없었으면 그냥 숨어 있던 저택 마당에 묻고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했을 것이고.
분노를 비롯한 감정을 해소하고자 처형 현장에 인파는 많이도 모였댄다.
귀족, 일반시민을 가리지 않는 현장에는 실형만 면한 황족들도 있었고, 이 기회를 또 프로파간다 삼을 오델리아가 싸울 때는 입지도 않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통제했다.
나는 따로 현장에 향하지 않았지만, 심약하다는 황녀마저 자신이 장차 할 수 있는 일들을 위해서 주먹이 하얘지도록 쥐고 참석했다고 한다.
죄를 범한 황제와, 그렇지 않은 황족을 구분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덜커덩!
처형은 끝났지만 시체를 효수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불만이나 잡음이야 틀딱 콤비랑 의원들이 잘 해결하겠지. 어려운 일은 짬처리하고 보고만 딱 받는 게 최고야.
〈로마니아에 정의 있으라!〉
〈자유를 되찾읍시다! 괴물에 지배당하지 않는 인간의 시대를!〉
〈정의는 필히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자유를 쟁취할 것입니다!〉
강북호식 줄빠따를 맞은 교황들이 셋이나 모여 현장에서 기도문을 외우고 한바탕 연설을 벌였다. 이 고양감이 폭주로 내달리지 않게, 언젠가 밝힐 사실을 위해 말이다.
당연히 내외에서 외교를 맡은 사람들도 뒤지게 바빠졌댄다.
〈죽은 황제가 귀국의 학자들에게 무도한 짓을 저질렀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소. 우리는 로마니아라는 재산을 물려받는 이상, 그 업보 또한 물려받아야 하고. 허나.〉
〈허나 무엇이오? 차기 황제 양반.〉
〈저, 코르넬리우스는 황제가 아니라 귀족들이 신임해주는 임시 대표일 뿐입니다. 그리고 배상은 마땅히 해야만 할 일이나, 면밀한 조사 없이 심증만으로 지불할 순 없습니다.〉
〈무례하군! 우리가 죽은 이들의 목숨으로 장사하러 온 것으로 보이시오?!〉
〈참회도 용서도 살해당한 이들의 유족들에게 구하겠습니다. 배상금이 국가에 귀속되었다가 다시 피해자들에게 환부되는 건 시간과 인력의 낭비일 뿐이 아닌지요?〉
〈……끙. 알겠소. 그러나 대전쟁에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은? 기록이 귀하의 예전 주군에게 거의 말소됐다고는 하나, 우리 나라에도 관련 기록물이 없는 건 아니오.〉
〈……끙.〉
어르신은 말년에 일진일퇴가 무척이나 빡셌는지 공무원들한테 내가 한 것처럼 줄빠따를 갈기고서 열심히 세계 평화에 힘을 쓰고 계셨다.
아이고~! 이중 삼중으로 외국 사람인 저는 넘모 걱정되지만 도와드릴 수가 없네오!
지구-키타이-브리타니아의 트리플 혼종 외노자 노르드는 웁니다. 흑흑.
─노르드. 각국 귀족들의 참석 허가가 나왔다네. 슬슬 와서 좀 돕지 그러나?
─여관의 우편함이 고장나 있어, 삐 소리 이후 편지가 반송됩니다.
나이도 지긋한 어르신이 파릇파릇한 20대한테 구애의 댄스 연발하는 거 실화냐?
안 돼요! 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전 임자가 있는 몸이에요!
─이 ㅆ…… 후우. 노르드. 나도 손주가 있다네. 자네가 이런 식으로 할애비가 늘그막에 손주를 볼 시간을 짓밟으면은, 마 그땐 깡패가 되는 것일세!
─않이 그게 바빠가지고 애기도 못 만들고 있는 사람한테 할 말임미까?
─답장을 보니 편지는 제대로 갔는가 보군. 자, 당장 출석하게. 지원군이 필요해.
─대타출동.
─뭐, 뭔가? 또 누굴 보내려고 그러나?
편지의 지면에서 보이는 어르신은 당황하신 듯 했다. 킹치만 제가 개쩌는 인기남인걸요? 저한테 오는 러브콜이 어르신만 있는 게 아니라서
〈아틀란티스를 얻었다는 그 울프 어쩌고에게도 배상을 청구해야 하지 않소?〉
〈옳소! 그 섬은 대전쟁의 주역 중 하나이니, 제아무리 연좌가 없대도 노르드 폰 울프헤딘은 섬을 손에 넣은 값을 치를 의무가──〉
〈저희 나라의 백작에게 볼일이라도?〉
〈에, 엘리자베트 공주?!〉
〈네. 배상 건으로 왔습니다.〉
‘노르드 나 무시해요? 저한테도 순정이──’ 로 시작하는 엘리자베트의 편지를 받은 나는 샌드백 E씨와 G씨 부부를 로마니아에 특수소환했다.
차기 여왕님을 샌드백으로 쓰면 양심의 가책은 없냐고?
‘응, 좆도 없어~.’
그야 저 아줌마는 때리면 때렸지, 처맞고 다닐 타입은 아닌걸?
〈황제들의 부덕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울프헤딘에게 책임을 추궁하나요? 그와 학자들이 진실을 밝히려 들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황제들의 죄를 알 수나 있었겠습니까?〉
〈크, 크흠. 그러나, 공주……〉
〈하물며 이 사실을 밝혀낸 고고학계의 권위자 및 모험가 길드 연합의 총장은 저와 울프헤딘에게 협력하고, 후원받는 이들입니다.
아니면, 게르마니아의 황자님께선 고고학자들이 대전쟁의 피해 상황을 규명해내도 귀국은 정보를 공유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행동력 하나는 오지게 높은 공주님은 총독부를 갈아버리는 불도저처럼 우다다다 달려와서는 내게 튀는 불꽃을 호로록 빨아드셨다. 멸룡마법사신가.
〈지금 우릴 협박할 생각이시오?!〉
〈글쎄요. 귀국이 대전쟁 때 에린에 가한 기습 기록을 찾았는데, 에린의 후손들은 대부분이 저희 브리타니아에 의탁하고 있죠. 연좌죄를 따져보고 싶으시다면 그 피해금부터 지불하시겠어요?〉
불의 정령왕 엘퀴자베트(은)는 빨대 꽂기(을)를 사용했다!
〈아, 알겠소! 배상금은 대전쟁의 원인 제공자인 로마니아만 지불하는 걸로 하지!〉
효과는 굉장했다!
하는 김에 나랑 브리타니아한테도 삥 좀 뜯어보려던 사람들이 고이 접히는 데까지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게 정치지.
나는 당연히 의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놀라운 지원군의 등장에 어르신께서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히히. 그러게 난 왜 건드리셨대.
“어쩔 수 없죠. 이번만 임시 동맹입니다, 전하.”
“배상금 「줘」.”
“아잇 씨ㅍ──”
“의원님!! 말투, 말투!!”
예전에 나한테 줄 영지를 갖고 개도국의 비애를 겪은 엘리자베트는 후련하게 복수하고, 적당하게 어르신과의 협력에 들어갔다는 모양이다.
잘 됐네, 잘 됐어. 꺼-억.
***
교황들하고 헤어진지 사흘 후.
외출했다는 핑계로 나갔던 나는 로마니아 수도 중심에 있는 여관에 돌아갔다.
‘이렇게 여관에 들락날락 하는 것도 간만이네.’
모험가 시절하고 다르게 내가 오기만 해도 정장 쫙 빼입은 직원들이 달려온다는 게 다르긴 하다만. 지체 높아 보이는 지배인이 말했다.
〈외유는 즐거우셨습니까, 울프헤딘 백작님? 식사를 준비할까요?〉
〈아뇨. 술을 조금 선물받았으니 안주만 만들어 주십시오.〉
아내들도 한가할 텐데 술이나 한 잔 하게.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는 말에도─하물며 여관의 상품을 산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지참해온 거다─ 지배인은 싱긋 미소지었다.
〈물론입니다. 따로 원하시는 요리나 식재료는 있으신지요?〉
〈아, 마침 받아온 선물이 좀 있습니다. 맡겨도 되겠습니까?〉
〈예. 그럼 셰프의 솜씨를 기대해 주십시오.〉
크헤헤.
흔히 아부를 싫어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진짜 제대로 된 아부를 못 들어봤거나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생물인데 칭찬을 싫어하겠냐고. 물론 아부에 중독되면 판단력이 떡락해서 인생을 그르치니 적당히 조절할 필요는 있다.
대충 술 담배 같은 거지. 문제는 내가 즐기려고 하지 않아도 입에 쑤셔박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거지만 말이다. 스마일 마약을 강매하는 브로커들 같으니.
“노르드 왔음!”
“로키도 왔음!”
“어? 아, 어…… 베, 베로니카도 왔음?”
기운차게 외치는 나랑 로키에 [email protected](베로니카).
오델리아의 주선으로 잡은 호텔은 한 층을 아예 독차지해서, 문을 열고 외쳐봤자 딱히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다들 방음 쩌는 자기 방에 있거든.
무반응에 실망했는지 로키는 쳇 하고 혀를 차곤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울프헤딘, 울프헤딘. 나 용돈 줘.”
“할매 치매 왔어?”
“아~ 좀 줘도 되잖아아~! 돈도 많으면서~!”
땡깡 부리지 마. 이제 신이라는 놈이 강림해도 ‘신이라고 해 봤자 로키잖아’ 하고 감흥이 없어질 것 같단 말이야. 군대에서 맞이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감수성이 삭막해진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지갑, 아니. 메달을 열었다.
“그래,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까 준다. 그런데 돈 받아서 뭐하게?”
“베로니카랑 바이콘들 데리고 밖에 나가서 먹고 놀 건데?”
“그러다가 골목길에서 헤니르가 ‘여어, 유희신’ 이 지랄 하면 어쩌려고?”
“어쩌긴? 엊그제 쯤 네 예지에 나왔겠지.”
듣고 보니까 그렇네. 나는 지갑을 열었다.
“5실버면 되지?”
“좋아, 좋아. 헌금을 받아들이마. 네 앞날에 이 몸, 로키의 축복과 행운 있으라!”
네 축복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보다 나는 하루치 용돈으로 5실버를 턱 꺼내는 금전감각에 놀랐느니라.”
“뎃? 너랑 바이콘들한테 대준 재료비 연구비의 0.1%도 안 되는걸?”
“엣.”
멍해지는 베로니카. 갑부 종족 바이콘이라도 그 금액 단위에는 머리가 띵해진 모양.
근데 원래 연구개발은 돈을 먹는 하마란다. 잘 쓰고 있는 거지, 이 정도면.
“아, 여러분도 돌아오셨군요.”
그러자 한 발 먼저 돌아와 있던 티르시가 마침 밖에 나왔다. 그녀는 무슨 일인가 하다가 로키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다녀올게요. 옛날 기억 뿐이지만 가이드 정도는 가능할 테고요.”
“티르시도요?”
“저 분들끼리만 내보내자니 영 걱정돼서.”
그것도 듣고 보니 팩트네. 제정신이 돌아온 베로니카는 조금 억울한 듯 말했다.
“마치 나로는 상식이 부족하다는 뜻 같구나?”
“슬레이프니르의 탄생 설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갬성으론 솔직히 좀 걱정되긴 함.”
“그건 악신의 혈족인 요툰의 수작을 지혜로 물리치고 스바딜파리 님께도 자비를 베푼 미담이지 않느냐! 신마님께서 천공신님께 충성을 바치게 된 계기도 근사하기만 하고!”
“……티르시, 저도 같이 갈까요?”
“……아녜요. 숨도 돌릴 겸 살짝 다녀올게요.”
구신이라고 하면 콩깍지부터 쓰고 보는 바이콘들이다. 로키가 광장에서 락앤롤을 벌여도 신나갖고 무대를 준비해 줄 것 같아서 무섭다.
─우르르르!
왁자지껄 관광하러 떠나는 아스가르드 패밀리와 그 보호자.
그렇게 그녀들과 교대하며 들어온 직원이 방금 만든 안주를 가져다줬다. 아쉽게도 아내들도 남지 않았기에 혼자 웨이터처럼 그릇을 드는 나.
좀 궁상맞네, 쓰벌.
“테에엥…….”
처연하게 훌쩍거려도 여관은 조용할 뿐.
다나랑 라리루라는 공짜 경험치를 습득할 준비 때문에 바쁘고, 베로니카랑 티르시는 나갔다. 아마 방에 가면 프랑이나 네페르티티는 있을 텐데……
‘조용한 걸 보면 자고 있나?’
방음이 잘 된다지만, 우리 가족 중에서 청력이 예민하기로는 탑급인 그녀들인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여관 방 문을 열고,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Zzzz.”
프랑과 네페르티티가 내 방에서 자고 있었다.
머선 일이지? 나는 신통방통한 느낌에 방 안을 살피고 납득했다.
짜다 말고 잘 정돈된 털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과 안주.
‘밤새 떠들면서 스웨터라도 짜고 있었나 본데.’
왜 하필 내 방에서 짰는지는 몰라도 딱히 뭐라 추궁할 만한 일도 아니다.
혹시 남편이 외근해서 밤에 적적해진 그녀들이 사이 좋게 파자마 파티라도 했던 걸까? 미안하고 슬프구만. 몰래 침대로 변신해서 구경하고 싶었다.
쌕…… 쌕…….
침대에 다가가자 자매처럼 서로 끌어안고 잠든 미녀들. 화보 같군.
잠든 프랑의 뺨을 살짝 쓰다듬어봤다.
취기 때문인지 안 그래도 아기처럼 따땃한 말랑말랑 바디가 더 따끈했다.
“……흐흐.”
좋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일만 했더니 가랑이가 묵직하던 참인데.
…움찔.
“으음……”
그때 프랑이 내 기척에 부스스 일어났다. 살짝 머리가 헝클어진 프랑은 이제 숙취에 고생할 일도 없을 만큼 성장했는지, 비몽사몽하게 날 알아보곤 헤벌레 하고 웃었다.
“에헤헤, 노르다. 안녕?”
“안녕, 프랑. 깨워서 미안.”
“아냐. 잘 왔어. 침대에서 노르 냄새 나서 엄청 푹 잤어.”
팔을 벌리길래 끌어안아줬다. 그렇지만 자세가 자세다 보니, 무방비한 모습에 발기한 쥬지가 부득이하게 프랑의 배에 닿고 말았다.
프랑이 내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며 웃었다.
“……에헤. 노르 음흉해.”
“남자는 다 늑대야. 근데 안전하게 집을 짓지는 못할 망정, 늑대 집에 들어와서 쿨쿨 자고 있으니 잡아먹혀도 할 말 없지.”
허벅지를 감싸며 다리를 들췄다. 프랑도 저항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 했다.
속옷에 손가락을 걸,자 프랑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면서 수줍게 말했다.
“……아직 아침인데?”
“실컷 할 수 있겠네.”
─툭.
우락부락한 손이 보드라운 몸을 자빠트렸다.